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411)
아크 더 레전드-411화(411/875)
[411] SPACE 4. 그 남자! (2)“대체 내가 왜 여기 앉아 있는 건지…….”
한숨 섞인 목소리로 웅얼거리는 사람은 다름 아닌 아크.
내정파와 군부파의 냉랭한 분위기에 아크는 본 회의에서도 치열한 정전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김빠진 콜라 같은 상황의 연속이었다.
이유는 몇 가지가 있었다.
“다음 의제는 타투인의 도로 증축에 관한 내용입니다. 현재 타투인은 부쩍 많은 개척자들이 모여들어 현재의 도로로는 혼잡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에 도로교통부에서는 도로를 증축하고 인파가 몰리는 시간대의 대중교통 수단을 추가 배치하는 방안을…….”
일단 의제부터가 관심사 밖의 내용이었다.
가뭄에 콩 나듯 들리는 타투인의 교통사정 따위 아크가 무슨 상관인가?
그리고 아크가 관심을 갖든 말든 상관도 없었다.
“나는 찬성이오.”
마틴 후작이 대답하면 그것으로 끝.
뒤이어 군부파 귀족들이 줄지어 찬성표를 던졌고, 내정파 귀족들은 침묵했다.
정적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한마디 불평이라도 할 만하지만, 내정파 귀족은 물론 쥬벨 후작까지 누구 하나 나서서 따지지 않았다. 회의 전의 대치 상황에서 본 것처럼 현재 내정파는 군부파의 위세에 주눅이 들어 있는 것이다.
회의는 마틴 후작의 독무대!
대부분의 안건을 혼자 결정하는 양상이 이어졌다.
그때마다 똥 씹은 표정이 되는 쥬벨 후작을 보는 것도 나름 즐거운 일이었지만, 같은 상황이 여러 번 반복되니 슬슬 무료해지기 시작했다.
뭐 마틴 후작이야 권력을 마음껏 뽐내고 있으니 즐거울지도 모르지만 아크는 좀이 쑤셔 죽을 지경이었다.
마치 예비군 훈련을 나와 있는 기분이랄까?
관심도 없는 회의. 게다가 아크는 있어도 없어도 그만.
그런 자리에 앉아 있으니 그냥 시간을 버리고 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아크는 생각했다. 그냥 시간을 죽이느니 차라리 조금이라도 생산적인 일을 하자고.
그리하여…….
꾸물꾸물, 철컥!
-해킹으로 보안 장치를 해제했습니다!
《아쉽게도 보안 장치로 보호되는 회로 속에 쓸모 있는 정보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인베이더의 학습 프로그램에 의해 숙련도가 상승했습니다. 해킹 숙련도 +1》
꾸물꾸물, 철컥!
-해킹으로 보안 장치를 해제했습니다!
《아쉽게도 보안 장치로 보호되는 회로 속에 쓸모 있는 정보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인베이더의 학습 프로그램에 의해 숙련도가 상승했습니다. 해킹 숙련도 +1》
예비군 훈련장에 가면 꽤 보인다.
앞에서 강사나 조교가 뭐라고 떠들어 대든 핸드폰 게임에나 열중하는 사람을.
……아크도 그러고 있었다.
테이블 밑에서 꾸물거리며 항상 챙겨 다니는 잡템 회로를 꺼내 님프에 연결해 해킹 숙련도를 올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 봤자 한 번에 1이지만. 그나마 할 일이라도 있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이 지겨운 회의에 매달 참석해야 한다니, 귀족도 쉬운 일이 아니군. 그래도 모처럼 얻은 작위를 포기할 수는 없으니 다음부터는 회의에 참석할 때 시간 때울 일거리를 미리 생각해 둬야겠어.’
아크가 그런 건설적인(?)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돌연 회의장에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창 해킹에 열중하던 아크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어 올리자 내내 침묵을 지키던 쥬벨 후작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알 리가 없는 아크가 두리번거리자 바로 옆에 앉아 있는 마틴 후작이 슬쩍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무슨 의미입니까?”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이해할 수가 없군요. 본래 이스타나의 치안은 내무부 관할입니다. 그리고 이번 사건은 이스타나에서 일어난 일이고요. 당연히 내무부에서 처리해야 하는 사건 아닙니까?”
“그것도 정도에 따라 다릅니다.”
쥬벨 후작이 전면의 모니터를 가리켰다.
“보십시오. 지금 저 산업 단지를 점거하고 있는 무리는 100명 이상의 무장 집단입니다. 내무부가 이스타나 내에서 벌어지는 범죄를 담당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만한 무장 집단이라면 이미 범죄가 아닌 군사행동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군부가 나서야 하는 일 아닙니까?”
‘산업 단지를 점거한 무장 집단?’
아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모니터 안에서는 좀 전부터 같은 장면이 반복해서 재생되고 있었다.
