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488)
아크 더 레전드-488화(488/875)
[488] SPACE 4. 인면암 너머…… (4)좀 더 잘난 척을 하기 위해서!
그러나 그런 이유가 전부는 아니었다.
아크와 붉은학살자는 이제 적은 아니지만 아직 동료라고 할 수도 없었다. 굳이 그 관계를 표현하자면 감정적으로는 적, 이성적으로는 아군이랄까? 이런 사람을 다루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나는 너보다 위에 있다.’는 생각을 머릿속에 심어 주는 것이다.
작전은 성공이다.
방금 전까지 아예 편까지 먹고 갈궈 대던 붉은학살자와 레피드가 아크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말할 필요도 없다.《고대의 부름-Ⅱ》, 각성 스킬을 배운 뒤에야 받을 수 있는 퀘스트니 십중팔구 그보다 강한 스킬을 얻을 수 있는 퀘스트이리라. 그리고 현재 그 퀘스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크 1명!
“눈앞에 있는 떡도 제대로 주워 먹지 못하는 무지몽매한 너희들에게 이 퀘스트를 공유시켜 줄 사람도 나밖에 없다는 말이지. 고맙지 않냐? 먼저 제휴를 청하고도 치사하게 유용한 정보를 숨긴 네게도 이런 은혜를 베풀어 주는 내가? 뭐 아직 공유해 주겠다는 건 아니지만.”
-으윽!
아크의 말에 붉은학살자가 울컥했다.
그러나 차마 입에 담긴 말―100% 욕이겠지만―을 내뱉지는 못했다. 원래 그런 것이다. 유저에게 레어 급의 스킬이란.
한때 기분으로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붉은학살자의 태도는 아크가 던전에서 느낀 울분을 풀어 주기에 충분했다.
“뭐 좋아. 이제 돌아가는 분위기는 알고 있는 것 같으니 퀘스트 공유도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지. 어쨌든 이, 몸, 만, 이, 찾아낸 퀘스트를 하는 곳은 여기가 아니니까 돌아가자. 어이, 뭐 해? 우주선 대기시키지 않고?”
-……알았다.
붉은학살자가 앓는 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대기시켜 놓았던 우주선을 호출해 탑승!
-케이커, 워프 엔진 가동을 준비해라. 좌표는 이큘러스…….
“아니, 아니지.”
아크가 혀를 차며 붉은학살자를 돌아보았다.
“손님께 행선지도 물어보지 않고 목적지를 정하면 쓰나, 기사 양반.”
-이큘러스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었나?
“그 전에 들릴 데가 있어.”
아크가 선장석에 앉아 계기판에 다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남의 우주선 선장석에서 이런 시건방진 자세를 취한다. 하물며 아크는 얼마 전까지 적이었다.
그런 오만 방자한 태도에 아수라의 라마 전사들이 살벌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지만 붉은학살자는 손을 들어 제지―그 역시 똥 씹은 표정이었다!―하며 물었다.
-어디냐? 들를 데가?
“거긴 말이지…….”
SPACE 5. 놈들이 온다! (1)
“우와!”
“저 아머 좀 봐!”
“휴, 난 언제나 저렇게 키워 보나.”
광장에 모인 유저들이 부러움의 눈길을 보내며 웅성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지구 궤도에 자리 잡은 우주 정거장 R-14. 아직 껍질도 떨어지지 않은 햇병아리들이 유년기(?)를 보내는 곳이었다.
당연히 돌아다니는 유저들의 수준은 뻔했다.
쫄쫄이에 단검 하나 달랑 차고 삐약삐약 걸음마를 시작하는 병아리들인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눈에 확 띄는 수탉 1마리가 등장했다.
번쩍번쩍 광채를 뿜어내는 장비품으로 몸을 휘감은, 고레벨의 풍모를 팍팍 풍기는 유저가 나타난 것이다.
뭐 그래 봤자 우주 개척지에서는 딱히 눈에 띄지도 않지만 쫄쫄이만 득실거리는 R-14에서는 시선 집중! 사방에서 감탄과 시샘의 한숨이 흘러 나왔다.
