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35)
아크 더 레전드-35화(35/875)
[35] SPACE 4. 제3의 그룹(PART : 1) (1)-재생 시스템 ‘페어리’에 의해 육체가 복원되었습니다.
분쟁 지역의 페어리는 은하연방의 정규병에게만 무료로 제공되는 서비스입니다. 용병의 경우 재생에 필요한 소정의 보수를 지불해야 합니다. 단, 강제징용 된 죄수의 경우 원칙적으로 금품 소지가 불가하므로 회당 100의 공적치로 대신하게 됩니다. 그 외에 레벨에 따라 재생까지 걸리는 시간은 다른 페어리와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육체 재생에 30분의 시간과 공적치 100이 소모되었습니다.
“빌어먹을!”
절로 욕이 터져 나왔다.
전장에 끌려 나갈 때마다 죽으니 이제 이딴 정보창을 보는 것도 새삼스럽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전장에서 죽은 게 아니었다. 이리듐 채취를 나가 부대와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가 10여 마리의 카락 정찰 부대에게 들켜 몰매를 맞고 뻗어 버린 것이다.
전장에서 죽고, 이리듐 채취하다가 죽고…….
“완전 동네북이 따로 없군.”
그러나 문제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아크가 구시렁거리며 몇 걸음 떼어 놓았을 때였다.
꼬르륵거리는 빈티 나는 효과음과 함께 눈앞에 붉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만복도가 20% 이하로 떨어져 ‘굶주림’ 상태가 되었습니다.
《모든 스텟에 -50%의 페널티가 주어지고 0%가 되면 사망하게 됩니다.》
‘결국 굶주림까지…….’
주린 배를 움켜쥔 아크의 입에서 한숨이 나왔다.
아크는 이틀 동안 이리듐 채취 작업을 두 번 나갔다.
이리듐 채취는 기본적으로 사금砂金을 캐는 작업과 비슷했다. 흙 속에서 작은 이리듐 조각을 찾아내는 작업이었다.
그러나 아직 일이 몸에 익지도 않고, 죄수들 사이에서의 경쟁도 치열해 두 번이나 작업을 나갔음에도 아직 식량을 살 만큼의 양을 모으지 못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만복도는 뚝뚝 떨어져 굶주림 상태가 돼 버렸다. 아사餓死까지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것이다.
“여기저기에서 맞아 죽는 것도 모자라 굶어 죽을 걱정까지 해야 하다니…….”
온라인 게임을 시작한 이래 이렇게까지 비참한 기분이 들어 본 적이 있을까 싶다.
그러나 아크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나는 아크다. 고작 이 정도에 무너질 수는 없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 어떻게든 버티다 보면 뭔가 방법이 생길 거야. 버티자. 지금은 버텨야 해. 그리고 이곳에서 버티려면 최소한 굶어 죽는 것만은 어떻게든 피해야 해!’
그동안 아크가 깨달은 게 바로 이것이었다.
벨타나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소 조건이 바로 식량 조달이라는 것.
새삼스럽지만 갤럭시안에는 만복도라는 시스템이 존재한다. 그리고 만복도가 50% 이하로 내려가면 힘이나 민첩 같은 스텟에 페널티가 적용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방금 전 아크가 10여 마리의 카락에게 들키자마자 순식간에 죽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라마족이 정찰용으로 사용하는 카락은 레벨이 20 전후밖에 되지 않았지만, 굶주림 상태에 빠져 스텟이 50%나 떨어진 아크는 그런 카락 1마리조차 상대할 여력이 없었다.
아니, 싸우기는커녕 도망칠 엄두도 내지 못하고 꼬챙이 같은 팔에 쿡쿡 찔려 죽어 버린 것이다.
‘문제는 한번 그런 상황에 빠지면 벗어나기 어렵다는 거야.’
굶어 죽으면 부활할 때 일정치의 만복도가 회복된다.
그러나 회복되는 만복도는 고작 50%. 부활하자마자 페널티를 받게 된다. 그렇게 페널티가 주어진 상태에서 전장에 끌려 나가면 당연히 생존 확률은 더 떨어진다.
게다가 전장에 나가면 일단 50의 공적치를 받으니 곧바로 죽어도 -50으로 그치지만 굶어 죽으면 얄짤없이 -100.
