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368)
아크 더 레전드-368화(368/875)
[368] SPACE 6. 지금 그들은…… (5)“다행이군. 순양함이나 수소폭탄, 혹은 500쯤 되는 정예병이 필요하다고 했다면 난감했을 텐데. 다행히 30명 정도는 바로 구해 줄 수 있어. 페이, 돌아가는 즉시 특무대원 중에 가장 뛰어난 병사로 30명을 차출해 아크에게 붙여 주도록.”
페이가 와락 인상을 구기며 소리쳤다.
“후, 후작님!”
“아니, 특무대원은 필요 없습니다.”
그때 아크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괜히 혼자 열 받아 푸르락누르락하는 페이를 향해 슬쩍 고개를 돌리며 보란 듯이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마침 기관병이 26명이니 그들을 붙여 주십시오.”
“기관병?”
“네, 그리고 기간은 하루.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 외에 필요한 것은?”
“이곳에서 나쿠마들의 동태를 감시해 주십시오.”
“여기서 얌전히 기다리기나 하라는 말인가? 재미있군. 좋아, 뭘 하려는지는 묻지 않겠다. 어디, 이런 상황에서 뭘 할 수 있는지 지켜보도록 하지.”
마틴 후작이 씨익 웃으며 끄덕였다.
* SPACE 7. 라젠카의 비문 (1)
“저 바보 자식이……!”
페이가 와락 얼굴을 구기며 몸을 일으켰다.
아크가 26명의 기관병만으로 크레이터 주변의 나쿠마를 처리하겠다고 했을 때, 페이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아 무시하려고 했지만.
“자신이 있어서 하는 말이겠지?”
“적어도 무턱대고 돌진하는 것보다는…… 네.”
“그럼 맡기지. 네 맘대로 해 봐라.”
마틴 후작은 고작 이 정도의 말로 요청을 수락했다.
페이로서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대체 그런 놈의 어디를 믿고 승무원들을 맡긴단 말인가? 그러나 페이에게 마틴 후작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일단 후작님의 명령이니 기관병 26명을 네게 맡기겠다. 하지만 네가 공명심에 눈이 멀어 이들을 헛된 죽음으로 몰아넣기라도 한다면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
페이는 엄중하게 경고했다.
지금까지 아크가 보여 준 모습―대체로 나쿠마의 잔해나 주워 담는―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도 진지하지 못하고 실실 쪼개는 꼬락서니가 도무지 믿음이 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결국 일이 터져 버렸다.
아크가 기관병을 데리고 어딘 가로 사라진 지 만 하루. 나쿠마의 동향을 살핀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저 크레이터 근처에서 시간을 때우고 있던 페이가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아크는 어디서 무슨 짓을 하고 있기에…….”
“왜 그리 안절부절못하는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 같아서 그럽니다. 물론 아크의 말대로 무조건 서두른다고 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식량으로 버틸 수 있는 것은 앞으로 하루 정도. 독성을 완화시킬 수 있다 해도 승무원들 중 이 혹성의 벌레를 먹고 버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우리에게는 1분 1초가 생명과 직결되는 시간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귀중한 시간을 하루나…….”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지 않나? 피해를 줄일 수 있다면 그게 최선이겠지.”
“저는 그 부분을 믿지 못하겠다는 겁니다. 기관병으로 무슨…….”
투투투투! 탕! 탕! 탕!
언덕 너머에서 총성이 울린 것은 그때였다.
움찔하며 고개를 들어 올린 페이와 마틴 후작의 얼굴이 당혹감이 물들었다.
그들이 숨어 있는 언덕 맞은편, 비교적 완만한 평지에 가까운 지형으로 크레이터에 접근하며 나쿠마를 공격하는 사람들은 아크와 기관병들이었다.
그것도 숫자는 떠날 때의 절반 이하로 줄어 불과 10여 명밖에 되지 않았다. 대체 무슨 사정으로 인원이 그 정도로 줄었는지는 모르지만, 10여 명으로 400~500의 나쿠마를 공격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다 죽일 생각인가?”
