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369)
아크 더 레전드-369화(369/875)
[369] SPACE 7. 라젠카의 비문 (2)입이 근질근질한 표정으로 기회를 엿보던 헉슬러가 다시 끼어들었다.
“아크 님은 잔해를 모아 놓은 뒤에 몽땅 붙여 버렸습니다. 부품끼리 나사를 꽉 조여 연결하고, 나사 구멍이 없는 부품은 아예 용접을 해서 붙여 버렸죠.”
아크가 기관병을 데려간 이유가 이것이었다.
비상정의 신호기 출력을 조종하는 것도, 나사로 조이거나 용접을 하는 것도 모두 기관병의 전문 분야인 것이다.
덕분에 지금 나쿠마들이 모여 있는 부품 더미는 수백 개의 기계 부품이 엉겨 붙어 한 덩어리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아무리 나쿠마라도 분해해서 흡수하려면 적어도 몇 시간은 걸리겠죠.”
“푸하하하하!”
설명이 끝나자 마틴 후작이 폭소를 터뜨렸다.
“걸작이군. 수백 마리의 나쿠마가 용접되어 있는 부품 더미에 달라붙어 낑낑거리는 모습이라니, 직접 보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야. 그리고 확실히, 내가 그런 작전은 무리야. 연방에서도 나쿠마를 몬스터로 분류하고 있기는 하지만 정말 생명체를 상대하는 것처럼 식탐을 자극하는 방법을 사용할 생각을 하다니. 기발하다 못해 기괴할 정도로군. 어떤가, 페이? 헉슬러의 말대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그, 그런 건 제대로 된 작전으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페이가 팩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
그런 모습에 마틴 후작이 피식 웃으며 끄덕였다.
“페이가 무사히 돌아와 반갑다고 하는군.”
“그런…… 겁니까?”
뭐 아크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어쨌든!
나쿠마들의 발을 묶어 놨다고 하지만 시간을 얼마나 끌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놈들을 유인한 이유는 그사이에 크레이터의 중심부를 조사하기 위해. 나쿠마가 부품 더미를 분해해 먹어 치우고 돌아오기 전에 이곳에서 이번 사건의 원인을 찾아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중심부를 돌아보던 아크의 눈매가 좁아졌다. 아크의 시선이 향한 곳은 마틴 후작의 뒤, 반으로 갈라진 엄청난 크기의 석판이었다.
“저건…….”
“라젠카의 비문秘紋……과 같은 것으로 보인다.”
“라젠카의 비문? 라젠카라면……?”
예전에 마틴 후작에게 들었던 기억이 있는 단어다.
우주 마법진을 조사하러 떠나기 직전, 타투인의 연방 본부에서 마틴 후작은 반물질에 대해 설명하며 라젠카라는 혹성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언급한 적이 있었다.
아슐라트에 속한 혹성으로 반물질을 연구하다가 폭주를 막지 못하고 혹성이 통째로 증발해 버린 사건이다. 이것이 라젠카의 참극이라고 알려진 사건이자 후에 은하 3국이 반물질 연구 금지 조약을 맺게 된 계기가 된 사건이었다.
“용케 기억하고 있군.”
마틴 후작이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대외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라젠카에는 오파츠Ooparts가 발견됐었다.”
“오파츠?”
“아직 확인되지 않은 고대 문명이 남긴 유물. 그리고 현대 기기로도 정확한 연대나 쓰임새 따위를 추측하기 힘든 유물의 총칭이다. 4대 천족의 유물도 이전에는 오파츠로 분류됐었지.”
“저 석판이 4대 천족과 관련이 있단 말입니까?”
“그건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비문에는 고대 종족의 언어로 추정되는 문자가 새겨져 있었지만 4대 천족이 사용하던 문자는 아니었다.”
부서진 석판의 표면에도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아크도 처음 보는, 솔직히 문자라고 보기도 힘든 기호의 나열이었다.
어쨌든 이런 곳에 있는 석판이다.
우연이라고 보기는 힘든 일. 전후 사정을 맞춰 보면 이큘러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과 관련이 있을 확률이 높았다.
“문자를 해독했습니까?”
“해독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비문이 오파츠로 불리게 된 이유는 단순히 해독 불가능한 문자가 새겨져 있기 때문이 아니다. 문제는 이 석판 자체지.”
“그게 무슨……?”
“당시, 아니, 현재도 아슐라트는 과학 기술에 있어서는 은하 3국 중 가장 진보된 국가다. 그러나 그런 아슐라트의 기술로도 이 석판을 파괴하지 못했다. 물론 귀한 연구 자료라 본격적인 무기까지는 사용하지 못했겠지만 정보원의 보고에 따르면 당시 아슐라트의 연구원들은 고탄소 그라인더나 수 미터 두께의 강화철판을 관통하는 레이저까지 동원했지만 석판에 흠집 하나 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건이 일어났지.”
“라젠카의 참극 말입니까?”
