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280)
아크 더 레전드-280화(280/875)
[280] SPACE 2 또 다른 시간 속에서 (3)“그게 쿠휀 황자님을 모시고 성지 트라이포스로 가야 하는 이유다.”
토트가 빙글 몸을 돌리며 말했다.
뭔가 되게 중요한 말을 한 것 같은데…… 갑자기 그렇게 말한다 한들…… 다행히 토트는 아크가 기억상실증에 걸렸다는 점을 잊지 않고 추가 설명을 해 주었다.
“무라티우스타는 37대 호루스의 뜻에 따라 순혈의 무라트를 지키기 위해 외계와의 교류를 한정시켰다. 혹성 궤도에 아브라삭스라는 일종의 공간 결계를 펼쳐 무라티우스타의 대기권으로는 어떤 우주선도 진입할 수 없지. 세트가 고작 황도의 병력만으로 반란을 일으킬 수 있었던 이유가 그것이다. 은하계로 진출해 있는 수천수만의 무라트 함대는 아브라삭스로 인해 아직 황도에서 벌어진 사건을 알 수 없을 것이고, 설사 알게 되었다고 해도 함대를 이끌고 무라티우스타로 돌아와 반란을 진압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아, 네…….”
황도가 있는 모성을 외부와 단절시킨다?
‘아예 반란을 하라고 등을 떠미는 듯한 시스템이군요.’
이런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참았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아브라삭스를 조작할 수 있는 장치가 있는 장소는 두 곳이다. 하나는 이미 세트에게 점령당한 황도의 황성 그리고 다른 하나가 바로 성지 트라이포스다. 그중 트라이포스의 장치를 조작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호루스뿐, 황도에 문제가 생겼을 때를 대비해 만들어 놓은 트라이포스의 아브라삭스 제어 장치는 대대로 호루스의 피에 섞여 있는 샤이어에만 반응하게 되어 있다. 다시 말해 선대 호루스께서 비명에 서거하신 지금, 이제 아브라삭스를 조작할 수 있는 사람은 쿠휀 황자뿐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상황은 간단하다.
쿠휀 황자가 트라이포스로 찾아가 아브라삭스를 해제한다.
그리고 은하계 곳곳에 퍼져 있는 무라트 함대에 세트의 반란을 고자질한다. 그러면 무라트 함대가 귀환, 세트와 반란군을 박살 내면 무라티우스타는 다시 평화를 되찾는 것이다.
“하지만 세트도 대비를 하고 있지 않을까요?”
“트라이포스에 아브라삭스 제어 장치가 있다는 것은 오직 황가에만 전해지는 비밀이다. 물론 세트도 제어 장치가 하나 더 존재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때문에 황도를 점령한 이후 병사를 풀어 쿠휀 황자와 아브라삭스 제어 장치를 수색하고 있지. 내가 아직 준비도 되지 않은 너를 서둘러 수련관으로 데려와 엘림의 후계자로 만든 이유가 그 때문이다.”
토트가 그윽한 눈으로 아크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나는 반란이 일어나기 직전에 차기 호루스인 쿠휀 황자가 선대 엘림의 양자인 너와 함께 엘림의 정신적 스승으로 일컬어지는 나를 찾아온 것을 위대한 라와 슈, 테프누트의 인도라고 믿고 있다. 네가 엘림의 후계자 수업을 무사히 마친 것도 위대한 세 태양신의 뜻. 이제 네게 주어진 사명은 쿠휀 황자를 무사히 트라이포스까지 호위하는 것이다.”
아마도 아크가 엘림의 후계자 직업을 가지고 있어 이 시공간으로 들어올 때 직업과 연동되어 마치 과거의 엘림에게 빙의되는 듯한 현상이 벌어진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건 아크에게 한정된 역할.
같이 시공간으로 들어왔을 다른 팀원들이나 퍼거슨, 호크가 어떤 모습으로, 어디에 있을지는 상상도 되지 않지만 뭐 그것도 일단은 나중 문제다.
