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27)
아크 더 레전드-27화(27/875)
[27] SPACE 1. 유적 탐사 (1)“뭐랄까…….”
아크가 심란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네팔림에 들어온 지 오늘로 보름째, 그동안 실버핸드에 팔려 가 쉬지 않고 기계 생명체 나쿠마를 사냥해 레벨도 올리고 기본 장비품도 맞췄지만 아크의 관심사는 오직 한 가지 목적에 집중되어 있었다. 해킹을 배워 비행기 장난감 속에 담겨 있는 데이터를 알아내는 것.
보름간 진흙 바닥을 굴러 대며 피와 기름 범벅이 되어 처절한 전투를 치른 이유는 오직 그 목적을 위해서였다.
그리고 방금 전 드디어 해킹 프로그램 ‘인베이더’를 완성해 비행기 장난감 속에 숨겨져 있던 데이터의 락을 풀 수 있게 되었다.
-해킹을 시도합니다.
해킹 과정은 락의 종류에 따라 달라집니다. 락의 등급과 해킹 스킬의 등급에 따라 해킹 과정의 난이도가 달라집니다. 락에 걸려 있는 보안장치를 모두 뚫고 설정된 점수를 확보하면 락을 해제할 수 있습니다.
“어라?”
아크는 해킹 프로그램과 스킬을 배우면 나머지는 자동으로 진행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정보창을 읽어 보니 락을 해제하는 데도 나름의 기술이 필요하다고 적혀 있지 않은가.
당연히 그 기술까지는 배우지 못한 아크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는데…….
-현재 접속한 락의 종류는 ‘하이 러너 : 레벨 2’입니다.
좌측 끝 부분에 위치한 캐릭터가 당신의 해킹 프로그램 ‘인베이더’입니다. 당신은 그 인베이더를 움직여 데이터를 보호하는 수많은 장애물과 가디언을 돌파해 목적지에 도달해야 합니다. 도중에 장애물과 가디언에게 닿으면 해킹은 실패합니다. 자, 이제 그동안 익힌 해킹 실력을 발휘해 숨겨진 데이터를 공략해 봅시다!
메시지와 함께 님프의 화면이 바뀌었다.
좌측 하단에 커다란 열쇠를 들고 있는 사람이 나타나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화면이 우측으로 이동하며 바위나 함정, 로봇 따위가 나타났다.
아크가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도 모르고 헤매는 사이에 사람이 바위에 부딪쳐 뻗어 버렸다.
-GAME OVER!
해킹에 실패했습니다. 연속으로 3회 실패하면 24시간 동안 접속이 되지 않습니다.
“게임 오버? 뭐야? 그러니까 이게…….”
단 한 번의 시도로 아크는 해킹 방법을 100% 이해할 수 있었다. 뭐 이해하고 말고 할 문제도 아니었다.
전철이나 버스를 탈 때 시간 죽이기로 하던 스마트 폰 게임, ‘윈드러너’나 ‘드래곤 플라이트’와 다를 바가 없는 게임 방식이었던 것이다.
결국 열쇠를 가진 캐릭터를 요리조리 잘 움직여 장애물을 피해 끝까지 도착하면 해킹 성공……이라는 뜻이리라.
뭐랄까, 알기 쉬워서 좋기는 하지만…….
“……이게 해킹이냐?”
안심이 되면서도 허탈하기 짝이 없는 기분이 들었다.
뭐 갤럭시안도 게임이니 게임의 룰을 따르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윈드러너라니…….
어쨌든 해킹이 이런 방식이라면 아크에게는 나쁜 일이 아니었다. 스마트 폰이 일반화된 현재, 대다수의 국민이 그렇듯 아크 역시 이런 캐주얼 게임을 적지 않게 만져 보았다.
그리고 발군의 집중력과 반사 신경 덕분에 주간 랭킹 1위를 차지한 적도 적지 않았다.
말하자면 이 분야에서는 이미 프로의 경지!
삑! 삑! 삑! 삑!
완벽한 타이밍에 맞춰 점프! 점프! 점프!
첫 실패 이후 아크는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해 수많은 장애물을 넘으며 돌격했다. 그렇게 5분, 마침내 아크의 분신은 거대한 성문까지 돌진해 열쇠를 꽂아 넣을 수 있었다.
순간 성문이 쩍 갈라지며 메시지가 떠올랐다.
-모든 방화벽을 돌파해 마침내 데이터를 보호하는 락을 해제했습니다!
락을 해제하고 메모리 칩의 데이터를 님프에 다운로드받고 있습니다.
“성공이다!”
아크가 환호성을 터뜨렸다.
비록 갑자기 나타난 80년대 게임에 살짝 당황했지만 이로써 모든 장애물을 뛰어넘어 데이터 해킹에 성공했다.
여기까지 도달하는 데 걸린 시간은 무려 보름!
그 고생의 결과물을 이제야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대체 뭐가 있을까? 숨겨진 던전의 위치? 아니면 스킬?’
게임을 하면서 이때만큼 가슴 설렐 때가 있을까?
