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531)
아크 더 레전드-531화(531/875)
[531] SPACE 2. 아크 VS 발렌시아? (3)……멍청한 짓이었다!
‘갤럭시 소드’는 수십 개로 분열된 검영으로 일대를 무차별 폭격하는 스킬이다. 일단 발동하면 막아 내기 힘든 스킬!
그렇다. 일단 발동하면!
그러나 대부분의 광역 스킬이 그렇듯이 ‘갤럭시 소드’ 역시 발동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그게 불과 몇 초라도, 지금처럼 몇 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라면 서너 번 이상 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시간. 그게 접근전에서 ‘갤럭시 소드’를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였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되돌리기에는 늦었다.
카카카카! 터텅-!
분열하는 검영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검이 어깨에 쑤셔 박혔다. 순간 아크는 4~5미터나 튕겨 날아간 뒤에야 겨우 중심을 잡았다. 그리고 재빨리 자세를 잡고 검을 들었지만 발렌시아는 공격을 날린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역시 아크. 좋은 판단이다.”
이어지는 말에 아크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사실 아크가 4~5미터나 밀려난 것은 발렌시아의 공격 때문이 아니었다. 검이 어깨에 박히는 순간, 그 힘을 이용해 최대한 뒤로 몸을 날린 것이다.
공격이 들어오는 방향으로 체중을 이동시키면 대미지를 경감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후속 공격에 대비할 시간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발렌시아는 그것을 눈치챈 것이다.
아니, 뭐 발렌시아라면 그 정도는 검을 통해 전달되는 느낌만으로도 간파할 수 있었겠지만…….
“아까부터 계속 거슬리는 대사를 나불대고 있군.”
“또 뭐냐?”
“몰라서 묻냐? ‘역시 아크, 좋은 판단이다.’라니? 뭐냐? 그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말투는. 보통 그런 대사는 상대보다 강한 사람이나 나불댈 자격이 있다고. 적어도 세 번이나 진 주제에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다시 면상을 들이미는 놈이 입에 담을 말이 아니야!”
발렌시아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지도.”
그러니 더 열 받는다!
“바로 그게 마음에 안 든다는 거야! 넌 그런 캐릭터가 아니라고! 뭐 이상한 약이라도 처먹었냐? 왜 그래? 그냥 하던 대로 해! 사람 헷갈리게 하지 말고! 기분 더럽다고!”
뭐 가장 기분 더러운 건 급해 죽겠는데 끈덕지게 달라붙을 뿐만 아니라, 빨리 뒈지지도 않는다는 점이지만!
“나도 그랬지.”
발렌시아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벨타나에서 네게 죽었을 때는 사실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 실수였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파고스 화산에서 당했을 때는 자존심이 상했다. 실수로 치부하기 힘든 패배였으니까. 그리고 임펠투스에서 당했을 때는…….”
“뭐야, 다 기억하고 있잖아.”
“기억? 아니, 잊을 수 없는 거다. 그곳에서 내 자존심은 흔적도 없이 무너져 내렸으니까. 그때부터다, 너와의 승부가 더 이상 게임이 아니게 된 것이. 이렇게까지 분하고, 이렇게까지 비참한 것이 게임일 리가 없지. 그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맞아! 명상밖에 없어!”
“아니야!”
발렌시아가 발끈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이제야 발렌시아가 발렌시아다운, 발렌시아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크게 숨을 들이켠 발렌시아는 금세 다시 ‘난 진지하다.’ 모드로 돌변했다.
“내 손으로 네놈을 죽이는 것이다.”
그리고 말해 버렸다!
세 번이나 진 주제에!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라고 말해 주고 싶었지만, 발렌시아가 검을 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혹시나 싶어 말해 두지. 아크, 너도 진지하게 임하는 것이 좋을 거다.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다. 너를 이기기 위해, 오직 그 목표 하나만을 위해 난 마지막 남은 자존심까지 버렸다. 그리고 나 스스로 나를 바꾸기 위해 지옥에 몸을 던졌다. 아니, 이렇게 말해도 모르겠지, 너는. 그동안 내가 보낸 시간이 어떤 것이었는지.”
아니, 알고 있다.
한번 검을 섞어 보면 안다. 발렌시아는 확실히 이전과 달라져 있었다. 캐릭터도 캐릭터지만 검술 역시 이전에 붙었던 그와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느껴질 정도로.
그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겁나 힘들다! 그냥 앉아서 이런저런 생각만 하다가 느닷없이 깨달음을 얻는 것만으로 무공이 갑자기 ×2쯤 상승하는 무협지가 아니니까! 현실에서 실력을 1 올리기 위해서는 그 10배. 아니, 20배, 30배의 시간 동안 피를 토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어떻게 아냐고? 아크도 경험해 봤으니까!
