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461)
아크 더 레전드-461화(461/875)
[461] SPACE 4. 인사이동 (3)“왜 그러세요. 아직 정정한데. 뭐 죽지도 않는 몸이지만.”
-그렇기는 하지. 핫핫핫!
“호호호!”
……정말 놀고 있다.
“그런데 엘림이라는 건 뭐죠?”
-아, 엘림이란 말이네. 4대 천족이 번영하던 시대에…….
“뭘 묻는 대로 주저리주저리 대답하고 있어요?”
참다못한 아크가 울컥하며 소리쳤다.
-숨겨야 할 이유도 없다. 아니, 엘림은 은하계에서 가장 명예로운 전사다. 숨기기는커녕 자부심을 가지고 은하계의 안녕과 질서의 수호자로서 모든 종족의 귀감이 되어야 하지. 그것이 너, 그리고 나아가 과거 무라트의 의지를 후세에 전하는 것이다. 하물며 제피는 네 직원이 아니냐. 설마 성소가 너만의 장소다. 나도 너만의 스승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이 들락거리며 친하게 지내는 건 싫다. 뭐 이런 속 좁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엘림이면서?
“엘림이면서!”
제피가 밉살스러운 표정으로 덧붙였다.
때려 주고 싶다! 흠씬 패서 땅에 묻어버리고 싶다!
‘젠장! 여기 있다가는 내 명에 못 죽을 것 같다. 빨리 볼일이나 보고 나가야겠어.’
“지금 그런 말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요! 잊었어요? 무장보갑 얘기하고 있었잖아요! 신기! 엄청 중요하다는 신기! 입이 마르고 닳도록 찾아오라는 신기! 기껏 찾았더니 흡수율이 딱 멈춰서 언제 쓸 수 있을지도 모르는 신기! 뭔가 아는 게 있어요? 신기!”
-아아, 그거 말이냐?
토트가 귀찮다는 듯이 대꾸했다.
-어디까지 말했더라? 그래, 과거의 엘림도 무장보갑만큼은 바로 사용하지 못했다는 데까지였지? 그 이유는 무장보갑의 특성 때문이다. 무장보갑은 아머와 달라. 사용자와 완전히 하나가 되어야 진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엘림은 시대에 따라 변하지. 사람도, 심지어 종족까지. 때문에 무장보갑은 주인이 바뀔 때마다 스스로 주인의 전투 성향과 종족 특성을 파악해 최적의 상태로 변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그게 멈췄다고요.”
-당연하지. 네가 멈췄으니까. 말했지 않나? 무장보갑은 새로운 주인의 전투 성향과 종족 특성을 파악한다고. 그런 데이터를 언제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언제…….”
그제야 머릿속에 ‘!’가 떠올랐다.
주인의 전투 성향과 종족 특성을 파악해 최적의 상태로 변환한다. 말하자면 임펠투스의 연구소에서 연구하던, 배틀슈트와 사용자의 유전자 정보를 맞추는 싱크로 같은 과정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본래 싱크로는 라마의 배틀슈트를 다른 종족이 사용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 사용자의 DNA를 재배열하는 것이라면, 무장보갑은 무장보갑 스스로 주인의 신체에 맞게 변화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필요한 것이 주인의 데이터.
그리고 주인의 전투성향과 종족 특성이 드러나는 상황은 말할 것도 없이 전투다. 거기까지 이해하면 무장보갑의 흡수가 왜 메가라돈에서만 진행되었는지 답이 나온다.
거기서 죽어라 싸웠으니까.
그러나 노블리스-II를 타고 돌아올 때는 그냥 퍼 잤다.
그러니 진행이 멈출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뭐 이러쿵저러쿵 설명을 붙이지만 결국 경험치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뭐야? 별것도 아니었잖아.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성소에 오지 않는 건데.’
“그래서 있잖아요.”
-오, 그래? 핫핫핫! 재미있군!
……그랬다면 저런 눈꼴신 장면을 볼 일도 없었으리라.
왠지…… 뭐랄까…… 이유 없이 열 받는다.
“됐어! 난 볼일 끝났으니 나간다! 넌 여기서 살든 말든 맘대로 해!”