데이터에 숨겨진 뭔가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그렇게 가슴 졸이며 기다리는 사이 다운로드가 10%, 20%, 30%…… 마침내 100%가 되었다.
“오오! 이제야!”
아크가 주먹을 움켜쥐며 소리쳤을 때였다.
-시스템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데이터에 의해 님프의 OS에 치명적인 손상이…… !!#$@##$!caeQdDf1!qolq!#$%!#$#$%!alq290481-4901#@#$%!!!!
“헉! 이, 이게 뭐야?”
환호성이 비명으로 바뀌었다.
다운로드가 완료되자 님프의 화면이 파랗게 변해 버렸다.
그와 함께 화면을 가득 채우며 떠오르는 알 수 없는 문자와 기호들!
“이, 이건 설마……?”
아크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온천수처럼 터져 나왔다.
파란 화면과 알 수 없는 문자, 아크는 이런 화면을 본 적이 있었다. 갤럭시안이 아닌 현실에서.
그렇다. 아는 사람은 안다.
대표적인 컴퓨터 OS인 윈도우에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 떠오르는 화면. 일단 떠오르면 유저를 공황 상태에 빠뜨린다고 알려진 오류 화면 일명 블루 스크린!
“이건 말도 안 돼! 님프가 무슨 윈도우냐? 블루 스크린이라니?”
아크가 비명을 터뜨리며 정신없이 님프를 만져 보았다.
그러나 님프는 묵묵부답…….
때때로 화면이 바뀌기도 했지만 그 역시 알아볼 수 없는 문자와 기호뿐이었다. 당연히 캐릭터 정보창이나 아이템 창, 시스템 설명 등 님프의 모든 기능이 먹통!
그와 함께 아크의 머릿속도 먹통이 되어 버렸다.
“대, 대체 갑자기 왜 이런…….”
떠듬거리던 아크가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왜냐고 물으면 짚이는 바가 없지는 않았다. 님프에 블루 스크린이 떠오른 것은 비행기 장난감의 데이터를 다운로드받은 직후. 그렇다면 떠오르는 대답은 하나뿐이다.
“설마…… 장난감 비행기에서 다운받은 데이터가…… 컴퓨터 바이러스였다는…….”
게임 속에서 컴퓨터 바이러스에 감염되다니?
누가 그런 일이 벌어지리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러나 지금 상황은 그것 외에는 해명할 방법이 없었다.
“맙소사! 대체 내가 무슨 짓을…….”
아크가 머리를 부여잡으며 털썩 주저앉았다.
보름 동안 죽어라 노력해서 락을 깨고 얻은 것이 컴퓨터 바이러스에 맛이 간 님프라니?
푸르뎅뎅하게 변해 버린 님프의 화면을 보고 있자니 허망함을 넘어 절망적인 기분까지 들었다.
갤럭시안의 모든 시스템을 담당하는 님프가 맛이 갔다.
캐릭터 정보창은 물론 아이템 정보창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는 상태로 무슨 게임을 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죽어가던 아크의 눈동자에 조금이나마 빛이 돌아온 건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였다.
‘그래, 님프가 맛이 가 버리면 아이템이나 스킬은 물론 캐릭터 정보창조차 확인할 수 없다. 아예 게임을 할 수 없는 것이나 다름없어. 이게 갤럭시안 자체의 심각한 버그라면 모르겠지만 게임 속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이대로 복구되지 않을 리가 없어. 유저가 게임을 접게 만들 생각이 아니라면 분명 복구할 방법이 있을 거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그게 당연하다.
그때부터 아크는 게임 안에서는 상업 지구를 돌아다니고, 밖에서는 갤럭시안 관련 정보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맛이 간 님프를 복구하는 방법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몇 시간을 돌아다녀도 이렇다 할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하긴 아크가 배운 해킹은 별 4개짜리 레어 등급 스킬.
얼마 전에야 서비스를 시작한 갤럭시안에서 해킹을 배운 사람이 많을 리가 없었다. 하물며 아크처럼 재수 없이 해킹한 데이터 때문에 님프가 맛이 간 유저가 몇이나 되겠는가?
해결 방법은 있다.
그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그걸 언제 찾아낼 수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아크는 망가진 님프를 부여잡고 낑낑거려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빌어먹을, 대체 왜 나에게만 이런 재수 없는 일이 계속되는 거야?’
아크가 한숨을 푹푹 불어 내고 있을 때였다.
“룰룰룰! 룰룰룰!”
바로 옆에서 콧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던 아크가 괜히 울컥해 고개를 들어 올리자 커다란 짐을 짊어지고 고물상 안으로 들어오는 햄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아크의 고용주 토리였다.
아크의 머릿속에 ‘!’가 떠오른 건 그때였다.
