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237)
아크 더 레전드-237화(237/875)
[237] SPACE 4 Are U Ready? (3)그리고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푹 숙이고 잰걸음으로 휴게실을 빠져나갔다.
그녀가 걸음을 멈춘 곳은 건물 밖의 벤치 앞이었다.
“죄송합니다. 이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훗, 방금 전에 고백을 한 남자가 미안하다고 하면 전 뭐라고 대답해야하죠?”
“네? 아, 아니…… 그게…… 그러니까…….”
“그냥 해본 말인 가요?”
“그건 아닙니다! 전 진심으로 민선 씨를 좋아합니다!”
버럭 소리친 현우가 얼른 입을 가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다시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이 말했다.
“좋아합니다.”
“자, 작게 말하지 마요! 그, 그렇다고 소리치지도 말아요!”
“하지만 민선 씨가…….”
“한 번이면 되요.”
조민선이 현우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현우는 잠시 물끄러미 그런 조민선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가을에 접어들어 제법 차가워진 바람이 그녀의 머리칼을 가볍게 흩어놓았다. 그런 머리칼 사이로 아직 붉은 빛이 남아있는 볼과 목덜미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묘한 설레임이 심장을 간질이는 느낌이 전해졌다. 익숙하지는 않지만 좋은 울림을 가진 느낌. 잠시 그 느낌에 취해있던 현우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역시 전 아웃인가요?”
“아웃?”
“민선 씨와 택산 지구에 갔다온 뒤에 제가 보낸 메시지. 그 뒤로 정말 많이 생각해봤지만 다른 대답이 나오지 않더군요. 하지만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어요. 미안하다는 말은…… 이제 만나고 싶지 않다는…… 그런 의미로 보내신 겁니까?”
“……그런 의미는 아니었어요.”
“아니라고요?”
“그 메시지는…… 적혀있는 의미 그대로예요.”
조민선이 한숨을 불어내며 말을 이었다.
“제게는 아버지가 계세요.”
현우는 지금까지 그녀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줄 알았다.
일전에 병원에서 봤을 때도 혼자였고, 간호사들 말로도 그녀 외에는 찾는 사람이 없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뭐 그렇다고 그녀에게 아버지가 있다는 말이 딱히 놀랄 이유는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는 살짝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부자예요. 흔히 말하는 재벌이죠.”
“재, 재벌이요?”
“놀랄 것 없어요. 아버지가 그렇다는 거니까. 아버지에게는 본처가 있어요. 그러니까 어머니는 말하지만 첩…… 같은 거죠. 하지만 저는 아버지를 좋아했어요.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어머니를 만나러 올 때는 언제나 멋진 차를 타고 몇 명이나 되는 수행원을 데리고 다니는 아버지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죠. 첩이 뭔지 알게 됐지만 그게 아버지를 싫어할 이유는 되지 않았어요. 아버지를 싫어하게 된 건 좀 더 나이가 들어서죠. 재벌이라고 불리는 아버지가, 그 돈을 모으기 위해 어떤 일을 해왔는지. 아니,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알고 나서부터죠. 그리고 현우 씨와 만난 그 날, 그런 아버지의 어두운 면을 또 하나 알게 됐죠.”
“저와 만난 날?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일전에 아버지가 저도 모르게 저와 어머니의 명의로 부동산을 구입한 적이 있었어요. 저는 그 사실을 부동산이 팔린 뒤에야 알게 됐죠.”
“부동산? 그럼 설마…….”
“택산 지구의 부동산이었어요.”
그제야 현우는 그동안 품고 있던 대부분의 의문이 풀렸다.
택산 지구에 갔던 그 날, 조민선이 왜 그렇게 부동산 얘기에 관심을 보였는지, 그리고 왜 돌아오는 내내 어두운 표정이었는지, 그러나 여전히 한 가지만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근데 왜 제가 미안하다는 문자를 보내신 건데요?”
“못 들었어요? 택산 지구는…….”