“쳇, 왜 저런데? 토트 님, 그럼 저도 이만 나가 볼게요. 저렇게 얘기해도 아크 님은 제가 챙겨 주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즐거웠어요. 다음에 또 봬요.”
-음, 부탁하네. 저래 봬도 엘림이니까.
“네, 걱정 마세요.”
더 있다가는 미쳐 버릴 것 같다.
이에 아크는 곧바로 결계를 작동시켜 밖으로 나왔다.
때문에 보지 못했다. 순간 안경 너머에서 음흉한 빛을 발하는 제피의 눈빛을. 그리고…….
-진행 중인 연구 과제.
연구 내용 : [언노운 아이템-영혼석] 연구 인원(1) : 제피
《진척도 : 50%…….》
제피의 연구가 단숨에 50%를 돌파했다는 정보를.
대체 왜?
* * *
-여, 여기는?
어둠 속에서 여러 개의 촉수가 꾸물거렸다.
뒤이어 불쑥 솟아올라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둥근 물체는 문어 대가리.
언뜻 해산물로 착각하기 쉽지만 이들도 당당한 은하계의 한 종족, 자렌족이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는 문어(?)는 부룸, R-14에 살던 자렌족의 장로였다. 그러나…….
-사, 살아 있는 건가?
부룸이 꾸물거리는 다리로 몸―이라고 해 봐야 머리와 다리뿐이지만―을 더듬었다.
방금 전, 아니, 정신을 잃고 있었으니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부룸은 정신을 잃기 직전에 얄짤 없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아니, 죽었어야 한다.
밝은 내일을 꿈꾸며 R-14를 타고 개척지로 향하던 도중 불의의 사고―실은 쓸데없이 업 돼서 무턱대고 워프를 한 탓이지만―를 당해 불시착한 미지의 혹성.
그러나 그곳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숲과 호수를 발견한 부룸은 자렌족의 신이 도왔다고 믿어 의심치 않게 되었다.
그리고 직전의 실수를 잊고 또다시 업!
-우와아아아! 물이다!
환호성을 터뜨리며 호수로 뛰어들었다.
호수 속에서 거대한 몬스터가 나타난 것은 그때였다.
마치 고래 같은 생김새의 몬스터가 불쑥 나타나 호수로 뛰어드는 문어들을 우걱우걱! 잡아먹기 시작한 것이다. 식겁한 장면이지만, 일족의 장로로서 보고 있을 수 없었다.
-구출해라! 아니, 놈을 공격하라!
부룸은 용맹하게 소리치며 몬스터를 향해 돌진했다.
……미친 짓이었다.
우걱우걱! 우걱우걱! 우걱우걱!
문어들은 달려드는 족족 몬스터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The End…… 아니, The End가 됐어야 한다. 그런데 살아 있는 것이다. 부룸만이 아니었다. 이미 몬스터의 똥(?)이 되었다고 생각했던 일족의 문어들도 모두 살아 있었다. 뒤따라 정신을 차린 문어들이 주위를 둘러보며 웅성거렸다.
-장로님, 저희가 어떻게?
-나도 모르겠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 있는지. 모르지만…….
쿠릉! 쿠릉! 쿠쿠쿠쿠! 쿠릉!
그때 갑자기 공간이 요동치며 굉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에 부룸과 문어들이 마구잡이로 뒤섞이며 비명을 터뜨릴 때였다. 어딘가에서 저항하기 힘든 압력이 그들을 빨아들였다. 그리고 긴 파이프 같은 공간이 이어지는가 싶더니!
푸륵! 푸륵! 펑!
어딘가에 우수수 쏟아졌다.
-크윽! 대체 뭐야? 무슨 일이…… 헉!
바닥에 내팽개쳐진 부룸이 고개를 들어 올리다가 흠칫 놀라며 입을 다물었다.
눈앞에 거대한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아니, 폐허라고 불러야 할까? 물방울을 뚝뚝 떨구는 종유석이 솟아 있는 천장 아래에는 두꺼운 먼지와 이끼, 거미줄 따위로 뒤덮인 수백 개의 석상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장면이 펼쳐진 것이다. 그리고 바로 앞에는…….
