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413)
아크 더 레전드-413화(413/875)
[413] SPACE 5. 아버지 VS 아들 (2)“그게 네 의견이냐?”
정의남이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잠시 아크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불어 냈다.
“실로 부끄럽구나. 그래도 내 아들만은 심지가 굳은 녀석이라고 생각했거늘…….”
“에? 뭔 소리예요?”
“몰라서 묻는 거냐? 뭐 어째? 투항하면 죄가 가벼워질 거라고? 그딴 걸 무서워했으면 애초에 이런 일을 시작했겠냐? 게다가 병권을 쥐고 있는 마틴이 어째? 결국 백을 써서 무마시키겠다는 말이잖아! 그리고 근로자나 노예 들도 그래. 당장 확답을 드릴 수는 없지만 어떻게든? 하나부터 열까지! 몽땅 너구리같은 정치인들이 하는 말과 다를 게 없잖아! 귀족이 됐다더니 벌써 정치인 흉내를 내는 거냐? 크흑! 이래서 자식 일은 장담하는 게 아니라더니. 아버지는 슬프다! 엄마도 지금 네 모습을 보면 울 거야!”
“여기서 엄마 얘기가 왜 나와요?”
“그러는 너는?”
“젠장! 그럼 어쩌겠다는 건데요?”
“누가 너보고 내 걱정해 달래? 나도 다 생각이 있어!”
“정말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오면…….”
“어쩔 건데?”
정의남이 턱을 치켜들며 되물었을 때였다.
아크의 몸이 살짝 움츠러든다 싶더니 돌연 섬광처럼 쏘아져 날아갔다. 동시에 손에서 솟아 올라오는 백색광선!
이퀄라이저의 검신이었다.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아크는 이번 사건을 길게 끌고 갈 생각이 없었다.
아니, 길게 끌고 갈 수 없었다. 그래 봤자 정의남의 죄만 더 무거워질 뿐만 아니라, 아크 역시 이런 곳에서 발이 묶여 있을 여유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한 최후의 방법이 이것!
‘투항하지 않는다면 강제로라도 투항하게 만들겠어!’
이게 아크가 진압작전을 미루고 정의남을 불러낸 이유였다. 대화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무력을 사용하기 위해. 어쨌든 이번 일은 정의남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니 정의남을 제압하면 나머지 요원들은 투항할 수밖에 없으리라.
물론 현실이었다면 이런 생각은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정의남은 50이 넘은 나이에도 건달 대여섯 명은 국수 먹듯이 해치워 버리는 괴물이니까.
그러나 게임 속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아버지는 갤럭시안을 시작한 지 이제 겨우 한 달 정도밖에 되지 않았어. 요원들이 택시를 태워 줬다 해도 잘해야 레벨 60~70. 나와 100이나 차이 난다. 제압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지. 미안하지만 계속 억지를 부리면 힘으로 제압하는 수밖에!’
“아버지, 미안해요!”
미리 사과하고 정의남에게 일격!
……이라고 생각했지만…….
핑그르르.
눈앞의 풍경이 빙글 회전했다.
뒤이어 등으로 온몸의 관절이 삐거덕거릴 정도의 충격이 전해졌다.
-대미지 26!
아크가 상황을 파악한 것은 메시지를 본 다음이었다.
바닥에 처박혀 있는 몸! 반대 방향으로 비틀어져 있는 팔! 정의남이 아크의 공격을 흘리는 것과 동시에 팔을 잡고 관절을 꺾으며 바닥에 처박아 버린 것이다.
정의남의 주특기인 유도를 응용한 관절기!
정의남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미안할 필요 없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 아니냐?”
“말과 행동이 다르잖아요!”
아크가 누운 자세에서 몸을 회전시켜 꺾인 관절을 풀었다.
그리고 고무공처럼 튀어 오르며 힘차게 발을 뻗었다. 아크의 주특기인 태권도의 발차기였다.
그러나 정의남은 마치 먼지를 털어 내는 듯한 가벼운 동작으로 발차기를 흘렸다. 그리고 뛰어오른 아크의 몸 아래로 파고 들어온다 싶은 찰나.
쿠쿵-!
아크는 거꾸로 회전하며 바닥에 떨어졌다.
“말과 행동이 달라? 누가 할 소리를 하는 거냐?”
아래에서 위로 아크를 쳐 올린 정의남이 같잖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보다 대체 명룡이에게는 뭘 배운 거냐? 접근전에서 공중차기라니? 이건 해도 너무하잖아. 게임 속인 걸 다행으로 생각해라. 현실이었으면 목뼈가 부러졌을 거야. 그럼 엄마가 울겠지. 나도 좀 슬플 거고. 아버지에게 광선검을 휘둘러 대는 놈이라도 아들이니까.”
“젠장! 엄마 얘기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아크가 고개를 치켜들며 소리쳤다.
그러나 속으로는 이 상황이 당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이제 현실의 격투 감각을 게임 속에서도 응용할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레벨이 100이나 차이 난다.
