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43)
아크 더 레전드-43화(43/875)
[43] SPACE 6. 낙오병 (4)“만약 조금만 늦었다면…….”
아래쪽으로 시선을 내리자 새삼 등골이 서늘해졌다.
바닥까지는 불과 10여 미터.
만약 낙하를 멈추는 게 몇 초만 더 늦었어도 어떻게 됐을지는 라마 전사가 온몸을 바쳐 보여 주고 있었다.
대가리부터 떨어진 라마 전사는 몸 절반이 바닥에 박힌 비참한 몰골로 뻗어 있었다. 늦었다면, 그 옆 자리에 아크도 같은 자세로 박혀 버렸으리라.
“일단 살아난 것까지는 다행이지만.”
떨어져 내린 거리를 생각하면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크레바스에 딸려 들어와 멈춰 서기까지 걸린 시간은 대략 3~4분. 낙하 속도를 생각하면 적어도 몇 킬로미터는 떨어진 것 같았다. 다시 말해 이곳에서 탈출하려면 몇 킬로미터나 되는 빙벽을 기어 올라가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고민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어라?”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아크의 눈이 동그래졌다.
바닥에 대가리를 박은 채 뻗어 있는 라마 전사의 옆에서 반짝이는 물체를 발견한 것이다.
그 물체의 정체는 번들거리는 광택의 두툼한 아머!
라마 전사가 떨어뜨린 아이템이 분명했다. 그 아이템을 보는 순간 크레바스에서 탈출할 고민 따위는 뒷전이 돼 버렸다.
레벨 50짜리 라마 전사가 떨어뜨린 아이템!
“이게 웬 횡재냐?”
아크는 환호성을 터뜨리며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쩡-! 자자자자작!
순간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바닥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번졌다. 뜻밖의 상황에 아크가 숨을 들이켜며 몸을 사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뭐, 뭐야? 이 바닥…… 얼음이잖아?’
아크가 내려선 곳은 얼음으로 만들어진 바닥이었다.
다행히 얼음은 제법 두께가 있어 보였다.
그러나 바로 옆에 라마 전사가 대가리로 얼음에 구멍을 뚫어 버린 탓에 약해져 있는 상태에서 아크까지 내려서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일단 균열이 생기자 쩡쩡 소리를 내며 바닥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이거 까딱하면…….’
숨만 쉬어도 균열이 하나씩 늘어나는 얼음 바닥.
그 아래에 뭐가 있을지는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뭐가 있든 아크가 살아 돌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는 않으리라. 사는 게 목적이라면 쓸데없는 짓은 하지 않는 편이 좋다.
그러나…… 그러나…….
‘난 못해! 난 못한다고!’
아크가 마른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저 앞에서 반짝이는 아머를 바라보았다.
레벨 50짜리 라마 전사가 떨어뜨린 아이템이다. 그게 눈앞에 있는데 어떻게 포기하란 말인가?
‘그래, 어차피 이대로 빙벽을 기어올라도 살 수 있다는 보장은 없어. 살아서 크레바스 밖으로 나갈 확률은 잘해야 20%. 게다가 이제 죽는 건 이력이 났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야. 하지만 아이템은 일단 챙기면 확실하게 내 것이 된다!’
벨타나에 와서 지금까지 죽은 횟수만 7번!
자주 죽다 보니 감각이 마비돼 버린 아크의 선택은 목숨보다 아이템이었다. 그렇게 탐욕의 노예가 되어 목숨을 아끼지 않게 된 아크는 아이템을 향해 조심스럽게 진군했다.
행여 깨질까 숨조차 죽이고 찔끔찔끔 거리를 좁혀 가기를 장장 10분. 불안과 공포를 누르며 쩡쩡 균열이 번져 가는 빙판을 가로지른 아크가 와락 아이템을 움켜쥐었다.
“잡았다!”
하르케니언 아머(매직)
아이템 타입 : 라이트 아머(상의) 착용 제한 : 레벨 40(신체코팅 필수)
방어력 : 45 내구도 : 5/50
아템포로라는 혹성에서만 채취되는 초경도 금속 하르케니언으로 만들어진 아머입니다.
