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281)
아크 더 레전드-281화(281/875)
[281] SPACE 3. 무라티우스타를 위하여! (2)‘이 녀석…….’
아크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쿠휀을 바라보았다.
사실 아크는 방금 전 수행원들이 하는 말을 듣고 ‘하아, 황자라는 놈은 또 얼마나 싸가지없는 놈일까?’ 걱정했었다. 그리고 동네 아이들과 함께 흙투성이가 되어 나타나는 장면을 보고 ‘하아, 이런 어린애를 데리고 반란을 진압하는 여정을 떠나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에 눈앞이 깜깜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같은 임무라도 동행하는 NPC가 누구냐에 따라, 특히 그 NPC가 명령권을 가지고 있다면 NPC의 성향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쿠휀의 다음 태도를 보니 그런 찜찜함이 대번에 사라졌다.
게다가 왠지 향수마저 느껴진다.
‘이런 NPC, 낯설지 않아. 그래, 하베스틴!’
하베스틴은 뉴월드의 초보 시절에 알게 된 작센이라는 영지의 영주였다.
본래 먼저 알게 된 것은 그의 아버지 하베스틴 자작이었는데, 아크와 함께 미궁을 공략하다가 사망. 아크가 그 소식을 전하기 위해 작센으로 돌아갔을 때 만나게 되었다.
당시 하베스틴은 쿠휀 황자와 비슷한 나이였음에도 아버지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 NPC임에도 아크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다.
그 이후에도 아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 아크가 뉴월드의 최강자가 되기까지 많은 도움을 주었다.
쿠휀은 지금은 청년이 되어 있는 하베스틴의 어린 시절 모습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왠지 이 녀석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 같군.’
덕분에 아크는 대번에 쿠휀이 마음에 들었다.
그사이에 수행원들의 기를 죽인 쿠휀이 아크에게 다가와 손을 잡았다.
“제드, 어린 시절의 동무이기도 한 그대가 기억을 잃었다는 것은 내게도 큰 슬픔이다. 그러나 양부를 잃고 괴로워하던 그대가 기억을 잃은 것은, 어쩌면 라의 배려일지도 모른다. 그대와 나는 함께 아버지를 잃었지만 우리는 슬픔에 젖어 있을 시간이 없다. 이대로 무라트의 실권을 세트가 장악하게 된다면 오랜 세월 유지되어 왔던 인더스, 포타미아, 어리티우스와의 평화가 깨질 것은 자명한 결과. 이는 수많은 무라트의 아이들이 우리처럼 부모를 잃게 된다는 뜻이다. 호루스의 지위를 되찾기 위해서가 아니다. 아바마마의 복수를 위해서도 아니다. 수억에 달하는 무라트의 평화를 위해서 그대의 도움이 필요하다. 제드여, 엘림의 후계자가 되었으니 이제 그대와 나는 동등하다. 그러므로 나는 무라트의 호루스가 아닌 그대의 벗으로서 부탁한다. 나를 위해 힘을 빌려주지 않겠는가?”
“아크입니다.”
아크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저는 수련관에서 기억과 함께 과거의 이름도 버렸습니다.”
아크는 일단 이름부터 정정했다.
제드라는 이름으로 불리면 헛갈리니까.
그런 아크의 태도에 수행원들이 불쾌한 표정을 지었지만 쿠휀은 빙긋 웃으며 끄덕였다.
“그래, 나의 오랜 벗 아크. 나의 부탁을 들어주겠는가?”
“물론입니다, 전하.”
아크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대답했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아크의 머릿속에 이 일을 해결해야 본래의 은하계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은 없었다. 진심으로 이 어린 NPC의 도움이 되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최선을 다해 전하를 돕겠습니다.”
그리고 절도 넘치는 자세로 대답했을 때였다.
눈앞에 마치 비문이 새겨진 오벨리스크 같은 입체 영상이 떠올랐다.
