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474)
아크 더 레전드-474화(474/875)
[474] SPACE 9. 각성 퀘스트 (2)뭐 이제 와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우습지만.
붉은학살자가 루시퍼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이미 아크의 머릿속은 뒤죽박죽이 되었다. 그동안 속았다고 생각하면 솔직히 아직 울컥한 감정이 남아 있지만 그래도 붉은학살자도 도움이 되는 면도 있었다. 바로…….
-이거다.
이큘러스를 나온 직후.
붉은학살자가 캡슐에 밀봉된 메모리 칩을 건네주었다.
-암시장. 그것도 고대 아이템만 취급하는 암상인을 통해서만 구할 수 있는 메모리 칩이지. 이게 각성 스킬을 얻을 수 있는 퀘스트 시작 아이템이다. 하지만 돈만 있다고 구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먼저 암상인이 주는 자잘한 퀘스트를 몇 개 완료해야 받을 수 있어. 내가 좀 늦은 이유가 그거다. 이건 1회용이라 이전에 내가 퀘스트를 받았던 메모리 칩은 없어졌다. 그래서 하나 더 구해 온 거야. 암시장 출입 자격을 얻는 절차도 복잡하고, 암상인이 주는 퀘스트도 꽤 복잡하거든. 무슨 말인지 알겠냐? 나, 꽤 고생했다고.
그러거나 말거나.
“한 번밖에 사용하지 못한다고? 그럼 레피드는?”
-퀘스트 공유하면 돼. 한 번 퀘스트를 완료한 사람은 안 되지만 아직 한 적이 없으면 공유가 되지. 그건 이미 확인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단, 레벨 제한이 있지. 어이, 레피드. 지금 120은 넘었겠지?
“뭐.”
레피드가 끄덕였다.
레피드는 아직 붉은학살자가 탐탁지 않은 눈치였다.
하긴 얼마 전까지 루시퍼라고 믿고 있던 놈이 갑자기 평범한 유저로 커밍아웃을 해 버렸으니 이래저래 심사가 복잡하기는 하리라. 하지만 어쨌든 지금은 문자 그대로 같은 배―우주선―를 탄 사이.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불쾌감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뭐 어쨌든!
-전사들이여!
지금 우리는 위기에…….
그들의…… 혹성과 종족을 넘어…… 모두의 위기다.
……전사들에게 고하노라…… 힘을 모아 주기 바란다…… 그러나…… 모든 종족은 그만의 잠재 능력이…… 준비해 두었다…… 분연히 일어서는 자…… 시련을 넘어 각성하라…… 그리고…… 오라…… 너희들을 위해서…… 위대한 군신軍神의 혹성…… X-6345 Y-4524…… 이 메시지는 적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5초 후에…….
메모리 칩을 님프에 연결하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다음 순간, 메모리 칩이 시커먼 연기와 함께 타들어 가며 퀘스트 정보창이 떠올랐다.
《고대의 부름》
당신은 우연히 오래된 메모리 칩을 손에 넣었습니다.
메모리 칩에는 누군가가 보내는 메시지가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많은 부분이 훼손되어 전체 내용을 알아보기는 힘들었습니다.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추측할 수 있는 것은 그게 누군가가 불특정 다수, 그러니까 전사에게 보내는 메시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위협으로부터 도움을 받기 위해 수신자들의 잠재 능력을 깨워 주는 ‘무언가’를 준비해 두었다는 정도입니다. 그게 뭔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게다가 무슨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개척자입니다. 그동안 쌓은 역량을 동원하면 은하계에 숨겨진 또 다른 비밀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퀘스트 제한 : 레벨 120
‘하! 이래서 1회용이라고 했던 거군.’
아크가 시커멓게 변한 메모리 칩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모르고 메모리 칩을 연결했다면 꽤나 당황했으리라. 퀘스트 정보창에는 메시지에 적혀 있는 좌표가 기록되어 있지 않으니까. 받아 적어 놓거나, 바로 기억해 두지 못했다면 메모리 칩을 얻는 퀘스트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다. 방심할 수 없는 퀘스트.
