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283)
아크 더 레전드-283화(283/875)
[283] SPACE 4. 원숭이 3형제 (2)이건 모든 법 위에 군림하는 절대적인 규칙.
물론 파라오들이 함대까지 몰고 무라티우스타 궤도로 몰려온 것은 심심해서가 아니다. 정기 연락이 끊겨 모성에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한 것이리라.
그러나 아무리 파라오들이라도 단순한 직감만으로 수천 년이나 지켜 온 규칙을 깰 수는 없으리라.
그건 돌기둥 위에 떠올라 있는 영상으로도 알 수 있었다.
파라오들의 함대가 무라티우스타의 궤도에 도착한 지 수시간, 그러나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수천 킬로미터 거리를 둔 채 황성으로 교신만 보내오고 있었다.
‘이게 꽉 막힌 무라트의 한계다. 하지만 나는 네놈들과 달라.’
“모든 통신 채널을 차단하라. 무라티우스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는 한, 놈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신경 써야 할 것은 놈들보다 쿠휀 황자다.”
사내가 눈매를 좁히며 말을 이었다.
“지금 각지에서 나에게 대항하는 놈들이 갑자기 세를 불리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물론 아직은 하찮은 수준이지만 놈들이 쿠휀 황자와 합류하면 일이 지금보다 귀찮아지게 된다. 하지만 쿠휀 황자만 처리하면 반란군 따위는 아무리 많아도 의미가 없지. 그리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전에 쿠휀 황자를 잡아야 한다. 놈들과 관련된 보고는 아직 없는가?”
“각지로 추격대를 보내 놨으니 곧 정보가 들어올 것입니다.”
“날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마라.”
짐승 헬멧 사이로 드러난 눈동자가 붉게 물들었다.
그러자 노인이 핏기 없는 얼굴로 얼른 고개를 조아리며 떠듬거렸다.
“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세트 각하!”
“기대해 보도록 하지.”
짐승 헬멧의 남자, 세트가 낮은 목소리로 말하며 몸을 돌려세웠다.
* * *
‘……라고 해도 말이지…….’
아크가 한숨을 불어 내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아크를 믿는다.
미나헴을 떠나기 전, 쿠휀이 했던 말이다.
아크도 웬만하면 그 기대에 보답하고 싶었다.
일단 쿠휀이라는 NPC가 꽤 마음에 들었고, 이 세계를 탈출하기 위해서라도 퀘스트를 완수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아크, 선대 엘림이 전사한 탓에 정식 수업을 받지는 못했지만 수련관을 통과해 엘림의 후계자로 인정받았으니 이제 너는 엘림과 동등한 자격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했듯이 엘림은 명예직이지만 호루스의 명에 의해 군단장급의 권한을 가질 수 있는 지위. 원정대의 지휘를 맡길 테니 힘을 다해 임무를 완수하기 바란다.”
그리고 쿠휀으로부터 지휘권을 위임받았다.
원정대의 병력은 80. 그중 50은 제대로 훈련도 되지 않은 도시 경비병이었지만 갑자기 전혀 다른 시공간에 떨어진 아크로서는 그야말로 엘리베이터 급의 출세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크는 들뜰 여유 따위는 없었다.
‘80명. 적은 숫자는 아니지만 우리가 가는 곳은 귀족들이 이름만 듣고도 펄쩍 뛰는 어둠의 계곡이라는 곳이다. 무라티우스타의 몬스터가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겠지만 귀족들이 이런 반응을 보인다면 80명의 병력으로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는 뜻이다.’
실제로 병사들 역시 행선지를 알게 되자 사기가 떨어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어둠의 계곡이 뭔지도 모르는 토리나 퍼거슨 들까지 병사들의 분위기에 덩달아 불안해할 정도였다.
‘게다가 어둠의 계곡을 무사히 빠져나간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야. 토트의 말에 의하면 세트는 이미 여러 성지에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다고 한다. 숫자조차 확인되지 않은 적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야. 결국 대규모 전쟁을 치러야한다는 뜻.’
그리고 원래 전투는 아크의 특기였다.