‘멍청하게! 님프와 함께 내 머리통도 맛이 가 버린 건가? 왜 내가 그 생각을 못 하고 엉뚱한 곳을 쑤시고 다녔지? 이런 일의 전문가가 바로 옆에 있었잖아. 맞아. 원래 해킹 스킬은 저 햄스터 자식이 가르쳐 준 스킬이야. 저 녀석은 오래전부터 해킹 스킬을 사용해 왔으니 지금 나와 같은 일을 겪어 봤을 수도 있어.’
걱정되는 건 토리가 돈독 오른 햄스터라는 점이었다.
아크가 곤경에 처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떻게든 돈을 뜯어낼 궁리부터 할 놈이다. 그 점이 심히 걱정되었지만 이제 아크에게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아니, 설사 돈을 뜯기더라도 토리가 해결 방법을 알고 있기를 기도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저…….”
그렇게 생각한 아크가 짐짓 곰살맞은 표정을 지으며 토리에게 다가갔다. 콧노래를 부르며 들어오던 토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어? 너 여기서 뭐 하냐? 아직도 해킹 프로그램 다 못 만든 거야?”
“아니, 해킹 프로그램은 다 만들었는데요…….”
“어쨌든 마침 잘됐다.”
토리가 등짐을 내려놓고 종이를 한 다발 꺼내 들었다.
“해킹 프로그램 만들었으면 당장 할 일 없지? 그럼 이것 좀 뿌리고 와.”
“이게 뭔데요?”
“보면 몰라? 전단지잖아, 광고 전단지.”
토리가 전단지 한 장을 아크의 코앞에서 흔들어 대며 대답했다.
토리 상점 기어의 기간 한정 세일!
「작열탄」,「초전도 전자석」등 유용한 아이템을 대량 입하해 20%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유용한 아이템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상업 지구 D-23구역의 토리 상점 기어를 찾아 주십시오!
팔랑거리는 전단지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멀뚱멀뚱 전단지를 바라보던 아크가 갸웃거리며 물었다.
“어? 작열탄? 초전도 전자석? 우리 가게에 그런 물건이 있었어요?”
“여기 있잖아.”
토리가 커다란 보따리를 탁탁 치며 씨익 웃었다.
“방금 전에 이 물건들을 정가의 50%도 되지 않는 가격에 구해 왔거든.”
“에? 50%도 안 되는 가격에? 어디서요?”
“쿠히히히히. 실은 얼마 전에 자금난에 허덕이는 다른 상점에 돈을 빌려 준 적이 있거든. 하지만 난 알고 있었지. 그 상점이 곧 망할 거라는 걸.”
“망할 걸 알면서 돈을 빌려 줬단 말이에요?”
“당연하지. 그래야 나에게 돈이 되니까.”
토리가 햄스터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
“그 상점은 규모에 비해서 꽤 쓸 만한 기술을 가지고 있던 곳이었어. 전단지에 적혀 있는 작열탄이나 초전도 전자석도 그 상점이 특허권을 가지고 있었지. 뭐, 그것만 믿고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다가 자금난이 겹쳐 망하게 됐지만…… 어쨌든, 이 몸은 이런저런 루트로 이미 그 상점이 재기 불능 상태에 빠졌다는 걸 알고 돈을 빌려 준 거야. 그리고 좀 전에 결국 상점이 부도가 났다는 말을 듣고 잽싸게 달려가 이것들을 챙겨 온 거지.”
“그럼 이게 전부 빚 대신 받아 온 물건이라는 말이에요?”
“물건만이 아니지.”
토리가 자랑하듯이 서류를 꺼내 보여 주었다.
서류의 표지에는 ‘「작열탄」「초전도 전자석」설계도면&특허권 이전서’라고 적혀 있었다.
“진짜 돈이 될 만한 건 이거지.”
이게 토리가 망해 가는 상점에 돈을 빌려 준 이유였다.
빚을 갚지 못해 망한 회사니 당연히 토리가 빌려 준 돈 역시 갚을 방법이 없었다. 때문에 토리는 채권자로서 당당하게 그 회사의 상품을 빚 대신 받을 권리가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경우, 그 상품에 제값을 쳐줄 채권자는 없었다.
토리가 자랑스럽게 말한 것처럼 최소 50% 이하. 아니, 말은 50% 이하지만 실제로는 빼앗다시피 가져온 게 분명했다.
“그럼 처음부터 그럴 생각으로 돈을…….”
“당연하지. 그럴 생각이 아니면 망해 가는 회사에 왜 돈을 빌려 주겠냐? 흥! 그 사장 자식, 처음에는 이미 다른 채권자에게 모두 빼앗겨 빈털터리가 됐다며 배 째라는 식으로 나오더라고. 하지만 이 몸이 누구냐? 이미 다 조사했지. 인상 더러운 용병 몇 명 고용해서 진상 좀 떨어 주고 특허권까지 탁탁 털어 왔지. 쿠히히히히!”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이지 징한 햄스터다.
그러나 새삼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는다. 이게 자본주의 경제의 원칙이다. 그리고 아크 역시 그런 자본주의 경제의 원칙에 입각해 한때 적지 않은 돈을 벌어들였던 경력이 있는 것이다.
그때 토리가 은근한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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