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483)
아크 더 레전드-483화(483/875)
[483] SPACE 3. 트라이얼 (3)설사 트라이얼이 스킬을 사용하지 않아도 일단 평타만으로는 제한 시간 내에 이길 수 없는 것이다.
‘내가 뭔가 잘못 판단하고 있었던 건가?’
아크는 이 던전에서 요구하는 것이 전투 능력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이전의 관문은 전투보다는 서바이버, 그러니까 생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때문에 비전투용 스킬을 선택해 온 것이다.
그런데 그게 판단 착오라면? 관문을 통과하는 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처음부터 완전히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말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 상태로는…… 이길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남은 시간은 2시간 남짓. 사실상 던전 공략은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따라서 이제 아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Dead or alive가 아니라 그냥 Dead!
굳이 선택한다면 안락사를 택하느냐, 끝까지 저항하다가 처참한 변사체가 되느냐 정도였다. 그리고 어차피 당할 죽음이라면 그나마 안락사가…….
“아니! 아니! 아니야!”
거기까지 생각하던 아크가 머리를 흔들었다.
‘죽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다 해도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어! 이 퀘스트 때문에 자원 채취도 직원들에게 맡겨 놓고 왔는데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돌아간다니? 그럴 수는 없어! 게다가 호크와 붉은학살자는 이 던전을 통과했다. 그리고 만약 레피드까지 통과한다면 아는 사람 중에 실패한 사람은 나밖에 없는 거야! 쪽팔려서 얼굴도 들고 다니지 못하게 된다고!’
얌전히 포기하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이 상태로는 승산이 없는 것도 사실이야. 그건 애초에 내가 선택을 잘못했다는 말이겠지.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처럼, 그렇다면 첫 단추부터 다시 끼우는 수밖에 없다. 물론 이제 와서 2시간 만에 다른 공략법을 찾기는 무리겠지. 하지만 이미 선택의 여지는 없다. 놈이 내 스킬을 사용하는 것은 둘째 치고, 이렇다 할 전투 스킬 하나 없이 제한 시간 내에 트라이얼을 쓰러뜨릴 가능성은 0%!’
전혀 가망이 보이지 않는다.
물론 전투 스킬 한두 개 챙겨 온다고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포기할 생각이 아니라면 0.0001%라도 가능성이 있는 곳에 걸어 보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리고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실행을 빠를수록 좋은 법!
‘차라리 잘됐군.’
시선을 돌린 아크가 한숨을 불었다.
1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트라이얼이 푸른 빛을 발하는 검을 회전시키고 있었다. 자세만 봐도 알 수 있다. 트라이얼의 동작은 아크의 광역 스킬 갤럭시소드의 기수식!
일단 발동하면 피할 수도, 아니, 피할 생각도 없다.
‘……죽자!’
아크가 검을 내려뜨렸다.
위이이잉! 콰콰콰콰! 콰콰콰콰!
뒤이어 아크는 해일처럼 밀려오는 수십 개의 검영에 뒤덮었다.
* * *
-오! 나왔군.
붉은학살자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 앞의 인면암에서 한 사내가 걸어오고 있었다. 적당히 갖춰진 아머에 권총을 차고 있는 금발의 사내, 레피드였다.
시간을 확인한 붉은학살자가 피식 웃으며 끄덕였다.
-아직 시간이 남아 있으니 성공했다는 뜻이겠지?
“그래, 하지만 누군가가 좀 더 친절하게 설명해 줬다면 더 빨랐겠지.”
-들어가기 전에 말했잖아. 저 던전은 들어가는 사람에 따라 겪는 상황이 다르다고. 경험자라도 난 너희들이 어떤 일을 겪게 될지 전혀 모른다고.
“무슨 말인지 알 텐데?”
레피드가 미간을 찌푸리며 째려보았다.
그러자 붉은학살자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뭐 일부러 얘기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 하지만 어차피 나와 아크의 계약은 각성 퀘스트를 진행하는 방법에 대한 정보를 주는 것이었어. 그런데 내 우주선에 태워 여기까지 모셔 오고 이렇게 기다려 주기까지 하고 있지. 고맙다는 말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난을 받을 이유는 없지 않나?
“네가 어떤 녀석인지 대강 이해되는군.”
-벌써 미운 털이 박힌 건가?
“딱히, 처음부터 네게 좋은 감정을 품은 적도 없으니까. 아니, 이참에 분명해 말해 두는데 넌 아직 내 적이다. 내가 너의 존재를 용인하는 것은 아크와 제휴인지 뭔지를 했기 때문이 아니야. 네가 루시퍼와 싸우기 위해 아크와 제휴하기로 했다는 말 때문이다.”
-너는 대체 루시퍼와 무슨…….
되묻던 붉은학살자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캐묻는 건 관두지. 어차피 대답해 줄 것 같지도 않고.
“알면 됐다.”
