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426)
아크 더 레전드-426화(426/875)
[426] SPACE 1. Who? (1)위이이잉-.
어둠 속에서 낮은 기음을 발하며 2개의 빛이 움직였다.
하나는 위협적인 붉은 빛을 뿜어내며 거리를 좁혀 오는 적색 검광, 붉은학살자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라마 전사의 광선검. 그리고 그보다 좀 더 신중한 움직임을 보이는 백색 검광은 바로 이퀄라이저, 아크의 광선검이었다.
‘쳇, 하필이면…….’
아크는 붉은 검광을 보며 혀를 찼다.
붉은학살자가 누구보다도 아크에게 복수심을 품고 있다면, 그리고 아크도 이 세계로 들어온 이유도 붉은학살자를 막기 위해서니 싸울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그러니 언젠가 이런 날이 오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타이밍이 좋지 않다.
지금 아크의 최우선 목표는 신기를 찾는 것.
문제없이 신기를 찾고 이스타나로 돌아가려면 늦어도 행사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마틴 후작과 합류해야 한다.
다시 말해 주어진 시간은 오늘 밤, 12시간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시작도 하기 전에 상상도 못 했던 붉은학살자가 나타나 앞을 가로막은 것이다.
“이런 걸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하는 건가?”
아크로서는 날벼락이나 다름없었다.
-착각하지 마라.
그때 붉은학살자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너는 어떨지 몰라도 나는 한시도 너의 존재를 잊은 적이 없다. 그래, 그날 이후로 단 하루도. 너와 다시 만나 승부를 겨룬다. 내가 이 세계로 들어온 가장 큰 이유가 그것이다. 그런 내가 네 앞에 나타난 것을 단순한 우연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지. 이건 어디까지나 내 노력에 의한 결과라는 말이다.
“그런 녀석을 스토커라고 하지.”
-뭐라고 말하든 상관없다. 너와 다시 승부를 겨루는 것이 이 세계에 들어온 가장 큰 이유라고 말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너와 결말을 짓지 못하면 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러니 이번으로 끝내자. 너나 나나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을 테니까. 아마도.
“시간이 많지 않다고? 아마도?”
이해하기 힘든 말에 아크가 ‘?’를 떠올리며 되물었다.
그러나 묵묵히 바라보는 붉은학살자의 얼굴을 확인하자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그렇지. 미안. 내가 또 깜빡했다. 궁금한 게 있다면…….”
그리고 번쩍 고개를 들어 올리는 순간!
“카프레 검술 4식, 피어싱!”
퉁-!
아크의 발밑이 움푹 꺼져 들어갔다.
동시에 아크의 몸이 탄환처럼 쏘아지며 공간을 가로질렀다. 그 뒤를 따라 이퀄라이저의 백색 검광이 레이저처럼 어둠을 가르며 붉은학살자를 향해 날아갔다.
콰직! 콰지지지지-!
파열음이 울리며 백색과 붉은 색의 스파크가 터져 나왔다.
그 빛에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진 아크와 붉은학살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크가 칙칙한 피부색의 붉은학살자를 향해 이를 드러내며 말을 이었다.
“……실력으로 알아내 보라고 했었지, 아마?”
-그랬지.
붉은학살자의 입술이 휘어졌다.
-미안하게 생각한다. 불가능한 일이 될 테니까. 검파劍派!
붉은학살자가 마주 대고 있던 검을 비틀어 올리며 검기를 뿜었다.
눈앞으로 확 밀려오는 붉은 검기!
아크는 복싱의 회피 기술 스웨이Sway을 응용해 상체를 뒤로 젖히며 검기를 피했다. 이어 뒤로 물러나기가 무섭게 이번에는 붉은 검광이 복잡한 궤적을 그리며 날아들었다.
작정한 듯 숨 쉴 틈 없이 몰아치는 공세!
그러나 당하고만 있을 아크가 아니다.
“나는 아크다!”
아크가 뒷발로 힘차게 지면을 디디며 소리쳤다.
동시에 이퀄라이저의 백색 검광이 복잡한 궤적을 그리며 전방으로 확 뿜어져 나갔다.
순간 아크와 붉은학살자 사이의 공간에서 백색과 붉은색이 뒤섞인 폭광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그 폭광을 관통하며 아크가 포효를 터뜨렸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려 주마!”
* * *
-아우! 아우! 아우!
지하 공간의 구석에서 작은 체구의 골렘, 바사크가 앓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들었다.
방금 전 바사크는 주위를 둘러보던 중에 아크에게 날아드는 붉은 광선을 목격했다.
충성도 만땅인 바사크는 당연히 육탄 방어!
바로 몸을 날려 붉은 광선을 막을 수 있었지만 그 충격으로 10여 미터나 튕겨져 날아가 구석에 처박혀 있었던 것이다.
-대체 뭐였지? 그 붉은 광선은…… 헉!
고개를 돌리던 바사크의 입에서 당혹성이 터져 나왔다.