-몬스터!
부룸이 비명을 터뜨리며 물러났다.
고래를 닮은 몸에 지네 다리 같은 것이 빽빽이 붙어 있는 괴물. 바로 호수에서 부룸과 문어들을 몽땅 삼켜 버린 바로 그 몬스터였다. 몬스터는 등을 돌리고 있었는데, 문어들이 쏟아져 나온 것은 그 등 아래. 그러니까 엉덩이로 보이는…….
-자, 장로님, 혹시…….
-말하지 마! 아무 말도 하지 마!
부룸이 세차게 고개를 흔들어 현실을 부정했다. 그리고 잠시 이를 갈아붙이다가 울컥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이 자식! 이게 무슨 짓이냐? 그냥 싸? 그냥 싸 버리는 거냐? 우리가 얼마나 몸에 좋은지 알아? 우리는 말이다! DHA, EPA, 타우린 등 고밀도의 영양분이 말이지!
-아니, 장로님 지금 그런 말은…….
-핫! 그, 그렇지! 우하하하! 이 멍청한 몬스터! 어떠냐? 우리 몸은 엄청 질기다고! 네놈의 둥근 이빨 따위는 들어가지도 않아! 질기니까! 엄청 질기니까! 그러니까 제대로 소화도 시키지 못하고 그냥 쏟아낼 수밖에 없는 거다!
-아니, 그것도 아닌 것 같은데…….
쿠쿠쿠쿠! 쿠쿠쿠쿠!
몬스터가 몸을 돌린 것은 그때였다.
그저 몸을 돌리는 것만으로도 공간을 뒤흔드는 거구의 몬스터! 동시에 방금 전―아마도― 100여 마리의 문어를 삼켰던 아가리가 보이자 부룸이 헛바람을 들이켜며 뒷걸음 쳤다.
어쩌면 이 녀석은 그냥 껌으로 사용하기 위해 우리를 데려왔을지도 모른다! 질기니까! 심심할 때 씹는 용도로!
하지만 방금 전에 우리가 나온 곳은 분명 X…… 그럼 X로 나온 것을 다시 입에 넣는다는 말인가? 윽! 쏠린다! 상상만으로도 쏠린다! 아니, 그래도 놈은 몬스터니까 그럴지도 몰라!
공포에 질린 부룸이 이런 상상을 하고 있을 때였다.
후두두두둑.
부룸 앞에 너덜너덜한 헝겊 조각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이건 원래 부룸 일족이 가지고 있던 것이었다. R-14에서 파이프 청소를 할 때 사용하던 장사 도구(?).
과거의 굴욕을 잊지 말자는 의미로 가슴속에 품고 있던 걸레들이었다. 몬스터는 걸레를 쏟아 놓고 묵묵히 문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 대체 저놈이 뭘 원하는 걸까요?
-혹시…….
-여기를 청소하라는 뜻일까요?
-청소? 청소라고!
한 문어의 말에 부룸이 와락 미간을 찌푸렸다.
청소라니? 그게 무슨 뚜껑 열리는 소리란 말인가?
그동안 대체 왜 죽어라 돈을 모았는데? 대체 왜 목숨을 걸고 R-14를 벗어났는데? 이유는 오직 하나!
이제 그 지긋지긋한 걸레질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식들에게 그런 운명을 벗어나게 해 주기 위해서다. 그런데 왜 몬스터의 집(?)까지 걸레질을 해 줘야 한단 말인가?
모욕! 분노!
-못해!
부룸이 걸레를 걷어차며 소리쳤다.
-자, 장로님, 진정하십시오! 상대는 몬스터입니다!
-몬스터고 자시고 못하는 것은 못하는 거야!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식량 하나 얻기 위해 파이프 속을 기어 다니며 걸레질을 하는 청소도구가 아니야! R-14를 나온 그 순간부터 우리는 다시 자렌족으로 돌아갔다! 고작 몬스터 따위의 위협에 겁먹고 스스로 청소도구로 전락한다면 죽어 선조를 무슨 낯으로 볼 수 있겠는가? 아니, 살아서 아크와 젝슨을 볼 낯짝도 없다. 아크와 젝슨이 우리를 도운 것은 이런 곳에서 걸레질을 하라는 뜻이 아니었어! 다시 과거의 자렌족으로 돌아가 당당히! 그래, 그들은 우리에게 죽음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삶을 준 것이다! 그런데 고작 이 따위 몬스터의 위협에 굴복할 수는 없지 않은가!
