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266)
아크 더 레전드-266화(266/875)
[266] SPACE 6 신이라 불리는 사나이 (2)“민선 씨, 위험해요!”
“네? 무슨……?”
조민선이 고개를 돌리는 것과 동시에 일이 벌어졌다.
술잔을 들고 오던 여자가 갑자기 중심을 잃고 넘어지며 조민선의 등에 술을 쏟은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중심을 잃고 넘어지는 ‘척’하며.
동시에 현우의 머릿속에 올해 초에 있었던 해외 난민 돕기 자선 파티에서 봤던 장면이 겹쳐졌다.
그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누군가 일부러 조민선의 드레스에 술을 쏟으려고 했던 사건! 방금 조민선에게 술을 쏟아부은 여자가 바로 그때의 그 여자였다. 반년 전의 수법을 그대로 사용하는 걸 보니 꽤나 창의성 없는 여자임이 분명했지만 이번에는 성공한 것이다.
현우가 울컥한 표정으로 여자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대체 이게 무슨 짓입니까!”
“어머! 이거 미안해서 어쩌죠? 어라? 너 민선이 아니니?”
“어, 언니…….”
조민선의 얼굴이 당혹감이 번졌다.
현우 역시 당황했다. 그녀와 아는 사이라고 짐작은 했지만 언니라니? 현우가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이, 여자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현우와 조민선을 번갈아 보았다.
“데이트? 흠, 제법 멀쩡해 보이는 남자네. 뻣뻣하고 애교라고는 없는 애가 그래도 남자 후리는 재주는 있었던 모양이네? 그것도 유전인가 보지?”
“이보세요!”
“손님, 뭔가 문제가 있으십니까?”
현우의 고함에 웨이터가 황급히 뛰어왔다.
이에 현우가 뭐라 입을 열려할 때였다. 조민선이 고개를 저었다.
“현우 씨, 그만하세요.”
“하지만…….”
“됐어요. 부탁이에요. 시끄럽게 하고 싶지 않아요. 별일 없으니까 그만 가 보세요. 현우 씨, 죄송하지만 잠시 자리 좀 비울게요.”
조민선이 굳은 표정으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러자 안절부절못하던 웨이터가 얼른 수건을 건네주며 그녀를 화장실로 안내했다. 그렇게 조민선과 웨이터가 사라지자 여자가 현우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 저 애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아?”
“대강 들었습니다. 그게 당신하고 무슨 상관입니까?”
“상관있지. 저 애 아버지가 내 아버지이기도 하거든. 하지만 나와 아버지가 같다고 해서 다 같은 자식은 아니지. 저 계집애는 첩의 자식이야. 무슨 말인지 알지? 흔한 얘기잖아. 돈 많은 영감이 어쩌다가 실수로 낳은 자식. 그게 저 계집애라고.”
“할 말은 그게 답니까?”
“호오, 놀라지도 않네? 뭐 알만해. 저런 계집애랑 붙어먹는 놈이니 대강 짐작이 가. 이미 어느 정도 조사는 끝냈다는 말이겠지. 하지만 번지수를 잘못 찾았어. 뭔가 기대하고 있었다면 포기하는 편이 나아. 이건 충고이자 경고야.”
“저도 충고이자 경고를 드리죠.”
현우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제가 화내기 전에 자리로 돌아가시는 게 좋을 겁니다.”
“흥, 꼴에 자존심은…….”
“민선 씨의 언니라니까! 한 번은 참아 드리는 겁니다.”
현우가 불길이 쏟아져 나올 듯한 눈으로 여자를 바라보며 낮게 뇌까렸다.
그 기세에 눌린 것인지, 아니면 할 일을 마쳤다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자는 콧방귀를 뀌며 자리로 돌아갔다.
그런 여자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니 자기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자신이 모욕을 당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민선 씨에 대해 아는 게 없었어!’
그녀가 자신을 첩의 자식이라고 말했을 때도 현우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에게 그게 어떤 의미인지, 그녀가 어떻게 살아왔다는 뜻인지, 이해할 수도 없었고 이해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조민선의 반응을 보면 안다, 이게 그녀에게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 막 만나기 시작한 남자 앞에서 이런 모욕을 당하는 일조차 그녀에게는 특별하지 않은 일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리고 참았으리라.
