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453)
아크 더 레전드-453화(453/875)
[453] SPACE 1. 나타나다! (3)김가인의 말에 현우가 활짝 웃으며 끄덕였다.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루시퍼라는 적이 신경 쓰여서 내 근거지나 컴퍼니는 건드리지 않았다? 하지만 루시퍼를 해치우면 아무래도 상관없으니 박살을 내 주시겠다?”
“갤럭시안에서 ‘전력’이런 그런 거니까.”
“하긴 그래. 적어도 갤럭시안에서는 유저의 전투력이 능력의 전부라고는 할 수 없지. 컴퍼니를 키우고 뛰어난 부하를 영입하는 것도 유저의 능력. 그런 점에서 보자면 세력전이야말로 유저의 전력이라고 할 수 있겠지……라고 할 줄 알았냐? 이 자식 이거 완전 또라이 아니야? 어떤 미친놈이 ‘후후후, 일이 끝나면 네놈도 해치워 주겠다.’라는 말을 지껄여 대는 녀석과 한패가 되겠냐? 앙?”
“왜? 겁나나?”
김가인이 도발적인 눈빛을 던지며 말했다.
뻔한 수작이다. 자존심을 긁어 제안을 받아들이게 만들려는 짓이다.
애초에 김가인이 현우를 불러내 살살 긁어 대며 열 받게 만들었던 이유도 이것이리라. 감정적으로 만들어 자신의 페이스로 이번 협상을 이끌어가기 위해서.
‘무턱대고 쌈질이나 하는 놈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잔머리도 굴릴 줄 아는군. 하긴, 라마 진영에서 그만한 지위를 얻은 것이나, 몇 번이나 따돌렸는데도 번번이 내 앞에 나타났던 것만으로도 이미 어느 정도 머리를 굴릴 줄 아는 놈이라는 증명은 한 셈이지.’
김가인은 꽤 강한 유저다.
쉬라바스티에서 붙었을 때는 어찌어찌 이겼지만 솔직히 종이 한 장 차이였다.
다시 붙는다면 승산은 50 대 50.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대다. 아니, 솔직히 객관적인 전력만 놓고 보면 열세다. 뭐 그래도 지지 않을 자신은 있지만 어쨌든, 막상 만나 보니 주의해야 할 것은 그런 전투력보다 이쪽, ‘생각보다 머리가 좋은 놈’이라는 점이다.
‘그런 놈이 갑자기 안면을 갈아엎고 제휴를 제의한다. 루시퍼를 해치우고 나서 결판을 내자고. 뭐 지금까지 몇 번의 전투에서 1대1의 승부만 고집했던 것을 생각하면 실익보다는 명분을 중요시하는 성격일 가능성이 많아. 그렇다면 거짓말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무턱대고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도 없겠지. 하지만…….’
현우의 불이 실룩거렸다.
‘겁나냐고? 그런 말까지 듣고 물러날 수도 없지.’
도발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때문에 물러날 수 없는 일도 있다.
그리고 김가인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그는 이미 국정원과 관계된 유저임을 밝혔다. 서로 모르는 상태라면 모를까, 협력하기로 약속까지 하고 뒤통수를 친다는 것은 의도적인 방해.
루시퍼 사건의 중요도를 생각하면 아무리 원한이 있어도 고작 게임 속의 일로 그런 짓까지는 하지 못하리라.
뭣보다…….
-친구는 가까이 두고 적은 더 가까이 두라.
영화 <대부>의 대사다.
적은 눈에 보이지 않을 때가 더 위험하다는 뜻.
실제로 지금까지 현우가 곤란했던 것은 놈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생각하면 현우 입장에서는 받아들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현우 입장에서다. 김가인 입장에서는 먼저 그런 제의를 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바로 그 부분이 찜찜함의 이유였다.
“……왜지?”
현우가 슬쩍 김가인을 돌아보며 물었다.
