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42)
아크 더 레전드-42화(42/875)
[42] SPACE 6. 낙오병 (3)휘이이이이-!
어둠이 내린 하늘에 눈 폭풍이 휘몰아쳤다.
영하 50도의 극저온이 만들어 낸 서릿발 같은 한기가 송곳처럼 피부를 긁어 대는 느낌이다.
그러나 아크는 이미 한기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빌어먹을…….’
아크가 입술을 씹으며 한숨을 불어 냈다.
발렌시아의 비열한 계략에 걸려 메머드를 놓쳐 버린 지 대략 1시간. 그 1시간은 아크에게 생존을 향한 처절한 사투의 연속이었다. 수십 마리의 카락과 함께 아크 부대의 뒤를 추격하는 라마 전사를 피해 도망쳐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낙오병이 된 아크 부대가 라마 전사의 추격을 뿌리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연방군의 패배로 이미 일대는 라마족이 장악한 상태!
카라라라라! 카라라라락!
어디로 도망치든 카락과 라마족이 앞을 가로막았다.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아크는 포기하지 않았다. 여기서 죽으면 기껏 쌓은 경험치가 모두 사라진다. 게다가 공적치 -100. 그러나 아크가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니었다.
‘발렌시아!’
유저 죄수들에게 삥이나 뜯는 비열한 양아치 발렌시아!
이대로 죽으면 발렌시아에게 당하는 꼴이 된다. 아크가 참을 수 없는 게 그것이었다.
‘살아 돌아간다! 기필코 살아 돌아가 그 자식에게 한 방 먹여 주겠어!’
아크는 오직 그 일념 하나만으로 지금까지 버텨 왔다.
물론 그 과정이 쉬웠을 리는 없었다.
“형님, 이대로는 무리입니다! 저희가 막고 있을 테니 도망치십시오!”
카락이나 라마 전사에게 따라잡힐 때마다 친위대원 몇 명이 죽음을 각오하고 퇴로를 지켰다.
그렇게 친위대원이 시간을 버는 사이에 도주! 도주! 도주!
그야말로 눈물 나는 후퇴였다.
그러나 그런 친위대원도 라마 부대에게 걸릴 때마다 곶감 빼먹듯 하나둘 떨어져 나가고 이제 아크와 베라드.
단둘밖에 남지 않았다.
‘안 될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아크가 절망적인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이곳은 은하연방 기지와 수십 킬로미터나 떨어진 지역. 당연히 아크가 지리를 알 리가 없었다. 때문에 님프의 GPS만 보고 일직선으로 B-3지역으로 이동하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이런 곳에 크레바스Crevasse(빙하의 갈라진 틈)가 있을 건 뭐냐고!’
폭이 10여 미터나 되는 크레바스가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리고 뒤에는 추격해 온 라마 전사와 카락. 문자 그대로 벼랑 끝까지 몰린 것이다. 쩍 갈라진 크레바스를 보고 있자니 자연스럽게 킬킬거리는 발렌시아의 낯짝이 떠올랐다.
동시에 가슴속에서 시커먼 기운이 울컥 치솟아 올랐다.
‘안 돼!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아크가 검을 움켜쥐고 와락 고개를 들어 올렸다.
‘확실히 모든 상황이 최악이다. 하지만 아직 포기할 정도는 아니야. 여기까지 우리를 추격해 온 적은 라마 전사 하나와 카락 10마리. 하지만 문제는 카락이 아니라 라마 전사다!’
라마 전사는 라마족의 정규병.
은하연방의 정규병을 보면 알겠지만 이들은 평균 레벨이 40 이상이었다. 반면 아크는 이제 겨우 30을 넘은 수준. 게다가 장비품도 라마 전사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만약 라마 전사를 쓰러뜨릴 수 있다면…….’
나머지는 레벨 15의 카락 10마리. 베라드와 힘을 합치면 어떻게든 처리할 수 있으리라.
물론 그건 라마 전사를 쓰러뜨렸을 때의 얘기였다.
라마 전사와 카락이 함께 달려든다면 전투 시작과 동시에 GAME OVER. 아니, 솔직히 어찌어찌 이곳을 벗어난다고 해도 B-3 지역까지 도망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주변은 이미 라마족이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해보는 수밖에 없다!’