-뭐 나도 네가 어떤 인간인지 대강 눈치챘으니까.
“짜증 나는 녀석이군.”
레피드가 불쾌감이 뚝뚝 흐르는 눈으로 붉은학살자를 흘겨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주위를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아크는 아직인가?”
-뭐 적어도 너보다는 시간이 걸리겠지.
“역시…… 그런 거군.”
레피드의 말에 붉은학살자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그런 거다. 분명 저 던전은 들어가는 사람마다 겪게 되는 상황이 달라지지. 하지만 주어지는 과제는 나름의 목적성이 있어. 그리고 그 해답은 인면암을 통해 되찾을 수 있는 스킬에 있다. 때문에 저 던전은 보유한 스킬이 많지 않은 유저가 더 유리하지. 객관식 문제에서 선택지가 적을수록 유리한 것처럼. 하지만 아크는…….
“잡캐로 키우기를 좋아하는 놈이지.”
-잘 알고 있군.
붉은학살자가 피식 웃으며 끄덕였다.
-당연히 아크에게 저 던전은 나나 너보다 난이도가 높을 거야. 특히 마지막 관문이 그렇지. 마지막 관문은 그때까지 해 온 자신의 선택이 잘못됐다고 생각하게 만드니까. 실제로 그런 생각 탓에 마지막 관문에서 실패했다는 유저를 꽤 봤지. 과연 아크는 어떨까?
“그야 알 수 없지.”
레피드가 몸을 돌려세우며 대답했다.
“하지만 놈은 아크다. 나로서는 정말 짜증 나는 일이지만, 놈은 위기에 몰릴수록 머리 회전이 빨라지는 경향이 있지.”
-결국 아크도 성공할 거라는 말이군.
“뭐 딱히 바라는 바는 아니지만.”
-동감이야. 나도 딱히 바라는 바는 아니지만 아크가 성공했으면 좋겠군.
붉은학살자의 말에 레피드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그러자 붉은학살자가 씨익 웃으며 마주보았다.
-믿기지 않겠지만 진심이야.
‘그래, 고작 이 정도로 날 실망시키지 말라고, 아크.’
* * *
콰콰콰콰-!
격렬하게 뒤엉키며 밀려오는 무수한 검영!
같은 형태라도 아크의 검과 트라이얼의 검은 전혀 다른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크가 작대기라면 트라이얼은 기둥!
당연히 그 검으로 만들어지는 결과물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트라이얼의 검이 부챗살처럼 펼쳐지자 문자 그대로 기둥만 한 크기의 검영 수십 개가 떠오르며 저의 재난에 가까운 임팩트를 뽐내며 아크를 뒤덮어 버렸다.
그 검영이 휩쓸고 지나가자 아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니, 그렇게 됐어야 정상이지만…….
“그게 아니야!”
뽕!
경쾌한 소리와 함께 튀어 오르는 사람은 아크!
새삼스럽지만 아크는 트라이얼이 ‘갤럭시소드’를 발동시키기 전에 이미 이번 생(?)을 포기했다.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빨리 죽어 시간을 절약하는 편이 낫다. 그리하여 얌전히, 아니, 되도록 심하게 얻어 맞아 줄 생각이었지만!
‘정말 이게 최선인가?’
순간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아크가 생을 포기한 이유는 다시 시작해 전투 스킬을 하나라도 챙겨 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정말 그것으로 트라이얼을 이길 수 있을까?
답은 ‘아니다’였다. 놈의 무지막지한 방어력을 생각하면 그런데 고작 몇 개, 아니, 모든 관문을 거저 통과하는 방법을 찾아낸다 해도 보유할 수 있는 전투 스킬의 숫자는 최대 9개. 충분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아니, 설사 모든 전투 스킬을 가지고 있다 해도 승산을 장담할 수 없었다.
평타라고는 하나 일방적인 공격을 하고도 7~8분에 1.3%의 생명력밖에 깎아 내지 못했다. 전투 스킬이라고 평타의 10배, 20배의 공격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설사 모든 스킬을 가지고 있어도 4~5시간의 전투를 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오는 것이다.
……이건 뭔가 아니다.
‘게임 속에서는 육체의 피로가 쌓이지 않는다.’
지치는 것은 시스템이 유저에게 그렇게 느끼도록 만드는 것뿐, 파김치가 되어도 회복 마법 따위를 받으면 바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그게 현실에서는 1킬로미터도 못 뛰는 사람이 가상현실에서는 100킬로미터도 뛸 수 있는 이유다.
그러나 게임 속의 어떤 아이템이나 마법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
바로 유저의 정신적 피로.
가상현실은 과거의 게임처럼 키보드나 마우스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 덕분에 손목 터널 증후군 같은 부상(?)당할 걱정은 없지만 모든 조작을 뇌로 해야 하기 때문에 정신적 피로감은 과거의 몇 배에 달하는 게임이다.