페널티와 깎여 나가는 공적치에 짓눌려 마치 사채업자에게 빌린 돈의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듯 악순환의 고리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이제 아크의 최대 목표는 밥이었다.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아크가 안도의 한숨을 불어 내며 배낭을 바라보았다.
첫 채취 작업 때는 뭐가 뭔지 몰라 거의 빈털터리로 돌아왔지만 식량 조달의 중요성을 깨달아 이번 작업에서는 제법 이리듐을 모을 수 있었다.
뭐 지나치게 욕심을 부려 혼자서 멀리까지 나갔다가 죽었지만 일단 굶어 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막상 생각해 보면 그런 걸로 흐뭇해하는 현실이 서글프지만…….
꼬르르르.
“웃! 젠장, 위장이 비틀어지는 것 같네. 빨리 가자.”
아크는 주린 배를 움켜쥐고 후들거리는 다리를 움직이며 기지를 가로질렀다. 그리고 마침내 죄수 부대 막사 옆에 자리 잡은 보급소에 도착했을 때였다.
아크는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안 됩니다.”
말끔한 제복의 여자 장교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이름은 이리나.
처음 벨타나에 들어왔을 때 아크를 쓰레기라고 부르며 따뜻하게(?) 맞이해 줬던 죄수 부대장 베라툴의 부관이었다.
눈에 확 뜨일 정도는 아니지만 상당한 미인이라 처음 그녀를 봤을 때 신입 죄수들은 질 낮은 농담을 던지며 관심을 끌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틀이 지나자 그녀에게 농담을 던지는 죄수들은 없었다.
이유는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그녀가 죄수들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보급소를 맡고 있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의 이유는…….
“안 되다니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안 보이시나요?”
이리나가 보급소 앞에 놓인 저울을 가리켰다.
아크가 채취해 온 이리듐이 놓인 저울의 눈금은 99와 100 사이에서 멈춰 있었다.
“우주 식량은 100그램입니다. 아쉽지만 부족하네요.”
“그, 그럼…… 고작 0.5그램 때문에 식량을 주지 못하겠다는 말입니까?”
“0.5그램이라도 부족한 건 부족한 거니까요.”
“마, 말도 안 돼!”
“그게 규정입니다.”
“자, 잠깐만요! 저, 전 벌써 만복도가 20% 이하라고요! 이번에 식량을 구하지 못하면 다음 채취 작업을 나가기도 전에 굶어 죽는단 말입니다!”
“그러시군요. 그럼 다음에 뵙죠.”
이리나가 무표정한 얼굴로 사형선고를 내렸다.
……죄수들이 관심을 접은 두 번째 이유가 이것이었다.
아사 직전까지 몰린 아크는 퀭한 눈에 바짝 마른, 그야말로 눈뜨고 보기 힘든 몰골로 변해 있었다.
누가 봐도 동정심을 자극할 만한 몰골!
그러나 이리나는 동정심은커녕 고작 0.5그램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굶어 죽으라고 말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여자였다.
아무리 여자에 굶주린 죄수라도 호감을 느낄 리가 없었다.
“젠장, 저가 무슨 세무원이야? 더럽게 깐깐하네.”
“틀림없이 한 40쯤 먹은 성질 고약한 아줌마일 거야.”
“역시 게임 속의 얼굴은 믿을 게 못 돼.”
죄수들 사이에서는 이제 ‘이리나 40대 아줌마설’이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아크에게 중요한 것은 이리나가 아줌마인지 아닌지가 아니었다.
이번에도 보급을 받지 못하면 굶어 죽는 것이다.
“정말 너무하십니다!”
아크가 이를 갈아붙이며 소리쳤다.
“물론 저는 죄수입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저 역시 은하연방을 위해 싸우는 병사 아닙니까? 그런 병사가 당장 굶어 죽을 상황이라고요. 게다가 그냥 달라는 것도 아니고 고작 0.5그램이 부족할 뿐입니다. 그런데 그냥 굶어 죽으라는 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아크는 동정심 유발 작전이 먹히지 않자 논리적으로 따져 보았다.
“말했죠? 규정입니다.”
역시나 이빨도 들어가지 않았다.