《무라티우스타를 위하여!》
당신은 블랙홀을 통해 들어온 시공간 속에서 무라트 황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현재 무라트는 반란을 일으킨 세트의 손에 황제와 같은 호루스가 시해당해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다행히 성지 순례 중이던 황자는 세트의 흉수를 피할 수 있었지만, 동행한 수행원들만으로는 무라트의 군권을 장악한 세트에 맞설 수 없습니다. 이에 엘림의 정신적인 스승으로 일컬어지는 토트는 트라이포스에 있는 아브라삭스를 해제해 은하계 곳곳에 퍼져 있는 무라트 함대를 모성으로 불러들이는 방법밖에 없다고 판단, 당신을 엘림의 후계자로 삼아 황자를 트라이포스까지 수행하도록 부탁했습니다. 당신이 이 시대의 엘림이 되어 임무를 성공시키면 본래의 우주로 돌아가는 단서를 알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난이도: –
정식으로 퀘스트가 등록되었다.
그러자 토트가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자, 이제 전하께서도 인정하셨으니 너는 정식으로 엘림의 후계자가 되었다. 양부가 엘림이었으니 엘림이 어떤 존재인지는 너도 잘 알고 있을 터. 급조된 감이 없지는 않지만 은하계 최강의 전사라는 엘림이 그런 모습이라면 곤란하겠지. 일단 이것부터 받아라.”
그리고 느닷없이 아머 세트를 꺼내 들었다.
상의와 하의, 부츠, 헬멧, 4개를 합하면 요다 같은 몸집의 토트보다 더 부피가 큰 아머 세트를 대체 어디에 넣어 두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뭐 아이템을 준다는데 그런 자잘한 문제 따위는 굳이 묻지도 따지고 싶지도 않으니 패스하고…….
-아이템을 획득했습니다.
<엘림의 수련용 헬멧(포스 +300)>, <엘림의 수련용 아머(포스 +300)>, <엘림의 수련용 바지(포스 +300)>, <엘림의 수련용 부츠(포스 +300)>
아크는 얼른 아머 세트를 받아 들었다.
“이건 엘림의 후계자가 수련을 하는 기간 동안 사용하는 방어구다. 네 양부도 선대 엘림에게 본격적인 수업을 받기 전, 내 밑에서 정신 수행을 하는 동안 이걸 입었지. 본래 실전용으로 제작된 아머는 아니지만 일반 병사가 사용하는 아머보다는 나을 거다. 뭣보다 이제 정식 엘림의 후계자가 된 녀석이 쫄쫄이만 입고 있을 수는 없지 않나?”
토트의 말대로 수련용 아머 세트는 매직이나 유니크 템은 아니었다. 그러나 현재 아크는 쫄쫄이에 헬멧만 쓰고 있는 신세. 게임을 처음 시작할 때와 다름없어 방어력 1짜리 넝마라도 감지덕지해야 할 판이었다.
그런데 수련용 아머 세트 제한 레벨에 비해 방어력이 높은 편이었고, 정신 수행용 아머라서 그런지 각각 엘림이 사용하는 포스를 300씩 올려 주는 특수 효과가 붙어 있었다.
……완전 땡큐다.
아크는 헬멧까지 바꿔 장착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차후의 일에 대해 의논할 때가 되었군.”
토트가 분위기를 환기시키며 말했을 때였다.
“젠장! 열어! 이거 열란 말이야!”
입구 쪽에서 갑자기 고성이 들려왔다.
토트를 따라 신전으로 걸음을 옮기던 쿠휀이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입구를 지키고 있던 병사가 뛰어와 고개를 숙이며 보고했다.
“전하, 주민들이 수상한 자들을 생포해 데리고 왔다고 합니다.”
“수상한 자들?”
“네, 일단 외형은 동물처럼 보이는데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무라티우스타에는 알려지지 않은 외계 종족처럼 보입니다. 마을 주변을 얼쩡대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알려지지 않은 외계 종족? 그런 종족이 어떻게?”
쿠휀이 미간을 찡그리자 수행원들이 웅성거리며 말했다.
“전하, 혹시 세트가 우리를 염탐하기 위해 보낸 첩자가 아닐까요?”
“제 생각도 같습니다. 무라티우스타는 공간 결계가 처져 있어 같은 무라트조차 쉽게 들어올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런 시기에 전하께서 피신해 있는 곳에 알려지지 않은 외계 종족이 얼쩡거리고 있었다는 것은 우연으로 보기 힘듭니다. 어쩌면 세트가 염탐을 목적으로 만들어 낸 생체 병기일지도 모릅니다. 바로 처분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아크가 끼어든 것은 그때였다.