그러나 아크는 방심해도 상관없다.
이미 퀘스트를 완료한 붉은학살자가 있으니까. 하지만…….
“이 퀘스트는 목적지를 찾는 것도 꽤 힘들다고 하지 않았어? 수수께끼니 뭐니 했잖아? 하지만 메시지에 떡하니 좌표가 적혀 있는데?”
-그게 너 같은 초짜를 헤매게 만드는 함정이다.
“함정?”
-그래, 그 좌표에는 아무것도 없다. 근처에 작은 소혹성이 몇 개 있지만 찾을 수 있는 건 몇 줌 되지도 않는 광석 찌꺼기뿐이지.
“아하!”
그 말에 아크가 히죽 웃으며 붉은학살자를 바라보았다.
붉은학살자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뭐냐? 그 괴상한 표정은?
“아니, 광석 찌꺼기밖에 없는 소혹성이라니, 마치 가 본 사람처럼 얘기해서 말이야. 물론 나 같은 초짜가 아닌 붉은학살자 님께서 그랬을 리는 없겠지만. 뭐 당연히 한눈에 함정인지 팍 알아챘겠지. 그래서? 한눈에 팍 알아본 진짜 좌표가 어딘데?”
-…….
붉은학살자가 똥 씹은 표정으로 아크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아무 일도 없다는 듯―화내면 진다고 생각한 모양이다―이 말을 이었다.
-……단서는 메모리 칩이었다. 그 메모리 칩은 내부 데이터가 유실될 정도로 오래된 물건, 그게 제대로 된 좌표를 찾는 열쇠였지.
지금 유저들이 사용하는 은하지도는 4강 체재가 구축되고 만들어진 것.
그 이전 시대에는 당연히 좌표를 계산하는 방법이 달랐다.
그래도 은하계 중심지역은 현재와 거의 차이가 없지만 변경 지역은 오차가 심할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은하계의 지도다.
불과 1이라도 실제 거리는 수만, 수십만 킬로미터!
고대 좌표만 가지고 찾아가면 당연히 헤맬 수밖에 없었다.
붉은학살자가 알아낸 게 바로 이것.
그리고 고대 좌표로 다시 계산해 찾은 장소가 바로!
웅웅웅웅! 파지지지!
끝없이 이어질 것 같던 이면세계가 돌연 스파크에 뒤덮이며 갈라졌다. 그리고 길게 갈라진 공간 너머로 붉은 빛이 감도는 혹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다.
붉은학살자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
그의 시선이 향한 붉은 혹성이 바로 메시지가 가리키는 장소. 개척지 경계에 위치한 이큘러스에서도 장장 17시간이나 걸리는 은하계 구석에 자리 잡은 혹성은 놀랍게도 태양계의 행성 중 하나인 마르스. 화성이었다.
‘설마 목적지가 화성일 줄이야…….’
-그래, 화성. 로마 신화의 군신 이름을 딴 마르스. 메시지에 적혀 있던 위대한 군신의 혹성이라는 게 바로 저 마르스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아크가 놀란 표정을 짓자 붉은학살자가 우쭐한 표정을 지으며 설명했다.
아닌 게 아니라 좀 의외이기는 했다.
R-14에서 창밖으로 지구를 본 적은 있지만 이스타나로 간 뒤로는 태양계 따위는 까맣게 잊고 있었으니까. 하물며 퀘스트를 하기 위해 다시 태양계에 오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러나 이제 와서 지구든 화성이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뭘 잘난 척하고 있어? 너도 엄청 헤맸다며?”
-뭐? 누가? 내가? 웃기는 소리!
“하! 뭐 좋아. 그렇다고 치지. 알았으니 안내나 해.”
-쳇!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군. 어이, 케이커, 좌표 알지? 거기 착륙해.