“0.5그램이 아니라 0.01그램이라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볼일 끝났으면 비켜 주시죠.”
‘이…… 이…… 빌어먹을 계집애가!’
가슴 깊은 곳에서 시커먼 분노가 이글이글 타오르는 기분이다. 심지어 방금 전 아크를 쿡쿡 찔러 죽인 카락보다 그녀가 더 악랄해 보일 정도!
그러나 아크는 꾸역꾸역 넘어오는 분노를 꾹꾹 눌러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죄수 부대장의 부관이자 보급소 관리. 죄수 따위가 시비를 붙여서 좋을 게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번에 보급을 받지 못하면 굶어 죽는다. 그것만은…….’
잠시 고민하던 아크는 결국 최후의 수단을 꺼내 들었다.
사실 아크는 벨타나에 처음 들어와 선임 죄수들을 봤을 때 이해되지 않았던 게 있었다.
벨타나는 영하 50도를 넘나드는 극저온의 혹성.
아무리 혹독한 우주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신체코팅을 받았다 해도 겁나 추웠다. 그런데 선임 죄수들 중 적지 않은 숫자가 웃통을 벗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아크는 그 이유를 절절할 정도로 잘 이해하고 있었다.
“이, 이걸 맡기겠습니다!”
아크가 웃통을 벗어 이리나에게 내밀었다.
죄수들이 웃통을 벗고 다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보급소에서는 꼭 이리듐만 받는 게 아니었다. 라마족에게서 얻은 각종 전리품 같은 것도 보급품과 바꿀 수 있었는데, 그건 죄수들이 입고 있는 장비품도 해당되었다.
그러나 죄수들은 형을 받을 때 장비품을 제외한 모든 아이템을 압수당한다. 남은 것은 달랑 걸치고 있는 장비품뿐, 무기를 넘길 수는 없으니 상의 아머를 벗게 된 것이다.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
“흠, 이건 우주 식량 3개 분량이군요.”
그리고 상의는 우주 식량 3개로 바뀌었다.
상의를 벗으니 매서운 한기가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이로써 아크는 ‘굶주린 죄수’에서 ‘헐벗고 굶주린 죄수’가 된 것이다.
‘아머까지 팔아먹게 되다니…… 정말 이곳에서 벗어날 때가 오기는 오는 걸까?’
아크가 몸을 움츠리고 터덜터덜 막사로 걸어갈 때였다.
“어이, 거기.”
옆에서 한 무리의 병사들이 다가왔다.
은하연방 마크를 달고 있는 정규병들이었다.
번쩍번쩍 빛나는 정규병들의 장비품을 보니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크도 한때는 은하연방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성향이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결정을 보류했었다. 벨타나에 와서 아크가 가장 후회했던 게 그것이었다.
벨타나의 정규병은 대부분 은하연방과 계약한 개척자.
이들은 은하연방의 정식 의뢰를 받고 파견된 유저들이라 페어리 이용 무료, 식량과 총알 같은 기본 소모품도 무료였다. 게다가 아크는 공적치를 세워도 사면받는 게 전부지만, 이들은 공적치를 세우면 그 수치에 따라 각종 장비품을 지급받는 것이다.
벨타나에는 배틀슈트를 가지고 있는 정규병도 꽤 많았는데, 그것 역시 공적치로 받은 보상품이었다.
‘만약 그때 포넨의 제의를 받아들였다면…….’
아크도 그들 가운데 끼어 있으리라.
그러나 이런저런 부분이 마음에 걸려 계약을 보류했다가 빌어먹을 햄스터와 가계약을 맺어 버렸다. 그리고 결국 범죄자가 되어 은하연방과 계약할 기회는 영영 박탈.
헐벗고 굶주린 죄수가 되어 은하연방 개척자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처지가 돼 버린 것이다.
순간의 판단 실수가 만들어 낸 신분 격차였다.
“너 유저지?”
처음 보는 놈이 반말을 해도 참을 수밖에 없는 신분 격차!
아크가 고개를 끄덕이자 사각 턱의 사내가 히죽 웃으며 다가왔다.
“너, 이곳에서 나가고 싶지 않냐?”
뜬금없는 질문에 아크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자 사각 턱이 슬쩍 아크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실은 우리가 네게 제안할 게 있는데 말이야.”