아크는 머리를 흔들며 단검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점차 거리를 좁혀 오는 라마 전사를 노려보며 베라드에게 속삭였다.
“베라드, 몇 분만 카락을 맡아 줄 수 있겠어?”
“형님, 그럼 혹시…….”
“네가 카락을 맡아 주면 라마 전사는 내가 맡겠다.”
“라마 전사를…… 형님 혼자 상대할 수 있겠습니까?”
“하는 수밖에 없잖아.”
“그렇죠.”
베라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양손 해머를 움켜쥐었다.
사실 레벨은 아크보다 베라드가 높았다. 그러나 베라드도 전투 능력은 아크가 한 수 위라고 인정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카락은 제가 갈가리 찢기는 한이 있어도 막아 보겠습니다!”
그때 라마 전사가 흉광을 번뜩이며 소리쳤다.
-크크크크, 네놈들도 여기까지로군. 카락, 죽여라!
라마 전사의 명령에 10여 마리의 카락이 괴성을 질러 대며 달려들었다. 동시에 베라드가 몸을 날리며 힘차게 해머를 내리찍었다.
“진동!”
콰아아아아아! 퍼펑!
추진 장치로 가속도가 붙은 해머가 내리찍자 빙판에 균열이 번지며 들썩였다. 그 충격에 카락들이 휘청거리자 베라드가 횡으로 해머를 휘둘러 대며 소리쳤다.
“형님, 지금입니다!”
그때 아크는 이미 물러나 있던 라마 전사를 향해 화살처럼 쏘아지고 있었다. 그와 함께 어둠을 가르며 날아간 검광이 라마 전사의 목 줄기를 갈라놓으려는 찰나!
“소닉 소드!”
쩡-!
-훗, 연방의 죄수 따위가 감히 나와 해보자는 건가?
실드로 아크의 검을 막아 낸 라마 전사의 얼굴에 비웃음이 걸렸다. 라마 전사의 오른 손에서 시퍼런 검광이 솟아오른 것은 그때였다.
아크는 아직 구경밖에 해 보지 못한 빔 소드!
섬뜩한 빔 소드의 등장에 아크가 황급히 실드를 펼쳤다. 그러나 실드를 펼치자마자 쩡 소리가 울리더니 유리처럼 깨져 나갔다.
일격에 실드가 박살 나 버린 것!
‘아무리 실드가 근접 공격에 약하다지만…….’
일격에 실드를 박살 낼 정도라면 빔 소드도, 라마 전사도 예상보다 강하다는 뜻!
실드가 깨지며 주르륵 밀려나자 라마 전사가 피식 웃으며 다가왔다.
-고작 그따위 실력으로 나와 붙으려고 했던 건가?
라마 전사가 본격적으로 빔 소드를 휘두르며 아크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실드를 일격에 깨뜨리는 무지막지한 빔 소드의 위력! 한 방만 제대로 맞아도 치명상을 입게 되리라!
아크는 감히 검을 마주칠 엄두도 내지 못하고 바닥을 구르며 밀려났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계속 뒤로 밀리다 보니 어느새 크레바스 바로 앞까지 몰려 버렸다.
주춤주춤 크레바스 끝까지 밀려난 아크의 얼굴이 시커멓게 죽어 버렸다.
“제, 젠장!”
-장난도 여기까지다. 에너지 블라스트!
라마 전사의 외침에 빔 소드가 폭발적으로 확대되었다.
그렇게 무려 2미터 크기로 커진 빔 소드가 아크의 몸통을 가르려는 찰나!
‘……지금이다!’
아크가 눈동자를 빛내며 라마 전사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페이드 스틸을 라마 전사의 어깨에 붙이고 힘차게 방아쇠를 당겼다.
탕-!
총성과 함께 라마 전사의 어깨가 휘청거리며 밀려났다.
-크윽! 이 자식이!
설마 그 상황에서 되레 앞으로 나와 총격을 먹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라마 전사가 어깨를 움켜쥐고 물러났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안광을 분노로 물들이며 다시 검을 휘둘렀다. 순간 아크는 라마 전사의 몸을 중심축으로 삼아 빙글 회전해 뒤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어지는 뒤차기!
-허억!
뒤차기에 등을 맞고 주르륵 밀려나는 라마 전사의 입에서 당혹성이 터져 나왔다.