하르케니언은 마치 고무와 같은 연성과 금속 특유의 경도를 함께 가지고 있어 오래전부터 아머의 재료로 널리 사용되어 온 금속입니다. 그러나 뛰어난 우주 자원은 재앙을 불러왔습니다. 하르케니언에 눈독을 들인 라마족이 수년 전 아템포로를 급습해 식민지로 삼아 버린 것입니다.
이후 하르케니언은 라마족이 독점하게 되었고, 이를 응용해 수많은 특수 아머를 생산해 내어 각지에서 벌어지는 전장에서 우세를 점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민첩 +10, 근접 무기로 받는 데미지 10% 경감》
“레벨 40짜리 매직 아머!”
아크가 환호성을 터뜨렸다.
쩡-!
발밑에서 뭔가 파멸적인 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거미줄 같은 균열이 번져 있는 빙판은 그야말로 아슬아슬한 균형으로 겨우겨우 유지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아크가 아머를 집어 드는 바람에 체중이 더 늘어나 버렸다. 그와 함께 미묘하게 유지되던 균형이 깨지며 그렇지 않아도 불안한 빙판에 새로운 균열이 생긴 것!
“힉! 아, 안 돼! 늦기 전에…….”
당황해 버린 아크가 황급히 몸을 돌려세웠다.
단언컨대 그게 결정타였다.
쩌쩡! 쩌쩌쩌쩡! 쿠콰콰콰콰콰!
빙판이 갈라지며 서 있던 자리가 그대로 함몰되었다.
“헉! 어? 어어어? 어어어어? 우와아아아아아!”
얼음 조각과 함께 굴러떨어지자 이내 발이 바닥에 닿는 느낌이 들었다.
빙판 아래가 생각보다 깊지 않다.
그렇게 생각한 아크는 안도의 한숨을 불어 냈지만 그것도 잠시, ‘미끄덩!’ 발이 바닥에 닿는 것과 동시에 엄청난 속도로 미끄러져 내려가기 시작했다.
빙판 아래는 가파른 경사면이었던 것!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끝도 없이 미끄러져 내려간다.
그 와중에도 아크는 아머를 챙겨 넣고 황급히 삽을 꺼내 들었다. 크레바스로 떨어질 때처럼 삽질로 빙판을 긁어 멈춰 볼 생각이었다. 그때 눈앞으로 뭔가가 확 다가왔다.
마치 칼날처럼 날카롭게 솟아 있는 얼음 기둥!
이대로 얼음 기둥과 충돌하면 깔끔하게 반으로 갈라져 버리리라.
“이런 빌어먹을!”
삽질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아크는 황급히 삽을 집어넣고 페이드 스틸을 꺼내 들었다.
철컥! 철컥! 철컥! 퍼퍼펑!
집탄 사격으로 화염탄을 난사하자 얼음 기둥이 산산이 부서지며 흩어졌다.
그러나 얼음 기둥은 하나가 아니었다.
하나를 부수면 그 뒤에 또 하나, 또 하나, 또 하나!
아크는 숨 돌릴 틈도 없이 페이드 스틸을 장전하고 집탄 사격을 난사하며 미끄러졌다. 그렇게 얼마나 미끄러져 내려왔을까? 재장전 횟수 13번. 화염탄을 150여 발이나 난사했을 무렵, 경사 끝 부분에 넓은 지하 광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데구르르르, 털썩!
아크는 광장을 100여 미터나 굴러간 뒤에야 겨우 멈출 수 있었다. 탈진 상태로 얼음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있던 아크가 움찔움찔 고개를 들어 올렸다.
“헉헉, 이, 일단 어찌어찌 또 살아나기는 했는데…… 대체 여기는 뭐지?”
아크가 얼음 알갱이를 털어 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림잡아도 100여 미터는 될 듯한 높이의 천장에 거대한 고드름이 붙어 있는 엄청난 크기의 지하 동굴이었다.