“제안?”
“그래, 너도 이제 여기 들어온 지 좀 됐으니 분위기 정도는 알겠지? 솔직히 죄수 신분으로 이곳에서 공적치를 올려서 사면받는 건 하늘의 별 따기나 다름없어. 공적치는커녕 굶어 죽지 않기도 어려운 곳이지. 상의 아머를 벗고 있는 걸 보니 너도 그런 것 같군. 하지만 우리가 도와주면 식량은 물론 공적치를 쌓아 이곳을 벗어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지. 물론 약간의 성의 표시를 해 줬을 때 얘기지만.”
“성의 표시라니…… 저는 가진 게 없는데요?”
“킥킥킥, 알아. 하지만 너는 유저잖아. 나도 유저고.”
“그게 무슨…….”
“뭐 유저들만의 소통 방법이 있다는 말이지. 간단해. 네가 내 계좌로 성의 표시를 해 주면 된다는 거야. 그러면 우리가 특별히 신경 써 주지. 일단 라마족의 장거리 폭격만 버티면 그 뒤로는 우리가 알아서 널 보호해 주겠다는 말이야. 물론 공적치도 섭섭지 않게 챙기게 해 주지. 딱 잘라 200만 원이면 돼. 어때? 기껏 수천만 원이나 하는 유니트를 사서 시작한 게임을 이런 곳에서 접는 것보다 낫지 않아?”
‘이, 이 자식이 지금…….’
뭔 소리인가 귀를 기울이던 아크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대고 있지만 결국 아크에게 삥을 뜯겠다는 말이 아닌가?
‘내가 이딴 놈들에게 이런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물로 보인다는 건가?’
기가 막혀 말도 나오지 않는다.
아크가 누구인가? 게이머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전설의 게이머다. 갤럭시안을 하게 된 이유도 그런 경력을 인정받아 정부에서 일을 의뢰했기 때문이다.
물론 일이 더럽게 꼬여서 어쩌다 보니 헐벗고 굶주린 죄수 신세가 돼 버렸지만, 그래도! 그래도! 명색이 전설의 게이머에게 보호해 줄 테니 돈을 내놓으라니!
처참하게 짓밟힌 자존심!
아크는 이를 뿌드득 갈아붙이며…….
“그게…… 제가 지금은 여유가 없어서요.”
“그래?”
사각 턱이 피식 웃었다.
“그럼 나중이라도 돈 생기면 찾아와. 기갑 1소대의 발렌시아를 찾으면 돼.”
사각 턱, 발렌시아가 비웃는 듯한 눈길로 바라보다가 돌아갔다. 새삼 울컥 치밀어 오르며 당장이라도 놈의 뒤통수에 총알을 박아 주고 싶었다.
그러나 보급소에서처럼 이 역시 참을 수밖에 없었다.
라마족의 장거리 폭격에서 살아남아도 그 뒤에는 라마 부대와 백병전을 치러야 한다.
이때 허접스러운 죄수들이 살아남을 수 있느냐 없느냐는 정규병들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놈들이 말하는 것처럼 정규병이 작정하고 도와주면 그 죄수는 생존율이 비약적으로 상승하는 것이다. 하물며 발렌시아와 함께 왔던 유저들은 기갑 1소대. 배틀슈트를 사용하는 은하연방의 최정예 부대였다.
물론 아크는 돈까지 바치며 도움을 애걸할 생각은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아크가, 다른 유저에게 돈까지 바치며 도움을 애걸하다니? 아무리 바닥까지 추락했다 해도 그런 셔틀 같은 짓을 한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때문에 거절하기는 했지만, 차마 욱하는 기분으로 성질을 부리는 것까지는 할 수 없었다.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은, 돌려 말하면 더 힘들게 만들 수도 있다는 뜻. 그들에게 밉보이면 전장에서 살아남을 확률은 비약적으로 낮아질 게 뻔하지 않은가.
“정말 보급소의 계집이나 방금 전의 놈이나, 돌아가며 사람 비참하게 만드는군.”
아크가 그렇게 똥 씹은 표정으로 중얼거릴 때였다.
“저놈들은 아직도 저러고 있군.”
옆에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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