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482)
아크 더 레전드-482화(482/875)
[482] SPACE 3. 트라이얼 (2)자신보다 2배 이상 큰 트라이얼을 보고 있자니 정말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던전으로 들어올 때 장비품을 모두 압수당하고, 레벨도 120으로 떨어지고, 능력치를 올려 주던 각종 효과까지 사라졌다. 거기에 스킬까지 모두 봉인.
이미 그 상태에 익숙해져 있던 아크 입장에서는 클립톤 운석에 의해 힘을 잃은 슈퍼맨과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사이에 몇 가지 스킬을 되찾기는 했다.
그러나 전투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스킬들이었다. 원해서 그런 스킬을 찾은 것이 아니다. 이 망할 던전은 그게 아니면 여기까지 올 수도 없게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아크로서는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나름의 믿음이 있었다.
‘이 던전에서 시험하는 것은 전투 능력이 아니다. 아니, 1~2관문은 마그라나 흡혈 박쥐와 싸울 수밖에 없는 구조이니 전투 능력도 일정 수준 이상이 되어야 하지만 그보다 중요시 여기는 것은 상황 판단. 자신이 가지고 있는 스킬을 적절하게 운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런 맥락에서 생각하면 앞으로도 무리한 전투를 해야 할 일은 없을 거야.’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보스―라고 적혀 있지는 않지만!―라니?
“빌어먹을, 사람을 가지고 놀아도 유분수지.”
그러나 아무리 구시렁거려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 던전에서 아크는 철저하게 ‘을’. 선택의 자유 따위는 없었다. 이 던전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단 두 가지.
Dead or alive.
포기하고 죽느냐, 발악하며 사느냐뿐이다.
뭐 이쯤 되면 이미 선택의 문제도 아니었다.
한다! 아니, 해 보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때까지만 해도 아크는 아직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어찌 됐든 이 던전은 일종의 시험이다. 시험인 이상 풀 수 없는 문제를 던지지는 않을 거야. 전투용 스킬을 선택하면 여기까지 올 수 없다는 말은, 반대로 생각하면 저 트라이얼이라는 놈은 전투용 스킬이 없어도 이길 수 있는 상대라는 뜻이기도 해. 물론 마지막 관문이니 쉬울 리는 없지만 적어도 지금 내 상태로도 이기지 못할 상대는 아니라는 말이다.’
침착하게 생각하면 이런 답이 나오는 것이다.
어찌 됐든 이길 수 있는 상대다!
그렇다면 겁먹을 이유가 없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당혹감이 사라지고 전의가 용솟음쳤다.
“좋아, 어디 붙어 보자고!”
아크가 호전적인 표정으로 검을 고쳐 쥐었다.
그리고 힘차게 바닥을 차며 트라이얼을 향해 돌진했다.
그게 신호가 된 듯 우두커니 서 있던 트라이얼이 기음을 발하며 몸을 돌려세웠다.
그 뒤를 따라 아크의 가슴둘레만 한 두께의 팔이 회전하며 날아들었다. 마치 폭풍처럼 주변의 공기를 말아 올리며 날아오는 압도적인 질량의 주먹!
-코끼리도 스치면 사망!
이런 경고문이 붙어 있는 것 같은 주먹이었다.
그러나 핵폭탄이라도 맞지 않으면 BB탄보다 못한 법이다.
‘……느리다!’
아크의 입 끝이 살짝 치켜졌다.
물론 이건 아크의 체감하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폭풍까지 일으키는 주먹이 느릴 리가 없었다. 탄환처럼 빠르다고는 할 수 없지만 보통 사람 수준의 속도는 되었다. 그럼에도 느리게 느껴지는 이유는 트라이얼의 몸집 때문이다.
아크의 2배가 넘는 5미터 크기의 거인.
때문에 굳이 시선을 집중하지 않아도 예비 동작이 훤히 보인다. 자세를 잡기 위해 먼저 다리로 중심을 잡고, 속도와 파괴력을 증가시키기 위해 허리에서부터 어깨, 팔을 순차적으로 회전시키며 주먹을 내뻗는다.
이런 일련의 동작이 2배 이상 확대되어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물론 그런 움직임을 누구나 잡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잡아낸다 해도 누구나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부우우웅!
다름 아닌 아크다!
부우우웅! 위잉! 부우우웅!
매일 피 떡이 되면서까지 이명룡에게 무술을 배운 것은 맞는 게 좋아서가 아니었다!
역설적이지만 피 떡이 될 때까지 맞으며 무술을 배우는 이유는 맞지 않기 위해서. 정말 생사가 오가는 실전에서 그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다.
아니, 뭐 피도 눈물도 없는 이명룡과 함께했던 훈련은 다른 의미에서 실전보다 더 생사를 오락가락하게 만들었지만!
덕분에 아크는 전사로서 가장 중요한 것을 얻었다.
바로 간덩이다.