페이가 이를 갈아붙이며 몸을 일으켰다.
그때 마틴 후작이 손을 들어 제지하며 눈매를 좁혔다.
“기다려라. 뭔가 이상하다. 나쿠마를 공격하는 병력이 아크가 데려간 인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아. 게다가 그들은 기관병이다. 아크는 고작 10여 명의 기관병만 데리고 나쿠마와 싸울 정도로 무모한 녀석이 아니다. 뭔가 생각이 있을 것이다.”
“생각은 무슨 생각입니까?”
페이가 당치도 않다는 듯이 소리쳤다.
“전장에서 저런 놈들은 지긋지긋하게 많이 봐 왔습니다. 아마 놈은 멍청하게 도중에 기관병을 잃었을 겁니다. 그러니 저런 놈이라도 뻔뻔하게 그냥 돌아올 수는 없었겠죠. 그래서 딴에는 자존심을 지키겠다고 저러는 겁니다. 그런 게 아니라면 왜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겠습니까? 저놈은 이성을 잃고 기관병들까지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는 겁니다.”
“아니, 그런 것치고는…….”
마틴 후작이 가는 눈매로 전장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부대원이 제대로 진형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무턱대고 돌격하는 것도 아니야. 처음에는 돌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나쿠마가 반응을 한 뒤로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방어에 전념하고 있다. 내 눈에는 적어도 이성을 잃고 뛰어드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군.”
투투투투! 탕! 탕! 탕!
계속되는 총성에 페이가 다급한 표정으로 말했다.
“막상 나쿠마의 반격을 받으니 무서워진 것뿐입니다! 이럴 때가 아닙니다! 여기서 더 머뭇거리다가는 그나마 남아 있는 기관병까지 전멸할 겁니다!”
“아니, 좀 더 지켜본다.”
“후작님!”
“네 말대로 아크의 병력은 고작 10여 명밖에 되지 않아. 아크가 이성을 잃고 저런 것이라면 이제 와서 특무대원들을 불러 공격해 들어가도 기관병들을 구하기는 무리다. 되레 특무대원들까지 잃게 될 위험이 있어. 물론 사태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모르니 특무대원들을 대기시켜 놓을 필요는 있지만 일단 움직이지 않고 지켜본다.”
전황이 변한 것은 그 직후였다.
크레이터의 외곽을 돌며 나쿠마를 공격하던 아크 부대가 갑자기 퇴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느닷없이 탄환을 먹은(?) 나쿠마들은 꽤나 열 받은 상태.
아크가 물러나자 크레이터에 모여 있던 나쿠마가 포화를 쏟아부으며 추격을 개시했다. 그러자 나쿠마 떼로 새까맣게 뒤덮여 있던 크레이터가 텅 비어 버리기까지는 순식간이었다.
페이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떠듬거렸다.
“서, 설마 아크가 노린 게…….”
결과를 보면 상황은 명확했다.
아크는 크레이터에 모여 있던 나쿠마를 유인한 것이다.
그러나 아크 부대의 병력은 고작 10여 명. 추격해 간 나쿠마는 400~500이다. 설사 아크가 나머지 인원을 어딘가에 매복시켜 놨다 한들, 기습 따위로 전멸시킬 수 있는 숫자가 아닌 것이다. 게다가 바짝 따라붙는 나쿠마의 추격을 따돌릴 수도 없을 테니 아마도 곧…….
“아크 자식, 설마 처음부터 죽을 생각이었던 건가?”
페이가 마틴 후작을 돌아보았다.
이런 상황이면 아크 부대는 전멸할 수밖에 없다.
만약 아크가 처음부터 이럴 의도였다면 답은 하나, 아크는 자신을 희생해 마틴 후작과 특무대에게 길을 열어 주었다는 뜻이다. 그리 생각하면 전투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기관병들만 데리고 간 것도 납득할 수 있었다.
앞날을 생각해 병력을 보존할 필요가 있으니 전멸해도 전력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기관병들만 데리고 것이리라.
