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402)
아크 더 레전드-402화(402/875)
[402] SPACE 1. 설명회가 끝나고…… (2)새삼스럽지만 카야가 지저세계로 따라갔던 이유는 우연을 가장해 레피드와 만나 호감도를 올리기 위해서였다.
일단 그것만으로도 밝혀지면 쪽팔린 일이다. 그런데 한술 더 떠 안개 숲에서 나흘이나 헤매다가 겨우 겨우 노스페라트에 도착했을 때는 모든 일이 끝나 있었다. 덕분에 카야는 레피드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도 못했던 것이다.
쪽팔린다! 다시 생각해도 엄청 쪽팔린다!
‘젠장! 됐어! 그딴 자식! 이제 됐어!’
사실 이때, 그러니까 노스페라트에서 닭 쫓던 개 신세가 됐을 때 카야는 울컥한 마음에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어디, 얼마나 잘난 놈인지 봐주지.’
카야가 이번 설명회에 참석한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그리고 현실에서 처음 확인한 아란의 모습은…… 실망스러웠다.
얼굴은 게임 속의 레피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문제는 아란의 걸음걸이였다.
레피드와 달리 아란은 한쪽 다리를 절고 있었다.
아란은 부단한 노력으로 게임 속에서는 이제 정상인과 다름없이 움직일 수 있게 되어 카야는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장애에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남자가 사실은 장애인이었다는 사실은 여자로서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설명회가 진행되는 사이 그녀의 생각이 바뀌었다.
‘이러쿵저러쿵해 봐야 게임 속의 혹성 투자 설명회다. 뭐 대단할 게 있겠어?’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후 진행된 설명회는 대기업의 회의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훌륭했다. 그리고 결국 20억이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투자금을 확보한 것이다.
카야는 알고 있었다.
이번 투자 펀드는 설계부터 설명회까지 모두 아란이 진행해 온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아란은 20억의 투자 자금을 확보해 능력을 입증한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카야에게 더 이상 아란의 장애 따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역시 내 눈이 정확했어!’
그와 함께 진로도 다시 180도로 선회!
‘저런 남자는 흔치 않아! 그래, 한 번 실패로 포기하기에는 아깝지. 뭣보다 얼굴이 내 타입이잖아! 어차피 내가 지저세계까지 따라갔던 일은 아란도 모르니까 그냥 넘어가자. 그리고 다시 기회를 봐서 꼬시는 거야!’
그런 생각을 하던 참에 현우의 회식 얘기를 들었다.
카야가 얼른 끼어든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회식 자리라면 당연히 술도 있을 터! 그리고 술은 예로부터 큐피트의 화신이라고 불리는 존재가 아니던가!
‘……잘만 하면!’
그런데 퍼거슨과 A, B가 알은척을 한다.
카야에게는 이 녀석들이 어떻게 알게 됐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알려지면 쪽팔린다. 입을 봉해 놓는 수밖에 없다. 카야에게는 그게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퍼거슨과 A, B의 입을 봉해 놓고 돌아왔다.
“회식? 속편한 소리 하고 자빠졌네.”
……그러는 사이에 상황은 이미 마무리되고 있었다.
“투자자 정리하고, 입금 확인되면 지분 설정 서류 보내고, 공증에, 관련 서류 작성에, 할 일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그런데 너 같으면 삼겹살인지 뭔지가 목구멍에 넘어가겠냐?”
“저도 오늘은 안 될 것 같아요.”
아란의 말에 조민선도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게임 얘기라서 좀 뭐하지만, 얼마 전에 은하연방에서 특별 임무를 맡게 돼서 오늘 오후에 출발하기로 예정되어 있거든요. 늦어지면 곤란한 일이라 시간 맞춰 가 봐야 해요.”
“그보다 너, 그건 확인해 봤냐?”
아란이 현우를 돌아보며 물었다.
“어? 아니, 그건…… 시간 맞춰 나오느라 아직…….”
“젠장, 하여간 일 처리 하고는. 그런 주제에 무슨 회식 타령이야? 너! 정말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기는 하냐? 너도 설명회에 참석했으니 투자자들의 질문을 들었을 거 아니야? 만의 하나라도 그들의 걱정처럼 개발을 시작한 뒤에 다시 그런 일이 벌어지면 상황이 어떤 식으로 꼬일지 상상이 안 돼? 회식이니 뭐니 하는 헛소리하지 말고 당장 돌아가서 그 문제부터 확인해!”
“쳇, 누가 사장인지…….”
“네가 제대로 안 하니까 이러는 거잖아!”
“알았어! 알았다고! 가면 되잖아!”
현우가 주둥이를 삐죽거리며 투덜거렸다.
……회식은 안 하는 방향으로 분위기가 정리된 것이다.
그리고 아란은 먼저 횅하니 가 버리고, 다음은 조민선. 현우는 그녀를 바래다주겠다며 허둥지둥 뒤따라 사라졌다.
이제 남은 사람은 카야와 퍼거슨, A, B.