“그래, 반물질의 폭주로 인한 혹성 소멸. 그리고 아슐라트도 이 사건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때문에 라젠카의 비문이라는 오파츠도 영원히 어둠 속에 묻히게 되었지.”
아크는 머릿속이 뒤죽박죽으로 뒤엉키는 기분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혹성에서 발견된 정체불명의 석판. ‘?’로 시작해서 ‘?’로 끝나니 역시 ‘?’밖에 남지 않는다.
뭐 하나 확실하게 이거다 싶은 것이 없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찜찜하기 짝이 없는데, 이전에 같은 석판이 발견됐던 라젠카는 아예 소멸했단다.
뭐 그건 비밀리에 연구하던 반물질의 폭주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하필이면 소멸된 혹성에서 발견되었던 석판이, 하필이면 아크의 영지 혹성에서 발견된 것이다.
그것도 하필이면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시점에서.
덕분에 아크의 심정은 찜찜×1,000!
그러나 눈앞의 석판은 라젠카의 것과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라젠카의 비문과 같은 것이라면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상하지.”
마틴 후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라젠카의 석판은 갖은 방법을 사용해도 파괴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아크의 눈앞에 있는 석판은 반으로 갈라져 있었다. 게다가 부서진 모양도 괴상했다. 우연이겠지만 석판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균열은 마치…….
‘……늑대?’
적어도 아크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거대한 늑대가 석판의 중심을 가로지르고 있는 것 같은.
그러나 마틴 후작이나 페이 등은 딱히 균열의 형태에 대해서는 별말이 없었다.
“이게 정말 라젠카의 비문과 관련이 있을까요?”
“내가 얘기를 꺼내 놓고 이런 말을 하기는 뭐하지만…… 아직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이게 라젠카의 비문과 같은 것이라도 어차피 우리가 할 일은 달라지지 않아.”
“들어가 보는 수밖에 없겠군요.”
“그렇지.”
마틴 후작이 갈라진 석판.
수백 미터 넓이의 거대한 공동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페이, 특무대원과 석판 내부로 진입한다. 내부에 뭐가 있을지는 아직 장담할 수 없다. 또한 나쿠마의 동태도 살펴야 하니 기관병들은 이곳에 대기한다. 진입을 준비하라.”
“후작님도 이곳에서 대기하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농담은 집어치워라.”
마틴 후작이 페이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나도 한때는 누구 못지않은 전사였다. 위험을 두려워하는 신경 따위는 오래전에 마비됐어. 게다가 이렇게 두근거리는 일, 너희들에게 양보하고 얌전히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 전에 본인의 입장을 자각해 달라는 말입니다.”
페이가 한숨을 불며 웅얼거렸다.
그런 페이를 보고 있자니 그도 이래저래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아크의 시선을 느낀 페이가 괜히 울컥한 표정을 지으며 팩 고개를 돌렸다.
“가자!”
* * *
“상황을 보고하라!”
“웨어 벨트 전역을 수색 중인 40편대 376기, 아직까지 노블리스의 잔해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보고를 해 왔습니다. 비상정의 신호도 수신되지 않았습니다.”
“빌어먹을!”
웨스턴이 거친 욕설을 내뱉으며 계기판을 내리쳤다.
오늘로 수색을 시작한 지 사흘째, 전열함의 광범위 탐색 기능과 376기의 고속정을 동원해 샅샅이 훑고 있었지만 마틴 후작은커녕 노블리스의 잔해조차 찾아내지 못했다.
그런 보고가 전해질 때마다 웨스턴은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 심정이었다.
‘이만큼이나 수색했는데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니,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대체 노블리스에 무슨 일이 생긴 거지? 마틴 후작님은? 정말 살아 있기는 한 건가? 아니, 설사 살아 있어도…….’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시간이었다.
만약 마틴 후작이 무사히 노블리스를 탈출했다면, 그리고 어딘가에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면, 비상정을 이용하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러나 비상정에 비치되어 있는 식량은 대략 사흘 치. 다시 말해 사흘은 마틴 후작을 버틸 수 있는 한계 시간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지금은 마틴 후작이 실종되고 사흘이 지난 시점.
우주 공간에서 식량까지 떨어지면 그 누구라도 버티기 힘들어진다. 결국 앞으로 하루 이틀만 더 지나면 설사 시신을 확인하지 못해도 마틴 후작이 죽었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은하연방의 군부 최고 실력자가 원인 불명의 죽음을 당했다. 이 사건이 몰고 올 후폭풍은 상상도 되지 않았다.
‘마틴 후작님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자신의 입장을 알고는 있는 건가?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란 말이다! 그것도 단순히 자원 쟁탈전과는 차원이 다른 전쟁이! 차라리 라마나 아슐라트라면 다행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내정파와 내전이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이게 웨스턴이 생각하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이런 사태를 막을 방법은 하나!
“각 편대장에게 전하라. 수색 범위를 웨어 벨트에서 0.5광년 범위까지 확대한다.”
“하지만 0.5광년이면 우주 개척지의 경계를 넘게 됩니다.”
“상관없어!”