지하 공간의 중심에서는 백과 적의 검광이 눈으로 좇기도 힘든 속도로 움직이며 쉴 새 없이 충돌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충격파와 전자기 폭풍에 흙먼지가 회오리를 일으키고 있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지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명확하다.
누군가와 싸우고 있다!
-형님!
바사크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그리고 격전이 펼쳐지는 곳으로 뛰어가려 할 때였다.
-……뭐지?
바사크가 우뚝 걸음을 멈췄다.
이유는 바사크도 알 수 없었다. 그냥, 뭔가, 왠지 모르게 걸음이 멈춘 것이다. 굳이 이유를 붙이자면 근처에서 뭔가 자신을 끌어당기는 듯한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랄까?
아크가 위험하다.
아니, 휘몰아치는 흙먼지 속에서 눈으로 좇기도 힘든 속도로 싸우고 있어 실제로 아크가 어떤 상황인지도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습격자와 싸우는 중이다. 부하로서 당장 달려가야 마땅하다. 분명 머릿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인지 도무지 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대체 왜 이런…….
잠시 우왕좌왕하던 바사크는 결국 몸을 돌려세웠다.
그리고 정체불명의 흡인력이 느껴지는 기묘한 감각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바사크가 처박혀 있던 곳과 멀지 않은 곳이었다.
방위로 따지면 들어온 입구의 반대편. 일단 그곳도 거친 바위로 뒤덮여 있는 다른 곳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그냥 눈으로 보기만 했으면 아무것도 찾지 못했으리라.
그러나 바사크에게는 분명하게 느껴졌다.
-이 바위다. 이 바위는 다른 것과 뭔가 달라. 이 느낌은 마치…….
바사크가 바위에 손을 가져갔을 때였다.
갑자기 바위가 잘게 부서지며 부스스 떨어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바위 표면을 덮고 있던 흙과 이끼 따위가 떨어져 나간 것이다. 그 뒤에 떠오르는 것은 놀랍게도 크리스털이었다. 마치 정밀하게 세공된 보석처럼 깎여 있는 주먹만 한 크기의 크리스털!
-이, 이건……!
바사크는 홀린 표정으로 손을 뻗었다.
* * *
위이이잉!
붉은 검광이 머리 위를 스쳤다.
피부가 자글거리며 머리카락이 바짝 곤두서는 느낌이다.
그게 단단한 아머조차 단숨에 갈라 버리는 광선검의 전자기력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섬뜩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지금 아크는 그런 감각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보고, 듣고, 생각하면 늦는다!’
굳이 분류하자면 아크의 전투 스타일은 전략형이다.
적의 전투 패턴을 파악해 빈틈을 찾아 공격하는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상황 나름, 적 나름이다.
콰! 콰! 콰! 콰! 콰!
전후좌우에서 동시에 터져 나오는 스파크!
그 사이로 춤추듯 회전하며 쉬지 않고 날아드는 붉은 검광!
어차피 주위가 전자기력에 의해 일어난 먼지 구름에 뒤덮여 있어 제대로 보이지도 않지만, 먼지 구름이 없어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그건 붉은학살자 역시 마찬가지.
지금 아크와 붉은학살자는 눈으로 보고 막아야겠다고 생각하면 이미 머리에 검이 푹 박히는, 문자 그대로 찰나의 속도 영역에서 검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전투에 필요한 것은 감각!
수많은 전투를 겪으며 몸에 각인된 전투 감각이다.
보기 전에! 듣기 전에! 생각하기 전에 움직인다! 자신의 감각을 믿고! 그게 불과 1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에서 눈으로 좇기도 힘든 공방을 펼칠 수 있는 이유다.
때문에 잔재주가 끼어들 여지 따위는 없었다.
필요한 것은 오직 전투로 갈고닦은 순수한 힘. 그리고 그 힘을 끌어내기 위한 집중력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런 집중력이 아무 때나 발휘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은 물론 적도 그만한 역량이 되어야 발휘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수준의 전투는 허접한 적과 수백 번을 싸우는 것보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아크는 이미 그런 경험이 있었다.
바로 아마타스에서 붉은학살자와 처음 싸웠을 때였다.
돌이켜 생각하면 아크는 그 전까지는 아직 갤럭시안의 전투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가상현실 게임은 현실과 같은 물리법칙이 적용된다. 그러나 세부적인 것, 예를 들면 타격감이나 공격 판정, 적용되는 스텟이나 스킬의 범위는 약간씩 다를 수밖에 없었다. 같은 격투 게임이라도 <스트리트 파○터>와 <철○>이 다른 것처럼.
물론 그리 큰 차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아마도 대부분의 유저는 그런 차이를 느끼지도 못하리라.
그러나 아크 수준의 유저라면 오히려 얘기가 달라진다. 정밀한 기계일수록 작은 에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처럼. 수준 높은 유저일수록 그런 작은 차이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몸이 기억하는 감각과 실제 움직이는 감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게 아크가 갤럭시안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던 이유. 동시에 붉은학살자와 싸워 보고 나서 실력이 진일보한 이유이기도 했다.