“저기…… 저희는 특별히 할 일이 없는데요…… 그러니까…….”
“시간 많으면 니들끼리 삼겹살을 처먹든지 말든지! 젠장, 왜 이리 되는 일이 없어?”
A의 말에 카야가 짜증 만땅의 목소리로 버럭 소리치며 가 버렸다. 그러자 퍼거슨이 울컥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저 계집애는 또 왜 저래? 정말 오냐오냐해 줬더니 우리가 동네북으로 보이나? 나이도 딱히 우리보다 많아 보이지도 않는데, 어따 대고 반말에 성질이야? 성질 같아서는 확!”
“형님, 카야 님께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세요!”
“뭐? 카야 님?”
퍼거슨이 눈살을 찌푸리며 돌아보았다. 그러자 의기소침한 표정을 짓고 있던 A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아까 카야 님이 우리를 부둥켜안았잖아요. 저…… 실은 여자에게 안겨 본 적은 처음이에요. 그러니까…… 아니, 그래서는 아니지만…… 카야 님께 나쁜 말을 하지 말아 주세요. 카야 님은 저의…… 첫 경험 상대라고요.”
뭐랄까, 할 말을 잃어버린 퍼거슨과 B였다.
* * *
-……나쿠마라고?
아크의 비밀 아지트 엘림의 성소.
단상 위에 빛의 형태로 떠 있는 토트가 낮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네,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이게 레피드가 알아보라고 했던 ‘그것’이었다.
그리고 원래 설명회에 참석하기 전에 아크가 토트를 찾아왔던 이유 역시 이것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불가사의한 현상을 일으켰던 에이션트 나쿠마!
물론 그 문제는 이미 해결된 일이기는 했다. 그러나 에이션트 나쿠마에 관한 내용은 여전히 많은 부분이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에이션트 나쿠마의 정체가 뭔지, 누가 무슨 목적으로 이큘러스에 봉인시켜 놓았는지, 왜 봉인이 깨졌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비슷한 사건이 재발할 위험은 없는지!’
아크가 가장 걱정하는 게 바로 이 부분이었다.
나쿠마가 평범한 몬스터였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나쿠마는 일종의 영혼 생명체. 원래 실체가 없는 놈이니 당장 눈앞에서 사라졌다고 안심할 수 없는 것이다.
만의 하나라도 놈이 부활한다면, 그로 인해 이큘러스가 또다시 사라지는 사건이라도 벌어진다면, 이미 투자자를 모아 20억의 투자까지 받은 아크로서는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 걱정을 하는 것은 아크만이 아니었다.
-얼마 전 게임특종에서 이큘러스가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장면이 방송된 적이 있습니다. 설혹 문제가 있었다고 해도 해결됐으니 다시 나타난 것이겠지만, 투자자 입장에서는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대체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 만의 하나라도 같은 일이 재발했을 때 금전적인 손실은 없을 지에 대해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설명회에서 가장 많이 나온 질문이었다.
사실 이때 아크는 엄청 당황했었다. 아크는 이리나에게 듣기 전까지 이큘러스 실종 사건이 게임특종으로 방송됐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투자자들도 모르고 있으리라 생각했고, 그에 대한 답변도 준비해 두지 못했다.
문제를 해결한 것은 레피드였다.
-그 부분에 대해서 저희가 드릴 수 있는 답변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그 문제는 이제 완전히 해결되었다는 점. 그리고 둘째는, 그럴 일은 없지만 만의 하나라도 같은 일이 발생해 투자자에게 손실이 생긴다면 100% 저희 측에서 책임지겠다는 약속입니다. 당연히 그 부분에 대한 내용도 공증 서류에 첨부될 것입니다.
덕분에 위기를 넘겼지만.
투자금을 모은 것으로 만사 OK가 아니다.
‘나쿠마의 정체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는 한 불안은 여전히 남아 있다.’
물론 은하연방에서도 이번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이큘러스에 연구소를 세울 계획이다.
그러나 아크는 당장 20억을 쏟아부어 개발을 진행시켜야 하는 입장. 연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릴 입장이 아닌 것이다.
‘마틴 후작은 나쿠마가 있던 지하공간의 입구를 봉인하고 있던 석판에 새겨져 있는 기호가 고대 종족의 언어라고 했어. 그리고 토트는 무라트가 번성하던 수천 년 전에 이미 엘림의 스승으로 불리던 존재. 어쩌면 나쿠마나 석판에 대해 알고 있을지도 몰라.’
이건 이큘러스를 나올 때부터 하고 있던 생각이다.
그리고 투자 설명회를 열기 전에 확인했어야 하는 일이지만 설마 다른 유저가 알게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고, 이큘러스에서 돌아오자마자 지저세계로 가는 바람에 늦어진 것이다.
토트의 대답이 들려온 것은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였다.
-나쿠마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른다.
실망스러운 대답이었다.
그러나 뒤이어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 이어졌다.
-그래, 내가 아는 것은 나쿠마가 카르마와 연관이 있다는 것뿐이다.