크레바스로 떨어지고, 그곳에서 또 경사를 타고 엄청난 거리를 미끄러져 내려왔다. 대체 이곳이 어디인지, 얼마나 깊은 곳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먼저 확인해야 하는 것은 은하연방 기지와의 거리.
“GPS!”
-이 지역에서는 GPS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크레바스로 떨어진 깊이만 수 킬로미터.
너무 깊은 지하에 들어와 있는 탓인지 GPS마저 작동하지 않았다.
“젠장, 어디로 가야 할지도 알려 주지 않으면 나보고 어쩌란 말이야?”
아크가 한숨을 푹푹 불어 내며 중얼거릴 때였다.
갑자기 님프에서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근처에서 미약한 구조 신호를 수신했습니다.
동시에 님프에서 나침반이 떠올라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구조 신호? 그럼 여기 어딘가에 누군가 있다는 말이잖아? 어째서 이런 곳에…….”
잠시 고민하던 아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체불명의 구조 신호, 그게 적인지 아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은 딱히 뭔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니, 할 수 있는 일이 있어도 마찬가지다.
이곳은 게임 속. 게임 속에서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뜻하지 않은 신호를 찾았는데 무시할 수는 없는 일.
언제나 대박은 뜻하지 않은 상태에서 터지는 법이니까.
‘일단 이 구조 신호를 확인하는 게 먼저다!’
아크는 나침반을 확인하며 지하 동굴을 가로질렀다.
지하 동굴은 상상 이상으로 넓고 복잡했다. 게다가 님프도 지형까지 표시해 주는 게 아니라 무턱대고 방향만 보고 따라가면 막힌 곳에 다다르거나 길이 끊기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나 몇 시간 돌아다니다 보니 그런 지형에도 점차 익숙해졌다. 덕분에 점점 구조 신호에 접근해 가던 어느 순간.
길게 이어지던 길이 갑자기 넓어졌다.
“저, 저게 뭐야?”
++고대 외계 문명의 유적지++
당신은 혹성 벨타나의 지하에서 우연히 정체불명의 구조 신호를 수신했습니다. 그리고 그 구조 신호를 추적한 당신은 수백 년은 되어 보이는 고대 외계 문명의 유적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그 유적을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개척자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정보나 문명, 새로운 지역을 발견할 때마다 모험치를 얻을 수 있습니다. 모험치는 스폰서를 비롯해 여러 목적에 요긴하게 쓰이는 포인트입니다.
※모험치 +100
님프에서 정보창이 떠올랐다.
* SPACE 7. 피라미드 (1)
“흠.”
아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크레바스에 떨어져 도착한 지하 수 킬로미터의 지하 광장.
아크는 그곳에서 님프가 수신한 구조 신호를 따라 몇 시간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와 함께 님프에 떠오른 정보창에는 고대 외계 문명의 유적지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이건 아무리 봐도…….”
아크의 앞에는 거대한 석조 건축물이 세워져 있었다.
폭이 십여 미터나 되는 벽돌을 사각 뿔 형태로 쌓아 올린 건축물. 아크는 이런 건축물을 본 적이 있었다. 아니, 지구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건축물이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아크가 지하 광장에서 발견한 것은 바로 피라미드였다.
지구의 고대 건축물인 피라미드가 수백 광년이나 떨어져 있는 벨타나에, 그것도 지하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대체 왜?’라는 의문이 떠오르는 게 당연했다.
‘뭐 굳이 끼워 맞추자면 못할 것도 없지만.’
남자라면 대부분 경험이 있겠지만 아크 역시 한때 미스터리에 열광하던 시절이 있었다.
덕분에 다큐멘터리를 자주 챙겨 봤는데, 그런 프로에서 자주 나오던 게 바로 피라미드에 얽힌 미스터리였다.
피라미드가 만들어지던 당시, 수천 년 전의 기술로는 피라미드를 만드는 게 불가능하다. 그러니 피라미드는 당시 지구를 찾아온 외계 문명의 산물이라는 내용이었다.