‘당장 팀원이나 실버스타를 찾아도 이 세계를 나갈 방법을 찾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도 없어. 돌아가는 상황을 볼 때 이 시공간을 나갈 방법은 아마도 이번 임무와 상관이 있겠지. 그리고 나는 현재 황자의 수호 기사다. 반란이 진압되면 황자는 무라트의 황제, 호루스가 된다. 그때가 되면 팀원이나 실버스타를 찾는 것쯤은 일도 아닐 거야.’
단지 이 시공간을 벗어나기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아크의 직업인 엘림의 계승자는 마지막 정식 엘림이었던 자낙스의 실종으로 오랫동안 명맥이 끊어져 있었다. 때문에 유니크 한 직업임에도 관련 스킬을 많이 배우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아크가 있는 곳은 엘림의 고향 무라티우스타. 그리고 앞에 있는 쪼글쪼글한 영감은 엘림의 정신적 스승이라고 불리는 NPC다. 혹시 아는가? 그런 토트와 함께 있다 보면 엘림과 관련된 스킬이나 아이템을 얻을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어쨌든 이로써 여기서 아크가 해야 할 일이 명확해졌다.
오래전의 무라트 엘림이 되어 쿠휀 황자를 성지까지 호위하는 것! 아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발치의 모래가 스르르 움직였다. 그리고 뭉치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더니 순식간에 글자로 바뀌었다.
-고대 외계 문명 무라트의 밝혀지지 않은 정보를 습득했습니다.
우주의 장구한 역사 속에서 융성과 쇠퇴를 반복한 외계 문명은 별처럼 많습니다.
이런 외계 문명의 밝혀지지 않은 정보를 입수하는 것은 우주의 역사를 밝히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잊힌 외계 문명의 기술이나 숨겨진 아티팩트를 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당신은 이해할 수 없는 힘에 의해 오래전의 무라트 혹성, 무라티우스타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대의 무라티우스타에서 세트라는 자에 의해 반란이 일어났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은 앞으로 무라트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정보가 될 것입니다.》
+고대 외계 문명 무라트의 정보(3/15)를 입수했습니다.
+고대 외계 문명 무라트의 정보를 입수해 모험치를 300 획득했습니다.
+고대 외계 문명 무라트의 정보를 입수해 지능이 5 상승했습니다.
님프가 없으니 이런 식으로 정보창이 만들어진다.
어쨌든 이로써 여기가 버그 공간이 아니라는 것은 100% 확실해졌다.
아크가 모래가 저절로 움직여 글자로 변하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경험한 직후.
“저기가 무라트의 성지 중 하나인 미나헴이다.”
토트가 지팡이로 멀리 보이는 도시를 가리키며 말했다.
성지란 번영한 도시라는 뜻이 아니다. 그냥 역사적으로 혹은 종교적으로 중요한 장소라는 뜻이다.
굳이 그런 말을 하는 이유는 토트가 가리킨 도시가 생각만큼 번영한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도시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한 수준의 허름한 마을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도시에는 차기 호루스가 될 쿠휀 황자가 있다. 아마도 쿠휀 황자가 이 도시에서 출발해 세트의 반란을 진압한다면 이 도시는 또 다른 이름의 성지가 되리라, 뭐 그것도 쿠휀 황자가 반란 진압에 성공했을 때의 얘기지만.
“서둘러라. 쿠휀 황자께서 기다리고 계신다.”
토트의 걸음이 빨라졌다.
SPACE 3. 무라티우스타를 위하여! (1)
‘뭐랄까…….’
아크가 머리를 긁적였다.
황자를 데리고 반란을 진압하기 위한 여정을 떠나야 한다.
뭐 마지막 단계는 트라이포스라는 곳에 도착해 공간 결계를 해제하면 무라트 함대가 몰려와 정리한다지만, 현재 무라티우스타는 반란군 세트의 군대에게 장악되어 있는 상태였다.
맞서 싸우든 피하든 당연히 쉽지 않은 여정이 되리라.