“일단 보고 판단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어쩌면 제가 아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무라티우스타에서 보지 못했던 외계 종족.
그 말을 듣는 순간 어쩌면 함께 블랙홀로 빨려 들어온 일행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설사 그들이 호크나 퍼거슨 일행 중 하나라도 팀원들의 상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그러나 수행원들이 바로 태클을 걸고 들어왔다.
“제드, 네가 아는 사람이라고? 네가 우리도 모르는 외계 종족을 어찌 알고 있단 말이냐?”
“제드는 이제 아크다.”
쿠휀이 수행원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리고 내 생각도 아크와 같다. 아무리 처음 보는 외계 종족이라도 의심스럽다는 이유만으로 죽일 수는 없다. 내가 호루스가 지위를 되찾으려는 것은 여러 은하 종족과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런 내가 상대를 보지도 않고 죽인다면 말이 안 되지 않는가. 하물며 아크가 아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면 말할 필요도 없겠지. 아크의 말대로 만나 보고 결정할 테니 그들을 내 앞으로 데려오라.”
“감사합니다.”
“그대의 말이 맞을 뿐이다.”
쿠휀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는 사이, 10여 명의 주민들이 우리로 만들어진 수레를 끌고 들어왔다.
우리에는 4마리(?)의 외계 종족이 갇혀 있었다.
그중 3마리는 겁을 집어먹었는지 부둥켜안고 울먹이는 것이 혹성탈출에 등장하는 원숭이들과 닮은 외계 종족이었다. 반면 다른 1마리는 미친 듯이 창살을 흔들어 대며 주민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있었는데…….
“어? 너, 너는?”
“이 자식들! 열어! 열란 말이야! 내가 누구인지 알고 이런…… 어? 혀, 형님?”
아크의 목소리에 움찔하며 고개를 돌리는 것은 사람만 한 햄스터! 바로 아크의 부하 직원 토리였다.
“왜 너만 혼자 있는 거야? 다른 팀원들은?”
“우와아아앙! 혀, 형님! 정말 형님 맞군요. 형님, 살려 주십시오!”
“알았어. 알았으니까 진정하고 대답부터 해 봐. 다른 팀원들은 어디 있어?”
“으흑! 몰라요! 모른다고요! 내가 기억하는 건 블랙홀에 빨려들 때까지만이에요! 정신을 차려 보니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숲이더라고요! 그 뒤로 님프와 아머도 없이 사막을 헤매다가 겨우 겨우 마을을 찾아왔더니 이놈들이 다짜고짜 잡아서 우리에 가둬 버렸다고요! 형님, 이 녀석들 햄스터 고기라면 환장하고 막 그런 놈들 아니죠? 네? 아니라고 해 줘요!”
토리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대답했을 때였다.
“아, 아크라고?”
갑자기 한데 뭉쳐 울먹이던 원숭이들이 퍼뜩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멍청한 눈으로 아크를 바라보다가 와락 창살에 달라붙으며 소리쳤다.
“아, 아크! 정말 아크다! 아크, 나야! 나! 나도 살려 줘!”
“에? 뭐야 이 원숭이는? 나 알아?”
“젠장! 나야! 퍼거슨이라고!”
“난 A!”
“난 B!”
원숭이들이 소리쳤다.
아니, 그런데…… 퍼거슨과 A, B라니…… 에에?
“뭐, 뭐야? 너희들은 이 세계로 넘어오면서 원숭이로 변해 버린 거야?”
“워, 원숭이라니! 우리는 움푸족이라고!”
“움푸족? 가만? 그럼 너희들은 이전에도 사람이 아니었단 말이야?”
막상 생각해 보니 아크는 퍼거슨과 A, B의 외모를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잿빛 혹성에서 같은 조가 되기 전까지는 관심도 없었고, 같은 조가 됐을 때도 퍼거슨과 A, B는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두꺼운 아머를 둘러치고 있어 제대로 본 것은 헬멧 사이로 드러나 있는 눈뿐이었다.
