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451)
아크 더 레전드-451화(451/875)
[451] SPACE 1. 나타나다! (1)애니메이션이 대체로 그렇다.
주인공이 갖은 고생을 하며 적의 보스를 해치운다.
그리고 주인공은 영웅으로 칭송 받고 평화가 찾아오지만 그것도 잠시, 보스는 뭔가 되도 않는 이유를 대며 뻔뻔하게 되살아난다. 뭔가 되도 않는 이유로 뻔뻔하게 더 강해져서!
정말 욕 나오는 상황이다.
‘빌어먹을!’
그래서 현우도 욕이 나왔다.
뉴월드 시절에 갖은 고생 끝에 해치운 최강의 인공지능 루시퍼. 애니메이션에서 보스를 해치운 주인공처럼 현우도 루시퍼를 해치운 덕분에 고생 끝 행복 시작!
잘 먹고 잘 살고 있었다.
그런데 놈이 되살아났다. 그것도 잘나신 정부 요인들께서 요모조모에 써먹을 요량으로 주물럭거린 덕분에 한층 업그레이드까지 돼서. 얼마나 업그레이드 됐냐 하면, 원자력 발전소의 제어 시스템을 장악하고 정부를 협박할 정도란다.
뭐랄까, 정말이지 기도 차지 않는다.
어쨌든 그게 현우가 갤럭시안을 시작하게 된 이유다.
물론 현우는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처럼 세계 평화를 위해 살신성인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덧붙여 루시퍼의 부활도 현우의 잘못은 아니다.
‘알 게 뭐야! 니들이 싸지른 똥은 니들이 치워!’
정말이지 이런 대사가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라왔었다.
그러나 차마 뱉지는 못했다.
이 역시 현우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이지만…….
-아크라는 유저는 필히 갤럭시안에 참가해야 한다. 만약 아크가 갤럭시안에 참가하면 원전의 통제권은 돌려주겠다.
루시퍼는 현우를 콕 짚어 지목한 것이다.
아니, 뭐 따지고 보면 원수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현우는 수천수만의 인명이 죽어 나갈지도 모르는 사태를 모른 척할 만큼 굳건한 심지(?)를 가진 인간은 되지 못했다.
그래서 GAME START!
이때 현우는 그 나름의 계산이 있었다.
‘분명 루시퍼에게 나는 원수다. 인공지능이 원수라는 개념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지는 알 도리가 없지만, 일부러 나를 지목해 불러들였다면 적어도 특별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기는 하다는 뜻이겠지. 아니, 루시퍼가 스스로 인간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나를 넘어설 필요가 있어. 돌려 말하면 빠르건 늦건 놈은 스스로 내 앞에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진짜 나타났다.
붉은학살자!
놈이다! 현우는 놈이 루시퍼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루시퍼가 현우 앞에 나타난 시기-예상보다 너무 빨랐다-도 그렇고, 대화할 때도 뭔가 현우가 기억하는 루시퍼와 미묘하게 다른-이건 감이다-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그간의 정황으로 미루어 80% 이상 확신하고 있었다. 놈은 루시퍼다! 놈이 지금까지 보여 준 모습은 그 외에는 생각할 수 없어! 라고 말이다. 그런데…….
-저는…… 가인, 김가인이라고 합니다.
몇 시간 전에 현우가 받은 전화의 내용이다.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었지만 목소리는 낯익었다.
최근에도 들어 보았다. 바로 그 점이 현우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귀가 잘못된 게 아니라면 그 목소리는 분명…….
“붉은학살자?”
현우가 눈매를 좁히며 물었다.
전화기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그’! 붉은학살자의 목소리였던 것이다.
현우가 모처럼 화창한 휴일에 어두침침한 카페에 앉아 있는 이유가 그것이다.
있을 리 없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전화를 걸어오다니?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아니, 루시퍼라면 맘먹기에 따라 전화회선을 재킹해서 만든 목소리를 전송하는 것쯤은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래, 차라리 그 편이 낫다.
그러나…….
-자세한 얘기는 만나서.
그리하여 불려 나온 곳이 바로 이 카페였다.
그리고 약속 시간에 맞춰 현우의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것은 당혹스럽게도(?) 컴퓨터가 아니었다. 사람. 혹시나 싶어 뒤통수를 훔쳐봤지만 콘센트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멀쩡한 사람. 평범한 20대 청년이었다.
‘&$%&$^^!^!$%!$!!!#&.’
덕분에 현우의 머릿속은 문자 그대로 패닉!
힘들게 끼워 맞춰 놓은 직소퍼즐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너무 갑작스럽고, 어이없고, 황당하고, 기가 막혀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생각나지 않았다. 현우가 허탈한 목소리로 입을 연 것은 한참이 지난 뒤였다.
“사람이었군.”
