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412)
아크 더 레전드-412화(412/875)
[412] SPACE 4. 그 남자! (3)모니터에 얼굴이 이따만하게 클로즈업 된 남자가 떠들어대던 이런 웃기지도 않는 말에 공감해서가 아니다.
문제는 그 말을 떠들어 대는 남자.
‘바보 아버지!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아크는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생김새도 생김새지만, 이런 낯 뜨거운 대사를 이렇게 진지하게 떠들어 대는 사람이 그 외에 있을 리가 없다. ‘결사! 투쟁!’이라고 적힌 머리띠를 두르고 소리치는 사람은 정의남!
……아버지였다.
* * *
“준비는?”
“다 됐습니다!”
“단지를 점거하고 성명을 발표한 지 사흘이 지났다. 일 처리가 굼벵이 같은 정부라도 이제 곧 뭔가 액션을 취할 때가 되었다. 그리고 액션을 취한다면 십중팔구 무력 진압. 그러니 주요 포인트를 다시 한 번 점검하고 경계망을 빈틈없이 관리해라.”
서류 따위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방.
책상 위에서 양반 다리를 하고 앉아 지시하는 남자의 이마에는 ‘결사! 투쟁!’이라는 머리띠가 질끈 동여매져 있었다. 이 사내가 바로 산업 단지를 점거한 무장 집단의 대장이었다.
그의 이름은 정의남. 불행히도(?) 아크의 아버지였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앞에서 대답하는 남자는 레인.
정의남이 오기 전까지 정부의 특별 대책팀 루시퍼 헌팅의 국정원 요원, 150명의 리더를 맡고 있던 사내였다. 국
정원 요원이라고 해도 갤럭시안에서는 이들 역시 평범한 유저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정의남에게 휘말려 지금은 테러리스트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다! 불행히도!
레인과 국정원 요원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젠장! 이게 뭐야? 우리가 왜 이런 짓을 해야 하는데?
-저 인간, 제정신이야? 게임 속에서 인권은 무슨 얼어 죽을 인권이야?
-이건 말도 안 돼! 상부에 보고하겠어!
당연히 불만도 장난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사흘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우우! 우리가 어리석었어!
-삶이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 그런 소중한 삶을 지키는 것이 정의다!
-그래, 정의란 상황에 따라, 입장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야. 때에 따라 변하면 그건 이미 정의가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정의는 관철시켜야 하는 것!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정의를 지키는 것은 내 자신의 의지를 지키는 것!
-생각해 보면 우리가 국정원 요원이 된 것도 정의를 위해서였지. 그래, 처음 요원이 됐을 때만 해도 국가와 국민을 지키겠다는 포부가 있었어. 하지만 현실은 정치인들의 사리사욕에 이용되고 있을 뿐이야. 분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하지만 나도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어! 여기서라도! 여기서라도 바뀌겠어!
-오오! 영혼이 정화되는 기분이야!
-정의! 정의!
지난 사흘.
장장 72시간 동안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 정의남으로부터 ‘정의학개론’, ‘나의 정의’, ‘정의의 길과 사나이의 길’, ‘우리들의 정의’ 등등의 강의를 들은 결과였다.
말하자면…… 세뇌당해 버린 것이다!
물론 정의남은 세뇌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안타깝게 세상의 때에 물들어 버린 대원들을 깨우쳐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의남의 무서운 점이 바로 이것!
스스로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정의를 맹신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말이 불과 사흘 만에 150명을 세뇌시킬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가 그것이었다.
아니, 국정원 요원들만이 아니었다.
“산업 단지의 주민들이 우리의 뜻에 동조해 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덕분에 여론의 관심을 집중시켜 정부를 압박하기 쉬워졌지.”
정의남의 강의를 들은 산업 단지의 주민들까지 세뇌되어 버린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정의남도 산업 단지를 점거하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의뢰주는 악덕 사장이었다. 감언이설로 꼬드겨 산업 단지로 이주시켜 놓고는 갖은 핑계로 최저임금도 주지 않고, 다쳐도 산업 재해로 인정해 주지 않는 짓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근로자들에게 정의남의 ‘정의론’은 놀라운 파급력을 발휘한 것이다. 심지어 아예 정의남의 부대에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
“하지만 민간인까지 위험에 끌어들일 수는 없다. 정부 측도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하기를 바라지는 않겠지만 전투가 벌어지면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 그러니 만약 놈들이 무력 진압을 시도하면 가장 먼저 주민들을 안전지대로 이동시키는 작전부터 진행한다.”
“지시해 놓겠습니다!”
레인이 경례를 붙이며 물러났다.
-괜찮겠나? 괜히 우리 때문에 자네들까지…….
정의남의 옆에서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던 스머프처럼 생긴 노인이 입을 연 것은 그때였다.
이 파파 스머프처럼 생긴 외계인은 본래 이스타나의 원주민인 마우리족의 족장이다. 그리고 정의남이 산업 단지를 점거하게 된 원인이기도 했다.
원래 정의남과 요원들은 산업 단지 사장의 의뢰로 이곳에 오게 되었다.
공장을 습격하는 몬스터를 퇴치해 달라는 의뢰였다.