첩의 자식이니까. 단지 그 이유만으로 그녀는 참으로 많은 시간을 참으며 지내왔을 것이다. 아마도 감정 표현에 서툰 그녀의 성격은 그런 인내의 결과물이었으리라.
거기까지 생각하자 참기 힘든 분노와 오기가 치밀었다.
“미안해요. 자리를 옮기죠.”
조민선이 자리로 돌아온 건 그때였다.
아직 젖어 있는 그녀의 드레스를 보자 머릿속에서 뭔가가 툭 끊어졌다.
“아니요. 말했잖아요. 이 식당은 아는 사람이 예약해 준 곳이라고. 이런 비싼 음식을 남의 돈으로 먹을 기회는 흔치 않아요. 그러니 일어날 때 일어나더라도 밥은 먹어야지죠.”
* * *
“쳇, 저 계집애 아직도 버티고 있네. 참 낯짝도 두꺼워. 독한 계집애! 하여간 낯짝 두꺼운 것도 유전이라니까. 남의 남자나 집적대는 여자가 엄마니 오죽하겠어?”
여자, 조미라가 불쾌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스테이크를 썰던 사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야야, 너무 그러지 마라. 불쌍하다.”
“저런 게 불쌍하기는 뭐가 불쌍해? 불쌍한 건 오히려 나지. 저런 불결한 계집애하고 같은 성을 쓰고 있다는 생각만 하면 하루에도 몇 번이나 속이 뒤집힌다고.”
“그래도 설핏 보니까 꽤 예쁘던데?”
“뭐야?”
“그냥 그렇다는 거야. 뭐 그리 예민하게 굴어?”
“내가 예민하지 않게 됐어? 말했지? 저 계집애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속이 뒤집힌다고. 그런데 한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이딴 게 소화가 되겠냐고! 젠장, 저 계집애는 전생에 나와 무슨 원한이 있었기에 밥도 제대로 못 먹게 만드는 거야? 저런 계집애와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으니 나까지 격이 떨어지는 것 같잖아.”
“너그럽게 생각해.”
사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딱 보면 모르겠어? 네 동생…… 이크, 알았어. 저 여자가 데려온 남자를 봐. 딱 봐도 빈티가 풀풀 풍기잖아. 뭔가 드라마가 떠오르지 않아? 가난한 청년과 집안에서 멸시받는 첩의 딸. 자판기 커피나 뽑아 마시면서 서로를 위로하며 살아가고 있겠지. 그러다가 한 번 큰맘 먹고 무리를 해 가며 이런 식당을 찾아왔겠지. 그리고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고급 파스타를 시켜 놓은 거야. 그러니 술을 뒤집어쓴 정도로 포기할 수 있겠냐? 아아, 젠장. 젓은 옷을 입고 파스타를 먹고 있는 걸 보니 눈물이 다 나온다.”
“호호호! 듣고 보니 그러네! 불쌍해!”
“그래, 너나 나나 부모 잘 만나서 저런 불쌍한 사람이 되지 않은 거야. 그러니까 때로는 베풀 줄도 알아야지. 노블레스 오블리주! 들어 봤지? 우리처럼 태생이 귀족인 사람들은 저런 천민을 위해 베풀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야. 어이!”
사내가 손짓으로 웨이터를 불러 얘기했다.
“여기 와인 좋은 게 뭐가 있습니까?”
“마침 오늘 좋은 와인이 몇 개 새로 들어왔습니다.”
“가격대는?”
“저렴한 건 80만 원부터…….”
“됐습니다. 그 정도가 적당하겠군요.”
웨이터의 말을 끊은 사내가 현우의 테이블을 가리켰다.
“그걸 저쪽 테이블에 갖다 주십시오. 아까 봤죠? 내 애인이 저쪽 테이블의 여자에게 실수를 했지 않습니까. 그러니 사과의 의미로 보내는 거라고 말해 주십시오. 하지만…… 먼저 저쪽 신사 분에게 양해를 구하는 게 순서겠지요. 저쪽 신사분이 화도 풀리지 않은 상태라면 오히려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니 굳이 본인이 계산하겠다면 그렇게 하라고 하십시오. 내 성의를 받아 주겠다고 하면 내 앞으로 달아 주시고.”