“네, 민선 씨 아버님이 택산 지구의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가 판 사람이라는 말은 들었어요. 하지만 그 땅이 제가 가지고 있는 땅은 아니잖아요. 아니, 같은 땅이라도 민선 씨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잖아요. 민선 씨가 나에게 미안하다고 해야할 이유는 없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은 오히려 내가 해야 할지도 몰라요.”
“무슨 말이죠?”
“말했죠? 제가 아크라고. 자서전을 봤다면 알 텐 데요? 나는 당한 건 꼭 이자까지 쳐서 갚아줘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라는 걸. 택산 지구의 일도 마찬가지예요. 전 이대로 물러날 생각이 없거든요. 만약 민선 씨 아버님이 정말 내 땅의 이전 주인이라면 제게 한 방 먹을지도 몰라요. 그러니 혹시라도 미안해해야 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내가 되지 않겠습니까?”
“아버지는 돈이 많아요. 어지간한 손해쯤은 손해라고 생각하지도 않을 정도죠.”
“그럼 서로 미안해할 일은 하나도 없는 셈이네요.”
현우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녁에…… 연락해도 될까요?”
현우의 물음에 조민선은 한숨을 불어내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빙긋 웃으며 밝은 목소리로 대답해주었다.
“제가 할 게요. 이번에는 전화통화로.”
* * *
세상은 불공평하다.
어떤 사람은 핑크빛에 물들어 행복하지만, 같은 시간을 보내면서도 어떤 사람은 땀내 풀풀 풍기는 사내들 틈에서 죽어라 목도를 휘둘러대기도 하는 것이다.
여기가 바로 그런 사내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청성 검도관!
국가대표 검도 선수를 여럿 배출한 명문 검도관이었다.
그런 검도관이라도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부는 훈련 강도가 높지 않았다. 무도라기보다는 여가활동용 취미라 선수들처럼 빡세게 구를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예외인 사람도 있었다.
휘잉—! 휘잉—!
다른 관원들과 떨어져 홀로 목검을 휘두르는 사내.
한 차례 땀을 흘리고 휴식을 취하던 관원들이 질렸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대체 저 친구는 누구야?”
“아까 우리가 들어올 때부터 내리치기를 하고 있지 않았어?”
“체력이 장난이 아니군. 목검을 다루는 솜씨도 예사롭지가 않은데?”
“예전 실력에 비하면 저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때 한 사내가 호구를 벗으며 다가왔다.
“김 사범, 저 친구 알아?”
“알죠. 제 동창입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저와 같은 검도부였는데, 전국체전에 출전해 동메달을 딴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3학년 때부터 갑자기 가상현실 게임인지 뭔지에 빠지더니 졸업하고 나서는 아예 게임으로 먹고산다고 하더군요.”
“게임? 그럼 프로게이머라는 거야?”
“전 잘 몰라요. 하여간 그래서 한동안 연락을 끊고 살았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며칠 전에 갑자기 체육관에 나오고 싶다고 연락이 왔어요. 그리고 그때부터 틈만 나면 나와서 저렇게 몇 시간 동안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라고요.”
“왜?”
“그야 저도 모르지만, 검에 살기가 느껴지는 걸 보면 그냥 운동 삼아 저러고 있는 건 아니겠죠. 하, 이거 참. 이러다가 누구 하나 골로 가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저 녀석 학창시절에도 독종으로 소문났던 놈이거든요.”
검도관 사범이 찜찜한 눈으로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사내의 검은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멈출 수 없었다. 좌로 우로, 위에서 아래로, 다른 관원들의 눈에는 검이 베어내는 것이 빈 공간으로 보이겠지만, 사내의 눈에는 마주서서 그 검을 막아내는 존재가 뚜렷하게 보이는 것이다.
밉살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는 남자!
‘……아크!’
땀방울이 흘러내리는 사내의 입술이 일그러졌다.
그가 사는 세계에서는 발렌시아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사내였다.
‘난 준비가 되었다!’
땀에 젖은 사내의 얼굴에서 살기 어린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SPACE 5 Tooran the Hawk (1)
“이힛!”