일격에 아크를 빈사 상태로 몰아넣는 최종 보스 같은 이명룡과 매일 대련을 하다 보니 간덩이가 이따만 해져 버렸다. 아니, 매일 빈사가 될 때까지 두들겨 맞는 사이에 머릿속에서 공포라는 감정 자체가 삭제되어 버렸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공포 면역!
그리하여…….
-코끼리도 스치면 사망!
트라이얼의 주먹에 붙어 있는 이런 꼬리표도 아크에게는 위협이 되지 않았다.
공포를 느끼지 않으면 상대의 움직임이 정확하게 눈에 들어온다. 하물며 2배나 되는 몸집의 움직임이라면 말할 필요도 없다. 그리하여 휙! 휙!
아크는 스텝을 밟으며 연이어 날아드는 주먹을 피하고 트라이얼의 품으로 파고 들어갈 수 있었다.
“자, 이제…….”
아크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거리는 불과 1미터, 아크의 간격이다!
“……내 차례다!”
카칵! 카칵! 카카카칵!
불과 한 호흡 만에 서너 개의 검광이 교차했다.
검의 궤적을 따라 불똥이 튀어 오를 때마다 트라이얼의 가슴에 시커먼 자국이 새겨졌다.
그러나 손아귀로 단단한 질감이 전해졌다.
마치 쇳덩이를 내리치는 감각이다. 아니, 실제로 트라이얼은 입방체에서 변형했지만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만큼 방어력이 높다는 말이겠지.’
그러나 아무리 단단해도 매에는 장사 없다.
그리고 지금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달리 쓸 수 있는 스킬도 없으니 아무리 단단한 놈이라도 패고, 패고 또 패고! 쓰러질 때까지 팰 뿐!
카칵! 카칵! 카카카칵!
쇳소리를 울리며 쉴 새 없이 튀어 오르는 불똥!
워낙 제한적인 상황이라 생각 따위는 할 필요도 없었다. 아니, 그럴 여유도 없었다. 전황은 아크의 페이스로 진행되고 있었지만 결코 유리하다고 말할 상황은 아니었다.
아직 맞아 보지는 않았지만 딱 보면 안다.
체급으로 말하자면 아크는 라이트급, 반면 트라이얼은 슈퍼 헤비급의 복서라고 할 수 있었다. 트라이얼은 아크가 9라운드까지 승점을 쌓아 가도 단숨에 뒤집을 ‘한 방’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놈의 생명력이 확실하게 0%가 될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런 전황이라면…….’
스텝을 밟으며 물러난 아크가 슬쩍 시선을 들었다.
그리고…….
‘헉! 이, 이게 뭐야?’
우뚝 멈춰 서며 헛바람을 들이켰다.
-트라이얼 HP : 98.7%
전투가 시작되고 대략 7~8분.
세 보지는 않았지만 그사이에 정확하게 박아 넣은 검격은 못해도 10여 회 이상! 그런데 정작 트라이얼의 생명력은 채 2%도 깎이지 않은 것이다.
“이, 이건 말도 안 돼…….”
아크의 입에서 허탈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한 방’에 전황이 180도로 달라질 수 있다. 그런 중압감을 이겨 내며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필사적으로 공격을 퍼부은 결과가 1.3%라니? 방어력이 높은 것은 짐작했지만 이건 그런 수준의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아크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것은 그게 아니었다.
-<인스턴스 던전 : 전사의 신전>에 카운트다운이 시작됐습니다.
앞으로 4시간 후까지 출구를 찾아 나가지 못하면 던전이 닫히고 강제로 퇴장당합니다.
《남은 시간 : 2시간 45분…….》
시야 상단에서 깜빡거리는 찜찜한 메시지.
아크의 머릿속에서 빠른 속도로 사칙연산이 이루어졌다.
7~8분에 1.3%의 생명력을 깎았다. 전력을 다했으니 지금 상황에서는 아마도 그게 한계. 그러나 도중에 실수를 하지 않고 끝까지 이 상태를 유지한다 해도 ‘100÷1.3=76.923076……’, 이런 전투를 ‘76.923076……’만큼 반복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걸 시간으로 환산하면 532분!
트라이얼을 쓰러뜨리기까지 9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건 실력이나 열정의 문제가 아니다.
‘……물리적으로 불가능!’
그런 절망적인 결론에 도달했을 때였다.
아크가 약간 간격을 벌린 채 멈춰 서자 트라이얼이 고개를 돌렸다.
순간 트라이얼의 눈에 푸른빛이 모여들었다. 단지 그뿐이었다. 뒤이어 뭔가 행동을 한 것도 아니고, 눈에서 느닷없이 레이저가 뿜어져 나온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퍼퍼퍼펑!
터져 나오는 섬광!
아크와 트라이얼 사이의 공간에서 폭발이 일어난 것이다.
이건 피하고 말고 할 것이 아니었다. 뭔가 날아온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갑자기 일어난 폭발을 무슨 수로 피하겠는가?
“큭! 이, 이게 무슨?”
폭발의 압력에 밀려난 아크가 당혹성을 터뜨렸다.
