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49)
아크 더 레전드-49화(49/875)
[49] SPACE 9. 기지로……! (1)“아아……!”
하늘에서 무수한 은가루가 쏟아진다.
검은 하늘은 아늑한 침실 같았고, 귓가에 살랑거리는 바람 소리는 자장가 같았다.
이대로 눈을 감으면 행복한 단꿈에 빠져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에 슬며시 눈을 감으려는데 배가 고파 왔다.
그러나 아크는 걱정하지 않았다.
‘음식이 이렇게나 많은 걸.’
가방을 열자 컵케이크나 쿠키 따위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아크는 생크림이 잔뜩 발라져 있는 컵케이크 하나를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입을 크게 벌리고…… 빠각-!
“으악!”
아크가 비명을 터뜨리며 벌떡 일어났다.
욱신거리는 입을 움켜쥐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순간 행복한 환상이 깨졌다.
그리고 돌아온 현실은 문자 그대로 절망이었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컵케이크가 아닌 잘리만 광석이었다. 그리고 무수한 은가루가 아름답게 수놓인 아늑한 침실이라고 생각했던 곳은…….
휘이이이이-!
눈 폭풍이 휘몰아치는 벨타나 혹성!
정신을 차리자 뼛속까지 얼얼해지는 한기에 몸이 덜덜 떨려 왔다.
“비, 빌어먹을! 저, 정말이지 내, 내 팔자는 왜 만날 이렇게 꼬이는 건지.”
아크는 여기저기 붙어 있는 살얼음을 떼어 내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어제저녁 때만 해도 아크는 머릿속에 엔돌핀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열흘이나 헤매고 돌아다니던 피라미드를 탈출, 거기에 유니크 검과 고대 외계 문명의 정보, 사용법에 좀 문제가 있지만 별 5개짜리 스킬까지 얻었다.
그야말로 대박!
갤럭시안을 시작한 이후 이상하게 일이 꼬여 죽어라 고생만 해 왔던 지난날을 한 방에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런 기분은 피라미드를 나와 님프의 GPS를 작동시키는 순간 말끔하게 사라졌다.
-현재 위치에서 은하연방의 기지까지 : 532km
지상에 나와 GPS를 켜자 나온 메시지.
아크가 나온 곳은 기지에서 532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곳이었던 것이다.
“이, 이런 곳을 532킬로미터나 걸어가야 한다고?”
아크가 아득한 눈길로 눈 폭풍이 휘몰아치는 벌판을 바라보았다.
벨타나는 영하 50도를 넘나드는 극저온의 혹성.
물론 신체코팅―죄수용이지만―을 받은 덕분에 현재 아크는 그런 극저온에도 버틸 수 있는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몇 시간 동안 이리듐 채취 작업을 하거나 혹은 전투를 할 때나 해당되는 얘기였다.
‘532킬로미터라면 하루에 50킬로미터를 걸어도 열흘이 넘게 걸린다.’
열흘이 넘게 그 추위 속에서 지내야 한다는 말이다.
아무리 신체코팅을 받은 몸이라도 열흘 동안 이런 극저온 속에서 멀쩡할 리가 없었다.
한 번 체온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걷잡을 수 없었다.
몸은 돌덩어리처럼 굳어 제대로 움직여 주지도 않았고, 몇 번이나 아찔한 현기증과 함께 의식이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 추위는 신체코팅을 받은 몸에도 이상을 발생시켰다.
-체온이 한계 이하로 떨어져 모든 능력치가 20% 감소했습니다.
채 하루도 지나기 전에 이런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러나 이런 상태 이상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척박한 우주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개발된 신체코팅을 받으면 식량을 섭취하는 것만으로도 체온을 회복할 수 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실은 바로 그게 문제였다.
‘이제 남은 식량은 불과 5개.’
아크가 가방을 뒤적거리며 한숨을 불어 냈다.
친위대의 식량 보급을 담당하고 있는 아크의 가방은 항상 식량이 꽉 차 있었다.
혼자 먹는다면 한두 달은 너끈히 버틸 수 있는 양이었다. 아마도 그 식량이 그대로 남아 있다면 532킬로미터가 아니라 1,000킬로미터라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지금 아크의 가방에 남아 있는 우주 식량은 고작 5개. 나머지 식량은…….
-<잘리만 광석>, <잘리만 광석>, <잘리만 광석>…….
몽땅 잘리만 광석으로 바뀌어 있었다.
넘치도록 나오는 잘리만 광석을 챙기기 위해 싸구려 식량을 버렸던 것.
‘내가 떨어진 크레바스는 B-3구역의 방어 기지와 50킬로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었어. 그래서 만약의 경우에도 우주 식량 5개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기지와 532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으로 나올 줄은…….’
우주 식량 5개로 기지까지 가기는 무리.
심지어 눈 폭풍이 시작되어 기온이 더 떨어진 상황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음식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벌 받는다.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다.