웬만한 도시와 맞먹는. 아니, 실제로 거대한 공장을 둘러싸고 마을까지 형성되어 있는 산업 단지의 여기저기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시설 중간중간에 보이는 병사들. 아마도 쥬벨 후작이 말한 무장 집단은 그들을 지칭하는 것이리라.
여기까지는 대충 무슨 일인지 이해된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쥬벨과 마틴 후작의 반응이다. 설핏 보기에도 무장 집단은 100여 명에 달하는 숫자였다.
그러나 연방정부 입장에서 보면 ‘고작’.
작정하고 나서면 100명이든 1,000명이든 토벌은 문제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고작’ 그런 일을 두 후작이 서로 핏대를 올리며 미루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의외로 답은 간단했다.
“억지를 부리시는군.”
“억지? 내가 말이오? 내가 보기에는 마틴 후작님이 억지를 부리는 것처럼 보이는데? 잘 생각해 보시오. 몇 달 전에 S-20이 무장 집단의 공격을 받을 때 직접 병력을 투입해 섬멸한 것은 마틴 후작님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이스타나 내에서 일어난 사건이니 내무부가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 억지가 아니면 뭡니까?”
“그때는 군사훈련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군부가 나서서 진압한 것은 사실이지요.”
“그건…….”
“우리 솔직해집시다.”
쥬벨 후작이 도전적인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저 산업 단지의 시민들은 무장 집단에 동조하고 있습니다. 무력 진압을 시도하면 필연적으로 시민들에게서도 사상자가 나올 터. 그로 인해 비난을 받을 것이 부담되어 이번 사건을 내무부에게 떠밀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본질을 흐리지 마십시오.”
마틴 후작이 불쾌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지금 논하고 있는 것은 이런 범죄를 관할하는 곳이 어디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런 기본적인 사항을 설명할 필요도 느끼지 못하겠지만 군부란 외적을 막기 위한 조직입니다. 국내에서 산업 단지를 점거하는 범죄자를 상대하기 위한 조직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무장 집단이 외적이 아니라는 증거도 없지요. 그리고 S-20을 습격했던 범죄자들 역시 외적이 아니라는 증거도 없었고요. 그래서 그때도 내무부가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겁니다.”
‘저 자식은 왜 자꾸 S-20을 걸고넘어져?’
아크가 울컥한 눈으로 쥬벨 후작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일단 쥬벨과 마틴 후작의 대화로 돌아가는 상황은 파악할 수 있었다.
무장 집단이 점거한 산업 단지에는 상당수의 민간인이 있는 모양이다. 게다가 더 골치 아픈 것은 그 민간인들이 무장 집단을 돕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무력 진압을 시도하면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할 확률이 높았다.
골치 아픈 점은 또 있었다.
지금 회의장 모니터에서 나오는 영상을 보낸 사람은 다름 아닌 무장 집단이었다. 그리고 이 영상을 본 사람은 이곳에 모인 귀족들만이 아니었다.
무장 집단은 산업 단지의 고출력 안테나를 이용해 이런 영상을 이스타나 전역에 마구잡이로 송출했다고 한다. 이미 상당수의 국민이 이 영상을 봤다는 말이다.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한 짓이라면 상당히 영악한 놈들이야.’
쥬벨과 마틴 후작이 난감해하는 이유가 그것이었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일이라면 설사 민간인 사상자가 나와도 쉬쉬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이미 상당수의 국민이 알고 있다. 그러니 자칫 진압 작전을 맡았다가 실수라도 하면 여론의 뭇매를 맞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방치할 수도 없는 일!
이에 아크는…….
‘뭐 어쨌든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니까.’
어차피 이건 쥬벨과 마틴 후작의 싸움이다.
아크가 나선다고 뭔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고 알지도 못하는 곳에서 알지도 못하는 무장 집단의 일 따위는 관심도 없었다.
그래서 다시 해킹 작업에 몰두하려 할 때였다.
‘응? 뭐야? 저 남자는?’
모니터에 돌연 한 남자의 영상이 클로즈업되었다.
두꺼운 파이프가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 건물 최상층에서 이마에 ‘결사! 투쟁!’이라고 적힌 머리띠를 두른 모습으로 목에 핏대를 세우며 뭐라고 떠들어 대는 중년남자.
‘이, 이 사람은 설마?’
“말도 안 돼!”
그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아크는 자기도 모르게 펄쩍 뛰어 일어나며 소리쳤다.
그런 아크의 돌발행동에 웅성거리던 회의장이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동시에 100여 쌍의 눈동자가 아크에게 집중되었다. 그제야 아차 싶었지만 이미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앉을 수는 없는 분위기였다. 이에 아크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을 때였다.
“아크 남작, 뭔가 할 말이 있소?”
의장이 고개를 돌리며 질문한 것은 그다음이었다.