웨스턴이 거친 목소리로 소리쳤다.
“지금 남의 눈치나 살피고 있을 때가 아니다! 마틴 후작님을 찾지 못하면 무슨 일이 생길지 장담할 수 없어. 휴식 시간 따위는 없다. 모든 편대에게 지시 사항을 전달하라!”
“백작님!”
그때 통신병 1명이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
“멀지 않은 곳에서 본 함으로 통신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책임자와 연락을 하고 싶답니다.”
“군 작전 중에 누가 책임자를 운운하며 통신을 보내온단 말이냐?”
“식별 신호는 연방 소속의…….”
* * *
“시끄럽군.”
마틴 후작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밖에서는 쉬지 않고 몰아치는 모래 폭풍 탓에 항상 귀가 먹먹했다. 그러나 석판 내부로 들어서자 갑자기 외부와 단절된 것처럼 소음이 딱 멈췄다. 그리고 찾아든 무거운 정적.
그럼에도 시끄럽다는 마틴 후작의 말에 토를 다는 대원은 없었다. 귀로 들려오는 소리를 말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알 수 없는 뭔가가 피부를 들쑤시는 느낌!
“……섬뜩하군요.”
페이조차 긴장감을 숨기지 못하고 마른침을 삼켰다.
“이 아래에 뭔가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군.”
그러나 마틴 후작의 얼굴에는 되레 활기가 넘쳤다.
“특무대, 언제 무슨 일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다. 총기는 사격 모드로. 5인 1조로 팀을 편성해 전후좌우, 아래까지. 어떤 방향에서의 공격에도 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경계하라. 언제나 긴장이 풀어질 때가 가장 위험한 법이다.”
“이런 상황에서 긴장을 풀 사람은 후작님밖에 없습니다.”
“보기와 달리 긴장하고 있는 거라고.”
라고 말하며 즐거운 표정으로 웃는 마틴 후작이었다.
하긴 이 혹성에서 보여 준 마틴 후작의 무력이면 어지간한 대원 서너 명이 경계하는 것보다 나으리라.
그래도 VVVIP.
이런 곳에서 죽어 버리면 곤란하니 주의할 필요가 있었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그 정도는 양보하지.”
아크의 말에 마틴 후작이 군말 없이 물러났다.
파티에서 유일하게 아크만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런 아크가 선두를 맡는 것은 최선.
생각 없이 설쳐(?) 대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틴도 나름대로 전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며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페이가 아크의 옆에 따라붙으며 말했다.
“애송이에게만 맡겨 둘 수 없지. 본래 이 포지션은 내 몫이다. 무슨 힘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지는 모르겠지만 잔재주에만 의존하면 정작 보이는 것조차 못 보는 법이다.”
뭐 여전히 퉁명스러운 말투지만, 도와주겠다는 말인 모양이다. 어쨌든 그렇게 아크와 페이를 선두로 40여 명의 특무대원은 석판의 아래, 벽에 수평으로 솟아 나와 있는 발판을 따라 끝이 보이지 않는 공동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발판은 나선형으로 붙어 있었다.
처음에는 비교적 작은 원을 그리며―그래도 수백 미터는 되었지만― 회전하는 길이 점점 길어져 한 바퀴 도는 데만 몇 분이 걸릴 정도로 넓어졌다.
그런 길을 몇 바퀴 돌며 내려가자 다시 점점 좁아지기 시작했다. 그것으로 이 지하 공간이 거대한 구형을 이루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약 30분이 지났을 무렵.
“여기가 바닥인가?”
발판이 끝나고 평평한 바닥에 닿았다.
엄청난 넓이의 공간은 하자스카를 발동 중인 아크의 눈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없을 리가 없었다.
처음 석판 안쪽에 발을 디뎠을 때부터 느껴지는 섬뜩한 감각. 그 느낌은 아래로 내려올수록 강해져 바닥에 내려섰을 때는 마치 수렁 속을 걷는 느낌이 들 정도로 진해졌다.
그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곳은 공간의 중심.
마치 우물처럼 파여 있는 수백 미터 넓이의 구멍이었다.
“자, 어떤 괴물이 숨어 있는지 한번 볼까?”
빠직, 푸슈슈슈슈!
마틴 후작이 조명탄을 터뜨렸다.
그리고 구멍으로 던져 넣자 푸른빛이 어둠을 밝히며 멀어졌다. 조명탄이 멈춘 것은 거의 점처럼 변한 뒤였다.
마틴 후작이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뭔가 있기는 한 것 같은데, 안 보이는군.”
“……안 보인다고요?”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되물은 사람은 아크였다.
마틴 후작이나 페이, 다른 대원들은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아크는 조명탄이 반쯤 내려갔을 때부터 보이는 것이 있었다. 어둠 속에서 마치 맥박 치듯이 꿈틀거리는 붉은 점액질. 그리고 조명탄이 그 점액질을 통과하자 움직임이 우뚝 멈추며 좌우로 갈라졌다.
그 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뭔가 보이나?”
“……눈동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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