그러나 아크와 동행할 사람은 다름 아닌 차기 호루스가 될 황자다. 아무리 성지 순례를 위해 나왔다지만 황자라는 지위에 어울리는 근위병을 데리고 있으리라.
‘그 근위병들과 힘을 합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생각했지만…….
“혹시 황자님의 근위병은 이게 답니까?”
도시의 중심, 황자가 기거하고 있다는 추상화처럼 독특한 형태의 신전에 들어선 아크가 토트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토트가 지팡이 손잡이 부분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끄덕였다.
“쿠휀 황자님은 전쟁보다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시는 분이다. 그래서 평소에도 병사들을 많이 데리고 다니는 것을 싫어하시지.”
“이게 다라는 말이군요.”
아크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신전 정원에는 30여 명의 병사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귀족 출신의 학자나 예술가―입고 있는 복장을 보면 알 수 있었다―로 보이는 수행원이 어림잡아 20명은 되어 보였다. 적어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NPC들이었다. 토트가 아크를 데리고 신전으로 들어서자 그들이 힐끔대며 수군거렸다.
“토트 님은 정말 저자를 엘림의 후계자로 삼을 작정인가?”
“무라트는 엘림이 될 수 없다는 규율이 있지만…….”
“저자는 선대 엘림이 주워 온 고아가 아닌가? 게다가 미개한 지구의 휴먼이잖아.”
“휴먼은 이제 겨우 석기시대를 벗어난 종족이야. 그런 원시인 수준의 휴먼을 엘림의 후계자로 임명하다니, 토트 님도 망령이 나신 건가?”
“엘림은 무라트를 대표하는 전사. 무라트 내부에서는 어디까지나 명예직에 불과하지만 비상시에는 사령관을 대신할 수 있는 자다. 다시 말해 황자께서 저자를 엘림의 정식 후계자로 임명하면 우리의 지휘관이 된다는 말이야. 원시인의 명령을 받아야 한다고.”
“끔찍하군.”
“황도가 점령당해 한시가 바쁜 시기에 저런 자를 엘림의 후계자 시험을 받게 하기 위해 지체해야 한다니.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지 의심스럽군.”
게다가 아크를 좋아하지도 않는 모양이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경멸하는 눈치였다.
아크가 한숨을 불어 내자 바사크가 거친 콧김을 뿜어내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저 자식들이 아직까지! 형님, 명령만 내려 주십시오! 저 따위 말을 하는 놈들은 제가 방패로 퍽퍽 두들겨 패서 몽땅 납작하게 만들어 놓겠습니다!”
“상관없어. 뭐라고 떠들든.”
그러나 아크는 심드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크가 한숨을 불어 낸 이유는 병사들의 말에 상처를 입어서가 아니었다. 아크는 그 정도로 섬세한 심장의 소유자도 아닐뿐더러, NPC들이 수군거리는 말에 일일이 발끈하면 게임 따위는 하지 못한다.
단지 암담할 뿐이다. 그런 병사들을 보고 있자니 앞으로의 여정이 상상 이상으로 순탄치 않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토트는 그런 아크의 반응을 다른 식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그래, 잘 생각했다. 엘림은 입으로 얘기하는 자가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 주는 자다. 지금은 비록 저렇게 말해도 네 실력을 보여 주면 저들의 태도도 달라질 것이다. 무지한 자들의 속삭임에 현혹되지 않는 것도 엘림의 중요한 자질 가운데 하나다.”
좋게 봐주니 고맙지만…….
“그런데 쿠휀 황자님은 어디에 계시는 겁니까?”
“여기 있네.”
대답이 들려온 곳은 뒤쪽이었다.
그 대답에 아크와 바사크, 토트가 몸을 돌려세웠다.
다음 순간 아크의 얼굴에는 어리둥절한 표정이 떠올랐다.
뒤에서 다가오는 것은 열 살 남짓 되는 10여 명의 아이들이었다. 방금 전까지 흙장난을 하다가 돌아오는 아이처럼 여기저기 흙이 묻어 있는, 그냥 동네 아이들처럼 보이는 소년 소녀 들이었다.
