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376)
아크 더 레전드-376화(376/875)
[376] SPACE 1. 쥬라기 파크 (1)쿵! 쿵! 콰직! 우드드득!
짙은 안개에 휩싸인 밀림에서 연이어 울리는 굉음.
굉음이 울릴 때마다 하늘 높이 솟아 있는 두꺼운 나무들이 좌우로 갈라졌다.
……뭔가 거대한 것이 다가온다!
“물러서세요!”
아크는 반사적으로 이리나의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그리고 요동치는 안개 너머, 시시각각 다가오는 굉음이 울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돌연 바로 앞의 잔가지들이 와자작 부러지며 뭔가가 확 튀어나왔다.
‘헉! 뭐, 뭐야?’
아크는 움찔하며 물러났다.
아직 굉음을 일으키는 ‘뭔가’는 꽤 거리가 있었다.
그런데 마음의 준비를 하기도 전에 불쑥 뭔가가 튀어나온 것이다. 게다가 대지를 뒤흔들 정도로 큰 굉음과 달리 튀어나온 것은 아크와 다를 바 없는 크기.
숫자는 3개였는데, 나뭇가지와 풀 따위에 뒤덮여 있어 일순 넝쿨 더미가 굴러 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놈들은 생명체였다.
“우와아아아악!”
“히이이익! 히익! 히익!”
그 증거로 고함인지 비명인지 모를 괴성을 질러 대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아크는 살짝 당황해 버렸지만.
잠깐이었다.
모험을 하다 보면 예상치 못했던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리고 아크는 고작 이 정도 돌발 상황에 허둥대는 초보자가 아닌 것이다. 적어도 게임 세계에서는 산전수전 공중전, 심지어 이제 우주전까지 섭렵한 게이머!
‘놈들이 어떤 몬스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아크는 검 자루를 움켜쥐며 입 끝을 치켜 올렸다.
‘정체를 확인하는 것은 시체로 만들어 놓은 뒤에도 늦지 않는다!’
“이퀄라이저!”
그와 함께 뿜어져 올라오는 백색 검광!
뒤이어 백색 검광이 화려한 빛의 궤적을 그리며 수풀 더미를 향해 날아가는 순간, 갑자기 놈들이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멈춰 서더니 일제히 당혹성을 터뜨렸다.
“헉! 아크? 아, 아니, 아크 님!”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튀어나오는 이름.
순간 아크는 황급히 검을 되돌리며 당황스럽기 짝이 없는 눈빛으로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뭐냐, 네놈들은?”
“마, 마침내 오셨군요! 오실 줄 알았습니다!”
“……이 목소리는?”
“저희는 이대로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습니다! 죽는 줄 알았다고요!”
“왜 너희들만 이곳에 있는 거야?”
쿠쿵! 콰지지지!
아크가 황망한 표정으로 물었을 때였다.
갑자기 바로 옆에서 굉음이 울리며 두꺼운 나무가 부러져 나갔다. 그리고 자욱한 안개를 흐트러뜨리며 좌우로 갈라지는 수풀 사이로 거대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4~5미터 높이의 나무 위로 솟은 거대한 머리. 그 뒤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이어지는 거대한 동체와 꼬리는 10여 미터나 되었고, 앞발은 덩치에 비해 작았지만 수 톤에 달하는 육중한 동체를 지탱하는 뒷다리는 압도적인 질감의 근육질로 뒤덮여 있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몸을 뒤덮은 파충류 특유의 번들거리는 가죽.
“맙소사! 저놈은……!”
놀랍게도 숲에서 나타난 것은 공룡!
그중에서도 최강의 포식자라고 불리던 티렉스T-rex, 티라노사우루스였다.
왜 지구에서도 수십억 년 전에 멸종한 공룡이 이런 곳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단 말인가?
‘여기가 잃어버린 세계냐? 쥬라기 파크냐?’라는 생각을 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몸집만큼이나 거대한 눈동자로 주위를 스윽 둘러보던 티렉스의 머리가 이리나를 향해 내리꽂혔다.
쿠쿵-!
굉음이 울리며 대지가 들썩였다.
“이런 젠장! 이리나 님!”
“저, 전 괜찮아요!”
대답이 들려온 곳은 수 미터 떨어진 곳이었다.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자 이리나가 두 자루의 검을 X 자로 교차시킨 자세로 나무둥치에 등을 기댄 채 서 있었다.
다행히 직전에 방어 자세를 취해 공격을 막아 낸 모양이다. 그래도 대미지를 받기는 했지만 깎인 생명력은 3% 내외. 현실로 치면 생채기가 생긴 정도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도마뱀 새끼가 감히!”
티렉스의 만행(?)은 아크의 뚜껑을 열기에 충분했다.
여자 친구에게 아크도 아직 엄두도 내지 못하는 짓―주둥이를 들이대는―을 한 것도 모자라 상처까지 입히다니? 그것도 아크가 보는 앞에서! 용서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넌 뒈졌어!”