역시 어른 말은 틀린 게 없었다.
잘리만 광석에 눈이 멀어 식량을 버린 아크는 제대로 벌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크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포기할 수 없었다. 여기서 포기하면 지난 열흘 동안 피라미드에서 올린 레벨 12가 단숨에 날아간다. 뭐 그래도 아이템은 건질 수 있지만 다른 지역보다 경험치 올리기가 몇 배나 힘든 벨타나에서 12레벨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
“방법은 하나! 식량이 떨어지기 전에 기지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때부터 아크는 식음을 전폐하고 눈 폭풍을 헤치며 행군했다. 덕분에 12시간 만에 70킬로미터를 진군했지만…….
“유니트 속에서 잠들어 버리다니!”
피로에 지친 아크는 걷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잠들어 버린 것이다. 접속 종료도 하지 않고 말이다.
때문에 아크가 꿈나라를 헤매는 사이 캐릭터는 그대로 영하 50도 속에 방치되어 만복도와 체온이 뚝뚝 떨어져 가고 있었다. 꿈속을 헤매다가 자기도 모르게 잘리만 광석을 꺼내 씹지 않았으면 100% 그대로 굶어 죽었으리라.
“빌어먹을, 그사이에 만복도가 20%나 떨어졌잖아.”
아크는 일단 식량을 꺼내 떨어진 만복도를 회복시켰다.
이제 남은 우주 식량은 고작 4개.
상황은 시시각각 절망적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살려면 움직여야 한다! 기갑무장!”
아크는 곧바로 배틀슈트를 꺼내 입었다.
두꺼운 배틀슈트를 입으면 체온이 떨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육체능력을 보강시켜 주는 갑옷이라 이동 속도도 빨라지고 전력 질주를 해도 만복도가 많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크가 12시간 만에 70킬로미터를 이동할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이것!
“달려라! 하이퍼 드론!”
배틀슈트를 입은 아크가 눈 폭풍을 가르며 내달렸다.
그렇게 30분, 모든 마나를 소모한 배틀슈트가 벗겨졌다. 그러나 아크는 멈추지 않았다.
멈추는 시간만큼 생존 확률은 낮아질 수밖에 없기에.
주린 배를 움켜쥐고 휘몰아치는 눈 폭풍을 뚫고 힘겹게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였다. 기계적으로 다리를 움직이던 아크가 움찔하며 걸음을 멈췄다.
‘……뭐지?’
처음에는 착각인 줄 알았다.
그러나 미간을 좁히며 집중해 보니 착각이 아니었다.
‘불빛? 틀림없어. 저건 불빛이다!’
저 멀리 보이는 둔덕 너머에 빛무리가 떠올라 있는 게 아닌가? 그냥 빛무리가 아니다. 인공적인 빛! 다시 말해 누군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래, 지금 내 님프에 등록되어 있는 것은 은하연방의 중심 기지와 근처의 몇몇 방어 기지뿐이다. 아직 내가 모르는 기지도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어쩌면 저 불빛은 은하연방의 주둔지 중 하나이거나 정찰 부대일지도 몰라! 그럼 보급을 받을 수도 있을 거야!’
아크는 기력을 쥐어짜 둔덕을 뛰어 올라갔다.
그리고 기대 어린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을 때였다.
“헉! 이, 이건 설마……?”
아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 * *
‘대체 뭘 하고 있는 거냐, 아크!’
금발 청년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아크의 행적을 추적해 네팔림에 들어온 금발 청년이었다.
그러나 안내 시스템을 검색해 보니 그가 찾던 아크는 그새를 못 참고 사고를 쳐 분쟁 혹성 벨타나라는 곳으로 강제징용을 당한 뒤였다. 그러나 그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는 다름 아닌 아크다.’
그가 아는 아크는 바퀴벌레보다 끈질긴 근성의 유저였다.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지만, 그가 아는 아크는 그 정도에 좌절할 유저가 아니었다.
언제나 그랬듯, 틀림없이 뻔뻔스러울 정도로 멀쩡한 얼굴로 돌아오리라.
‘차라리 잘된 건지도 몰라. 나는 이제 막 R-14를 나온 초보자. 하지만 아크는 나보다 한참 먼저 개척지에 들어왔다. 분명 그사이에 상당한 레벨을 올려놨겠지. 이런 모습으로 그런 아크를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 아크는 형벌을 받는 중이니 레벨을 올리기 힘들 거야. 나에게는 아크를 따라잡을 기회다!’
그는 열심히 사냥했다.
아크처럼 R-14의 자렌족에게 늪지보행술을 배운 그는 네팔림 남부의 늪지대를 돌아다니며 기계 생명체 나쿠마와 더 깊은 늪지에 서식하는 우주 몬스터의 씨를 말려 갔다. 그러다 보니 레벨이 쌓여 얼마 전에는 신체코팅까지 받을 수 있었다.
거기까지 걸린 시간이 보름. 그러나…….