“나로서는 민폐라고밖에 말할 수 없지만 네가 싸움을 걸어온다면 피할 수는 없겠지. 그럼 누가 해치우든 루시퍼가 사라지면 네가 원하는 방식으로 결판을 낼 수 있지 않나? 굳이 그런 수준 낮은 도발을 해 대면서까지 나와 손을 잡을 이유가 없을 텐데?”
“그 편이 기회가 더 많으니까.”
“기회?”
“너도 알고 있을 텐데? 나는 과거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너를 추적해 왔다. 때문에 루시퍼라는 녀석을 나만큼 잘 이해하는 유저도 없을 거다. 루시퍼 역시 과거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이런 일을 벌인 셈이니까. 그렇다면 답은 뻔하지. 루시퍼가 제시한 궁극의 목표. 그게 뭐든 루시퍼가 너의 존재를 알고 있다면 그 목표를 이루기 전에 틀림없이 네 앞에 나타날 거다. 그렇지 않나? 그리고 나는 어찌 됐든 루시퍼를 찾아야 하는 유저. 하지만 네 옆에 있으면 굳이 찾아다닐 필요가 없지. 기회는 저절로 찾아올 테니까. 뭐 너와 루시퍼가 서로 피 터지게 싸우다 빈사가 된다면 더 좋겠지.”
……역시 머리가 잘 돌아가는 놈이다.
“루시퍼한테도 관심이 있기는 하다는 말이군.”
“물론이지. 상대는 루시퍼. 국가 규모의 재해를 일으킬 수 있는 인공지능이다. 놈이 몬스터라면 사상 최강의 몬스터인 셈이지. 당연히 놈을 처리했을 때 받을 수 있는 보상 역시 전무후무. 뭣보다 의뢰주가 정부니까 말이지.”
……이 녀석도 루시퍼를 해치웠을 때 뭔가 보상을 받기로 계약한 모양이다.
뭐 당연하다. 국정원의 의뢰를 받은 유저라면 이미 기존의 가상현실 게임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으리라. 그리고 어느 게임이든 그 정도의 지위를 가지고 있으면 상당한 수입을 얻을 수 있다.
그런 게임을 무기한 방치하고 새로운 게임에 몰두하는 것은 그만한 손해를 감수한다는 뜻.
그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정당하다.
굳이 이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현우도 같은 입장이라서다!
“거기에 덤으로 하나 더 얻을 수 있는 것이 있지.”
“덤?”
“전설이라는 칭호다.”
김가인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서비스되고 있는 가상현실 게임은 많지만 아직 최강의 유저라면 너, 아크라고 대답하는 유저가 많지. 너만큼 한 게임을 오랫동안, 완벽하게 지배하고 있는 유저는 없으니까. 그런 네가 갤럭시안에 있다. 뿐만 아니라 다른 게임의 최강자들도 모여 있지. 그런 세계에서 네가 전설의 게이머로 불리는 시작점이 된 루시퍼를 해치운다면…….”
“나처럼 전설의 게이머라고 불릴 수 있다는 건가?”
“아니, 유일무이한 칭호다. 루시퍼 다음은 네가 될 테니까. 그러니까 겁난다면 거절해도 상관없다. 나야 네가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 놈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니.”
김가인이 다시 도발적인 눈빛을 던져왔다.
이에 대한 현우의 답변은…….
“너, 머리가 나쁘군. 그런 말을 듣고 내가 순순히 제안을 받아들이리라고 생각한 거냐?”
“거절하겠다는 뜻이냐?”
“아니, 승낙이다. 대신 그만한 대가는 받아야겠다.”
“대가? 대가라니?”
“네가 네 입으로 말했잖아. 루시퍼를 해치우면 전무후무한 보상에 전설의 게이머라는 칭호까지 얻게 된다며? 하지만 원래 퀘스트라는 건 몬스터를 해치우는 것보다 몬스터를 찾는 게 더 힘든 법이야. 그런데 너는 나와 동맹인지 제휴인지 맺으면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기회가 생기는 거잖아. 내, 덕, 분, 에! 날 죽이겠다고 떠들어 대는 놈에게 내가 왜 그런 기회를 공짜로 제공해야 하지? 알잖아. 세상에 공짜는 없는 거. 지금까지 네가 입힌 피해는 둘째 치고, 동맹인지 제휴인지 맺으려면 먼저 그만한 대가를 줘야 맞지 않겠어?”