“멍청한 자식이…… 누가 그런 부탁을 했다고…… 이런 짓을 하면 잘했다고 칭찬이라도 해 주리라고 생각하는 건가?”
“글쎄?”
마틴 후작이 볼을 긁적였다.
“내가 아는 한 아크는 자네에게 칭찬받겠다고 이런 짓을 할 녀석은 아닌데…….”
“누가 칭찬을 해 주기나 한 답니까? 자신을 희생해서 아군의 길을 열다니? 그런 무책임한 짓 따위, 저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절대! 이런 짓…… 인정할 수 없어요!”
“뭘 또 그렇게까지…….”
페이의 반응에 마틴 후작이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페이가 울컥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웃을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 웃을 때가 아니지. 희생을 했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약속대로 아크가 길을 뚫은 것은 사실이다. 멍하니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겠지. 그리고 이제 와서 아크 부대를 쫓아가는 것도 무리. 페이, 특무대를 소집하라. 우리는 예정대로 크레이터의 중심부로 진격한다.”
“……빌어먹을!”
페이가 욕설을 내뱉으며 특무대를 소집했다.
그리고 언덕을 타고 내려와 크레이터로 진입, 한층 더 심해져 가시거리가 10미터도 되지 않는 모래 폭풍을 뚫고 중심부로 다가갔을 때였다.
어느 순간 모래 폭풍이 뚝 끊기며 넓은 평지가 나타났다.
지금까지 그들이 지나온 길은 모두 유리질이 섞인 모래벌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금속에 가까운 질감의 벽돌이 깔려 있는 바닥이 나타난 것이다.
그 중심에 반으로 쪼개진 거대한 석판이 보였다.
“이건 혹시……?”
“후작님, 누군가 접근하고 있습니다!”
마틴 후작이 눈매를 좁히며 석판으로 다가갈 때였다.
뒤쪽에서 특무대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쿠마인가?”
“아직 확인되지 않습니다! 숫자는 수십!”
“모두 전투태세! 후작님을 중심으로 원진圓陣을 펼쳐라!”
페이가 즉각적으로 명령을 내리며 중화기를 풀어 움켜쥐었다. 그리고 검은 형체가 어른거리며 다가오는 모래 폭풍 너머를 바라보며 이를 갈아붙였다.
“아크, 이 멍청한 자식, 고작 이거냐? 할 거면 제대로나 하든지! 고작 이 정도의 시간을 벌겠다고 뒈진 거냐? 빌어먹을 나쿠마 자식들! 와라! 이 몸이 다 박살 내 주겠다!”
철컥! 철컥!
그리고 험악한 표정으로 노리쇠를 당겼을 때였다.
“어이, 페이 대장님, 우리입니다!”
“이, 이 목소리는?”
“대장님, 기관병들입니다! 아크 님과 함께 갔던 기관병들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뭐야? 기관병들이 돌아온다고?”
믿기지 않는 보고에 페이가 퍼뜩 고개를 들어 올렸다.
동시에 모래 폭풍 너머에서 어른거리던 검은 형체가 가까워지며 한 무리의 사람들로 변했다.
손을 흔들며 뛰어오는 사람은 헉슬러. 그 뒤로 20여 명의 기관병들이 보였다. 이미 죽었다고 생각했던 26명의 기관병이 단 1명의 낙오자도 없이 돌아온 것이다.
그들을 이끌고 다가오는 사람은 바로…….
“아크!”
페이가 당황한 표정으로 떠듬거렸다.
“사, 살아 있었던 건가?”
“네? 살아 있었냐니요? 제가 언제 죽기라도 했습니까?”
“아니, 그게…….”
“페이는 네가 우리에게 길을 열어 주기 위해 장렬하게 산화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페이의 뒤에서 마틴 후작이 아크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그 말에 아크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제가요? 왜요?”
“글쎄? 나름대로 네 걱정을 한 게 아닐까?”
“페이 대장님이 저를? 흐음, 그건 또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군요.”
아크가 눈을 깜빡거리자 페이가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버럭 소리쳤다.