-자, 장로님……!
-나는 설사 이 자리에서 먹물을 토하고 죽는 한이 있어도…….
쿠오오오오!
몬스터가 아가리를 벌리며 굉음을 토했다.
그리고 그 순간!
슥슥삭삭! 슥슥삭삭! 슥슥삭삭!
부룸과 문어들은 번개 같은 손놀림으로 걸레질을 시작했다. 자렌족! 너희들은 정말…… ㅜ_ㅜ
안습! 캐안습!
문어들의 불운은 계속된다!
* * *
“7,000골드?”
아크가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장난합니까? 우주선 1척 가격이 10,000골드 전후 아닙니까? 그런데 아예 새로 구매해서 달아 달라는 것도 아니고, 가지고 있는 기계를 장착하고 간단한 장비품 1~2개 추가하는데 7,000골드라니요? 누가 봐도 바가지 아닙니까?”
“나도 그렇게 얘기했네.”
“그런데요?”
“그건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저와 토리 님이 만든 기계는 단순히 갖다 놓고 볼트로 조인다고 설치되는 간단한 기계가 아닙니다. 설계도에 따르면 기체의 중앙 제어 시스템은 물론 균형 제어, 화기 관제 시스템까지, 기체의 모든 기기와 연결되어야 기능을 100% 발휘할 수 있습니다.”
하마드란을 대신해 대답한 사람은 제이였다.
그리고 그건 아크도 기계를 시연할 때 설명을 들어 알고 있었다. 우주선에 새로운, 단순히 기관포나 앵커를 추가하는 수준이 아니라 전반적인 기능에 관계된 기계를 증설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여러 시스템과 연결하려면 우주선을 거의 분해했다가 다시 조립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T-20에는 그런 작업을 할 수 있는 설비가 갖춰져 있지 않다. 때문에 실버스타를 대도시의 도크에 맡기려던 것이다.
그런데 하마드란이 받아온 견적은 최소 7,000골드!
우주선의 평균 가격의 70%에 달하는 금액이다. 아니, 중고라면 아예 살 수도 있는 돈이다. 그런 무지막지한 금액을 업그레이드 비용이랍시고 제시한 것이다.
아무리 절차가 복잡하다지만 아크 입장에서는 바가지! 아니, 사기라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지만 이유가 있었다.
“문제는 실버스타의 재질입니다.”
“재질?”
“네, 저도 좀 이상하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확실히 알았습니다. 실버스타는 일반적인 우주선과는 전혀 다른 재질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간단한 검사를 받은 것뿐이라 아직 정확하지는 않지만 골조를 포함해 70% 정도는 은하연방의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어 있지도 않은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고, 라마 합금도 30%가량 섞여 있다고 합니다.”
그건 형상 분해 융합 때문이다.
《어둠의 전조》 퀘스트를 할 때, 실버스타는 적에 피습당해 항해 불능 상태가 된 적이 있었다.
그때 아크는 임시방편으로 라마 우주선의 선체를 인양해 수리할 생각으로 시스템을 연결했는데, 엉뚱하게도 실버스타가 라마 우주선을 흡수해 버린 것이다.
현재 실버스타가 4등급 전함이 된 것이 그 때문이다. 아마도 30%의 라마 합금은 그때 섞여 들어간 것이리라.
제이의 말이 이어졌다.
“문제는 성분이 파악되지 않는 70% 부분입니다. 기계를 주문대로 장착하려면 실버스타의 내부 구조 변경은 불가피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런 작업에는 금속이 필요하죠. 하지만 말했듯이 실버스타의 70%는 성분조차 모르는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때문에 개조를 하려면 먼저 실버스타의 금속을 분석, 같은 성분의 금속부터 제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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