아니, 그러고 보니 좀 이상하다는 생각은 한 적이 있었다. 퍼거슨과 A, B는 다른 유저보다 유난히 팔이 길어 보였던 것이다. 그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던 모양이다.
아머가 벗겨지니―아마도 아크처럼 다른 시공간으로 들어오며 아머가 벗겨진 모양이다― 퍼거슨과 A, B는 그저 쫄쫄이를 입은 원숭이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느닷없이 밝혀지는 퍼거슨과 A, B의 정체…… 라고 말하고 싶지만 뭐 그동안 이 녀석들이 보여 준 행동을 생각하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그래! 움푸족은 지능이 낮은 대신 방어력과 체력에 보너스가 주어지는 외계 종족이라고! 타고난 전사! 뛰어난 전사를 지향하는 우리에게 딱 맞는…… 아니,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잖아! 어쨌든 이대로 장비품도 찾지 못하고 죽을 수는 없어! 아크, 어떻게 좀 해 봐!”
“역시 아는 사람들인가?”
“네, 불행히도.”
아크가 쿠휀의 질문에 한숨을 불어 내며 대답했다.
새삼스럽지만 아크는 정체불명의 외계인들이 팀원이기를 기대했다. 일단 팀원의 안위가 걱정스러웠고, 이 세계를 탈출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퀘스트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많고 많은 팀원 중에 햄스터와 원숭이 3형제라니?
뭐, 토리는 개척자가 아닌 NPC라 한번 죽으면 끝.
엘라인과 함께 가장 먼저 찾아야 하는 부하 직원이었지만 다른 팀원보다 원숭이 3형제를 먼저 찾은 것은 그리 달갑지 않았다. 아크가 찜찜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쿠휀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햄스터에 원숭이라, 그대의 교우 관계는 상당히 폭넓군.”
“교우 관계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죽이면 곤란하겠지?”
“그렇죠.”
“들었지? 그들을 풀어 줘라.”
쿠휀이 고개를 끄덕이며 명령했다.
그러자 수군거리던 수행원들이 펄쩍 뛰며 소리쳤다.
“풀어 주라니요? 아직 저들이 어떤 자들인지 모르지 않습니까?”
“제드 아니, 아크가 알고 있는 자들이라는 것만으로 정체도 확실하지 않은 자들을 전하 앞에서 풀어 줄 수는 없습니다! 아크가 어떻게 저들을 알게 됐는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리고 말을 한다고 해서 모두 동등한 외계 종족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저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제대로 된 옷도 없이 알몸이나 다름없이 돌아다니는 미개한 종족입니다! 짐승 같은 자들이란 말입니다! 함부로 풀어 줬다가 갑자기 물기라도 하면…….”
“뭐야? 짐승? 물어?”
수행원들의 말에 퍼거슨이 발끈하며 돌아보았다.
그러자 수행원들이 움찔 물러나며 손가락질을 해댔다.
“저 보십시오! 바로 이를 드러내지 않습니까? 저게 미개한 짐승이라는 증거입니다!”
“이 자식이! 너 말 다 했어?”
퍼거슨이 이를 갈아붙이며 소리쳤다.
그러나 솔직히 이번만은 수행원들과 같은 의견이었다.
도대체 이놈은 자기 처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방금 전까지는 우리에 갇혀 질질 짜고 있었던 주제에 아는 사람이 있으니 금세 기가 살아 방방 뛰고 있다.
우리에 갇혀 까딱하면 뒈질지도 모르는 상황에 수행원들의 도발에 일일이 이를 드러내면 어쩌자는 건지. 정말 원숭이 수준의 지능지수를 가지고 있다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반면 햄스터는 원숭이들과는 수준이 다른 상황 판단력을 보여주었다.
“저는 저 원숭이들과 다릅니다! 조금도 위험하지 않은 종족이라고요. 저를 보십시오! 손도 둥글둥글, 배도 둥글둥글, 이런 제가 무슨 위험이 되겠습니까? 주식은 씨앗이라 이빨도 껍질을 까기 위한 앞니를 제외하고는 없습니다. 게다가 털은 또 얼마나 보들보들한데요. 만져 보십시오. 만져 보면 제가 얼마나 무해한 동물 아니, 종족인지 대번에 아실 겁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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