“누, 누가 너 따위를 걱정했다는 거냐? 당치도 않은 소리! 후작님, 오해입니다! 저는 단지 제멋대로 기관병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에 화가 났을 뿐입니다. 그런데…….”
“살아 돌아왔군. 1명의 낙오자도 없이.”
“후작님, 알고 계셨습니까?”
페이가 마틴 후작을 돌아보며 물었다.
“아니, 나도 들은 바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아크는 내게 길을 열어 주겠다고 죽음을 택할 정도로 기특한 녀석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 페이, 자네가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와 아크는 그렇게 정감 넘치는 사이가 아니야. 하물며 아크가 나를 위해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니? 상상하기 힘들지.”
“당연하죠. 저는 후작님보다 내 목숨이 몇 배는 더 소중한 사람입니다.”
“뭐 대놓고 이런 소리를 하는 녀석이니까.”
마틴 후작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역시 궁금하군. 나쿠마는 어떻게 따돌리고 온 건가?”
“들어 보십시오! 굉장했습니다!”
헉슬러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침을 튀기며 설명했다.
아크가 24명의 기관병을 데리고 지난 하루 동안 한 일은 지나온 길을 되짚어가 기계 부품을 모으는 것이었다.
가방 공간이 부족해 아크가 미처 챙기지 못한 나쿠마의 잔해. 그리고 나쿠마에게 뜯어 먹히지 않은 비상정들. 아크와 기관병들은 지난 하루 동안 그 잔해들을 모아다가 크레이터에서 10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쌓아 두었던 것이다.
“과연…….”
마틴 후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까지만 듣고도 대강의 상황을 이해한 것이다.
“나쿠마는 본능적으로 금속을 흡수하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지. 방금 전에 나쿠마들을 공격하다가 도망친 것은 그 기계 부품을 쌓아 둔 곳으로 유인하기 위해서였던 건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수백 마리 나쿠마들의 관심을 모두 기계 부품을 돌리기는 힘들었을 텐데?”
“나쿠마를 공격한 것은 저와 10명의 기관병뿐이었죠.”
“하지만 귀환한 대원은 24명. 나머지 14명이 따로 떨어져 있을 이유가 있었다는 말이군.”
“그런 거죠.”
아크가 씨익 웃으며 끄덕였다.
그때 나쿠마 유인작전에 동원되지 않은 14명은 산처럼 쌓인 부품 더미에 숨어 있었다.
그리고 아크가 나쿠마 떼를 몰고 근처에 도착하는 순간!
“신호기를 작동시켰습니다.”
“신호기?”
“네, 무사히 우리와 합류한 승무원들이 타고 있던 비상정은 나쿠마에게 손상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비상정이 약 30기. 나쿠마를 부품 더미 근처까지 유인해 왔을 때, 나머지 대원들이 그 비상정의 신호기를 최대 출력으로 작동시켰죠.”
나쿠마는 그 신호를 감지하는 센서를 가지고 있었다.
모래 폭풍이 휘몰아치는 넓은 지역에서 비상정의 위치를 정확히 알아내고 습격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감지 능력 덕분이었다. 아크는 바로 그런 나쿠마의 특성을 역이용!
금속 부품을 식량으로 삼는 나쿠마에게 그런 구조 신호는 상처 입은 먹잇감이 흘리는 피 냄새와 같은 것.
게다가 바로 옆에서 그런 신호가 30개나 잡힌다.
나쿠마에게는 탐스러운 음식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것처럼 보였으리라.
거부하기 힘든 유혹!
뭐 눈앞에는 자신들을 공격한 건방진 인간들이 얼쩡대고 있었지만 어차피 때려잡아도 먹지도 못하는 것들이다. 그런 생각으로 살짝 고민하던 나쿠마들이 선택한 것은 부품 더미.
이성보다는 본능, 식욕을 채우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방법으로는 오래 붙잡아 두기 힘들 텐데?”
“아니, 적어도 몇 시간은 괜찮을 겁니다.”
“근거는?”
“그게 바로 아크 님의 대단한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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