“에? 카르마? 카르마라면?”
과거 은하계를 지배하던 4대 천족이 몰락하는 계기가 된 미지의 종족이다.
“카르마와 나쿠마가 관련이 있다니? 나쿠마를 만든 것이 카르마라는 말입니까?”
-거기까지는 나도 알지 못한다. 다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카르마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이 은하계의 어디에도 나쿠마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쿠마라는 존재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카르마가 등장한 이후. 카르마에게 침략당한 혹성에서부터 발생하기 시작해 마치 전염병처럼 은하계 전역에서 나타나기 시작했지. 그러니 카르마와 관련이 있다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지만…….
“없지만?”
-그게 카르마의 의도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어째서요? 카르마가 나타나면서부터 나쿠마도 나타나기 시작했다면 뻔하잖아요.”
-발생 시기를 생각하면 그렇지. 그리고 실제로 여러 혹성에서 갑자기 나쿠마가 발생해 4대 천족을 주축으로 하는 은하연합은 적지 않은 타격을 입기도 했다. 심할 때는 한 혹성에 수만 마리의 나쿠마가 나타나 통제 불능 상태에 빠져 격리되기도 했지. 하지만 그건 카르마도 마찬가지였다. 나쿠마는 은하연합과 카르마를 가리지 않고 공격했으니까. 실제로 카르마 역시 점령한 혹성에서 엄청난 숫자의 나쿠마가 발생하는 바람에 포기하는 일도 있었다. 카르마도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었다고 봐야겠지.
일이 점점 이상하게 돌아간다.
그때 아크의 머릿속에 문득 의문이 떠올랐다.
새삼스럽지만 4대 천족과 카르마는 현재의 은하 3국과 동등, 아니, 그 이상의 과학문명을 가지고 있던 종족이었다.
그런 종족들이 나쿠마 따위에 ‘타격’이라는 단어를 써야 할 정도로 곤란해졌다는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현재 은하계에도 나쿠마가 발생하는 혹성이 적지 않지만 통제 불능 상태까지 되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는 것이다.
-그건 당시의 나쿠마가 대부분 봉인되었기 때문이다.
“봉인?”
아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발생 초기에 은하계 전역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나쿠마는 4대 천족도 감당하기 힘든 존재였다. 정체를 모르니 대항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지만, 실제로 나쿠마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뭣보다 혹성을 통째로 삼켜 버리는 존재였으니까.
혹성을 통째로 삼킨다.
이큘러스에서 일어났던 사건이었다.
-그런 상황의 해결 방법을 4대 천족보다 먼저 찾아낸 것이 카르마였다.
나쿠마는 한번 발생하기 시작하면 죽여도 죽여도 계속 부활한다. 뿐만 아니라 숫자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게 4대 천족이 나쿠마 발생 혹성을 격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카르마는 그 증식을 막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밝혀진 바에 의하면 나쿠마가 구성하는 기계 몸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본체는 그 기계 몸속에 담겨 있는 일종의 영체. 말하자면 유령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지. 나쿠마가 끝없이 부활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이에 카르마는 ‘어떤 것’을 이용해 영체를 흡수하는 장치를 만들었다. 기계 몸이 파괴되어 영체 상태로 돌아간 나쿠마를 흡수하는 장치였지. 그리고 해당 혹성의 나쿠마를 모두 흡수시킨 뒤에 봉인시키는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그럼 혹시 이게?”
아크가 님프 위로 영상을 떠올렸다.
기하학적인 기호가 새겨진 석판에 균열이 번져 있는 영상이었다. 이큘러스에서 찾아낸, 에이션트 나쿠마가 봉인되어 있던 동굴을 막고 있던 석판이었다.
-오! 맞다. 그 석판에 새겨져 있는 것은 카르마가 사용하는 문자다. 나도 그 문자를 해독하지는 못하지만 분명 카르마가 나쿠마를 봉인할 때 사용하던 석판이 분명하다. 그런데 어째서 깨져 있는 거지? 이 석판은 카르마가 사용하던 특수한 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4대 천족조차 쉽게 부술 수 없었지. 뿐만 아니라 카르마가 물러간 이후 만일을 대비해 4대 천족은 각자의 힘을 이용해 봉인에 결계를 더하고 지하 깊은 곳에 묻어 두었는데?
그게 비문秘紋이라고 불리는 봉인이 땅 속에 묻혀 있었던 이유였다. 그리고 이큘러스보다 앞서 발견된 라젠카의 비문을 아슐라트도 부수지 못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과거 은하계의 패권을 다투던 카르마와 4대 천족의 결계로 겹겹이 보호되는 봉인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큘러스의 봉인은 깨져 있었다.
사실 아크가 가장 찜찜해하는 부분이 이것이었다.
토트의 말에 의하면 봉인은 적어도 자연적으로 깨질 만한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지하 깊은 곳에 묻혀 있었다. 그런데 땅이 파헤쳐지고 봉인은 깨져 있었다.
‘내가 너무 과민한 것일 수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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