-요즘 몸이 좀 둔해졌어. 다시 운동 좀 제대로 시작해 볼까?
과거 이런 가벼운 생각으로 권화랑의 소개를 받아 발을 들이게 된 경찰청에서. 이명룡이라는 사부를 만나는 순간.
아크의 인생은 호러로 변했다.
이명룡의 손에 의해 몸이 몇 번이나 분해되었다가 조립되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뭐 실력은 늘었다.
그런 짓을 당하고 실력이 늘지 않으면 인간도 아니니까.
뭐 담력도 늘었다.
산 채로 분해(?)당하는 경험을 했는데 세상에 무서운 게 있을 리가 없으니까.
그러나 부작용도 있었다. 그 나날을 떠올리면 그것만으로도 지릴(?) 것 같은 공포에 휩싸이는 것이다.
아크가 갤럭시안을 시작한 뒤로 몸이 이전 같지 않다고 느끼면서도 경찰청에 찾아가지 못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지금 이명룡이 거기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아직도 거기에 발을 들이는 것만으로도 지릴(?) 것 같은 것이다.
‘아마도…….’
아크가 찜찜한 눈으로 발렌시아를 바라보았다.
뭐라고 해도 당시의 아크 같은 지옥을 경험하지는 못했겠지만, 단시간에 이 정도까지 실력이 늘었다면 그 역시 그사이에 하드코어 한 나날을 보낸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문제는 그게 오직 아크를 상대하기 위해서라는 점이다. 멀쩡한 사내놈이 자신을 생각하며 땀을 흘리고, 코피를 쏟는 장면을 생각하니 살짝 소름이 돋는다.
그러나 일단 그 문제는 덮어 두고.
“아크, 나는 이 승부에 내 모든 것을 걸었다. 너도 사내라면 진지하게 임해라!”
“나와의 승부에 모든 것을…….”
아크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잠시 곁눈질로 폭연에 휩싸인 전장을 훑어보던 아크는 이내 어금니를 사려 물었다. 그 역시 유저이기 이전에 사내! 상대가 이렇게까지 얘기하면 이제 어쩔 수 없다.
“좋아. 인정하지. 방금 전의 접전은 그런 네 말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너는 분명 이전과 다른 사람이야. 말하자면…… 그래, New! 지금의 너는 New발렌시아다! 아, 농담하는 거 아니야. 이전에 나에게 졌던 너와 지금의 너를 전혀 다른 사람으로 생각하겠다는 의미다. 그래, 이게 너와의 첫 싸움이다. New발렌시아, 너도 각오하는 편이 좋을 거다.”
아크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좌에서 우로, 다시 우에서 좌로, 처음에는 손목만 움직였지만 이내 어깨, 허리, 종국에는 온몸을 사용해 탄력적으로 검을 움직이자 그 속도만으로도 이퀄라이저에서 웅웅거리는 검명劍鳴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검의 회전이 극에 달하는 순간!
“아, 잠깐!”
아크가 움찔하며 움직임을 멈췄다.
덕분에 긴장된 표정으로 검을 치켜세우고 있던 발렌시아가 삐끗, 살짝 당황했지만 ‘난 진지하다.’ 모드 중이라 아무 일도 없었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뭐냐?”
“실은 이전부터 꼭 네게 보여 주고 싶은 것이 있었다. 아마도 이번에 싸움이 시작되면 너와 나, 둘 중 하나는 죽어야 끝나겠지. 그러니 시작하기 전에 봐줬으면 한다.”
“보여 주고 싶은 거라니? 나에게?”
“이거다.”
아크가 성큼성큼 다가오며 백팩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그러나 발렌시아는 방심하지 않았다. 상대는 아크다.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놈이다. 그러나 아크의 손에 들린 물체를 확인하는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꼬물꼬물, 꼬물꼬물.
아크가 꺼내 든 것은 꼴뚜기. 아니, 문어와 꼴뚜기의 중간 정도 되는 크기의 두족류였다. 그리고 손바닥 위에서 꼬물거리는 그것과 발렌시아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먹물 분사!”
푸화아아아아-!
주둥이에서 분수처럼 뿜어지는 먹물!
먹물의 정체는 ‘자렌족의 증표’ 2차 진화 스킬 ‘먹물 분사’!
다시 말하지만 발렌시아는 방심하지 않았다. 뭔가 꿍꿍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으로 긴장하고 있었다.
때문에 바로 검을 들어 막았지만!
“우앗! 이, 이게 뭐야?”
먹물을 검으로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덕분에 발렌시아는 대부분의 먹물을 뒤집어쓰고 문자 그대로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야말로 ‘황당+분노+깜깜’!
이전이었다면 허둥대며 갖은 욕부터 쏟아 냈으리라. 그러나 지금의 그는 그냥 발렌시아가 아니라 New발렌시아!