그런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유저는…….
“엇? 자, 자네는? 아크? 아크 아닌가?”
붉은 쫄쫄이들 사이에서 파란 쫄쫄이를 입은 검은 수염의 사내가 소리쳤다.
그렇다! 고레벨 포스를 팍팍 풍기는 유저는 다름 아닌 아크! 아크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뷰라드 님, 알아봐 주시는군요.”
“물론이지! 내가 어찌 자네를 몰라보겠는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대답하는 사람은 뷰라드, 한때 아크도 꽤 신세를 진 적이 있는 R-14의 신규 개척자 적응훈련센터의 관리를 맡고 있는 NPC였다.
“여기를 거쳐 가는 병아리들이 한 달에 수천 명이나 되지만 자네를 기억하지 못할 리는 없지. 자네만큼 여기서 오래 지낸 사람도 없지만, 자네만큼 성공해서 나간 사람도 없으니까.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더니, 역시 장난이 아니더군. 자네 소식은 종종 전해 듣고 있었네. 얼마 전에는 귀족 작위까지 받았다지?”
“어, 어이, 귀족이래!”
“귀족? 그게 유저도 될 수 있는 거였어?”
뷰라드의 말에 주변에 모여 있는 유저들이 웅성거렸다.
주위가 소란스러워지자 뷰라드가 짜증 나는 표정으로 그들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어이! 거기! 지금 이 몸이 지금 얘기 중이잖아! 시끄럽게 떠들면 확 우주로 던져 버릴 테다! 뭐? 임무 보고? 기다려! 젠장, 하여간 요즘 것들은…… 근성도 없지만 자네만큼 예의를 아는 놈도 없단 말이야. 어디까지 얘기했지? 아! 그래, 귀족. 내 훈련 센터를 거친 개척자가 귀족이 되다니, 나까지 어깨가 으쓱해지더군. 아니, 이제 나도 존대를 해야하는 건가?”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아크가 무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뷰라드 님은 제게 우주 생활의 기초를 알려 주신 분입니다. 어찌어찌 운 좋게 귀족이 됐다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뷰라드 님이 존대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이제 초보존인 R-14는 아크와 인연이 없는 곳이다.
뷰라드 역시 마찬가지. 그러나 어떤 상황이라도 NPC의 호감도는 일단 올려 두는 편이 좋다. 그런 사고방식이 완전히 몸에 배인 아크는 천연덕스럽게 뷰라드의 말을 받았다.
“크하하하! 역시 자네는 뭐가 달라도 다르군.”
뷰라드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끄덕였다.
“그래, R-14는 무슨 일인가? 설마 내 얼굴을 보러 왔을 리는 없고.”
물론 아니다.
“젝슨 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젝슨? 뭐야? 혹시 그 얘기가 자네에게까지 들어간 건가?”
“네? 그 얘기라니요?”
“젝슨 말이네. 요즘 거의 정신이 나가 있어. 대체 정신을 얻다 팔아먹고 일을 하는 건지 지난 한두 달 사이에 공기 순환 시스템이 몇 번이나 정비 불량으로 고장 났었네. 이전에는 한 번도 그런 실수가 없었는데 말이야. 게다가 잠도 제대로 못 자는지 가끔 사무실에서 만날 때 보면 얼굴이 시커멓더군. 자렌족이 떠난 직후부터 그런 것 같은데…….”
“네? 자렌족이 떠나요?”
“아, 자네는 모르겠군. 벌써 두 달은 된 얘기네.”
뷰라드의 대답에 아크의 눈이 동그래졌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아크가 R-14에 온 이유가 자렌족을 데려가기 위해서였다.
사실 그건 이미 오래전부터 예정되어 있던 일이었다.
노동력 확보 차원에서도 그렇고, 앞서 T-20에 자리를 잡고 있는 자렌족의 장로 바쿰에게 ‘자렌족의 증표’를 업그레이드 받기 위해서도 자렌족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이스타나와 R-14는 수만 광년이나 떨어져 있어 왕복하는 데만 이틀이 걸린다. 때문에 차일피일 미뤄 오다가 지금, 화성에 온 김에 R-14를 들른 것이다.