카인이 삐친 표정으로 말하자 아수라가 대기권―화성에도 대기권이 있었다!―을 돌파해 화성에 착륙했다.
《고대의 부름》 퀘스트를 레피드 님과 공유했습니다.
이에 아크는 퀘스트를 공유하고 하선!
‘흠, 뭐 이런 거겠지.’
아수라가 착륙한 지역에는 작은 마을이 자리 잡고 있었다.
마치 불모지에 버려진 마을처럼 빈티가 줄줄 흐르는 촌락이다. 그리고 허공에 약간 뜬 상태로 둥둥 떠다니는 해파리 같은 외계 종족. 흔히 말하는 화성인이다.
뭐랄까, 새삼 SF 게임이라는 생각이 든다.
화성에 내리자 붉은학살자가 여행 가이드처럼 설명했다.
-내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원래 화성도 오래전에는 꽤 번성했다고 하더군. 그런데 자원이 바닥난 이후 대부분의 화성인이 태양계 밖으로 이주해 지금은 보다시피. 원래 여기에 도착하면 이 촌락의 화성인들과 대화하며 정보를 모아야 하지만…….
물론 친절해서가 아니다.
제가 얼마나 많이 아는지, 그리고 제 덕분에 아크와 레피드가 얼마나 많은 절차를 생략하고 편하게 퀘스트를 진행하는지를 어필하기 위한 설명 시간이었다.
그러나 아크는 그딴 데 허비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계속 똑같은 소리 할래?”
-……저 건물에 있는 화성인과 얘기하면 돼. 그 NPC에게 받아야 하는 물건이 있으니까. 키워드는 고대 신전이다. 무슨 말인지 알지?
“오케이.”
아크는 레피드와 함께 바로 건물로 들어갔다.
그러자 꽤 나이가 많아 보이는 해파리가 슬쩍 고개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호오, 이런 변경까지 외계인이 찾아오다니 별일이군.
화성인에게 이런 말을 들으니 좀 웃긴다.
아크는 적당히 상대하며 얘기를 나누다가 본론을 꺼냈다.
“우연히 이곳에 고대 신전 같은 것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혹시 들어 보셨습니까?”
-고대 신전이라…… 음, 역시…… 가끔 찾아오는 외계인들은 대부분 그걸 찾지. 물론 들은 적이 있네. 아주 오래전 위기에 처한 은하계를 구하기 위해 위대한 신께서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신전. 그 신전에 들어가 신이 부여하는 시련을 이겨 낸 자는 잠들어 있던 힘을 깨워 위대한 전사가 될 수 있다고 전해지지.
“신전에 들어가는 데 필요한 증표 같은 것이 있습니까?”
-응? 자네가 그걸 어찌 아는가?
화성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뭐 붉은학살자에게 들었으니까.
물론 곧이곧대로 얘기할 필요는 없었다.
-음, 어디서 소문을 들은 모양이군. 그래, 맞네. 아까 하던 얘기 말인데, 사실 신전이 어디에 있는지는 나도 모르네. 그저 전해져 내려오는 말을 들었을 뿐이지. 위대한 신의 형상이 있는 곳에 신전의 입구가 있다고. 그리고 그 신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리들만이 찾을 수 있는 벨로나라는 특수한 광석이 필요하지. 마침 내가 몇 개 가지고 있네. 고대 신전을 찾는다면 필요하겠지. 하지만 그냥 줄 수는 없네.
“뭘 하면 됩니까?”
-대화가 빨라서 좋군.
화성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주변에는 얼마 남지 않은 우리 종족을 위협하는 흉포한 몬스터가 많이 서식하네. 카라스라는 놈들이지. 일단 그놈들을 쓰러뜨리고 증거로 송곳니를 모아오게. 일단 한 사람당 20개씩. 그만한 역량조차 안 된다면 신전을 찾아도 소용없을 테니.
그리고 떠오르는 정보창.
《고대의 부름》 퀘스트가 갱신되었습니다.