순간 아크의 머릿속에서는 수만 가지의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잠시 후, 한숨을 푹푹 불어 내던 아크는 각오를 굳힌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 사건, 제가 맡겠습니다!”
“아크!”
마틴 후작이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아크를 돌아보며 뭐라 입을 열려 할 때였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표결에 부칠 필요도 없겠군요. 아크 남작은 벨린 성좌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전쟁 영웅. 아크 남작이 맡아 준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번 안건은 의장의 권한으로 아크 남작의 요청을 존중해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의장이 얼른 의사봉을 내리치며 말했다.
쥬벨과 마틴 후작의 말싸움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눈치만 살피다가 아크가 나서자 이때다 싶어 잽싸게 결말을 지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무장 집단 진압!(의회 퀘스트)》
당신은 남작 신분으로 귀족 평의회에 참석했다가 뜻밖의 사건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스타나에 있는 산업 단지가 정체불명의 무장 집단에 점거된 사건입니다.
어찌 보면 간단한 사건이지만 문제는 산업 단지에서 생활하는 민간인들이 무슨 이유인지 무장 집단을 옹호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에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할 위험이 있어 내무부와 군부는 서로 진압을 미루는 상황이었습니다.
만일 이 사건을 해결한다면 이후 평의회에서의 입지는 몰라보게 달라지겠지만 실패한다면 당신의 명예는 크게 실추되고 귀족들도 등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국민의 비난을 받는 사람과 친해지고 싶은 귀족은 없으니까요.
※난이도 : ???
떠오르는 퀘스트 창!
이제 빼도 박도 못하게 되었다.
* * *
“도대체가…….”
마틴 후작이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와락 몸을 돌리며 소리쳤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해 버린 거냐!”
“그게…… 죄송합니다.”
아크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크로서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마틴 후작의 화를 가라앉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마틴 후작 역시 좀처럼 보기 힘들 정도로 화가 나 있는 것이다.
“누가 그런 말을 듣고 싶다고 했나?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너는 이제 반론의 여지도 없는 군부파의 귀족이다! 아니, 그 이상이지! 전쟁 영웅으로 귀족이 되었으니! 어떤 의미로는 군부파의 얼굴과도 같은 존재란 말이다! 그런 네가 이따위 사건을 맡아서 어쩌겠다는 거냐? 만의 하나 수십 명의 민간인 사상자가 나오면 어찌될지 생각이나 해 본 거냐? 대체 무슨 생각이냐? 누가 등을 떠민 것도 아니지 않나? 그런데 왜 네가 느닷없이 나서는 거냔 말이다! 하다못해 이유라도 설명하란 말이다!”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뭐야?”
마틴 후작이 발끈한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한숨을 불며 고개를 저었다.
“좋아. 됐다. 이제 와서 왜 그런 것인지 따져 봤자 소용없지. 그러니 질문을 바꾸지. 이번 사건을 해결할 자신은 있는 거냐?”
“아마도…….”
“아마도? 장난하냐!”
“후작님, 진정하십시오.”
끼어든 사람은 페이, 마틴 후작 직속 특무대장이었다.
“이 녀석은 저보다 후작님이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적어도 생각 없이 일을 만들 녀석은 아닙니다. 왜 이유를 밝히지 못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을 맡았을 때는 그만한 자신이 있다는 뜻일 겁니다.”
“그렇겠지. 아니! 그, 래, 야, 한, 다!”
마틴 후작이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아크를 노려보며 말했다.
“생각 같아서는 네가 벌인 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네가 알아서 하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미 이 사건은 너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니 일단 지원은 해 주지. 페이, 특무대원 100명을 뽑아 아크와 동행하라. 그리고 아크. 똑똑히 들어라. 만약 이번 사건으로 인해 군부의 명예가 실추되는 일이 발생한다면 너라도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네.”
아크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나 사실 아크도 속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정말이지 아크도 이딴 사건에 끼어들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성공한다고 딱히 대단한 보상이 있어 보이지도 않고, 실패하면 부담만 잔뜩 떠안아야 하는 퀘스트다.
마틴 후작의 말대로 누가 등을 떠민 것도 아닌데 뭐 하러 이딴 퀘스트를 자청하겠는가?
그러나 아크는 못 본 척할 수 없었다.
-진정한 자유란 평등에서 시작되는 것! 겉모습이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종족을 핍박하는 것은 문명인으로서 실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은하연방은 불법적인 노예 제도를 묵과하고 있다! 이런 사회에 무슨 정의가 있을 수 있겠는가! 이에 나는 단호한 투쟁을 선언한다! 우리의 적은 은하연방이 아니다! 우리의 적은 종족 차별 그 자체! 은하연방의 모든 국민에게 우리의 외침이 닿을 때까지 맞서 싸우겠다! 정의를 위해! 그것이 우리의 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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