‘아직이냐!’
여전히 아크는 감감무소식.
아크가 벨타나로 끌려간 지 20일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뭔가 이상하다. 아크가 그런 곳에서 20일이나 헤매고 있을 리가 없는데…….’
불안해진 금발 청년은 더 이상 참고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저질렀다.
탕-! 탕-! 탕-!
-대낮에 네팔림에서 총격전이 벌어지다!
-전투 안드로이드 세 대와 경비병 2명이 부상을 입다!
현장에서 체포된 피의자, ‘그냥 울컥해서 저질렀다’고 진술!
-묻지 마 살인, 이대로 괜찮은가?
스페이스 유니온의 안드로이드 협회, 강력한 처벌을 요구!
정부는 기계 생명체를 부정하는 ‘생명의 나무’ 단체가 연관됐는지를 조사 중!
그게 한동안 네팔림의 정보지를 들끓게 만든 묻지 마 살인 사건이었다.
네팔림 도시 한복판에서 사건을 일으킨 금발 청년은 경비병에 의해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그러나 수갑이 채워지는 금발 청년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져 있었다.
‘기다려라, 아크. 내가 간다!’
* * *
사사사삭! 사사사삭!
어둠 속에서 뭔가가 움직였다.
바닥에 바짝 붙어 바퀴벌레처럼 움직이는 그림자!
그림자는 듬성듬성 솟아 있는 바위와 바위 사이를 빠르게 이동하며 전진했다. 그러기를 잠시, 그림자는 이내 두꺼운 철 빔Beam이 울타리처럼 둘러쳐진 곳까지 다가갔다.
그림자가 슬쩍 고개를 들어 울타리 너머를 바라보았다.
‘휴, 정말 징그러울 정도로 많군.’
넓게 쳐진 울타리 안에는 엄청난 숫자의 몬스터가 우글거리고 있었다.
마치 사마귀의 앞발처럼 기역 자로 구부러진 날카로운 앞 발, 에일리언처럼 긴 머리통을 달고 꾸물거리며 기어 다니는 몬스터들은 바로 카락이었다. 울타리 안에는 라마족의 생체 병기 카락 수천 마리가 우글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걸 훔쳐보는 사람은 바로 아크였다.
‘설마 이런 곳에서 라마족의 기지를 찾아낼 줄이야!’
아크는 잠시 숨을 가다듬으며 방금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헉! 이, 이건 설마……?”
불빛을 발견하고 둔덕 위로 뛰어 올라갔던 아크.
아크가 둔덕 위에서 목격한 것은 엄청난 규모의 군사 주둔지였다. 그러나 그건 아크의 기대처럼 연방군의 기지가 아니었다. 줄지어 선 막사 사이를 돌아다니는 병사들은, 검푸른 피부에 뾰족한 귀에 푸른 안광을 뿜어내는 외계인, 라마족!
얼음 벌판을 헤매다가 엉뚱하게 라마족 기지를 찾아낸 것이다.
‘맙소사! 여기가 라마족 진영이었던 거야? 게다가 저 정도 규모라면 단순한 방어 기지가 아니야. 아마도 중앙 기지. 라마족의 근거지다!’
아크의 심장이 요동쳤다.
‘이건 어쩌면 엄청난 기회인지도 몰라.’
새삼스럽지만 벨타나 같은 분쟁 혹성의 전쟁은 상대 진영을 알아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
지원군과 물자를 보급할 수 있는 스타게이트와 병력을 부활시키는 페어리―이건 각 진영에 하나씩밖에 없었다―를 파괴하지 못하면 전쟁을 끝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라마와 은하연방은 비슷한 과학력을 보유한 탓에 인공위성이나 레이더 같은 최첨단 기기 따위는 오히려 무용지물. 게다가 벨타나의 대기는 자기장이 다른 혹성보다 몇 배나 높아 비행선도 띄울 수 없었다.
때문에 정찰 부대를 운용해 적군의 본거지를 찾는, 전 근대적인 전투가 주를 이루게 된 것.
그런데 아크가 라마족 본거지를 발견해 버린 것이다.
‘만약 이곳의 위치를 연방군 사령부에 알릴 수 있다면?’
전쟁의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적군 사령부의 위치를 보고한다.
어마어마한 공적치가 주어질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도 살아서 귀환했을 때의 얘기였다.
님프의 GPS는 유저가 이동한 루트를 자동으로 기록한다.
그러나 그 역시 완전한 게 아니었다. 그 기록을 영구적으로 보관하기 위해서는 페어리에 등록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해 님프에 주변 지역 정보를 모두 기록해도 페어리에 등록하기 전에 죽어 버리면 경험치처럼 초기화되어 버리는 것이다.
‘기지로 돌아가기 전에 죽으면 GPS 정보까지 지워져 이곳의 위치도 알아낼 수 없다는 뜻이다!’
살아서 귀환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동시에 살아서 귀환할 수 있는 확률은 더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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