그런 가상현실 게임에서 허수아비를 때리는 것도 아니고 일격필살의 몬스터와 4~5시간이나 전투를 한다?
‘호크나 붉은학살자의 실력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 둘이라도 그런 전투를 치르고 던전을 통과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아. 아니, 누구라도 무리다. 물론 이 던전은 인스턴스 던전. 내가 겪은 일을 호크나 붉은학살자도 똑같이 겪었다는 보장은 없어. 하지만 인스턴스 던전이란 결국 입장하는 유저에 맞춰 난이도가 정해지는 것. 돌려 말하면 트라이얼 역시 내가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적이라는 말이다. 이건 애초에 전제가 잘못됐다는 뜻이야. 모든 스킬을 가지고 있어도 이길 수 없는 적이 아니라, 제한된 스킬만 가지고도 이길 수 있는 적!’
느닷없이 아크의 대뇌에 내리꽂히는 생각!
이 던전은 스킬을 봉인한다. 때문에 아크는 착각하고 있었다. 트라이얼이 상상 이상으로 강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자신이 이전 관문에서 선택을 잘못했다고.
아니, 어쩌면 그게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스킬이 봉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적을 만났다면? 과연 그때도 필요한 스킬이 없어서 이기지 못한다고 생각할까? 아니다. 분명 가지고 있는 스킬의 범위 안에서 해결 방법을 찾으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크는 포기했다.
이곳에서는 ‘선택’이라는 것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몇 번의 실수를 경험하며 스스로의 ‘선택’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그게 아크가 포기하게 된 진짜 이유였다.
-너 자신을 알라.
던전 입구에 적혀 있던 문구였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한 가지가 존재한다.
‘바로 스스로를 믿는 것!’
아크는 이미 이곳에서 22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몇 번이나 시행착오를 거치며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스킬을 선택했다. 이제 와서 그걸 부정하면 아크는 말 그대로 풀리지 않는 미로 속에 갇히는 것과 다름없어진다.
그러니 믿는 수밖에 없다. 그게 최선이었다고.
‘그렇다면 남은 답은 하나! 지금의 나는 트라이얼을 이길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아직, 이기는 방법을 찾지 못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해야 할 일도 하나!’
“포, 기, 하, 지, 않, 는, 다!”
이게 검영이 날아오는 사이에 도달한 결론이다.
뭐 좀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하이드!”
땅속으로 몸을 숨기는 ‘하이드’!
덕분에 해일 같은 검영의 소용돌이를 피해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일단 ‘포기’에서 ‘방법은 있다’라는 쪽으로 뇌 회로가 바뀌자 머리가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레벨이 120으로 고정되는 던전이다. 그런 던전에서 아무리 보스라도 레벨 120의 평타에 대미지를 입지 않는다는 건 말도 안 돼. 그렇다면 답은 하나, 공격 방식이 잘못됐다는 말이다. 저런 몬스터는 십중팔구 약점이 있는 법. 먼저 그것을 찾아야 한다. 지금까지의 내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그 방법은…….’
“룬 문자 각인술! 하자스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힘, 하자스카!
허공에서 룬 문자를 형성하던 샤이어가 눈에 깃들자 푸른 안광이 뿜어져 나왔다.
그러자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음 공격을 준비하는 트라이얼의 몸 여기저기에서 각양각색의 무수한 반점이 떠오른 것이다.
척 하면 척, 아크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저거다! 저게 놈의 약점이다!’
아크가 검을 꽉 움켜쥐고 놈을 향해 돌진했다.
물론 트라이얼도 구경만 하고 있지는 않았다. 성큼성큼 다가오다가 아크가 돌진해 오자 우뚝 멈춰 서더니 자세를 낮추고 마치 활시위를 당기듯 검을 뒤로 당겼다.
그리고 힘차게 앞으로 뻗는 순간!
쇄애애애액!
검을 앞으로 향한 채 탄환처럼 쏘아져 날아왔다.
신검합일身劍合一! 검과 하나가 되어 적을 관통하는 카프레검술 4식, ‘피어싱’이었다. 그 속도는 거의 광속! 돌진하던 도중에 피할 수 있는 수준의 속도가 아니었다.
순간 아크의 발이 바닥에 미끄러지듯이 움직였다.
“늪지보행술!”
바닥에 닿은 발을 축으로 회전하며 ‘늪지보행술’을 펼치자 몸이 반대쪽으로 쭉 밀려 나갔다. 섬광으로 변해 돌진해 오던 트라이얼이 아슬아슬하게 옆을 스친 것은 그 직후였다.
‘젠장, 당할 때는 이런 느낌인 건가?’
반응이 0.1초만 늦었어도 트라이얼이 들고 있는 무지막한 검이 몸을 관통했으리라.
그런 상상을 하니 손발이 저릿저릿해지는 기분이다.
아니, 실제로 트라이얼이 스치고 지나간 옆구리는 미세한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저릿저릿한 감각이 전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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