설사 정의남이 광렙에 광렙을 해 왔다고 해도 시간적으로 그게 한계인 것이다. 그건 좀 전에 확인한 대미지의 양으로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상대가 아무리 정의남이라지만! 이 정도의 차이라니!
‘하지만…….’
당혹스러움은 잠깐이었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지금까지는 아크도 제 실력을 발휘하지 않았다. 발휘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보다는 정의남을 걱정해서였다.
이러쿵저러쿵해도 게임 속에서 레벨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치. 작정하고 싸우면 아차 하는 사이에 정의남이 죽어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적당히 봐주며 싸워서는 승부를 내기 힘들다!’
동시에 리미터 해제!
“이제 그만 포기하고 돌아가시지.”
“포기해야 할 사람은 아버지예요! 환영분신!”
아크가 몸을 일으키며 소리치자 분신이 좌우로 확 퍼져 나갔다. 예상치 못했던 스킬에 정의남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바로 자세를 잡고 정면에서 뛰어드는 아크의 허리를 움켜잡고 ‘허리 띄우기’라는 기술을 사용해 바닥에 메쳤다.
그러나 안개처럼 흩어지는 아크.
“어라? 분신?”
“카프레 검술 3식! 갤럭시 소드!”
고함을 터뜨린 것은 정의남의 옆으로 돌아간 아크였다.
그와 함께 아크의 손에 들린 백색 광선이 부챗살처럼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껏 치켜져 올라가다가 급격히 방향을 바꿔 정의남에게 융단폭격을 가하듯이 폭사되었다.
쿠콰콰콰콰! 쿠콰콰콰콰!
검기가 쏟아지자 대지가 요동치며 먼지 구름이 솟아 올라왔다. 정의남이 어떻게 됐을지는 안 봐도 비디오다.
뭐 그래도 한 방에 죽지는 않았겠지만 온몸이 넝마처럼 변한 몰골로 빈사상태가 되었으리라.
어쩔 수 없었다지만 막상 아버지를 그런 꼴로 만들어 놓았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착잡해진다.
“……어쩔 수 없었어요.”
“어쩔 수 없기는 뭐가 어쩔 수 없어? 이 후레자식 같으니!”
“에? 아버지?”
아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의남은 10여 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멀쩡한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이다.
“젠장! 엄청 아프네! 혹시나 싶어 부스터를 빌려와서 망정이지 까닥하면 죽을 뻔했잖아!”
정의남이 허리에 두르고 있는 기계를 탁탁 치며 말했다.
“부스터? 뭐야? 치사하게 도망친 거예요?”
“누가 더 치사한데? 나는 몸 기술만 쓰는데 느닷없이 스킬이냐?”
“그럼 아버지도 스킬 쓰면 되잖아요! 누가 스킬 쓰지 말래요? 쓰라고요! 어차피 이렇게 된 것! 있는 스킬 없는 스킬 다 써서 결판을 내 보자고요! 컴온! 컴온!”
“싫다, 인마!”
“에?”
“너는 나보다 몇 달이나 먼저 시작했잖아! 레벨 차이가 엄청 날 게 뻔한데 내가 약 먹었냐? 이제 네가 수틀리면 아버지에게까지 검을 휘둘러 대는 후레자식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난 이만 갈란다. 그리고 미리 말해 두는데 혹시 하는 기대 따위는 하지 마라. 난 절대 포기 안 해! 여기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볼일 다 봤으면 돌아가서 네 할 일이나 해!”
그리고 산업 단지로 뺑소니를 쳐 버리는 것이었다.
“누구 맘대로 가요?”
이대로 놓치면 일이 더 복잡해진다.
이에 아크가 황급히 정의남을 향해 뛰어갈 때였다.
철컥! 철컥! 철컥! 띠띠띠띠…….
땅속에서 솟아오르는 서너 개의 금속구金屬球!
“이, 이건? 대인지뢰?”
퍼펑! 퍼퍼퍼펑!
붉은 센서를 깜빡이던 금속구가 일제히 굉음을 일으키며 폭발했다. 반사적으로 ‘피어싱’을 발동시켜 가속하지 않았다면 치명상을 입고 말았으리라.
실로 아슬아슬하게 폭발의 영향권을 벗어난 아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문득 몇 미터 앞에 작은 사각형 물체가 솟아 나와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맙소사! 클레이모어?”
정식명칭은 M18A1 지향성 지뢰!
작동과 동시에 전방의 적에게 괴멸적인 타격을 입히는 대인 지뢰였다. 눈앞의 클레이모어는 그 M18A1의 진화형! 미래세계에 걸맞게 파괴력과 공격범위가 월등한 지뢰였다.
퍼펑! 퍼퍼퍼펑!
당혹성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방사형으로 뿜어지는 파편!
“빌어먹을! 이건 해도 너무 하잖아! 아무리…… 헉!”
아크가 몸을 굴려 피하자 채 자세도 잡기 전에 이번에는 바닥이 움푹 꺼져 들어갔다.
그 속에 빽빽이 박혀 있는 것은 살의가 충만한 칼날!