그러나 수십, 수백 단위의 전쟁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혼자 싸우는 전투와 병력을 움직여 싸우는 전쟁은 ‘전혀’라고 할 만큼 다른 싸움이다.
물론 아크 역시 대규모 전쟁을 수없이 치러 본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뉴월드에서의 경험. 갤럭시안에서도 벨타나와 아타마스에서 전쟁을 치러 봤지만 실제로 아크가 운용한 것은 파티 단위의 병력뿐이었다.
직접 수백 명의 병력을 지휘하며 싸워 본 경험은 없는 것이다. 게다가 뉴월드와 갤럭시안은 아예 배경 자체가 다른 게임이다. 같은 RPG라도 대전 게임과 FPS 게임처럼 전술의 적용 방식이 완전히 다른 것이다.
‘하지만 쿠휀의 말처럼 지금 원정대의 지휘를 맡을 사람은 나밖에 없어. 그러니 어떻게든 이 세계에 맞는 용병술을 익히는 수밖에 없다.’
아크는 이 부분에 집중했다. 아니, 집중하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원정을 시작하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 스트레스의 원인 제공자는 쿠휀의 수행원, 무라트의 귀족들이었다.
“헉헉헉. 아, 젠장! 대체 언제까지 걷기만 할 생각인가?”
“우리는 귀족이라고. 이 뜨거운 사막을 이대로 계속 걸으란 말인가?”
“젠장, 난 더 이상 못 움직이겠어. 여기서 쉬어야겠다. 이대로는 어둠의 계곡에 가기도 전에 죽어 버릴 것 같단 말이야. 어이, 아크, 내 말 듣고 있나? 우리를 다 죽일 셈이냐?”
귀족들이 틈만 나면 불평을 쏟아 내고 있는 것이다.
아크로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확실히 아크는 미나헴을 나온 이후로 쉬지 않고 강행군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귀족들은 낙타를 타고 있었다. 대부분의 병사들은 지글거리는 사막을 걸어서 행군하고 있는데 낙타를 탄 귀족들이 이런 불평을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정말이지 귀족이라는 놈들의 작태는 어느 세계나 똑같은 모양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당장 무라티우스타가 반란군에게 넘어갈 상황에서 이런 불평이라니, 이 놈들은 무슨 유람이라도 나온 줄 아는 건가?
“자중하시죠. 걸어가는 병사들도 아직 힘들다는 소리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낙타를 타고 있는 분들께서 그런 말을 하시면 병사들의 사기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크는 일단 점잖게 타일러 보았다.
“뭐야? 병사? 지금 우리를 병사와 똑같이 취급하는 건가?”
“우리는 무라트의 귀족이다. 평범한 무라트와는 혈통부터 다르다는 말이다. 그런 우리를 일개 병사 따위와 비교하다니, 엘림의 후계자가 되었다고 우리가 우습게 보이는 건가?”
“설사 정식 엘림이라 해도 우리를 무시할 수는 없거늘!”
“우리는 황성의 대신, 지위로 따지면 너보다 높다!”
“쯧쯧, 역시 미개한 휴먼은 어쩔 수 없군. 하긴 미개한 휴먼의 눈으로 어찌 귀인을 알아볼 수 있겠는가. 저런 자에게 목숨을 맡겨야 한다니 비참한 기분마저 드는군.”
……귀족들이 떼로 몰려들어 물어뜯었다.
심지어 종족 차별적인 발언까지 서슴지 않는 것이다.
물론 쿠휀은 이런 귀족들의 행동을 꾸짖기도 했다. 그러나 귀족들이 입을 다무는 것은 그때뿐, 쿠휀이 한눈을 팔면 금세 불평불만을 쏟아 내며 아크의 속을 뒤집었다.
그리고 아무리 걸음을 재촉해도 어슬렁거리며 또다시 아크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성질 같아서는 싹 모래 속에 파묻어 버리고 싶지만…….’
바사크의 설명을 듣고 알았지만 이들은 모두 상당한 지위의 대신들이었다.
