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326)
아크 더 레전드-326화(326/875)
[326] SPACE 1. 인쿼리 (1)“이런, 젠장.”
아크는 심란한 표정으로 창밖의 혹성을 노려보았다.
검은 지표가 여기저기 떨어져 나가 괴암怪巖 같은 형상을 하고 있는 혹성. 바우의 몸에 새겨져 있는 은하 지도로 찾아온, 세 번째 신기가 숨겨져 있는―아마도― 혹성이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상상도 못 했던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대체 왜 착륙하지 못하는 거냐고!”
분명 눈앞에 혹성이 있다.
그런데 우주선을 착륙시킬 수가 없다.
그럴 만한 지형을 찾지 못해서, 혹은 기류나 기후 따위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예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혹성을 향해 다가가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 보면 방금 전까지 눈앞에 있던 혹성이 뒤로 옮겨져 있는 것이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미스터리한 현상!
이런 기현상에 우주 항해 경험이 풍부한 토리는…….
“유령 혹성! 유령 혹성이라니까요!”
……헛소리를 해 댔다.
“들은 적이 있어요. 형님이나 밀란, 헤겔은 개척지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옛날 뱃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는 얘기였어요. 개척지 어딘가에는 죽은 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 유령 혹성이 존재한다고. 산 사람이 그 혹성에 들어가려고 하면 저주를 받는대요.”
“저, 저주라니?”
“요즘 세상에 무슨…… 농담이겠지?”
밀란과 헤겔이 불안한 표정을 짓자 토리가 세차게 도리질하며 떠들었다.
“내가 찐따냐? 이런 상황에서 농담을 하겠어? 정말이야! 내 귀로 똑똑히 들었다고! 내가 아는 사람의 친구의 삼촌의 할아버지도 우연히 유령 혹성을 발견하고 들어가려다가 저주를 받아 온몸의 털이 몽땅 빠지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고 했어!”
“나, 난 털이 없는데?”
그레이족의 헤겔이 매끈한 몸을 만지작거리며 되물었다.
토리가 답답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멍청아! 저주라고! 뭔가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난다는 거잖아! 너 같은 그레이족은 털 대신 그 쓸데없이 커다랗기만 한 눈깔이 빠져 버릴지도 몰라! 눈깔이 빠지고 시름시름 앓다 죽는 거라고!”
“누, 눈이? 그, 그건 안 돼!”
헤겔이 커다란 눈을 가리며 비명을 터뜨렸다.
얼굴 면적의 삼분의 이를 차지하고 있는 헤겔의 눈알이 빠진다, 확실히 섬뜩한 느낌의 그림이 연상되기는 한다. 헤겔이 공포에 질리자 토리가 더욱 기가 살아 떠들어 댔다.
“거봐! 무섭지? 겁나 무섭지? 우리 지금, 엄청 위험한 짓을 하고 있는 거라고! 아니, 이미 저주에 걸렸는지도 몰라! 어? 어? 이, 이것 봐. 털이야! 털이 뽑히고 있어! 정말 저주에 걸리고 있나 봐. 이러다가는 정말 털이 몽땅 빠져 버린 채 시름시름 앓다가 죽을지도 몰라! 힉! 아, 안 돼! 더 늦기 전에 여기서 도망쳐야 해! 실버스타, 방향 전환!”
그리고 조종간을 움켜쥐는 순간!
빡-!
묵직한 효과음과 함께 계기판에 면상을 처박았다.
그런 토리의 뒤통수에는 붉은 손바닥 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그러나 이건 유령 혹성의 저주 따위가 아니었다.
토리의 뒤통수를 냅다 갈긴 사람은 다름 아닌 아크!
아크가 손바닥 자국이 새겨진 토리의 뒤통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정신 사나우니까 조용히 해라, 응?”
“우우, 하, 하지만…….”
계기판에 처박혀 움찔거리던 토리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이건 정말 장난이 아니라고요! 다른 것도 아니고 저주예요, 저주!”
“그래서?”
“말했잖아요! 털이 몽땅 뽑히고 시름시름 앓다 죽을지도 모른다고요!”