아크는 이를 갈아붙이며 검을 들어 올렸다.
“카프레 검술 4식, 피어싱!”
이어 발을 구르자 아크의 몸이 한 줄기 광선으로 변해 날아갔다. 그리고 재차 더러운 주둥이를 이리나에게 들이밀던 티렉스의 턱과 충돌!
이퀄라이저의 검광이 긋고 지나간 티렉스의 턱이 길게 갈라지며 붉은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크와아아아아!
티렉스가 고통에 몸부림치며 물러났다.
그러나 이미 뚜껑이 열린 아크는 인정사정없었다.
“이리나 님에게 들이댄 주둥이가 요 주둥이냐? 앙? 요 주둥이야?”
아크는 집요하게 따라붙으며 티렉스의 턱을 찌르고, 베고, 뭉개 놓았다. 덕분에 순식간에 걸레처럼 변해 버린 턱에서 쏟아지는 피만큼 티렉스의 생명력이 쭉쭉 빠져나갔다.
물론 티렉스도 얌전히 앉아서 턱을 들이밀어 주지는 않았다. 발톱의 크기만도 1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발로 내리찍고, 꼬리를 휘두르며 저항했다.
거구만큼이나 강력한 위력의 공격!
콰콰쾅! 콰지지지직!
일단 적중되면 아름드리나무도 한 방에 으깨지며 날아갔다. 아마 다른 유저였다면 그런 분위기만으로도 겁에 질려 움직임이 둔해졌으리라.
그러나 지금 티렉스의 상대는 다름 아닌 아크다.
티렉스보다 거대한 몬스터와도 숫하게 싸워 봤을 뿐만 아니라, 뭣보다 그녀가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 남자가 보여 줄 모습은 하나!
“브레이크키네시스!”
아크의 눈이 번뜩이자 티렉스의 눈동자 앞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염동력으로 해당 공간의 포스를 진동시켜 폭발시키는 엘림의 기술 브레이크키네시스!
적에게 직접적인 대미지를 입힐 수는 없지만 폭발에 의한 간접 타격, 즉 스플래시 대미지를 주는 기술이다.
뭐 그래 봤자 대미지는 미미한 수준이지만, 브레이크키네시스가 발동한 곳이 방어력에 마이너스(-)가 붙어 있는 눈앞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크와아아아아!
티렉스가 질끈 눈을 감으며 머리를 치켜들었다.
순간 아크는 휘청거리는 티렉스의 무릎을 밟고 머리 위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아래로 떨어지며 활짝 열린 놈의 목을 향해 이퀄라이저를 휘둘렀다.
“소닉 소드!”
아크가 티렉스의 턱 아랫부분만 집중 공략한 이유는 단순히 이리나에게 주둥이를 들이대는 발칙한 만행에 대한 보복만은 아니었다.
파충류를 포함한 대부분의 동물은 적의 공격을 받을 확률이 높은 바깥 부분은 보다 두꺼운 가죽에 덮여 있다. 반면 안쪽, 턱 아랫부분이나 배의 가죽은 얇기 마련이다.
티렉스도 마찬가지.
한눈에도 두꺼워 보이는 외피와 달리 몸 안쪽의 가죽은 얇았다. 다시 말해 안쪽의 방어력은 외피보다 취약하다는 뜻이다. 수많은 전투로 다져진 아크는 본능적으로 그런 티렉스의 약점을 간파하고 공격을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목 안쪽은 그런 약점 중에서도 가장 약한 부위!
푸화아아아악!
검광이 가로지르자 목이 쩍 벌어지며 피가 솟구쳤다.
숨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아크의 공격에 티렉스는 대항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몸부림칠 뿐이었다.
자기보다 10배나 큰 상대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것이다. 남자가 여자 앞에서 보여 줘야 하는 모습이 바로 이것! 강함! 그리고…….
덥석!
그때 티렉스가 양팔로 떨어지는 아크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팔뚝만 한 송곳니가 빼곡히 들어찬 아가리를 쩍 벌리며 달려들었다.
“아앗! 아, 아크 님!”
아크의 일방적인 전투를 지켜보던 이리나가 당혹성을 터뜨리며 황급히 검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채 검을 휘두르기도 전에 티렉스의 아가리가 닫혔다.
이에 이리나가 망연자실한 표정을 떠올릴 때였다.
“난 보기만큼 말랑한 먹잇감이 아니야.”
우적거리는 티렉스의 아가리 속에서 비웃음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티렉스의 송곳니는 아크와 불과 몇 센티미터 떨어진 곳에서 멈춰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크를 감싸고 있는 푸른 유리 막에 박혀 있었다.
이 투명한 유리 막은 바로 서바이버 스킬 마인드 실드!
중급에 도달해 대미지를 50~70%까지 줄여 주는 방어막이었다. 뭐 그래도 티렉스의 아가리에서 질겅질겅 씹히기는 마찬가지지만.