입가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머릿속에서는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이리나의 영상이 무한 반복되고 있었다.
-제가 할 게요. 이번에는 전화통화로…… 통화로…… 로…… 로…….
이리나는 약속을 지켰다.
야심한 시각에 그녀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특별한 얘기는 없었다. 택산 지구의 부동산이나 그녀의 집안 얘기는 아크도, 이리나도 더 이상 꺼내지 않았다. 오전에 한 아크의 폭탄고백에 대해서도 얘기하지 않았다.
그저 집에는 잘 들어갔는지, 밥은 잘 먹었는지, 뭐하고 있었는지. 뻔한 얘기뿐이었다.
아마도 다른 사람과의 통화였다면 예의 상 늘어놓은 말에 불과하리라. 그러나 아크는 같은 말이라도 상대가 바뀌면 와 닿는 느낌도 천만 배정도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몇 시간이나 지나있었다.
“이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피곤하세요?]“그건 아니지만 민선 씨가 전화했잖아요. 전화비가 부담될까봐 그러죠.”
[저…… 무제한 요금제예요…….]토, 통신사 만세! 무제한 요금제 만만세!
무제한 요금제라는 단어가 이렇게 달달한 단어인지도 그때 처음 알았다.
역시 별 다른 얘기는 없었다. 그때까지 했던 얘기의 반복. 그러나 아크는 그녀의 집안얘기를 들을 때보다 그런 뻔한 얘기를 하면서 더 그녀에 대해 많이 알게 된 기분이 들었다.
그녀와 짧고도 긴 통화를 끝낸 게 불과 3시간 전, 아크는 채 2시간도 자지 못하고 갤럭시안에 접속해있었다. 그러나 피곤함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넘친다! 넘쳐! 의욕이 넘친다!’
머릿속에서 철철 넘치는 아드레날린+도파민!
이게 죽어 가는 사람도 벌떡 일으킨다는 러브러브 파워였다.
‘후후후! 무적이다! 지금의 난 무적이야!’
그러나 그런 아크의 모습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 어이. 저거 괜찮은 거야?”
“저래 보여도 일단 형님이잖아. 무슨 짓이야 하겠어?”
“하지만 아까부터 상태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고. 우리를 바라보면서 침을 뚝뚝 흘리고 히죽거리잖아. 갑자기 덮쳐서 물어뜯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
“그, 그런 말하지마! 무섭다고!”
밀란과 헤겔이 아크를 힐끔거리며 수군거렸다.
그들이 힐끔거리는 선장석에 앉아있는 것은 아크가 아니었다.
믹스 업의 부작용이 시작된 이후, 아크는 시도 때도 없이 뮤탈로 변신했다. 멀쩡하게 있다가도 갑자기 뮤탈로 변하고, 변신 시간도 짧게는 10분, 길게는 1시간이 넘도록 뮤탈 상태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었다. 덕분에 밀란과 헤겔만 죽을 맛이었다.
밀란과 헤겔은 S-20에 남은 토리를 대신해 실버스타의 조종을 맡고 있었다.
그리고 아크가 앉아있는 선장석은 조종석의 뒤, 바로 뒤에서 아크가 흉측한 몬스터로 변할 때마다 뒷덜미가 쭈뼛거리는 것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상황이 더 심각했다.
15시간에 걸친 장시간 워프 항해 중이다.
때문에 다른 팀원들은 이스타나를 출발하자마자 선실에 들어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따라서 현재 함교에 있는 것은 조종사 밀란과 헤겔, 그리고 선장 아크뿐. 그런데 좀 전부터 뮤탈로 변신한 아크가 침을 뚝뚝 흘리며 히죽거리고 있는 것이다.
‘형님이 계속 제정신일 거라고 뭘로 보장해? 몸이 저 상태인데 머릿속이 정상일지 어떻게 장담 하냐고? 저런 상태면 언제 미쳐서 우리에게 달려들지도 몰라!’