최강의 적을 만나 무아지경으로 검투를 벌이는 사이에 그런 감각의 오류가 수정되어 버린 것이다.
각성!
이게 그때 아크가 느꼈던 감각이다.
미세한 감각의 차이로 그동안 수 없는 전투를 했음에도 녹아들지 않던 경험이, 그동안 잠들어 있던 전투 세포가 일제히 깨어나는 듯한 감각!
‘나는 강해졌다!’
그때 아크는 실감할 수 있었다.
붉은학살자와 싸운 이후에 확실하게 달라진 자신을.
그래서 생각했다. 당시 아마타스에서 맞붙었을 때도 검술은 백중세! 레벨 차이로 좀 밀리기는 했지만 검술은 대등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아크는 그 전투를 통해 진일보했다.
그러니 다시 붙으면 설사 레벨이 조금 달리더라도 실력으로는 압도할 수 있으리라고. 그러나…….
콰! 콰! 콰! 콰! 콰!
‘……나만이 아니었던 건가?’
아크가 연이은 빛의 폭발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여전히 둘의 검술은 백중세. 아직 시작 단계이기는 하지만 검을 마주쳐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붉은학살자 역시 아크 못지않게 강해졌다는 것을.
아니, 이전까지는 아크가 좀 밀리는 형국이었으니 따지고 보면 아크가 좀 더 강해졌다고 할 수 있었지만, 붉은학살자 역시 지금까지 놀고만 있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부우우웅! 위잉!
아크가 날아드는 검기를 피하며 한 걸음 물러났다.
아니, 물러난다 싶은 순간 상체를 바닥에 닿을 정도로 숙이며 탄환처럼 쏘아져 나갔다. 그리고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튀어 올라 붉은학살자의 복부를 무릎으로 찍었다.
-칫, 이런 공격은 통하지 않아!
붉은학살자가 검 자루를 내려 무릎을 막았다.
순간 아크는 굽어 있던 다리를 펴며 무릎 찍기에서 앞차기로 전환!
텅-!
발끝이 복부에 박히며 묵직한 울림이 전해졌다.
아크는 서너 걸음 물러나는 붉은학살자를 바라보며 밉살스러운 표정으로 비웃어주었다.
“그래, 통하지 않는군. 설마 배로 막을 줄은 몰랐어.”
-이죽거리지 마라!
붉은학살자가 와락 얼굴을 구기며 돌진했다.
그와 함께 사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붉은 검광! 아크는 주특기인 태권도의 스텝을 밟으며 뒤로 물러나 검광을 피하고 몸을 회전시키며 이번에는 뒤돌려 차기를 날렸다.
그때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붉은학살자도 몸을 회전시키며 다리를 뻗은 것이다.
태권도의 동작과는 조금 다르지만 그 역시 뒤돌려 차기!
거의 동시에 같은 발 차기를 시도하자 허공에서 아머에 뒤덮인 다리가 얽히며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충격에 중심을 잃은 아크가 휘청거리며 당혹스러운 얼굴을 들어 올렸다.
“무슨……?”
-왜? 나는 못할 거라고 생각했나?
붉은학살자가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말했을 텐데? 나는 그날 이후로 한시도 너를 잊어 본 적이 없다고. 그 시간 동안 내가 놀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리고 격투기라면 나도 어느 정도 경험은 있다.
“경험? 웃기시는군. 컴퓨터 주제에 무슨 경험이야? 어디서 격투기 교본이라도 다운로드받은 거겠지. 쳇, 컴퓨터는 편해서 좋군. 다운로드만 받으면 격투가 흉내도 낼 수 있다니.”
빈정거리며 말했지만 속내는 당혹스럽게 짝이 없었다.
이미 말했듯이 아크와 붉은학살자의 검술 실력은 거의 백중세다. 듣기에는 뭔가 있어 보일지 모르겠지만 사실 이대로 치고받으면 이길지 질지 알 수 없다는 뜻.
그럼에도 아크가 여유를 잃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비장의 카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태권도.
물론 갤럭시안에서 타격기는 뉴월드만큼의 효과를 얻을 수 없다. SF라 아머의 성능이 지나치게 좋아 주먹과 발 따위를 사용하는 원시적인 공격의 대미지는 제대로 들어가지도 않는 것이다. 때문에 아크도 태권도 기술을 사용하지 않고 있었지만 얼마 전 정의남과 붙어 본 이후에 생각이 달라졌다.
‘아버지와 나는 레벨 차이가 100 이상이다. 그럼에도 아버지의 관절기나 메치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어. 다시 말해 그런 기술은 레벨 차이와 상관없다는 말이다. 물론 기술이 들어가도 적용되는 대미지는 얼마 되지 않아. 하지만 아예 대미지를 포기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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