“사람이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어찌어찌하다가 정체불명의 집단에 납치되었다가 깨어나 보니 머리에 메모리 칩이 박혀 있었다거나, 혹은 밥 대신 건전지를 먹는다거나…….”
“전혀.”
쌈박하게 고개를 저으며 대답하는 청년.
현우는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 섞인 목소리로 재차 물었다.
“그런데도 네가 붉은학살자라는 말이지?”
“네.”
정말 시원시원하게도 대답한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이렇다. 붉은학살자는 루시퍼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루시퍼인 척 속이면서 지금까지 몇 번이나! 그렇다! 몇 번이나! 현우를 괴롭혀 왔다는 말이다.
……치민다!
성질 같아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대꾸하는 면상을 일단 한 방 갈기고 시작하고 싶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였다.
이유 없이, 아니, 이유가 있어도 패면 안 된다. 뭣보다 당장은 폭력보다 우선하는 욕구가 있었다.
현우가 눈매를 좁히며 훑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누구냐, 너는?”
“말했지 않습니까? 김가인이라고.”
“들었지. 하지만 내가 알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 텐데?”
“남의 이름을 두고 그런 거라니…….”
청년, 김가인이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웃어? 이 자식이 지금까지 사람을 바보로 만들어 놓고 지금 웃음이 나와? 빈정거리는 거냐? 아니, 빈정거리는 거지!
그게 결정타였다.
꾹꾹 눌러 오던 현우가 마침내 폭발했다.
“느물거리지 마, 이 자식아!”
현우가 벌떡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뒤로 밀린 의자가 넘어지고 거친 소음이 실내에 울렸다.
“네놈 이름이 가인인지 나인인지 따위는 관심 없어! 내가 알고 싶은 건 네 정체다! 대체 왜? 루시퍼인 척했지? 루시퍼는 어떻게 알고 있냐? 그리고 지금 와서 내 앞에 나타난 이유는 또 뭐고? 내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아낸 거야?”
“이런 반응일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김가인이 짐짓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일단 진정하고 앉으시죠. 공공장소에서 이건 좀 민폐 아닙니까?”
“민폐? 그게 네놈이 할 말이냐? 너! 네놈 때문에 그동안 내가 얼마나…….”
현우가 적개심이 활활 타오르는 눈으로 김가인을 노려보며 이를 갈아붙였다. 그러나 뒤늦게 이쪽 테이블을 기웃거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크게 숨을 들이켜며 앉았다.
그러나 노려보는 눈빛만은 거두지 않았다.
김가인은 그 눈빛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마주보았다.
그렇게 1분, 5분, 10분…… 오히려 노려보는 현우가 어색해질 정도로 긴 시간 동안 침묵을 유지하며 마주 보던 어느 순간, 김가인이 왠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저를 모르시는군요.”
“뭐?”
현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김가인의 말은 단순히 ‘너는 나를 모른다.’라는 의미보다는 ‘알아야 하는데 모른다.’ 쪽에 가까운. 아니, 더 나아가 왠지 실망했다는 감정까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문득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아타마스에서 붉은학살자와 처음 만났을 때였다.
당시 붉은학살자는 아크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갤럭시안의 아크가 아닌 뉴월드의 아크에게.
돌이켜 생각하면 그게 붉은학살자를 루시퍼로 착각하게 된 계기였다. 그러나 그가 루시퍼가 아니라면 그 말의 의미는?
‘이 녀석도 나를 만난 적이 있다는 의미다. 그때 내가 뉴월드의 아크인지를 먼저 물었으니 뉴월드에서 만난 적이 있다는 거겠지. 그럼 이 녀석은 뉴월드 시절에 나에게 원한을 품은 유저 중 하나인가? 그렇다면 용의자는…….’
……좁아지지 않았다.
새삼스럽지만 현우는 자타공인 뉴월드의 최강자다.
그런 칭호가 저절로 붙을 리가 없다. 최강을 자칭하는 수많은 유저를 밟고 올라서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칭호다.
다시 말해 최강이란 그만큼 많은 적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도 되었다.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유저만 100여 명!
실제로 현우가 최강자의 칭호를 받은 이후로도 그런 유저들의 도전을 몇 번이나 받았다. 그리고 현우는 그런 유저들에게 신―뉴월드 한정이지만―의 힘을 발휘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뭐 꾹꾹 밟아 줬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아크에게 원한을 품은 유저는 바퀴벌레처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일일이 기억하지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러 버린 것이다.
그러니 뉴월드 시절의 빚이 있다고 한들.
‘하지만 붉은학살자 정도의 실력을 가진 유저라면 기억에 남을 만도 한데…….’
기억을 탁탁 털어 봐도 딱히 짚이는 유저가 없었다.
잠시 기억을 더듬던 현우가 확인 차 물었다.
“일단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지. 그 원한이라는 게 뉴월드 시절의 얘기냐?”