“무, 무슨……!”
김가인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떠듬거렸다.
반응을 보니 아무래도 현우를 좀 만만하게 본 모양이다.
그런 조잡한 도발 따위…… 뭐 약간 효과가 있었지만, 맨땅에 헤딩해도 맨손으로 일어나는 법이 없는 현우다. 하물며 상대가 김가인, 붉은학살자라면 이것저것 따질 필요도 없다.
안면 몰수하고 뭐든 털어 낸다!
대가를 주지 않는다면 현우가 이제 김가인도 제가 무서워 도망갔다는 말은 하지 못할 거고, 받아들이면 뭐라도 챙길 수 있다. 이로서 선택의 기로에 놓인 것은 김가인. 말 몇 마디로 일방적으로 몰리던 상황을 180도로 바꿔놓은 것이다.
그리고…….
“……원하는 게 뭐냐?”
결국 김가인이 앓는 소리를 내며 물었다.
“글쎄? 그야 네가 뭘 줄 수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그렇다고 이런 상황에서 돈을 요구하면 왠지 삥 뜯는 것 같아 좀 그렇고. 아이템은 네가 뭘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니, 보여 달라고 해 봤자 어차피 진짜 좋은 아이템은 숨기고 허접 템만 보여 주겠지.”
“본론만 말해!”
“너무 겁먹지 말라고. 나도 상식이라는 게 있는 사람이야. 그러니 적당히 절충해서 제안하지. 하지만 그 전에 먼저 확인해야 할 게 있다. 쉬라바스티에서 붙었을 때 네가 마지막에 썼던 기술 말이야. 바닥에서 시커먼 손이 나왔던 스킬. 그게 대체 뭐냐?”
“……각성 스킬 말이냐?”
“그래, 그거.”
내내 마음에 걸리던 스킬이다.
순식간에 현우를 사망 직전까지 몰고 갔던 스킬.
아니, 만약 소울시티에서 구해 놓은 ‘생명의 오브’가 없었다면 확실하게 숨통이 끊겼으리라. 그러나 현우가 그 스킬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단순히 무지막지한 위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현우가 각성 스킬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무라티우스타에서 호크도 ‘파안破眼’이라는 각성 스킬을 발동시킨 적이 있었다. 시야에 닿는 모든 적에게 엄청난 대미지를 입혔던 장면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나 당시는 그게 호크의 상위 직업 스킬 중 하나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메가라돈에서 붉은학살자도 나락奈落’이라는 각성 스킬이라는 사용한 것이다.
‘아예 종족이 다른 가인도 같은 각성이라는 단어가 붙은 스킬을 사용했다. 그건 각성 스킬이라는 게 모든 유저가 배울 수 있는 공통 스킬일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현재 현우는 딱히 스킬이 부족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니, 배워 놓고 제대로 활용하는 스킬도 적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샴’으로 룬 문자를 융합할 수 있는 능력까지 생겼으니 아마도 스킬의 종류는 좀 더 늘어나리라.
‘하지만 스킬은 기회가 닿는 대로 배워 두는 편이 좋아. 어떤 스킬이 더 유용할지는 직접 배워서 써 보지 않으면 모르니까. 특히 전투용은 효과적인 스킬일수록 대기 시간이 긴 만큼 많이 배워 두면 배워 둘수록 좋아.’
게다가 호크의 ‘파안’이나 붉은학살자의 ‘나락’은 살짝 필살기 같은 느낌이 풍기는 스킬.
당연히 배우고 싶었다. 때문에 그 뒤로 짬이 날 때마다 인터넷을 검색하며 정보를 찾았지만 아직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 그건 아직 소수의 유저들이 독점하고 있다는 뜻.
김가인이 바로 그런 유저 중 하나다.