화성과 R-14의 거리는 약 7,700킬로미터.
이 시대에서는 엎어지면 코 닿는 거리밖에 되지 않으니까.
그런데 이런 상황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부룸 일족이 R-14를 떠났다니?
“어디로 말입니까? 아니, 우주선은 어디서 나서?”
“나도 자세한 내용은 모르네. 젝슨에게 물어보는 편이 빠를 거야. 그래, 잘됐군. 젝슨도 자네를 꽤 아꼈으니 자네 얼굴을 보면 힘이 좀 날지도 모르지.”
“감사합니다!”
아크가 인사를 하고 몸을 돌렸다.
“어이! 햇병아리들! 잘 봐라! 저 남자가 과거 R-14에서 업무 마스터로 불렸던 아크라는 개척자다. 물론 여기서 그런 업적을 쌓아 봐야 아무런 의미도 없다. 하지만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법! 작은 일에도 열의를 다 하는 사람은 언젠가 성공하게 되어 있다. R-14 졸업생 가운데 처음으로 귀족 작위를 받은 저 아크처럼! 너희들이 보고 배워야 할 게 바로 그것이다! 임무에 대한 헌신과 열정! 이 두 가지가 갖춰진다면 성공은…….”
뒤에서 뷰라드가 초보 유저들에게 일정 연설을 늘어놓는 소리가 들려왔다.
본의 아니게 고렙이 초보존에서 잘난 척하는 것 같아 살짝 뒤통수가 간지러워지는 기분이다.
아마 붉은학살자나 레피드가 함께 있었다면―붉은학살자는 라마족이라 출입 제한, 레피드는 귀찮다는 이유로 아수라에 남아 있었다― 빈정거리는 말 한마디쯤은 했으리라.
그러나 아크는 그런 데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젝슨 님!”
단숨에 7구역으로 뛰어온 아크가 사무실로 들어서며 소리쳤다. 그러자 책상에 엎드려 있던 사내가 목소리에 반응하며 움찔 고개를 들어 올렸다.
순간 자렌족으로 착각할 만큼 맨들맨들한 대머리를 보유한 사내는 R-14의 공기 순환 시스템의 관리자, 한때 아크의 상관이었던 젝슨이었다.
“아, 아크?”
젝슨의 상태는 뷰라드에게 들은 대로였다.
마치 며칠 동안 잠 한숨 못 잔 사람처럼 안색이 시커멓다.
건강이 심히 걱정스러워 보이는 얼굴이지만 당장은 그보다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자렌족이 여기를 떠났다고 들었습니다.”
“……떠났네.”
젝슨이 풀썩 고개를 떨구며 대답했다.
“우주선은 대체 어디서 구한 겁니까? 아니, 어디로 갔는지 아십니까?”
“우주선은…… 우주선은…… 아크, 도와주게!”
괴로운 표정으로 웅얼거리던 젝슨이 갑자기 와락 아크의 손을 잡으며 소리쳤다.
“도와 달라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게…… 그게 말이네…….”
머뭇거리던 젝슨이 한숨을 불어 내며 뭔가를 한 움큼 꺼내 들었다. 이어 젝슨이 머리를 부여잡고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크에게 중요한 것은 자초지종이 아니니 초입 부분은 적당히 건너뛰고…….
“……그래서 내가 네트의 중고 사이트를 뒤져 우주선을 하나 구매해 주었지. 비록 폐선 직전의 우주선이었지만 한때 명가로 칭송받던 하이드록 사의 제품이라 프레임은 아직 쓸 만했지. 한 번 싹 분해했다가 재조립하며 보강하면 아직 몇 년은 더 탈 수 있다고 생각했어. 아니, 그랬겠지.”
“그랬겠지?”
“그래, 이게 제대로 끼워져 있었다면.”
젝슨이 책상 위에 꺼내 놓은 나사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방금 전 젝슨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들이다.