“아무거나 주워 먹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려 주지.”
아크가 씨익 웃으며 목젖이 덜렁거리는 티렉스의 아가리 속을 들여다보았다. 이퀄라이저의 검광이 부챗살처럼 펼쳐진 것은 그다음이었다.
“카프레 검술 3식, 갤럭시 소드!”
퍼펑-!
이퀄라이저에서 뿜어진 빛무리가 티렉스의 아가리 속으로 밀려들어 가는 순간,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던 티렉스의 뒷덜미가 터져 나가며 수십 개의 백색 검영이 쏟아져 나왔다.
아가리 내부를 관통하고 나온 검기의 소용돌이!
-치명타!
굳이 이런 메시지를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아가리와 뒷덜미에 터널이 만들어진 티렉스는 앞과 뒤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비틀거리다가 앞발로 아크를 부여잡은 자세 그대로 실 끊어진 인형처럼 맥없이 쓰러졌다.
힘을 잃고 축 늘어지는 앞발. 아크는 먼지를 털어내는 동작으로 앞발을 밀어내고 나오며 이리나를 돌아보았다.
“괜찮으십니까?”
비록 꼬리에 몇 번 채여 여기저기가 욱신거리지만!
티렉스의 송곳니가 마인드 실드를 뚫고 들어와 살짝 찔리는 바람에 이마에서 피가 배어 나오고 있지만!
아크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고른 치열을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다른 하나가 이것!
남자라면 강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은 기본.
거기에 하나 더 추가하자면 역시 자신의 상처보다 그녀의 안위를 걱정해 주는 자상함이 아니겠는가?
“아크 님…….”
아니나 다를까, 이리나는 부쩍 호감도가 상승한 눈빛으로 바라봐 주었다.
‘좋아, 이거야! 이번에는 이 노선으로 가는 거야!’
아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쿵! 콰지지직! 쿵! 콰지지직! 쿵! 콰지지직!
사방에서 굉음이 울리며 대기를 가득 채운 안개가 미친 듯이 요동쳤다. 그리고 수풀 위로 불쑥 불쑥 10여 개의 그림자가 연이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아크와 이리나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1마리가 아니었던 건가?”
수풀 위로 솟아오른 것은 티렉스의 머리!
티렉스 무리가 마치 아크와 이리나를 포위하듯이 둘러싸고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 숫자가 무려 11마리! 놈들이 일제히 돌진하자 사방에서 나무가 으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크 님, 저 숫자를 상대하기는 무리예요! 늦기 전에 도망쳐야 해요!”
이리나가 다급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그러나 아크는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저었다.
티렉스는 만만한 몬스터가 아니었다. 그런 놈이 2~3마리도 아니고 11마리. 확실히 여자 친구 앞에서 폼 잡겠다며 오기를 부릴 상황은 아니었다. 까딱하면 폼은커녕 티렉스의 아가리 속에서 우적우적 씹히는 비참한 꼴을 보여 주게 되리라.
그러나 아크는 물러날 수 없었다.
이리나 앞에서 꼴사나운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는 생각도 없지는 않지만, 그보다 큰 이유는 실버스타 때문이었다.
‘실버스타의 스텔스를 해제시켜 놓은 상태다. 이미 티렉스들이 몰려오고 있는 상황에서 도망가 버리면 자칫 실버스타가 놈들의 타깃이 될 수도 있어. 무방비 상태에서 저런 거대 몬스터의 공격을 받으면 아무리 실버스타라도 버티지 못할 거다.’
“……그런 거였군.”
거기까지 생각하자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왜 이런 곳에 실버스타가 스텔스 상태로 떨어져 있었는지.
‘레피드 일행도 이곳에 착륙하고 얼마 되지 않아 놈들의 공격을 받았다면? 그래도 레피드와 함께 온 대원들이라면 놈들을 상대할 수 있었겠지. 하지만 이곳에서 난전이 벌어지면 자칫 실버스타까지 피해를 받을 위험이 있다. 어쩌면 레피드는 그런 피해를 막기 위해 실버스타를 스텔스 상태로 전환시켜 두고 놈들을 다른 장소로 유인했을지도 몰라.’
그래도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레피드 일행이 먼저 이곳에 들어온 것이 나흘 전.
그사이에 S-20에서 부활한 대원이 없으니 아직 살아 있을 확률이 높았다. 다시 말해 습격해 온 티렉스를 해치웠거나, 무사히 따돌렸다는 뜻. 그런데도 티렉스가 우글거리는 위험한 장소에 지키는 사람 하나 없이 실버스타를 방치해 두고 있었다는 점은 이해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의문에 사로잡혀 있을 때가 아니었다.
방금 전에 실버스타의 스텔스를 해제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스킬이 그렇듯 다시 스텔스 기능을 사용하려면 어느 정도의 대기 시간이 필요하다. 결국 이대로 물러나면 목숨보다 소중한 실버스타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는 뜻.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
“기갑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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