고대 신전을 찾아 화성에 온 당신에게 한 화성인이 카락스의…….
그러나 아크는 다 읽지도 않고 밖으로 나갔다.
읽을 필요가 없었다. 이전에 왔을 때 붉은학살자는 신전을 찾으며 꽤 오래 헤매는 동안 카라스를 엄청 잡아 퀘스트를 완료하고도 송곳니가 꽤 많이 남아 있었다.
-20개씩이지? 받아.
그리하여 밖에서 대기하던 가이드에게 받아…….
“다녀왔습니다.”
나온 지 1분도 안 되어 다시 Come back!
송곳니를 들이밀어 화성인의 눈을 이따만 하게 만들어 주었다.
-오오! 이럴 수가! 카라스를 이렇게 빨리 잡고 돌아오다니! 순간 이동을 한다 해도 이렇게 빨리 카라스의 송곳니를 모아 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지만! 뭐…… 아무래도 상관없지. 좋아, 자네들은 자격을 증명했네. 그러니 약속대로 벨로나를 넘겨주지. 수고했네.
-퀘스트 아이템 <벨로나>를 입수했습니다!
그리고 퀘스트 아이템 Get!
사실 아크는 이런 식의 게임 방식을 싫어한다.
아니, 지긋지긋하다. 뭐든지 원하는 대로 슥슥! 착착! 생각대로 진행되는 것은 뉴월드에서 질리도록 경험해 본 것이다.
뉴월드에서 아크는 ‘신’이니까!
그러나 아예 다른 세계에 와서 일일이 발품을 팔며 살다 보니 이런 쾌속 진행도 신선한 재미가 있었다.
‘가끔은 택시―고레벨 유저와 함께 다니며 쉽게 레벨을 올리거나 퀘스트를 깨는 것―도 나쁘지 않군. 특히 이것저것 할 일이 많을 때는.’
“어이, 여기는 끝났다.”
-벨로나는 확실히 챙겼지? 자, 그럼 이제…….
아크가 다시 밖으로 나오자 붉은학살자가 촌락 밖에 펼쳐진 넓은 적색 평원을 바라보았다.
한번 갱신했지만 진짜 퀘스트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끝도 없이 펼쳐진 저 넓은 대지에서 화성인에게 전설로만 전해져 내려오는 신전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수많은 우주 몬스터가 득실대는 곳에서. 때문에 아크와 레피드, 붉은학살자는 그때부터 쉴 새 없이 나타나는 몬스터와 밤낮 없이 피 말리는 전투를 반복…….
-여기다!
……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그런 고생은 이미 붉은학살자 혼자 할 만큼 했다.
백팩에서 카락스의 송곳니가 괜히 자동판매기처럼 나온 게 아닌 것이다. 덕분에 아크와 레피드는 중간 과정 생략하고 아수라를 타고 비행, 불과 몇 분 만에 400킬로미터의 거리를 주파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저게 화성인이 말한 신의 형상…….”
아크가 눈매를 좁히며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아수라 아래에는 지면이 수십 미터 높이로 솟아 올라와 있었다. 아마 아래에서 봤다면 그냥 산봉우리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상공에서 내려다보니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보였다. 사람의 얼굴, 윤곽과 명암이 완전한 사람 얼굴 모양을 만들어 내고 있었던 것이다.
화성의 인면人面 바위.
그곳이 최종 목적지인 것이다.
-내가 안내할 수 있는 곳은 여기까지다.
붉은학살자가 인면 바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고대 신전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저 인면 바위의 이마 부근에 있다. 하지만 입구를 찾아도 벨로나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지. 이마 부근을 찾아보면 무슨 마법진 같은 문양이 있고 중앙에 구멍이 뚫려 있는데, 거기에 벨로나를 끼워 넣어야 신전 내부로 공간 이동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번 들어갔던 사람은 벨로나를 가지고 있어도 들어가지 못해.
“안에는 뭐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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