현우는 대가라는 말을 꺼내는 순간 곧바로 그 사실을 떠올린 것이다.
“그게 네 제안을 받아들이는 조건이다. 내가 각성 스킬을 배울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것을 지원할 것. 지금까지 죽이겠다고 쫓아다니다가 제휴를 요청하려면 그만한 요구는 들어줘야지. 미리 말해 두지만 난 아직 배우지 못했지만 각성 스킬이 뭔지 대강은 알아. 그러니 직업 스킬이니 뭐니 하는 말로 얼버무린다면 제안은 없던 일로 하겠다. 사실 나도 그쪽이 편해.”
“얼버무릴 생각은 없지만…….”
김가인이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좋다. 그 정도는 우호의 표시로 받아들이지. 뭐 여러 가지 의미에서 꽤나 위험한 우호가 되겠지만. 여러 가지 의미에서 말이야. 하지만 준비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다.”
“기다려 주지.”
“그럼 내 제안은 받아들이는 것으로 생각하면 되겠지?”
“네가 약속만 제대로 지킨다면.”
“알았다. 준비가 되는 대로 연락하지.”
그 말을 끝으로 현우는 김가인과 헤어졌다.
‘대체 이게 잘하는 짓인지 아닌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군.’
아직도 김가인이 루시퍼를 가장해 자신을 속여 왔다는 생각을 하면 울컥울컥 치민다. 덕분에 현우는 몇 달이나 삽질을 한 셈이 되었고, 루시퍼에 대한 정보도 원점에서부터 다시 찾아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게다가 아직 김가인의 정체도 잘 모른다.
국정원에 고용된 유저라는 것은 알게 됐지만 대체 무슨 원한이 있는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런 놈과 정말 제휴를 맺어도 되는 건가?’
역시 찜찜하다.
제휴라고는 해도 상대는 라마.
게임 속에서는 적대국이라 정식으로 동맹을 맺을 수 없다.
그건 놈이 언제든지 뒤통수를 때릴 수도 있다는 의미다. 물론 현우 역시 언제든지 뒤통수를 때릴 수 있지만.
‘적은 가까이 두라는 말도 있지만…….’
실제로 제휴가 맺어지면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데인저러스한 나날이 펼쳐지리라.
물론 그럴 가능성은 꽤 낮은 편이다.
애초에 그럴 의도였다면 놈이 이런 식으로 접근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굳이 국정원에 고용된 유저라는 사실도 밝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마냥 믿고 있기에는 김가인의 정보가 너무 적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명룡이 형에게 부탁해서 한번 알아볼까?’
슬쩍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이명룡이 알아낼 수 있는 정보도 김가인이 말한 것처럼 이름이나 전화번호, 주소 정도일 것이다. 이미 직접 대면까지 했는데 그런 정보를 조사해 봐야 별 의미는 없다.
게다가 김가인은 루시퍼 헌팅에 친분이 있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현우의 전화번호를 알아낼 정도면 일개 대원이 아닐 확률이 높다. 아마도 관리자급의 인사. 경우에 따라서는 현우가 뒷조사를 했다는 사실이 김가인의 귀에 들어갈 가능성도 있었다.
아니, 뭐 그래도 상관은 없지만.
“괜히 구린 짓을 하다가 들킨 기분이 들 것 같단 말이지.”
실제로 그리 떳떳한 짓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뭐 좋아. 어차피 자주 연락하다 보면 놈에 대해서는 알 기회가 생기겠지. 설사 다른 꿍꿍이를 가지고 있어도 제휴를 맺고 바로 뒤통수를 치지는 않을 테고. 일단 놈에게 각성 스킬을 받아 내고 감시하다가 뭔가 수상한 낌새가 보일 때 쳐 내면 그만이야. 그래, 미리부터 이것저것 고민해 봤자 나만 손해지. 일단 각성 스킬을 배울 때까지는 신경 끄자. 어차피 지금은 명룡이 형에게 그런 부탁을 할 분위기도 아니고. 아! 젠장, 생각나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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