“그렇게 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웨이터가 물러가자 사내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어때? 가난한 연인에게 평생 마셔 볼 엄두도 내지 못하는 와인을 맛보게 해 주는 것, 바로 이런 선행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거라고.”
“깔깔깔깔! 그거 좋네. 노블레스 오블리주!”
조미라가 자지러지듯이 웃으며 흥미로운 눈으로 현우와 조민선을 지켜보았다.
그사이 웨이터가 테이블로 다가가 와인을 보여 주며 설명하자 현우가 슬쩍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러기를 잠시, 고맙다는 듯이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고 와인을 개봉했다.
조미라의 입가에 비웃음이 번졌다.
“그걸 또 넙죽 받아먹네.”
“저런 걸 거지 근성이라고 하는 거야. 자존심 한번 숙이면 80만 원짜리 와인이 공짜로 생기는데 체면이고 뭐고 없겠지. 그나저나 80만 원짜리 와인에 파스타라니, 이제 와인이 불쌍하군. 기왕 선행을 베푸는 김에 이번에는 스테이크라도 한 덩어리 던져 줄까?”
“해 봐! 해 봐! 이번에도 넙죽 받아먹는지 한번 보게!”
“좋아. 어이, 여기…… 어?”
사내가 웨이터를 부르다가 벌떡 일어났다.
“왜 그래?”
“아, 아니, 잠깐 기다려 봐.”
사내가 급하게 옷매무새를 다잡으며 홀을 가로질렀다.
그가 뛰어간 곳에는 막 식당에 들어선 한 무리의 사내들이 모여 있었다. 수행원으로 보이는 10여 명의 건장한 사내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50대 노신사와 아랍 계열의 외국인. 사내는 먼저 노신사에게 다가가 넙죽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
“안녕하십니까, 김 회장님 되시죠?”
“음? 자네는?”
“중앙 호텔의 막내아들입니다. 지난번에 아버님 회갑연에서 뵀죠.”
“그래, 기억나는군. 이름이 박은찬이라고 했던가?”
“기억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그런데 같이 오신 분들은 혹시…….”
“아, 알고 있나?”
당연히 알고 있었다.
사내, 박은찬이 김 회장이라고 부른 사람은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성연 그룹의 회장. 그리고 그와 함께 있는 아랍계 남자 중 1명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중동의 석유 재벌 압둘.
세계적인 기업가라도 그를 만나려면 몇 달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고 할 정도의 저명인사였다.
박은찬이 헐레벌떡 뛰어온 것은 그 때문이었다.
참으로 뜬금없지만 박은찬은 야심가로 막내아들이면서도 아버지의 호텔을 물려받아 떵떵거리고 살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런 박은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맥. 성연 그룹의 회장과 석유 재벌 압둘과 친분을 쌓아 두면 분명 자신의 야망을 이루는데 두고두고 도움이 되리라.
“김 회장님과 세계적으로 유명한 압둘 님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김 회장님이 압둘 님도 친분이 있는 사이라는 말은 들은 적이 있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잠시라도 제가 모실 수 있게 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고맙지만 사양하겠네.”
김 회장이 점잖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와 압둘은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러 온 거니까.”
“친구? 이 식당에 두 분의?”
박은찬이 당혹스러운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룹 회장과 석유 재벌이 직접 찾아와 만나는 사람이라니? 대체 얼마나 거물이기에 이런 사람들이 친구라는 표현까지 사용한단 말인가? 정치인? 재계의 거물?
박은찬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을 때였다.
“오! 저기 있군.”
그때 김 회장이 활짝 웃으며 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박은찬 따위는 관심도 없다는 듯이 성큼성큼 구석의 테이블로 걸어갔다. 다음 순간, 엉거주춤한 자세로 김 회장과 압둘을 바라보던 박은찬의 입이 쩍 벌어졌다.
“아하하핫! 현우 군, 그동안 잘 있었나?”
‘뭐, 뭐야? 김 회장님과 압둘의 소중한 친구라는 게 저…….’