선대 호루스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지위를 가진 대신들이라 아직 황자에 불과한 쿠휀으로서도 고작 불평을 하고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는 처벌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일단 쿠휀이 나서면 고분고분 말을 듣는 ‘척’은 하니까.
뭐 아크로서는 그게 더 열 받았지만.
게다가 귀족들이 이런 태도를 취하는 데는 아크 아니, 제드의 탓도 있었다.
“그동안 형님이 너무 참기만 해서 더 그런 겁니다. 형님은 제가 아는 한 손가락에 꼽히는 전사입니다. 그런데도 황성의 귀족들이 미개한 휴먼이라고 손가락질할 때도 불평조차 하지 않으셨죠. 압니다. 귀족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형님의 인품이 그렇기 때문이라는 것. 제가 형님을 따르기로 한 것도 그 때문이죠. 하지만 귀족들은 저처럼 형님의 인품 따위는 관심 없어요. 참으면 더 무시하고 깔볼 뿐이라고요. 저 귀족들이 이전보다 더 형님을 갈구는 것도, 깔보던 형님이 엘림의 후계자가 된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런 겁니다.”
아무래도 제드라는 놈은 온순한 성격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귀족들의 이런 태도를 100% 해명할 수 없었다.
‘이놈들의 얼굴에 나나 쿠휀 같은 다급함 따위는 보이지 않아. 정말 다급하게 생각하고 있다면 아무리 귀족이라도 힘들다며 불평을 하지는 않겠지. 하물며 차기 호루스가 될 쿠휀에게 꾸지람을 받으면서까지 뭉그적거리지는 못할 거야. 어쩌면 내 명령을 받기 싫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고 행군 속도를 늦추려는 게 진짜 의도일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이 든 것은 신전에서 보인 귀족들의 태도 때문이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지금은 한시가 급한 상황이다. 세트가 무라티우스타의 주요 도시를 장악하면 설사 쿠휀이 아브라삭스를 해제해도 반란을 막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귀족들은 지름길은 어둠의 계곡으로 향하는 것을 끝까지 반대했다.
‘쿠휀을 위험하게 만들 수 없다는 이유였지만…….’
세트의 반란이 성공하면 어차피 쿠휀은 100% 죽게 된다.
반란을 일으킨 자가 정통 호루스 계승자를 살려 둘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쿠휀이 위험할지도 모르니 안전하게 의용군을 기다리자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놈들이 걱정하는 것은 쿠휀이 아니라 자신들의 목숨이다. 귀족은 호루스와 입장이 달라. 설사 세트의 반란이 성공해도 그게 귀족들이 살해당한다는 말은 아니다. 세트도 무라티우스타를 통치하기 위해서는 귀족의 힘이 필요하니 죽이기보다는 회유하려 들겠지. 그러나 원정대가 어둠의 계곡에서 전멸하면 귀족들도 확실히 죽게 된다. 때문에 귀족들에게는 세트의 반란이 성공하는 것보다 어둠의 계곡으로 들어가는 게 더 위험하고 부담스러운 거야.’
이게 귀족들이 이번 원정을 반대한 진짜 이유였다.
나이는 어리지만 영특한 쿠휀도 아마 귀족들의 속내를 알고 있으리라.
쿠휀이 귀족들을 험하게 다룰 수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귀족들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든 일단 쿠휀과 같이 이상 아군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원정대에서 나가면 언제 세트의 진영으로 들어가 적이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
때문에 차기 호루스라는 지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느 정도는 귀족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입장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태로는 내가 먼저 복장이 터져 죽을 거야. 정말 미치겠군. 그렇다고 귀족들을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모래 속에 파묻어 버릴 수도 없고. 그냥 두면 시간 내에 목적지에 도착하기는커녕 어둠의 계곡이라는 곳에 도착하지도 못할 거야. 아니, 이런 분위기로는 어둠의 계곡에 도착해도 문제다.’
아크가 답답한 눈으로 병사들을 돌아보았다.
병사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걷는데 낙타를 탄 귀족들이 힘들다고 징징거린다.
