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51)
아크 더 레전드-51화(51/875)
[51] SPACE 1. 이크람 (1)투투투투! 투투투투!
기지에서부터 아크를 추격해온 두 라마전사의 화기가 쉴새 없이 불을 뿜었다.
그때마다 지면에서 얼음알갱이와 함께 불기둥이 솟구쳐 올라왔다. 아크는 아직 익숙지 않은 운전솜씨를 총동원해 회피동작을 펼쳤지만 그 역시 한계가 있었다.
퍼퍼퍼펑—!
-엔진에 총격을 받아 출력이 급감하고 있습니다.
엔진에 또 다시 데미지를 받으면 폭발할 위험이 있습니다.
바이크 후미에서 폭음과 매연이 치솟으며 메시지가 떠올랐다.
‘이대로는 당하고 만다.’
판단이 서는 순간 아크는 핸들을 180도로 꺾었다.
이미 엔진에 데미지를 입어 바이크의 출력이 떨어졌다. 라마 전사들을 따돌리고 도주하기는 힘들어졌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제 아크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
‘죽든 살든 여기서 끝장을 보는 수밖에 없다.’
그 순간 ‘도주 모드’에서 ‘전투 모드’로 전환된 아크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적외선 스코프로 확인한 놈들의 레벨은 41과 42. 반면 내 레벨은 43. 레벨은 내가 조금 앞서고 있지만 놈들은 둘이다. 게다가 죄수 신분으로 전장에 배치된 나와 달리 놈들은 정예병. 장비나 전투 스킬은 나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는 않을 거야. 만약 놈들이 배틀슈트까지 가지고 있다면 승산은 거의 없다. 조금이라도 승산이 있게 만들려면 전황을 바꿀만한, 적어도 놈들을 당혹스럽게 만들만한 뭔가가 필요하다.’
그게 아크가 도달한 결론이었다.
그리고 그런 결론에 도달하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스킬이 있었다.
‘하지만…….’
아크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에 떠오른 ‘그것’은 아크조차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스킬이었기 때문이다.
그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스킬에 목숨을 거는 것은 그야말로 도박. 때문에 아크는 잠시 망설였지만 더 이상 고민할 여유도 없었다.
투투투투! 퍼퍼퍼펑—!
연이은 총격에 결국 좌측 엔진이 폭발해버린 것!
순간 중심을 잃은 아크는 미끄러지는 바이크에서 뛰어내려 바닥을 굴렀다.
‘어차피 지금은 도박을 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내 감을 믿어보는 수밖에 없어!’
주르륵 미끄러진 아크가 벌떡 몸을 일으키며 양팔을 들어올렸다.
이어 허공을 휘젓는 손에 푸른빛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빛이 만들어내는 것은…….
* * *
휘이이이이—!
끝없이 펼쳐진 어둠 속에 폭풍이 몰아친다.
영하 50도라는 극저온에 공기마저 얼어붙어 바람이 불 때마다 대기가 쩡쩡 소리를 내며 갈라지는 듯 했다. 그런 극한의 대지를 한 사내가 걷고 있었다.
“헉헉, 빌어먹을! 헉헉, 이 놈의 박복한 팔자가 어디 가겠어?”
하얗게 얼어붙은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구시렁거리는 사내는 아크였다.
“어째 일이 너무 잘 풀린다 싶었지.”
때는 바야흐로 열흘 전. 아크는 본의 아니게 낙오병이 되어, 본의 아니게 크레바스로 떨어져, 본의 아니게 피라미드에 갇혀버리게 되었다.
뭐 하나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벌어진 일이었지만 다름 아닌 아크다.
아크는 그 와중에도 기지와 재치를 유감 없이 발휘하며 피라미드를 공략, 열흘만에 12레벨을 올리고, 희귀광석인 잘리만 광석을 가방이 매어 터지도록 쓸어 담은 것도 모자라 파라오의 유물까지. 문자 그대로 피라미드를 탈탈 털어먹고 지상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확인한 GPS정보는…….
-현재 위치에서 은하연방의 기지까지: 532km
아크는 얼음덩어리로 뒤통수를 찍혀버린 기분이었다.
‘532킬로미터라면 하루에 50킬로미터를 걸어도 열흘이 넘게 걸린다.’
영하 50도의, 심지어 눈 폭풍까지 휘몰아치는 곳을 열흘 넘게 걸어야한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생존확률이 바닥을 박박 기어다닐 정도로 낮아지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식량이었다. 피라미드에서 우수수 떨어지는 잘리만 광석을 챙기느라 상당양의 식량을 버려 두고 온 탓에 식량이 5개밖에 남아있지 않았던 것.