크레바스 끝까지 밀려났던 아크가 라마 전사의 뒤로 돌아갔다. 이로써 위치가 바뀐 탓에 이제 크레바스 쪽에 서게 된 것은 라마 전사. 그 상태로 뒤차기를 얻어맞자 그대로 크레바스를 향해 미끄러지게 된 것이다.
이대로라면 그대로 크레바스에 퐁당!
‘성공이다!’
아크가 노린 게 바로 이것이었다.
적외선 스코프로 확인한 라마 전사의 레벨은 50.
사실 제대로 붙으면 아크가 이길 확률은 10%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설사 어찌어찌 쓰러뜨린다 해도 그때까지 베라드가 10마리나 되는 카락을 막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때문에 아크는 처음부터 라마 전사를 크레바스로 밀어 넣을 계획을 세운 것이다.
크레바스 끝까지 물러났던 것은 이를 위한 포석!
라마 전사를 방심시키고 빈틈을 노려 크레바스로 밀어 넣기 위해서였다.
‘됐어. 이곳은 빙판. 충격을 받고 밀려나기 시작하면 자력으로는 멈추기 어렵다. 이제 놈은 그대로 크레바스에…….’
아크가 그렇게 승리를 확신하고 있을 때였다.
-건방진 놈! 기갑무장!
라마 전사의 몸 주위에서 시퍼런 섬광이 터져 나온 것은 그때였다.
동시에 공간이 일그러지며 갑옷처럼 생긴 물체가 나타났다. 마치 곤충의 표피처럼 생긴 갑옷은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며 라마 전사의 몸에 휘감겼다.
그렇게 표피 같은 갑옷에 휩싸인 라마 전사는 마치 스타크래프트의 프로토스와 같은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아크는 그런 형태로 변한 라마 전사를 본 적이 있었다.
‘저, 저건 라마족의 배틀슈트!’
바로 라마족이 사용하는 배틀슈트 기갑무장!
기계식에 가까운 은하연방의 배틀슈트와 라마족의 배틀슈트는 형태도 기동 방식도 달랐다.
-이따위 잔꾀에 속아 넘어갈 것 같으냐!
콰지지지지지! 우뚝!
기갑을 걸치고 빙판에 주먹을 내리꽂자 라마 전사의 몸이 멈췄다. 이로써 아크의 계획은 무산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아직이다! 기갑무장!”
순간 아크의 몸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일그러지는 공간 속에서 기갑이 나와 몸을 감싼 것이다.
-뭐, 뭐? 어, 어떻게 연방의 죄수 따위가 기갑무장을…… 게다가 저건……!
라마 전사가 경악성을 터뜨리는 찰나!
기갑을 입은 아크가 화살처럼 쏘아져 날아가 라마 전사를 들이받았다. 금속과 금속이 마주치는 소리와 함께 주르륵 밀려난 라마 전사는 결국 크레바스로 떨어지고 말았다.
라마 전사가 크레바스로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아크는 곧바로 몸을 돌려세웠다.
“헉헉, 서, 성공이다. 이제…….”
덥석!
그때 라마 전사의 손아귀가 발목을 움켜쥐었다.
순간 아크의 발이 빙판에 미끄러지며 크레바스로 주르륵 딸려 들어갔다.
그리고 몸 아래로 펼쳐지는 끝없는 암흑!
아크까지 크레바스에 떨어져 버린 것이다. 찰나의 방심 탓에 크레바스로 딸려 들어가 버린 아크가 악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발목이 확 당겨지며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네놈! 네놈만큼은!
추락하면서도 발목을 움켜쥐고 있는 라마 전사였다.
라마 전사는 이를 바득바득 갈아붙이며 왼팔로 빔 소드를 뽑아 들었다.
-네놈만큼은 기필코 내 손으로 죽여 버리겠다!
“웃기지 마! 죽으려면 너나 죽어!”
아크가 페이드 스틸을 아래로 향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자 라마 전사가 화들짝 놀라며 잽싸게 팔을 되돌려 실드를 펼쳤다. 그러나…….
철컥! 철컥! 철컥!
페이드 스틸에서는 방귀도 나오지 않았다.
실드 너머로 바라보던 라마 전사의 입이 길게 찢어졌다.