‘방심하면 언제 당할지 모른다!’
덕분에 함교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아크는 그런 긴장감 따위는 관심 없었다. 아니, 자기가 뮤탈로 변신 중이라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아크가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그로부터 10여 분이 지나서였다.
“하암,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어? 우주여행도 꽤나…… 웃!”
하품을 하며 들어오던 슬레이가 헛 바람을 들이켰다.
“난 또, 아크냐? 쳇, 놀랐잖아.”
“놀라? 왜?”
“너 지금 몬스터야.”
슬레이가 움켜쥐었던 대검을 놓으며 대답했다.
워프 항해를 시작한 직후, 아크는 팀원들이 취침 모드로 들어가기 전에 서로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했었다. 앞으로 죽으나 사나 이제 한 달은 동고동락해야하는 팀이다.
유저들 간의 정보교환은 필수!
이를 통해 팀원들은 대학생인 멜리나를 제외한 나머지 유저, 슬레이와 그레온, 사다인, 파크, 카야, 그리고 쿠라칸까지. 모두 아크와 비슷한 20대 중반임을 알게 되었다. 때문에 좀 더 편하게 지내기 위해 서로 반말을 사용하기로 합의했다.
“나도 모르게 패버릴 뻔했다고.”
“그런 놈은 엘라인 하나만으로 충분하거든?”
“그래, 그런 놈도 있었지. 그런데 항해하는 내내 안 보이던데?”
“의무실에 누워있어. 그 녀석은 탈 것에 약하거든.”
아크가 뮤탈로 변할 때마다 검을 휘둘러대던 엘라인.
이 쿠산족 최강 전사는 실버스타가 이륙을 하자마자 오바이트를 뿜어내며 뻗어버렸다.
그 뒤로 지금까지 의무실에서 요양 중. 사실 이건 엘라인에게도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아크의 정수리에 검 자국을 남는 놈이다. 우주병이 아니었어도 아크에게 피떡이 되도록 얻어맞고 의무실에 누워 있었으리라.
“그런데 아직 멀었어? 그 투란이란 곳은?”
“이제 거의 다 왔어.”
아크와 슬레이가 잡담을 나누는 사이.
게임에 접속한 팀원들이 속속 함교로 모여들었다.
“좋은 아침! 잘 쉬셨…… 어머!”
“아우! 어제 오랜만에 시간이 나서 친구 만나서 한잔했더니…… 웃!”
“어? 다들 일찍 들어왔네? 나는…… 욱!”
그리고 외마디 비명으로 아크와 아침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계기판을 바라보던 밀란이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
“이제 위프 공간에서 나갑니다!”
“오오! 드디어!”
15시간의 위프 항해가 끝난 것이다.
함교에 모인 팀원들이 기대 어린 시선을 창 밖으로 향하는 순간, 소용돌이치던 빛의 입자가 확 퍼져나가며 다차원 포탈을 빠져나온 실버스타가 우주공간에 떠올랐다.
그 앞에는 수백의 불빛을 뿜어내는 구조물이 떠있었다.
마치 거대한 빌딩을 겹쳐놓은 듯한 다층 구조의 금속 구조물.
-Tooran the Hawk!
구조물 위로 레이저가 만들어내는 빛의 문자가 수놓아져 있었다.
‘투란 더 호크? 그럼 설마 이 하이브의 주인이…….’
아크가 멍하니 투란을 바라보자 지직거리는 노이즈와 함께 통신이 연결되었다.
-식별코드 인식. 은하연방 소속 실버스타. 함장 아크. 잘 오셨습니다. 호크 각하의 지시에 따라 실버스타를 인도하겠습니다. 관제 코드는 Tooran-10939. 코드에 접속하고 우주선을 원격 조종 모드로 전환해주십시오. 관제실에서 통제하겠습니다.
“형님.”
밀란이 고개를 돌렸다.
이어 아크가 끄덕이자 바쁘게 손을 움직였다.
그러자 실버스타가 흡사 자석에 이끌리듯이 서서히 투란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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