정리하자면 아크는 달랑 식량 5개를 들고 영하 50도의 폭풍을 뚫으며 500킬로미터를 행군해야하는 처지. 그야말로 절망이라는 말을 적당히 풀어쓴 것 같은 상황이었다.
‘무리다. 아무리 희망적으로 생각하려해도 무리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
그러나 포기하는 순간 열흘 동안 올린 레벨 12가 몽땅 날아가 버린다.
결국 죽게 된다하더라도 스스로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살아서 돌아갈 테다!’
아크는 어금니를 악물었다.
그때부터 아크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사투가 시작되었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니, 실제로 처절한 사투이기는 했지만 사실 그 과정은 심심하기 짝이 없었다.
걷고 또 걷고. 걷고 또 걷고.
그냥 걷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런 기계적인 단순작업이 반복되니 의외의 문제가 발생했다.
처음 아크가 걱정했던 것은 이런 혹독한 환경 속에서 500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행군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신체코팅을 받은 아크의 육체는 의외로 강했다. 영하 50도의 눈 폭풍 속에서도 쉬지 않고 걸으니 적당한 체온을 유지하며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문제가 생긴 것은 정신 쪽이었다.
‘!#$!#[email protected]$$%$!&*%$%$$#…….’
걷고 또 걸어도 보이는 거라고는 지평선뿐인 대지를 걷고 또 걷는다.
그렇게 꼬박 하루를 보내자 틈만 나면 의식이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렸다. 한동안 멍한 상태로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면 엉뚱한 방향으로 걷고 있는 경우도 있었고, 심지어 한 번은 자기도 모르게 잠들어 그대로 급속 냉동이 될 뻔했던 적도 있었다.
‘이, 이대로는 안 돼. 이렇게 넋 놓고 있다가는 언제 냉동고등어가 돼버릴지 몰라. 의식을 잡고 있으려면 뭔가 생각해야해. 뭐든, 계속 생각할 게 필요해.’
그때부터 아크는 오만가지 생각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오래 전 사고로 중환자 실에 누워 있다가 기적적으로 회복한 이후 갑자기 해외 아동 돕기에 빠져 1년에 절반 이상을 해외에 나가 계시는 어머니와 계부 권화랑의 일이나, 한때 아크를 번민에 사로잡히게 했던 두 여자 로코와 레리어트 사이의 일까지. 그다지 달갑지 않은 기억까지 동원해봤지만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는 의식을 붙잡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 생각들은 이미 일어난 일의 회상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점점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있을 때였다.
‘맞아! 그게 있었지!’
퍼뜩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있었다.
피라미드를 나와 확인한 GPS정보에 충격을 받아 잊고 있었지만 아크는 아직 풀지 못한 숙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황금의 방에서 얻은 룬 문자 각인술의 사용법이었다.
‘대체 왜 스킬이 발동하지 않는 걸까?’
틀림없이 스킬을 배우고 그에 필요한 샤이어라는 광자생명체도 얻었다.
그럼에도 스킬을 발동할 때마다 도중에 캔슬 되어버리는 것이다.
‘혹시 스킬을 발동시키는데 샤이어 외에 다른 특수 아이템 같은 게 필요한 건가? 아니, 그런 아이템이 필요한 스킬이라면 정보창에 적혀 있었을 거야. 그럼 혹시 샤이어로 그리는 룬 문자가 정확하지 않았거나, 혹은 그리는 순서가 따로 있는 건 아닐까?’’
아크는 룬 문자를 수십 번 그려보며 실험해보았다.
그러나 그 역시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스킬을 배웠는데도 쓸 수가 없다.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뭐 덕분에 그 이후로는 갑자기 의식이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리는 일은 없었지만…… 이미 룬 문자 각인술의 비밀 풀기에 몰입해버린 아크는 그조차 의식하지 못했다. 그리고 남아도는 시간을 몽땅 룬 문자 각인술 관련 정보창을 읽는데 투자하며 행군하던 어느 순간.
‘가만? 그러고 보니…….’
꼬박 하루가 지난 뒤에야 이상한 점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은 스킬 정보창과 캐릭터 정보창을 동시에 띄워보니 명확해졌다.
-룬 문자 각인술(유저, 액티브): 광자 생명체 샤이어를 발현시켜 구상공간에 룬 문자를 새김으로서 샤이어의 잠재능력을 발현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이 룬 문자 각인술은 지금은 사라진 고대 외계문명 무라트가 사용하던 것으로, 당시 무라트가 벨린 성좌를 지배할 정도로 세력을 키우는데 이 기술이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샤이어로 룬 문자를 각인시킬 수 있습니다.》
*마나 소모: 10(+룬 문자의 마나 소모량)
“이럴 수가…….”