토리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소리쳤다.
아크도 근래 들어서 알게 된 일이지만 선원들은 의외로 이런 괴담에 약했다.
해적을 만나도 물러서지 않는 용감한 뱃사람도 유령이니 저주니 하는 말에는 일단 겁부터 집어먹는 것이다.
그건 경험이 풍부한 선원도 마찬가지. 아니, 오히려 경험이 많을수록 더 괴담이나 미신 따위를 믿는 경향이 있었다.
토리도 그런 선원 중 하나. 토리가 이런 초자연(?) 현상에 겁을 집어먹고 횡설수설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래서 아크는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런 저주라면 나도 내릴 수 있는데 말이야. 털이 몽땅 뽑히고 전신 타박상에 시름시름 앓다가 죽게 만드는 거. 사실 별로 어렵지도 않거든. 계속 헛소리를 지껄여 댈 생각이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경험하게 해 줄 수 있는데 말이야.”
동시에 토리 이하 선원들은 모두 침묵.
괴담 따위에 휘둘리지 않는 용감한(?) 선원으로 다시 태어나 굳게 조종간을 움켜쥐었다.
새삼 우주선에서 선장의 역량―이라기보다는 폭력이지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주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그게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 방법은 되지 못했다. 실버스타는 여전히 혹성에 접근조차 못 하고 주위를 헤매고 있는 것이다.
절로 답답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젠장! 왜 매번…….’
첫 번째 신기의 단서는 수수께끼 같은 글귀뿐이었다.
때문에 아크는 신기가 숨겨진 혹성 라쿤카를 찾아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두 번째 신기―무라티우스타에서 신기를 찾아 세 번째가 됐지만―는 아예 은하 지도로 좌표를 찍어 주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좀 쉽게 가나 싶었는데 이런 유령 같은 혹성이라니? 눈으로 보면서도 착륙하지 못하니 위치조차 모를 때보다 더 답답했다.
‘빌어먹을 자낙스 자식, 일부러 굴리는 거야 뭐야? 계승자라며? 물려주겠다며? 그럼 하나쯤은 그냥 편하게 줘도 되잖아! 왜 매번 이런 식으로 머리에 쥐 나게 만드는 거야?’
생각할수록 울컥 치밀어 오른다.
그러나 불평해 봐야 소용없다. 이미 자낙스는 오래전에 죽은 녀석이고, 그게 아니라도 원래 RPG의 퀘스트라는 것은 이런 법이니까.
그리고 사실 너무 쉬운 퀘스트는 아크도 그리 달갑지 않았다. 퀘스트의 난이도는 곧 보상의 크기. 쉬운 퀘스트일수록 보상은 적어지고, 어려운 퀘스트일수록 보상은 많아진다.
이건 RPG 세계 불변의 법칙!
‘그래, 나쁘게만 생각할 이유는 없어. 찾기 어렵다는 것은 그만큼 좋은 것이라는 의미도 된다. 그리고 저 유령 혹성에 신기가 숨겨져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들어갈 방법은 있어.’
아크는 마음을 다잡고 차근차근 상황을 정리해 보았다.
‘어쨌든 바우의 몸에 새겨진 은하 지도에서 추출한 좌표는 분명 이곳이다. 은하 지도를 보고 대략적으로 추출한 좌표라 정확하게 이곳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같은 지역에 이런 수상쩍은 혹성이 있는 게 우연일 리가 없어. 은하 지도가 가리키는 장소는 저 혹성이 분명해. 문제는 어떻게 저 혹성에 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단서가 없다는 건데…….’
아크는 혹시나 싶어 바우를 소환해 보았다.
-뭐야?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러나 되돌아오는 것은 싸가지없는 대답뿐.
아크의 말이라면 죽는시늉까지 마다 않던 바사크의 기억이 코딱지만큼이라도 남아 있었다면 이런 싸가지없는 골렘이 되지는 않았을 텐데…… 어쨌든 아크도 딱히 바우의 대답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다.