역시 New가 붙으니 뭐가 달라도 달랐다.
발렌시아는 그 와중에도 몸을 뒤로 빼며 검으로 중단 자세를 취했다. 검도에서 중단은 방어자세, 혹은 역공을 위한 자세였다. ‘실명’ 상태라 먼저 공격하지 못하니 되받아칠 수 있는 자세를 취한 것. 이어 모든 신경을 청각에 집중시켰다.
“비스트 패스트!”
아크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단지 그뿐이지만 발렌시아는 아크가 발동시킨 스킬이 어떤 것인지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뒤이어 뭔가가 엄청난 속도로 이동하며 만들어 내는 파공음이 들리니 아마도 돌진 스킬이리라. 그러나 발렌시아는 막을 수 없었다.
눈이 보이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바로…….
“무, 무슨? 아크! 네놈, 어디 가는 거냐?”
파공음은 반대쪽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저 멀리에서 들려오는 아크의 목소리.
“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제 내가 너와 싸울 이유가 없더라고. 넌 이제 새롭게 태어난 New발렌시아잖아! 예전에 나와 악연이 있던 발렌시아가 아닌 거잖아! 그럼 싸울 이유도 없어진 거 아니야? 그러니 너도 이제 전생(?)은 잊고 새 삶을 살아 보라고! 뭐 이제 와서 새삼 친하게 지내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멀리서나마 응원할게! 파이팅이다, New발렌시아!”
“너, 너 이 자식! 거기 서!”
발렌시아가 분기탱천하며 몸을 움직이다가 덜컥 멈춰 섰다. 그리고 눈앞에…… 아니, 보이지는 않았지만…….
-피라움×4가 달라붙었습니다!
《움직임 20% 감소. 1초에 4의 생명력이 피라움에게 흡수당합니다.》
이런 메시지가 떠올랐다.
왜냐고? 아크가 붙였으니까! 척 하고!
아크가 이런 짓을 자행한 이유는 말할 필요도 없다.
‘뭐? 진지한 승부? 놀고 있네. 그런 승부를 하고 싶으면 한가할 때 T-20으로 찾아오든지, 나쿠마 기간틱까지 끌고 와서 승부는 무슨 얼어 죽을 놈의 승부야? 뒤에 아빠 엄마 세워 놓고 싸우자는 게 네가 말하는 승부냐? 그런 주제에 무슨 New발렌시아야? 하는 짓은 변한 게 없잖아!’
뭐 New라는 말은 아크의 입에서 나온 말이지만 어쨌든!
New든 Old든 아크는 발렌시아의 장난에 맞춰 주고 싶은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발렌시아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아크에게 싸움이란 재미로 하는 게 아니다. 살기 위해서! 그리고 지금 살기 위해 싸워야 하는 상대는 발렌시아가 아니다.
‘……기간틱!’
투투투투! 투투투투! 퍼퍼펑!
‘비스트 패스트’로 도약한 아크는 바로 전장에 도착했다.
뭐 애초에 그리 멀리 떨어져 있던 것도 아니었지만, 자욱한 폭연을 헤치고 들어가자 연이은 포성이 고막을 뚫고 들어와 달팽이관을 흔들어 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청각보다 시각으로 접하는 상황이 더 심각했다. 모래 폭풍에 폭연까지 더해져 밖에서는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지만! 아니, 그래도 대강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젠장, 발렌시아 자식 때문에 시간을 너무 잡아먹었어!’
아크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승무원들의 시체를 훑어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아무리 아크라도 이미 죽은 사람을 벌떡 일으켜 세울 수는 없는 노릇, 10명이든 20명이든 아직 살아 있는 승무원들을 모아 탈출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저기다!’
주위를 훑던 아크가 기간틱을 향해 뛰어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앞에 있는 마몽 준장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마몽 준장은 그야말로 용맹 과감! 거대한 해머를 휘둘러 대며 물러서지 않고 기간틱과 맞서고 있었다.
그러나 기간틱은 사람이, 그것도 혼자 맞설 수 있는 병기가 아니었다. 당연히 마몽 준장의 몸은 너덜너덜, 피에 젖어 있었다. 기간틱은 기계니 그 피는 아마도 순도 100% 마몽 준장의 피이리라. 그만한 양의 피를 흘리고도 아직 움직이고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준장님!”
“헉헉헉! 이 빌어먹을 기계…… 엇? 아크? 아크냐?”
거친 숨을 불어 내며 이를 갈아붙이던 마몽 준장이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
그때 시커먼 폭연이 확 갈라지며 거대한 금속 물체가 마몽 준장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면적이 3~4미터에 육박하는 금속 물체는 기간틱의 발바닥!
“헛! 위험합니다! 피하세요!”
“큭, 안 돼!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
……라고 대답하며 마몽 준장이 해머를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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