“그 대답을 하기 전에…….”
김가인이 슬쩍 치켜 뜬눈으로 현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초면인 셈이군요. 그런 것치고는 말이 짧지 않습니까? 전 나름 예의를 갖추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김가인의 태도가 처음과는 미묘하게 달라졌다.
그는 스스로 밝힌 것처럼 붉은학살자다. 지긋지긋하게 현우를 따라다니며 시비를 걸었던 적이다. 게다가 루시퍼는 아니라고 하지만 들어 보니 뭔가 원한이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만난 김가인에게서는 딱히 그런 원한의 감정을 느끼기 힘들었다.
현우의 레이더(?)가 혼란을 일으킨 이유가 그것이다.
붉은학살자는 매번 현우를 만날 때마다 무슨 불구대천의 원수인 것처럼 승부욕을 활활 태우고 있었다. 그런데 자칭 붉은학살자라는 김가인은 처음 얼굴을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런 감정의 편린片鱗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때문에 이 둘이 동일인이라는 것을 실감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우가 알아보지 못한다는 말을 하는 순간 분위기가 180도로 변했다. 아니, 이제야 붉은학살자의 분위기로 돌아왔다고 해야 할까?
뭐 그냥 그렇다는 거다.
굳이 말할 필요는 없지만 현우는 이미 붉은학살자를 밟았다. 게임 속에서의 일이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시비를 걸어와도, 그러니까 놈이 현피-현실에서 보복하는 것-를 하기 위해 불러냈다고 해도 딱히 겁날 게 없었다.
현실의 현우는 뉴 월드에서처럼 무적은 아니라도 어디 가서 맞고 다닐 정도로 약한 사람도 아닌 것이다.
움찔할 이유 따위는 없다는 말이다.
현우는 눈빛을 같잖다는 듯이 마주보며 대답했다.
“우리가 어떤 사이지? 비록 게임 속이지만 서로 피를 본 사이다. 밖에서 만났다고 새삼 예의를 갖추는 게 더 우습지 않아? 꼬우면 너도 짧게 하든가.”
“그러지.”
김가인이 바로 반말로 대답했다.
막상 이렇게 나오니 이건 이것대로 열 받는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민증 까라고 하면 찌질해 보일 테니 일단 넘어가고. 어쨌든 김가인은 싸가지없이 반말로 말을 이었다.
“하던 말을 계속하자면…… 원한. 그래, 뭐 그렇다고 해 두지.”
“뭐? 그렇다고 해 둬?”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걸로 됐다는 말이다.”
“되긴 뭐가 돼? 장난하냐! 그럼 여기는 왜 나온 거야? 대체 나를 왜 불러냈는데?”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아마타스에서 만났을 때, 네가 나에게 질문했지. 내가 루시퍼냐고. 그때 대답했었다. 실력으로 알아내 보라고. 그리고 아마타스와 임펠투스, 생명의 나무 모함, 거기에 얼마 전의 쉬라바스티까지 총 네 번…….”
“밟혔지, 나에게.”
현우가 도발적인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그러나 김가인은 그저 슬쩍 흘겨봤을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천만에. 난 진 적이 없다. 아니, 제대로 된 승부도 아니었지. 번번이, 그래, 너는 번번이 나와의 정면 승부를 피하고 도망쳤으니까.”
“뭐? 이 자식이 또…….”
“됐어. 이제 와서 그런 것을 따질 생각은 없으니까. 그리고 내가 진 적이 없다고 한 것도 앞의 세 번째까지다. 네 번째는…… 그래, 인정하지. 그건 분명 나의 패배였다. 그래서 연락한 거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그러기로 했으니까.”
“뭐야? 뭐가 그리 당당해? 졌잖아? 졌다며? 그럼 좀 더 말이지. 져서 분하다던가, 아니면 패배자답게 비굴해진다던가 해야 하는 거 아냐? 그리고 이제 패배를 인정하고 약속을 지키겠다며? 그런데 모르면 모르는 대로 됐다니? 네놈 멋대로 쫓아다니며 시비를 걸다가 이제 와서 이렇게 얼렁뚱땅 넘어간다는 게 말이 돼?”
“그때 받은 질문은 내가 루시퍼냐는 거였지. 그리고 그 대답은 이미 충분히 했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이 자리에 나와 있는 것, 그게 무엇보다 확실한 답이니까.”
“그걸 지금 말이라고…….”
현우는 정말이지 터지기 일보 직전까지 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화를 내면 낼수록 김가인이라는 놈에게 말리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이런 식의 화법은 현우의 특기였다.
상대를 열 받게 만들어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게 만드는.
실제로 김가인은 의도적으로 현우를 긁어 대는 느낌이 없지 않았다. 그게 사실이라면, 그건 김가인이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도 되었다.
아니, 머리를 식히고 생각하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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