“이, 이런! 또…….”
“황자님, 어찌 그리 망극한…….”
아크는 병사와 귀족들의 말을 듣고 나서야 아이들 중 황자가 섞여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 모두 비슷한 옷을 입고 있어 누가 황자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한 소년이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제드, 왜 그런 표정으로 두리번거리고 있는 건가? 설마 고작 하루 반나절 동안 떨어져 있었다고 내 얼굴을 잊어버린 것은 아니겠지?”
제드라는 이름은 처음 듣는다.
그러나 아크는 눈치 100단, 분위기를 보아하니 그게 이곳에서의 아크의 이름인 모양이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이 아이가 황자라는 뜻!
상상했던 것보다 어린 황자의 모습에 아크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뭐? 아니, 네? 그럼 당신이?”
“뭔가? 정말 내 얼굴을 잊어버린 건가? 아니면 그대의 말을 듣지 않고 또 동네 아이들과 어울렸다고 나를 놀리고 있는 건가? 그런 것이라면 그만두게. 그대의 장난은 재미없어.”
소년이 볼을 부풀리며 투덜거렸다.
“아니, 전하, 사실은…….”
토트가 얼른 소년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그러자 소년이 놀란 표정으로 아크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불어 내며 다가왔다.
“어떻게 그런 일이…… 엘림의 자질을 시험받는 수행이 위험하다는 말은 토트에게 들어 익히 알고 있었지만 기억까지 잃을 정도로 힘든 일이었단 말인가? 그런 고난을 이겨 내고 수련관을 통과하다니, 기억을 잃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대단하군. 또한 어린 시절부터 그대와 함께 지내온 나조차 미처 알아보지 못한 재능을 꿰뚫어 본 토트의 혜안 역시 대단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군.”
“과찬이십니다, 전하.”
토트가 우쭐한 표정으로 고개를 조아렸다.
그때 주위에 모여 있던 수행원들이 펄쩍 뛰며 소리쳤다.
“기, 기억을 잃었다고?”
“맙소사! 엘림의 후계자가 될 자가 기억을 잃었다니? 그게 말이 되는가? 이런 비상시에 자기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자를 엘림으로 삼아 무슨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전하, 이건 말도 안 됩니다! 지금이라도 제드의 후계자 지목을 취소해 주십시오!”
“말을 삼가라!”
소년이 와락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
방금 전까지 아이들과 섞여 헤헤거리던 소년의 돌발적인 행동에 수행원들은 물론 아크까지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순간 아크는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
고개를 돌리는 그 짧은 순간, 이제 겨우 열 살 남짓밖에 되지 않는 소년의 얼굴이 극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장난기 많은 소년의 얼굴에서 수십 개의 혹성 위에 군림하는 무라트 황자의 얼굴로.
“아바마마가 세트에게 시해됐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이후 그대들은 무엇을 했는가? 무라트를 구해 낼 생각은커녕 불안에 떠는 주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명색이 영광스러운 무라트의 귀족이라는 너희들이 한 일이란 그저 머리를 맞대고 알량한 자신의 지위를 잃게 될까 걱정할 뿐이었다. 그러나 제드는 친부처럼 따르는 선대 엘림을 잃은 아픔을 당하고도 무라트를 구하고자 기꺼이 기억마저 잃을 정도로 힘든 수행을 이겨 내고 후계자의 자격을 얻고 돌아왔다. 그대들의 눈에는 정녕 그런 사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인가?”
소년 아니, 황자가 수행원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대답하라! 그대들에게 제드를 미개한 휴먼이라고 경멸할 자격이 있는가? 대답하라! 그대들에게 제드가 기억을 잃었다고 경멸할 자격이 있는가? 없다. 그러니 입을 다물라! 비록 정식 계승을 받지는 못했지만 아바마마의 서거로 차기 호루스가 될 자로서 명하노니, 또다시 같은 소리를 하는 자가 있다면 엄벌에 처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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