그러나 아크는 재빨리 ‘아스트랄 망토’를 펼쳐 몸을 띄워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이번에는 주변을 불바다로 만드는 트랩이 작동했다. 그 뒤로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트랩!
트랩! 트랩! 트랩!
퍼펑! 퍼펑! 퍼펑! 퍼퍼퍼펑!
“이, 이런!”
멀리서 지켜보던 페이가 중화기를 뽑아 들고 소리쳤다.
“아크가 위험하다! 교섭은 결렬됐다! 모두 돌격해 아크를 구하라!”
“라저! 각 분대, 돌진!”
페이와 특무대가 폭음이 울리는 벌판으로 돌진했다.
그러나 주위에는 아크가 당하고 있는 트랩만 깔려 있는 것이 아니었다. 특무대가 돌진하자 여기저기, 정말이지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각종 트랩이 발동되었다.
게다가 피한다고 능사도 아니었다.
트랩의 간격이나 위치도 교묘하기 짝이 없어서 무턱대고 피하면 바로 다른 트랩이 작동되도록 설치되어 있는 것이다.
투투투투! 투투투투! 투투투투!
거기에 산업 단지 곳곳에 배치된 요원들의 총격까지!
정예 중의 정예인 특무대조차 제대로 반격조차 못 하고 생명력이 팍팍 깎여 나갔다.
“이대로 돌진하는 것은 무리다! 후퇴! 모두 물러나!”
결국 아크는 퇴각을 명령할 수밖에 없었다.
“우하하하! 멍청아! 내가 아무런 준비도 안 해 놨겠냐?”
그사이에 산업 단지로 들어간 정의남이 방벽 위에서 염장을 질러 대고 있었다.
각종 트랩을 피해 구르고, 뛰고, 바닥을 박박 기느라 데이고, 찢기고, 흙 범벅이 된 아크가 그런 정의남을 바라보며 이를 갈아붙였다.
“정, 말, 해, 보, 자, 이, 겁, 니, 까?”
* * *
‘다행이지만…….’
아크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퇴각하고 확인해 보니 다행히 전사자는 없었다.
그나마 아크가 일찌감치 퇴각을 지시한 덕분이었다.
아마 그대로 산업 단지까지 진군하려 했다면 무시할 수 없는 사상자가 발생했으리라. 그러나 안도의 한숨을 불어 낼 수는 없었다. 전사자는 없지만 적지 않은 부상자가 생겼고, 상황은 아무런 진전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뭣보다…….
“단순한 무장 집단이 아니다.”
페이가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직 제대로 교전해 본 것은 아니지만 나도 게릴라전에 참가한 경험이 있어 알 수 있어. 트랩을 배치해 놓은 것을 보면 지휘관은 분명 평범한 개척자가 아니야. 부하들의 사격술도 그래. 정확도도 정확도지만 데드라인Deadline(한계선, 여기서는 적을 확실하게 사살할 수 있는 지점, 혹은 그곳으로 몰아넣는 기술)을 만드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더군. 놈들은 군 경력을 가진, 그것도 상당한 수준의 군사지식을 갖춘 자들이 분명해.”
그런 건 이미 알고 있다.
정의남이 누구인가? 뭐 지금은 그냥 꼬장꼬장한 아저씨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일단 파헤쳐 보기 시작하면 장난이 아닌 인간이다. 강력계 형사 출신으로 한창 젊을 때는 조직폭력배를 소탕하는 특수기동대, 테러 대책반, 심지어 국제 협정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해 남미 경찰의 교관으로 파견된 경력도 가지고 있는 무지막지한 남자인 것이다. 오죽하면 깡패 경찰로 불리는 이명룡마저 괴물이라고 부르겠는가?
문자 그대로 살아 있는 전설!
지금 산업 단지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사내는 그런 남자다. 뿐만 아니라 거느리고 있는 부하들도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나름 그런 방면으로는 엘리트라고 할 수 있는 국정원 요원들인 것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갤럭시안은 그들에게 익숙한 현대식 화기를 사용하는 게임.
‘잠재력만큼은…….’
최강이라고 할 만한 부대였다.
문제는 그 잠재력 최강의 부대가 아크의 적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일단 만나면 어떻게든 풀릴 줄 알았는데 일이 더 꼬여 버렸잖아. 페이의 말대로 아버지와 요원들은 전문가 중의 전문가. 방어태세에 들어가면 상황은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어. 그래서 싸우지 않고 해결하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했는데…… 고집불통 아버지!’
아크가 내심 이를 박박 갈아붙이고 있을 때 페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우리도 나름 정예라고 자부하는 전사들이다. 만만한 적은 아니지만 피해를 감수할 각오를 하면 뚫고 들어가지 못할 것도 없어.”
그것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크 역시 그런 자신은 있었다.
그러나 마틴 후작이 맡긴 특무대에 전사자가 발생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특무대는 정예병이라도 일반 NPC라―사실 대부분이 그렇지만― 부활도 못하는 것이다.
정의남 측에서 사상자가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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