입에서 허탈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크가 황망한 눈으로 바라보는 곳은 스킬 정보창의 마지막 부분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했던 게임에서 스킬을 사용할 때는 마나를 소비했어. 그래서 스킬 정보창에 필요한 마나 량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캐릭터 정보창》
이름: 아크(R-02788) 레벨: 43
종족: 인간 직업: 개척자 범죄도: 3,500
생명력: 800(+15) 정신력: 450
힘 105(+3) 민첩 155 체력 155(+3) 지혜 15 지능 85 운 15
※칭호: 청소반장(민첩 +3)
※신체 코팅: 프리즈너
+프리즈너 코팅으로 활동 지역이 벨타나로 한정되었습니다.
+프리즈너 코팅을 받은 상태에서는 신체 정보가 은하연방에 귀속됩니다.
+프리즈너 코팅이 삭제되지 않는 한 다른 신체 코팅을 받을 수 없습니다.
‘역시 없다!’
그런데 정작 아크에게는 ‘마나’ 그 자체가 없는 것이다.
현재 아크의 캐릭터는 마나 대신 ‘정신력’이라는 수치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나 기초적인 부분이라 오히려 생각하지 못했던 함정! 스킬을 사용하는데 필요한 에너지가 없으니 발동할 리가 없었던 것이다. 이로서 룬 문자 각인술의 비밀이 풀렸지만…….
“어쩌라고!”
아크가 분통을 터뜨렸다.
모처럼 얻은 스킬이 있지도 않은 마나를 써야하는 스킬이라니? 뭐 이런 개뼈다귀 같은 일이 있단 말인가?
물론 갤럭시안에도 마나라는 존재가 있었다.
뭐 있으니 그런 마나를 사용하는 스킬이 존재하겠지만…….
그러나 아크가 아는 한 지구인-인간-은 기본적으로 마나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인간은 정보창에 보이는 것처럼 마나 대신 정신력이라는 수치를 사용하는 것이다. 마나는 적대종족인 라마의 기본 스텟이었고, 인간의 경우 마법사 계열의 신체코팅을 받아야 생기는 스텟이었다. 결국 마나를 사용하는 룬 문자 각인술은 라마족도 아니고 매지션 코팅을 받지도 않은 아크가 사용할 수 없는 스킬, 적어도 지금은 그림의 떡이라는 말이었다.
“별 5개 짜리 스킬이 그림의 떡이라니…….”
아크는 좌절했다.
인간인 아크가 갑자기 라마족으로 환생할 수 있을 리가 없었고, 훗날 신체코팅을 받을 수 있게 된다해도 스킬 하나 쓰자고 매지션 계열을 택할 수도 없지 않은가.
“정말 이대로 확인도 못해보고 포기해야하는 건가?”
아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가만? 마나?”
그 순간 아크의 머릿속에 떠오른 게 바로 라마 영웅의 배틀수트 하이퍼드론!
새삼스럽지만 하이퍼드론은 연방군의 배틀슈트와 달리 단순한 기계가 아니었다.
라마족이 연방군의 배틀슈트에 대적하기 위해 독자적인 마법공학으로 드론이라는 고대 마법 생명체를 변형시켜 만들어낸 생체형 배틀슈트. 때문에 하이퍼드론은 사용자와 별개의 에너지원을 사용하는데 그게 바로 우주에너지로 불리는 마나였다.
“만약 하이퍼드론을 입은 상태라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아크는 배틀슈트를 걸치고 스킬을 발동시켜 보았다.
“기갑 무장! 나와라, 샤이어! 룬 문자 각인술! 룬 이크람 발동!”
지금까지는 그렇게 룬 문자를 그려도 금세 녹아 내리듯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하이퍼드론을 입으니 상황이 달라졌다. 하이퍼드론을 입고 룬 문자 각인술을 펼치자 배틀수트의 마나가 줄어들며 허공에 선명한 룬 문자가 새겨졌다.
뒤이어 놀랍게도…….
-주위에 스킬의 타깃이 될 대상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룬 문자 각인술의 효과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아크는 실망하지 않았다.
“어쨌든 스킬이 정상적으로 발동된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주위에 타깃이 없어 효과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은 룬 문자 각인술이 전투 스킬이라는 뜻이야. 뭐 배틀슈트를 입어야만 사용할 수 있다는 게 좀 걸리지만 별 5개 짜리 스킬이다. 분명 굉장한 필살기 일거야!”
아크는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레벨 40대의 라마 전사와 사투를 벌여야하는 지금, 아크가 배틀슈트의 마나를 쏟아 부으면서까지 미확인 스킬을 발동시킬 수 있었던 것은 그런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스킬 정보창에 붙어있는 별 5개가 주는 신뢰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