바우를 소환한 이유는 몸에 은하 지도가 새겨져 있던 것처럼, 혹시라도 바우의 몸 어딘가에 혹성으로 들어갈 수 있는 힌트가 새겨져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런 생각으로 바우를 이리저리 굴리며 관찰하기를 잠시.
-뭐 하는 짓이야? 익! 겨드랑이는 왜 들여다봐? 익! 다리는 왜 벌리는 거야? 이, 이 자식! 주인이면 다냐? 그만두지 못해? 난 명예로운 엘림의 신기다! 장난감이 아니란 말이다!
겨드랑이와 사타구니 사이까지 살펴봤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방법은 하나!
‘직접 부딪혀서 답을 찾는 수밖에 없겠지.’
아크는 버둥거리는 바우를 실드로 되돌리고 다시 유령 혹성으로 시선을 돌렸다.
“토리, 다시 착륙을 시도한다!”
그리고 실버스타를 다시 유령 혹성으로 전진시켰다.
그러나 몇 번을 시도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각종 탐지 기기를 동원해 살펴봤지만 딱히 혹성의 위치가 변하지는 않았다. 또한 도중에 실버스타의 궤도가 바뀌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막상 혹성에 진입하기 직전이 되면 어느새 위치가 바뀌어 있는 것이다.
혹시 특정 루트가 있나 싶어 여러 각도에서 접근해 봤지만 실패! 속도에 따라 달라지나 싶어 최저 속도로 다가가거나 최고 속도로 돌진해도 실패! 심지어 후진으로 슬금슬금 다가가 봤지만 그것도 실패! 이것도 실패! 저것도 실패!
실패! 실패! 실패!
“우아아아악! 빌어먹을! 대체 어쩌라는 거야?”
이런 상황이 1시간이나 계속되자 결국 아크의 인내심도 바닥을 드러냈다. 바닥을 드러내는 것은 아크의 인내심만이 아니었다.
“역시 유령 혹성이야…… 저주…… 저주에 걸릴 거야…… 아니, 난 이미 저주에 걸렸을지도 몰라…….”
같은 상황이 반복될 때마다 토리와 밀란, 헤겔이 낯빛이 눈에 띄게 말라 죽어가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는 혹성에 들어가는 방법을 알아내기 전에 아크는 울화통이 터져 죽고, 토리와 밀란, 헤겔이 먼저 저주의 공포에 대한 스트레스로 피를 토하며 죽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니, 어쩌면 그게 유령 혹성에 얽힌 괴담의 실체일지도 모른다.
다가오는 사람들을 모두 열 받아 죽어 버리게 만드는 유령 혹성의 저주!
‘뭐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이쯤 되니 아크도 생각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머릿속에 떠오르는 방법은 한 번씩 모두 시도해 봤다. 그럼에도 실버스타는 여전히 유령 혹성의 주위를 맴돌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유령 혹성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특수한 아이템이나,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규칙이 존재한다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어. 그게 사실이라면 여기서 헤매는 것은 시간 낭비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뭔가 단서가 될 만한 정보를 찾는 것이 순서다.’
이럴 때 유저가 해야 할 일은 한 가지밖에 없다.
자, 상상해 보자. 유저가 퀘스트를 받고 ‘뭔가 있어 보이는 유적’을 찾아갔다. 그런데 도무지 들어갈 방법을 찾을 수가 없다. 상식 있는 유저라면 이런 때 뭘 하겠는가?
답은 바로…….
-NPC!
퀘스트가 막히면 주변의 NPC에게 정보를 모은다.
이게 정석!
RPG의 탄생 이후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정석!
물론 갤럭시안은 지금까지 나온 어떤 RPG와도 다르다. 일단 배경이 우주. 조금만 돌아다녀도 쉽게 NPC가 득실거리는 마을을 찾을 수 있는 판타지 세계가 아니었다. 그러나 갤럭시안에도 형태만 다를 뿐 같은 공간이 존재한다.
개척지의 혹성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는 미개척 혹성. 아직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특별한 자원이 발견되지 않아 방치된 혹성으로 개척자들이 활동하는 주 무대가 되는 모험지라고 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콜로니라고 불리는 곳으로 자원을 채취하는 혹성이다. 그리고 세 번째가 바로 하이브Hive.