그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베푼 자판기 커피 남자(?)였다.
재계의 거물들이 현우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사이 테이블 주위로 수행원들이 병풍처럼 척! 척! 척! 그제야 김 회장과 압둘을 알아본 손님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성연 그룹 회장? 게다가 저 아랍 사람은 압둘이잖아?”
“저런 사람들이 여기는 왜?”
“같이 앉아 있는 두 사람은 누구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장난 아니군. 일단 저 두 사람하고 같이 앉아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일단 보통 사람하고는 사는 세계가 다르다는 말이잖아.”
박은찬은 단숨에 사색이 되어 테이블로 뛰어갔다.
“미, 미라, 너! 제대로 얘기해! 네 동생하고 같이 있는 남자, 누구야?”
“누구냐니?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정말 몰라?”
“모른다니까. 그보다 저 사람들은 누군데?”
“젠장, 저 사람도 모른다고? 너도 회장님 딸이면 재계에 관심 좀 가져 봐라. 저 사람은 성연 그룹 회장이야. 그리고 함께 있는 아랍 사람은 압둘, 석유 재벌이라고!”
박은찬의 설명에 강미라의 눈이 이따만 해졌다.
“에에? 그런 사람들이 왜 저 녀석들하고 같이 있는데?”
“젠장!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어쨌든 저 김 회장이나 압둘이 일부러 찾아와 만날 정도면 뭔가 엄청난 놈이라는 뜻이잖아. 빌어먹을! 내가 대체 무슨 짓을…….”
“실례합니다.”
박은찬이 식은땀을 흘리고 있을 때였다.
좀 전의 웨이터가 다가와 와인 한 병을 내밀며 말했다.
“아까 손님께서 와인을 보내신 테이블에서 보답으로 보내주신 와인입니다. 78년산 프랑스 와인으로 시가 225만 원, 저쪽 손님께서 저희 레스토랑에서 가장 비싼 와인을 보내 드리라고 해서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꼭 전해 드리라고 하더군요. 초면에 너무 비싼 와인을 받아 부담되시면 직접 계산하셔도 이해하겠다고요. 물론 부가세는 별도입니다.”
“저, 저게 감히!”
“앉아!”
박은찬이 조미라를 향해 소리쳤다.
그리고 똥 씹은 표정으로 앓는 소리를 내며 대답했다.
“……감사히 마시겠다고 전해 주십시오.”
“미쳤어?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 네 자존심은 225만 원짜리야?”
“빌어먹을! 그래, 내 자존심은 225만 원짜리다. 어쩔래? 그럼 나보고 어쩌란 말이야? 내 얘기 못 들었어? 지금 저 녀석과 같이 있는 사람은 성연 그룹 김 회장과 압둘이라고! 지금 나보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있는 테이블로 뛰어가서 놈의 멱살이라도 잡으라는 거야? 그런 짓을 했다는 게 우리 꼰대 귀에 들어가면 난 바로 아웃이라고, 아웃!”
“그럼 너 혼자 실컷 처먹어!”
조미라가 벌떡 일어나 레스토랑을 뛰쳐나갔다.
그러나 박은찬은 따라나서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자기가 조롱하던 남자가 어마어마한 거물들과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덕분에 잔뜩 기가 죽어 바늘방석에 앉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보다 참기 힘든 것은 궁금증이었다.
대체 정체가 뭐기에 불과 20대 중반밖에 되지 않는 저 남자가 저런 거물들과 함께, 그것도 거물들이 먼저 찾아와 만난단 말인가? 그걸 알아내기 전에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다. 그들이 자리에서 일어난 건 대략 1시간이 지난 뒤였다.
현우와 조민선이 먼저 레스토랑을 나가고, 김 회장의 비서가 계산―심지어 와인도 현우 돈으로 보낸 것이 아니었다!―을 하는 사이 박은찬이 잽싸게 다가가 물었다.
“김 회장님, 방금 전에 만난 사람,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누구인지 알려 주시지 않겠습니까?”
“아, 김현우 이사 말인가?”
“이사?”
“음, 대단한 친구지. 말하자면…… 신이라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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