그러나 막상 사정을 알고 보니 얘기가 달라졌다. 진실은 원래 마우리족이 살고 있는 땅에 사장이 멋대로 산업 단지를 세워 자연을 훼손시키고 마우리족의 터전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 심지어 사장은 이들이 시민권이 없는 종족이라는 점을 이용해 잡아다 노예로 부리기까지 하고 있었다.
《공장을 습격하는 몬스터 본거지 소탕》 퀘스트에 분기가 발생했습니다!
진실을 알고 나자 분기가 발생했다.
그러나 정의남에게 퀘스트 분기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정의는 그딴 것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니까!
그래서 해 버렸다.
비열한 사장의 만행을 만천하에 알리기 위해서! 노예로 잡혀 온 마우리족을 구하기 위해서! 병력을 돌려 산업 단지를 점거해 버린 것이다.
덕분에 정의남과 요원들은 범죄자로 전락해 버렸지만.
“신경 쓰지 마십시오. 이건 마우리족 때문이 아닙니다. 마우리족은 피해자. 우리가 어려움에 처하게 된 원인이 있다면 그건 비열한 사장 탓입니다. 그리고 저는 기필코 그 사장이라는 놈에게 대가를 받아 낼 것입니다!”
-자네…….
파파 스머프가 눈물을 글썽였다.
-인간들이 이스타나에 온 뒤로 우리는 언제나 도망자 신세였네. 인간들이 올 때마다 어린 아이를 들쳐 업고 끝없이…… 끝없이 도망치며 살아야 했지. 그런데 설마 인간에게 그런 말을 듣는 날이 오게 될 줄이야. 나는…… 나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네.
“살아야지요!”
정의남이 파파 스머프의 어깨를 움켜쥐며 말했다.
“당신들은 이미 충분히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 끝이 허망한 죽음이라면 정의도 죽는 것! 그런 것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설사 우리가 모두 이 자리에서 죽는다 해도 당신들만큼은 기필코 살려 내고 말겠습니다!”
“대장님!”
그때 다시 레인이 뛰어 들어왔다.
“조금 전에 연방의 비행정이 단지 앞에 도착했습니다!”
“드디어 움직인 건가?”
정의남이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경계탑으로 이용하는 공장 최상층으로 올라가 보니 단지 맞은편에 착륙하는 비행정이 눈에 들어왔다. 뒤이어 비행정에서 줄지어 나오는 병사들까지.
“어디 어떤 놈들인지 한번 볼까?”
정의남은 레인에게 망원경을 받아 들고 적지를 살폈다.
적의 숫자는 대략 100명 전후, 무장도를 보니 상당한 수준의 정예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적의 편성을 꼼꼼히 살펴보던 정의남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에? 뭐야? 저 녀석은…….”
비행정 앞에서 병사들에게 뭔가를 지시하는 사내.
정의남은 한눈에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아크?”
……아들이었다.
* SPACE 5. 아버지 VS 아들 (1)
아크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300여 미터가량 떨어진 곳에 병사들이 모여 있었다.
마틴 후작이 지원해 준 특무대원들이었다. 그리고 부대장으로 따라붙은 사람은 페이.
“쳇, 내가 왜 이런 귀찮은 일을…….”
마틴 후작의 지시를 받고 나올 때 페이는 이런 말로 구시렁거렸다. 그러나 얼굴에는 기뻐하는 티가 역력했다.
아크도 나쁘지는 않았다.
이큘러스에서는 서로 불편한―페이가 일방적으로 미워했던 것이지만― 사이였지만 화해했고, 페이도 나름의 방식으로 아크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게임을 하다 보면 가끔 그런 NPC와 재회하는 것도 나름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지금 아크는 페이와의 재회를 즐거워할 만한 기분이 아니었다.
‘이 정도면 거리는 충분하군.’
특무대를 돌아보던 아크가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잔뜩 짜증난 눈으로 한 사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버지.”
“여어! 아크, 잘 지내냐?”
히죽 웃으며 손을 흔드는 사람은 정의남!
특무대와 함께 산업 단지로 온 아크는 바로 테러리스트 일당에게 전언을 보냈다.
일단 만나서 대화로 풀어 보자고.
그러자 바로 답장이 왔다. 당연하다. 전언의 발신자에 아크라고 적어 놓았으니까. 그리하여 지금, 산업 단지를 점거한 테러리스트와 특무대가 500~600미터 거리를 두고 대치하는 중간 지점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대면하게 된 것이다.
테러리스트의 대장과 토벌대의 대장으로!
“뭐가 ‘여어, 잘 지내냐?’예요? 대체 생각이 있는 거예요? 없는 거예요? 갤럭시안을 시작한다더니 느닷없이 테러리스트? 장난해요? 같이 있는 병사들은 일전에 명룡이 형이 말했던 국정원 요원들 맞죠? 공무원들을 데리고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정의다!”
“에? 정의?”
“그래, 내 누누이 말했지만 사나이의 가치는 정의에 있는 법. 나는 지금 그 정의를 관철시키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거다. 어때? 아버지가 자랑스럽지 않냐?”