-크크크크, 멍청한 놈. 명색이 병사라는 놈이 자기 총에 탄환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다니. 한심해서 말이 안 나오는군. 자, 그럼 네놈은 양팔이 자유로우니 어디 장전을 해 봐라. 네놈이 장전하는 속도와 내 검, 어느 쪽이 빠른지 겨뤄 보자!
라마 전사가 실드를 해제하고 다시 빔 소드를 휘둘렀다. 아니, 휘두르려는 찰나!
“난 탄환이 없다고 한 적은 없는데?”
아크가 씨익 웃으며 네 번째 방아쇠를 당겼다.
“집탄 사격!”
순간 총구에서 폭발하듯이 뿜어져 나가는 세 발의 탄환!
빈총이라고 판단하고 완전히 방심하고 있던 라마 전사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그러나 아크는 당혹감에 물든 라마 전사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집탄 사격으로 쏘아져 나간 세 발의 탄환이 라마 전사의 면상에서 폭발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퍼퍼펑-!
-크아아아아아악!
라마 전사의 머리가 뒤로 꺾이며 몸이 활처럼 휘었다.
그 충격으로 아크의 발목을 움켜쥐고 있던 라마 전사의 손이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양손으로 시커먼 연기가 솟구치는 얼굴을 감싸 쥔 채 바람개비처럼 회전하며 아래로 떨어졌다.
순간적인 기지 발휘로 라마 전사를 떼어 낸 아크!
그러나 너무 늦은 기지 발휘였다.
이미 아크 역시 크레바스 아래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사이에 수백 미터는 떨어졌을 거야. 그만한 높이에서 이대로 바닥에 떨어지면…….’
100% 사망! 얄짤없이 사망! 무조건 사망이다.
‘하지만 낙하 속도를 줄인다면!’
맹렬하게 머리를 굴리던 아크가 퍼뜩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허공을 허우적거리며 님프를 조작하자 가방에서 삽이 솟아올라왔다.
‘그나마 낙하 속도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다!’
빠각-!
아크는 온힘을 다해 삽으로 빙벽을 내리찍었다.
순간 어깨로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전해졌다. 당연하다. 떨어지는 도중에 삽으로 빙벽을 찍었으니 낙하 에너지에 의해 수십 배로 불어난 체중이 어깨에 집중된 것이다.
아마도 보통 사람이었으면 찍는 순간 어깨가 탈구되어 버렸으리라. 아크의 어깨가 멀쩡하게 붙어 있을 수 있는 이유는 평소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아서……는 아니었다.
지직! 지지지직! 지지지지!
어깨를 덮은 갑각 형태의 갑주가 근육처럼 꿈틀거린다.
바로 그것, 지금 아크의 몸을 덮고 있는 기갑, 배틀슈트 덕분이었다. 육체의 내구력과 능력치를 상승시켜 주는 미래 과학의 정수로 만들어진 배틀슈트!
아크가 이런 배틀슈트를, 심지어 라마족이 사용하는 배틀슈트를 얻게 된 것은…….
‘조금이나마 속도가 줄었다! 어깨도 버틸 수 있어!’
……그딴 거나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파파파파! 파파파파! 파파파파!
일단 효과가 있음을 확인한 아크는 빙벽에 달라붙어 미친 듯이 삽을 휘둘렀다.
그때마다 빙벽이 푹푹 깨져 나가며 낙하 속도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속도가 줄어들자 힘차게 내지른 삽이 빙벽을 뚫고 박혀 버렸다.
아크가 양손으로 삽자루를 움켜쥐었다.
“됐다! 들어갔다!”
콰직! 카카카카카카!
삽이 빙벽을 찢듯이 내리그었다.
그렇게 빙벽에 수십 미터에 달하는 상처 자국을 만들며 내려오기를 잠시…… 우뚝!
드디어 떨어지던 몸이 멈춰 섰다.
“헉헉헉, 머, 멈췄다.”
빙벽에 꽂힌 삽자루에 대롱대롱 매달린 아크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헐떡였다.
절벽에서 떨어지며 미친 듯이 삽질을 했다. 그 격렬한 운동으로 만들어진 땀이 안도의 한숨을 불어 내는 것과 동시에 폭포수처럼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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