다행히 대미지는 크지 않았다. 몸이 튕겨진 것은 폭발을 일으킨 ‘뭔가’에 적중됐다기보다는 폭풍에 휘말린 탓이다.
스플레시 대미지를 입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수준. 문제는 당하고도 아직 그게 뭔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니, 파악하지 못했다기보다는…….
‘설마?’
그때 트라이얼이 팔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움켜쥔 주먹 안에서 푸른빛의 검이 솟구쳐 올라왔다. 맨주먹일 때도 부담스러운 상대의 손에 이제 검까지 들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더 충격적인 장면은 그다음이었다.
트라이얼이 수직으로 치솟은 검을 내리치는 순간!
위이이잉! 콰콰콰콰!
푸른 검기가 돌풍을 일으키며 날아왔다.
넋 놓고 있다가 피할 수 있는 속도가 아니다! 그렇게 판단한 아크는 황급히 자세를 낮추고 양손으로 쥔 검을 들어 올렸다. 거의 동시에 검을 통해 전해지는 엄청난 충격!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자세를 최대한 낮췄지만 소용없었다.
콰직! 텅-!
검을 통해 전해지는 저항하기 힘든 힘!
아크는 바짝 몸을 숙인 자세 그대로 떠올라 10여 미터 뒤의 암벽까지 날아가 처박혔다. 뼈가 산산이 분해되는 듯한 고통이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그러나 비명을 지를 틈도 없었다.
‘저, 저건 또 무슨……?’
트라이얼이 반대쪽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이번에도 푸른빛이 일렁이더니 총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뭐 트라이얼의 몸집을 생각하면 대포라고 불러야 맞겠지만 형태는 분명 총이었다.
아크는 총기를 사용하는 적을 부담스러워해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예전에는 부담스러워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수십, 수백 발의 탄환이 쏟아져도 타이밍만 잘 맞추면 궤도를 비틀어 회피할 수 있는 ‘소드 디펜스’라는 스킬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역시 봉인 상태!
철컥!
‘피, 피해야 한다!’
트라이얼이 방아쇠를 당기는 소리에 아크가 비명을 터뜨리며 몸을 날렸다.
그리고 낙법을 사용해 데굴데굴, 수 미터를 굴러갔다.
아크가 뭔가 이상함을 깨달은 것은 그때였다. 트라이얼은 분명 방아쇠를 당겼다. 그런데 당연히 들려야 할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바로 총성, 방아쇠를 당겼는데도 발포가 되지 않은 것이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섬뜩한 감각이 느껴졌다.
‘이, 이건 혹시? 맙소사! 설마 정말…….’
총성이 들린 것은 그 직후였다.
철컥! 철컥! 퍼퍼퍼펑!
마치 빈총을 격발시키는 소리가 두 번 더 울린 직후.
우레와 같은 소리가 울리며 아크를 따라 움직이는 총구에서 불길이 뿜어졌다. 뒤이어 총구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크기의 탄환! 아니, 거대한 파동!
콰콰콰콰쾅!
굉음과 함께 광장 상공으로 폭연이 확 뿜어져 올라왔다.
방금 전, 아크를 패대기치듯이 바닥에 처박은 폭발이 바로 이것이었다. 수상한 힘에 의해 공간이 폭발했을 때도, 검기에 밀려나 암벽에 처박혔을 때도, 아크는 보기만큼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헤아리기조차 힘든 전투를 치르며 몸에 각인된 반사 신경 덕분이었다.
그러나 그런 반사 신경이 이번에는 발휘되지 못했다.
그건 몸이 아닌 정신의 문제 때문이다.
“크윽! 이, 이건 분명…….”
폭발에 휩쓸려 치솟았다가 바닥에 처박힌 아크가 헐떡거리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일격! 일격에 생명력이 20% 가까이 증발해 있었다.
아크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치명적인 대미지라고 할 수 있었지만 당장은 그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처음 공간을 폭발했을 때는 그저 당혹스럽기만 했다.
그러나 검기를 맞고 날아갔을 때는 당혹이 의혹으로 변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의혹이 확신으로 변했다. 공간 폭발, 적을 밀어내는 검기, 그리고 탄환을 모아 발사하는 기술!
‘브레이크키네시스! 소닉소드! 그리고…… 집탄사격!’
이게 트라이얼이 사용한 기술의 정체! 놈은 아크가 던전에서 봉인당한 스킬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아크는 트라이얼이 사용하는 기술의 위력을 알고 있다.
원래 아크 거니까!
그런데 7~8분 동안 죽어라 패도 고작 1.3%의 대미지밖에 받지 않는 놈이 그런 스킬을 퍼부어 대고 있다. 검만 들고 있지 사실상 맨몸이나 다름없는 아크에게.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무리다!’
아크가 전의를 잃어버린 이유가 이것이었다.
지금까지 진 적은 있어도 전의를 잃어 본 적은 없다.
그러나 그것도 0.0001%라도 승산이 있을 때의 얘기다. 그러나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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