“부룸 일족이 떠난 뒤에야 알았네. 이건 자렌 1호―부룸 일족의 우주선―의 워프 동력로를 고정시키는 나사야. 중요한 부품이라 분해한 김에 규격을 재조정할 생각으로 따로 모아 뒀던 것들이지. 그리고…… 까맣게 잊고 있었어.”
“에? 그, 그럼? 이게 없으면 어떻게 되는데요?”
“망하는 거지.”
젝슨이 퀭한 얼굴로 대답했다.
“부룸이 이 사실을 모르고 워프 항해를 했다면…… 아니, 했을 거야! 했겠지! 그럼 망한 거야! 워프 동력로의 진동을 상쇄시켜 주는 나사가 하나도 박혀 있지 않은 상태에서 이면세계에 진입하면 엔진이 과열되어 폭발이 일어날 수도…… 아니, 일어났을 거야! 났겠지!”
두두둥!
밑도 끝도 없이 밝혀지는 자렌 1호 폭발 사건의 진상!
그것은 자렌 1호가 중고 우주선이어서가 아니었다. 한껏 업된 부룸이 주책없이 무턱대고 워프를 해서도 아니었다.
원인은 나사!
젝슨이 깜빡해 버린 나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아! 내가 무슨 짓을 해 버린 건지…….”
젝슨이 양손으로 대머리를 감싸 쥐며 울먹였다.
이게 젝슨이 좀비 같은 몰골이 되어 버린 이유였다.
뒤늦게 실수를 깨달은 젝슨은 R-14를 드나드는 선원들을 찾아다니며 젝슨 1호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그러나 자렌 1호를 봤다는 선원은 1명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연줄을 이용해 은하연방의 국경 관리소에 확인해 봤지만 우주 개척지의 경계를 넘어간 징후도 없었다.
이에 젝슨은 선원들에게 자렌 1호의 수색을 의뢰했다.
그러나 제대로 상대해 주는 선원도 없었다.
일단 R-14를 드나드는 우주선은 90%가 은하연방의 관용기官用機였고, 나머지 10%도 물자를 운송하는 수송선, 상인의 우주선이었다. 바쁜 스케줄로 움직이는 상인이 사라진 우주선을 찾는, 기약도 없는 퀘스트를 수락할 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보다 큰 이유는 제대로 된 보상을 기대하기 힘들어서였다. 젝슨은 가난한 하급 공무원인 것이다!
그런데 젝슨의 눈앞에 생각도 못 했던 아크가 나타났다!
“이제 믿을 사람은 자네밖에 없네.”
젝슨이 덥석 아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나는 부룸 일족이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네. 분명! 분명 어딘가에 살아 있을 거야! 그냥 하는 말이 아니야. 하이드록 사의 우주선 프레임은 튼튼하기로 정평이 나 있어. 설사 워프 동력로가 폭발했어도 버틸 수 있을 만큼. 그리고 아직까지 인근에서 자렌 1호의 잔해가 발견되지 않은 것을 보면 어딘가 불시착했을 확률이 높아. 그러니 부탁이네. 자네가 부룸 일족을 찾아 주게. 부룸 일족은 수년이나 내 밑에서 고생하던 녀석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등을 떠민 것도 나야. 하다못해 그들의 시체라도 찾지 못하면 나는 죽어서도 눈을 감을 수가 없어!”
《사라진 자렌족》
당신은 은하계로 첫발을 내디뎠던 R-14를 찾아왔다가 젝슨에게 뜻밖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때 당신과 함께 일했던 자렌족 부룸 일족이 결함이 있는 우주선을 타고 개척지로 향하다가 실종됐다는 소식입니다. 그런데 그 기체 결함을 젝슨의 실수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자책감에 힘들어하던 젝슨은 당신에게 부룸 일족의 수색을 의뢰했습니다.
그러나 R-14의 공기 순환 시스템의 관리자라고는 해도 젝슨 역시 부룸 일족보다 그리 나을 것 없는 형편의 하급 공무원. 넉넉한 보상은 기대하기 힘들어 보입니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모른 척한다면 꿈자리가 사나울 테니까요!
※난이도 :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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