“자랑은 무슨 얼어 죽을! 테러가 자랑이에요?”
“테러가 아니라잖아!”
“멀쩡한 남의 공장을 점거한 게 테러가 아니면 뭔데요?”
“멀쩡한 남의 공장이 아니다! 돈에 눈이 멀어 힘없고 약한 사람들의 고혈을 쥐어짜는 악덕 사장의 본거지! 따라서 이건 점거가 아니라 해방이다! 정의의 철퇴다!”
“그러니까! 그런 걸 테러라고 하는 거라고요!”
“몇 번을 말해? 정의라니까!”
“나잇살이나 먹어 가지고 정의, 정의, 정의만 붙이면 뭐든 OK가 아니라고요! 엄마는? 엄마는 아버지가 이런 짓을 하고 다니는 거 알고 있어요?”
“왜 여기서 엄마 얘기가 나와?”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래요. 아무리 그래도 상식이라는 게 있잖아요.”
“내 상식은 정의다.”
“이건 뭐 말이 통해야지…….”
아크가 답답한 표정으로 머리를 벅벅 긁었다.
사실 아크도 정의남이 왜 이런 짓을 벌였는지는 대강 눈치채고 있었다.
타투인에서 이곳으로 이동할 때 이 산업 단지를 운영하는 회사 ‘재래再來’에 대한 자료를 읽어 보았다.
소문이 좋지 않은 회사였다. 근로기준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고 이스타나 원주민을 잡아 노예로 부린다는 정보도 있었다. 정의남이 어떻게 그런 내용을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아크는 정의남이 받은 퀘스트에 대한 것은 모르니까― 이런 짓을 하는 것을 보면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
그러나 근로기준법 위반이라도 일단 서류상으로는 문제없다. 그리고 시민권이 없는 외계인을 노예로 삼는 것도 은하 3국이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것. 정의남의 생각이야 어쨌든 일단 대외적으로 재래는 합법적인 기업인 것이다.
범법자는 재래의 산업 단지를 무장 점거한 정의남과 요원들. 그리고 범법자로 낙인찍힌 이상 아크가 아니라도 결국 토벌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그런데도 정의남은 천지 분간도 못 하고 정의만 외쳐 대고 있으니 답답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좋아요. 일단 내 얘기를 들어 봐요.”
“말해 봐라.”
“어쨌든 지금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죠?”
“좋다고는 할 수 없지.”
“그러니 일단 점거를 풀고 투항하세요.”
“뭐? 투항? 내가? 네게? 이 자식! 그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할 소리냐?”
“아들이니까 이런 얘기라도 해 주는 거예요.”
아크가 울컥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버지 때문에 제 입장이 얼마나 난처해졌는지 알기는 해요?”
“네가 왜?”
“전 지금 은하연방의 귀족이라고요. 아버지가 이런 짓을 벌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게 그 때문이에요. 이번 일은 이미 귀족 평의회가 관여될 정도로 커졌단 말이에요. 그래서 제가 이번 사건을 맡은 거예요. 아버지를 위해서!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분명하게 말할게요. 장담하건대 이대로 가면 아버지는 더 이상 게임하기 힘들어져요.”
뭐 사실은 놀란 나머지 엉겁결에 퀘스트를 받아 버린 거지만. 이대로 가면 정의남이 더 이상 게임을 하기 힘들어진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정의남이 벌인 일은 이미 평의회의 귀족은 물론 이스타나의 매스컴까지 알려졌다.
귀족들도 대충 넘어가지 못하게 됐다는 말이다.
뭐 정의남도 유저니 죽어도 부활하면 그만이지만 은하연방도 말랑한 곳이 아니다. 부활해도 전과가 붙으면 제재가 가해지는 것이다. 하물며 귀족들을 곤란하게 만들 정도의 사건을 일으켰으니 여론을 생각해서라도 정의남에게 엄청난 제재가 가해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정의남이 몸담고 있는 조직도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정상적인 게임 진행이 불가능해질 정도의 제재!
아크가 난감한 이유가 그것이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자신의 손으로 정의남을 박살 낼 수는 없다. 그러나 이미 퀘스트를 받아 버렸다. 게다가 이 문제로 마틴 후작의 분노까지 사 버렸다.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정의남이 받을 대미지를 아크가 받을 수밖에 없으리라.
이제 막 이큘러스 개발을 시작한 아크로서는 그 역시 받아들이기 힘든 결말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방법이 투항이었다.
“이제 대충 알겠죠? 현재로서는 그게 최선이에요. 이미 이 정도까지 일을 벌여 놨으니 아무 제재도 받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투항하면 형벌이 한결 가벼워질 거예요. 나는 은하연방의 병권을 쥐고 있는 마틴 후작과 잘 아는 사이예요. 아버지가 투항하면 마틴 후작에게 잘 말해 줄게요. 아직 단지의 주민이나 특무대 가운데 사상자가 나오지 않았으니 어쩌면 집행유예 정도로 끝날 수 있을지도 모르죠. 근로자나 노예 들도 제게 맡기세요. 당장 확답을 드릴 수는 없지만 그 문제도 내가 어떻게든 풀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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