어둠의 계곡이라는, 위험 지대로 향한다는 말에 그렇지 않아도 불안해하던 병사들은 그런 귀족들의 태도에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사기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제드라는 녀석은 황성 근위병들에게까지 휴먼이라고 무시당했던 모양이다.
미나헴의 경비병들은 엘림의 후계자라는 말에 아크를 존경하며 따르는 태도를 취했지만 근위병들은 귀족들처럼 아크가 지휘관이 된 것에 불만을 품은 기색이 역력했다.
물론 귀족들처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태도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좋든 싫든 퀘스트를 완수하려면 이런 병사들을 이끌고 어둠의 계곡이라는 곳을 넘어 세트의 반란군과 싸워야 한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로 병력을 뜻대로 움직이기는 무리야. 쿠휀을 통하면 일단 말을 듣게 할 수는 있지만 전투가 벌어지면 그런 것은 아무 소용이 없어. 전투 상황에서 병력을 제대로 통솔하려면 병사들이 진심으로 나를 따르도록 만들어야 한다. 전술이나 용병술은 그다음이야. 하지만 그건 병사들만 다그친다고 될 일이 아니야. 병사들이 나를 깔보는 근본 원인. 귀족들의 태도부터 뜯어고치지 않으면 안 돼.’
문제는 놈들이 귀족이라 쥐어 팰 수도 없다는 것.
‘하지만…….’
잠시 고민하던 아크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후미에서 토리와 함께 따라오는 퍼거슨과 A, B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직접 손을 대지 않아도 겁을 줄 방법은 얼마든지 있지.’
* * *
“이벤트?”
퍼거슨이 눈을 껌뻑였다.
아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너희는 잘 모르겠지만 이곳은 우리가 블랙홀로 빨려들어 온 우주와 같은 시간대의 세계가 아니야. 그보다 수천 년 전의 세계다. 블랙홀의 영향으로 다른 시간대에 존재하는 차원으로 들어온 것 같아.”
“다른 차원? 뉴월드의 유계 같은 곳인가?”
“어? 뉴월드의 유계? 너희들 뉴월드 경험자였어?”
“물론이지. 후후후! 우리는…….”
“이, 이 자식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A가 우쭐하는 표정으로 입을 열자 퍼거슨이 손으로 틀어막으며 말했다.
“몰라! 우리는 뉴월드 따위 해 본 적 없어. 유계라는 말은…… 그래, 게임특종에서 봤어.”
어째 허둥대는 꼴이 수상해 보였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그래, 유저 입장에서 보면 뉴월드의 유계와 비슷한 곳이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적용되는 시스템은 달라. 너희들, 이 세계로 들어오면서 장비품과 아이템이 몽땅 사라졌다고 했지? 그게 바로 여기가 수천 년 전의 세계이기 때문이야. 너희들이 사용하던 장비품과 아이템은 모두 수천 년 뒤에 만들어진 것들. 이 세계에는 존재할 수 없는 물건이라 사라진 거야. 아마도 나나 너희들이 타고 있던 우주선도 그래서 사라진 것이겠지.”
이게 이곳이 과거 세계임을 알게 된 아크의 결론이었다.
아크가 그런 확신을 하게 된 것은 모든 아이템이 사라졌음에도 엘림의 헬멧과 계승자의 검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아이템과 달리 이 두 가지는 원래 엘림이 사용하던 장비품. 아크가 빙의한 제드가 가지고 있었어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 시각에서 생각하면 바이우스 실드까지 사라진 것이 이상하지만 원래 오신기는 정식 엘림의 장비품, 이제 막 후계자가 된 제드가 가지고 있을 물건이 아니었다.
어쨌든…….
“뭐야? 아예 이 세계에 없다고?”
“그럼 찾을 수도 없다는 말이잖아?”
“마, 말도 안 돼! 그게 얼마짜리 장비품인데? 전 재산을 몽땅 투자해서 맞춘 장비품이라고! 게다가 우주선은 이전 우주선의 보험금으로 장만한 거라고. 또다시 우주선을 잃어버리면 당분간은 보험금도 안 나오고, 나중이라도 보험 할증이 엄청 붙는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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