뭐 지금은 우스갯소리로밖에 생각되지 않는 얘기지만.
“갤럭시안은 외계인의 존재를 당연시 여기는 미래세계를 배경으로 한 게임이다. 지구에 출몰하던 문어형 외계인이 자렌족이고, UFO 납치 사건을 벌이던 외계인이 그레이족이라는 설정인데 새삼 피라미드가 외계 문명의 영향을 받은 건축물이라는 게 문제 될 일은 없지.”
아크는 간단하게 정리하고 넘어갔다.
게임 속의 설정에 일일이 딴죽을 걸 이유가 없으니까.
그리고 아크 입장에서도 이 건축물이 실제 피라미드이기를 바랄 이유가 있었다.
“피라미드는 이집트 왕의 무덤이다. 왜 이런 곳에서 구조 신호가 흘러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이게 지구의 피라미드와 같은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면 이곳에 있는 것은 왕이나 귀족처럼 신분이 높은 외계인이겠지. 그리고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그 외계인들의 관습을 흉내 내서 왕의 무덤을 만들었다면 이 피라미드 속에도…….”
고대 이집트인들의 관습!
왕의 미라와 함께 부장품을 묻는 것이다.
현대에서 고고학자의 탈을 쓴 도굴범들이 눈에 불을 켜고 피라미드를 찾아다니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학술적이라거나, 역사 조사라거나 하는 것은 90%가 핑계. 진짜 목적은 왕의 미라와 함께 피라미드 속에 매장된 부장품을 도굴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어쩌면 여기에도 부장품이 숨겨져 있을지도 몰라!’
띠링, 황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아크의 촉이 섰다.
이곳은 아직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유적지다. 다시 말해 누구도 이 피라미드를 털지(?) 않았다는 말이다.
잘만 하면 부장품을 독식할 수 있다는 뜻!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더니.’
거기까지 생각하자 감격의 쓰나미가 밀려들었다.
발렌시아의 계략에 걸려 낙오병이 된 탓에 라마족에게 개처럼 쫓기다 크레바스에 떨어졌다. 그런데 설마 지하 수천 미터 속에서 이런 유적지를 찾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것도 어마어마한 보물―아마도―이 숨겨져 있는 피라미드를! 아마도 발렌시아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땅을 치며 후회하리라. 그런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아크는 머릿속에 엔돌핀이 넘쳐흐르는 기분이 들었다.
“우케케케! 몽땅 쓸어 담아 주마!”
그때부터 아크는 눈에 불을 켜고 피라미드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몇 시간 동안 주변을 샅샅이 뒤져도 들어갈 수 있는 통로는 보이지 않았다.
“뭐야? 이거 설마 그냥 모양만 피라미드를 닮은 조형물은 아니겠지?”
슬슬 불안해졌다.
그러나 아크는 곧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부장품이 있는지 없는지는 둘째 치고 이게 그냥 조형물이 아니라는 건 분명해. 님프가 수신한 구조 신호는 이 피라미드 안에서 나오고 있어. 분명 이 피라미드 속에 뭔가 숨겨져 있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어. 하지만 도통 문을 찾을 수가 없으니…….’
그때 아크의 머릿속에 ‘!’가 떠올랐다.
“가만? 생각해 보니 굳이 문으로 들어가야 할 이유가 없잖아?”
아크의 목적은 피라미드를 터는 것―이미 구조 신호 따위는 관심 밖이었다―. 다시 말해 도굴을 하려는 것이다.
그런 주제에 뻔뻔스럽게 문으로 들어가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 그리고 아크는 굳이 문이 아니라도 들어갈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이것!”
빠빠빠빠! 빠빠빠빠!
아크가 번쩍 들어 올린 것은 삽이었다.
벨타나에서 절망에 빠져 있던 아크를 구원해 준 삽질!
새삼스럽지만 아크가 삽질 스킬을 배우게 된 것도 박물관을 털기 위해서였다. 그 비전(?)의 기술을 지금은 식량을 구하는 데 쓰고 있지만 본래는 당당한 도굴용 스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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