형태는 콜로니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콜로니의 주목적은 자원 채취. 특정 개척자가 독점적으로 개발하는 콜로니는 아예 개척자의 출입을 금지시키고 있는 곳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하이브는 개척지에서 활동하는 개척자들에게 안전한 휴식과 보급, 정보 교환, 우주선의 수리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수익을 얻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 다시 말해 흔히 말하는 마을과 같은 곳이다.
‘사실 순서가 좀 뒤바뀌기는 했지.’
갤럭시안에는 이런 말이 전해져 내려온다.
-우주 개척지의 모험은 하이브에서 시작해 하이브에서 끝난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말이다.
판타지 세계에서도 마을에서 퀘스트를 얻고, 정보를 수집하고, 준비를 갖춘 뒤에 모험을 시작한다. 그리고 모험을 끝낸 뒤에 장비를 수리하고 전리품을 정리하는 곳도 마을.
갤럭시안에서는 하이브가 곧 마을이니 모든 모험의 시작과 끝은 하이브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크의 경우 이스타나를 나올 때 이미 목적지의 좌표를 알고 있어 하이브를 들를 필요가 없었을 뿐, 일반적인 모험이었다면 해당 지역의 하이브를 먼저 들르는 게 순서였다.
‘근처에 하이브가 있다면 이런 괴상한 혹성을 모르고 있을 리가 없어. 어떤 방식으로든 소문이 퍼져 있겠지. 그런 NPC들을 찾아다니다 보면 뭔가 단서가 나올지도 몰라.’
이제 아크가 믿을 건 그것밖에 없었다.
우주 공간에서 하이브를 찾는 방법은 간단했다.
갤럭시안에는 일정 범위 내의 모든 사람이 공용으로 사용하는 통신 주파수가 있었다.
엄청난 넓이의 우주 공간에 흩어져 있는 유저들이 파티를 맺거나, 아이템을 거래할 수 있는 이유는 이 범용 주파수, 공역空域 채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혹성 파티마 근처에서 파티 구합니다!
-함께 난이도 A급 혹성에서 닥사 하실 유저를 모집합니다!
-구조 요청 보냅니다! 급합니다! 엔진 고장으로 항해 불능. 근처 하이브까지 견인해 주실 분은 인식 넘버 T-9011로 개인통신 보내 주십시오. 후사하겠습니다.
-방금 전에 입수한 따끈따끈한 레어 로켓런처를 상점 시세보다 20% 저렴하게 팝니다! 그 외에 각종 소모품도 10~20% 저렴하게 판매! 연락 주시면 바로 워프 항해로 날아갑니다!
-메테오릭 재질의 각종 장비품 팝니다! 팝니다! 팝니다! 팝니다!
-메테오릭 재질의 각종 장비품 삽니다! 삽니다! 삽니다! 삽니다!
-장난 사절, 도배 사절-_-+…….
……뭐 대충 이런 용도의 채널이다.
솔직히 대부분은 잡음이나 다름없는 내용이지만, 새로운 지역으로 이동하면 한 번쯤은 필히 공용 채널에 접속할 필요가 있었다.
“통신 주파수를 공역 채널에 맞춰라.”
아크가 헤겔을 돌아보며 말했을 때였다.
기내 스피커에서 잠시 잡음이 일다가 이내 경쾌한 음악 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개척자의, 개척자에 의한, 개척자를 위한 하이브 인쿼리! 인쿼리에서는 연료와 식량은 물론 각종 탄약, 응급 수리용 안드로이드까지 우주 모험에 필요한 기자재 일체를 합리적인 가격에 구입할 수 있습니다. 또한 경험이 풍부한 숙련된 엔지니어 수십 명이 상시 대기하며 수리와 개조, 점검까지, 고객님의 우주선을 최상의 상태로 만들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휴식이 필요하신 분! 보급이 필요하신 분! 장거리 항해를 앞두고 우주선의 점검이 필요하신 분! 인쿼리로 오십시오! 좌표는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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