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54)
아크 더 레전드-54화(54/875)
[54] SPACE 1. 이크람 (4)‘루, 룬 문자 각인술이 소환술이었던 거야?’
아크가 황당한 표정으로 정보창을 바라보며 떠듬거렸다.
처음 이크람을 사용했을 때 스킬이 발동하지 않는 이유를 주변에 적이 없어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는 주변에 아군이 없어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크람의 타깃은 적도 아군도 아니었다. 시체, 제물로 바칠 시체가 없어서 발동하지 않았던 것!
……이 무슨 찜찜하기 짝이 없는 스킬이란 말인가!
그러나 지금 아크는 찜찜함을 질겅질겅 씹어댈 여유 따위는 없었다.
호불호好不好를 떠나 스킬의 정보가 확인된 것은 축하할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당장 목숨이 날아갈 판. 그리고 여기서 죽으면 피라미드에서 올린 레벨은 물론, 스킬도 삭제된다.
스킬 정보를 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 와중에 기껏 발동한 스킬이 개, 그것도 사람 얼굴이 달린 변태 개 소환이라니!’
남은 마나를 몽땅 긁어 18연타를 날려도 크리스털을 부술 확률은 30%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뜬금없이 변태 개가 나타나 간당간당한 마나까지 갉아대고 있지 않은가.
아예 죽으라고 고사를 지내고 있는 것이다.
‘빌어먹을, 저 변태 개에게 마나를 더 빨리기 전에 18연타를…….’
다시 주먹을 움켜쥐던 아크가 움찔하며 멈춰 섰다.
‘아니지. 그게 아니야!’
[키키키, 자, 오래 기다렸다. 이제 보내주마. 황천으로.]그때 장전을 끝낸 중화기병이 히죽 웃으며 미사일 발사기를 들어올렸다.
잠시 머리를 굴리던 아크가 퍼뜩 고개를 들어올리며 소리쳤다.
“이런 젠장! 안 돼! 18연타!”
배틀수트의 어깨 윗부분의 갑각이 개방되며 증기가 확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양팔이 엄청난 속도로 전후 운동을 반복하며 속사포처럼 주먹을 내뿜었다.
투콰콰콰콰콰콰콰콰—!
주먹이 꽂힐 때마다 크리스털에 균열이 쩍쩍 번지며 자잘한 파편이 튀어 올랐다.
크리스털이 진동하자 여유를 부리던 중화기병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저, 저건 뭐야? 아직 저런 기술을 숨기고 있었던 건가? 하지만 너무 늦었다!]그리고 미사일 발사기의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컹컹컹컹!”
[뭐, 뭐야? 헉! 아, 안 돼!]개소리와 중화기병의 당혹성이 잇달아 터지고…….
퍼펑! 콰콰콰콰! 콰콰콰쾅!
섬광과 함께 커다란 버섯구름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크리스털에 갇힌 채 중화기병의 타깃이 됐던 아크는…….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다.
-공적치 +120
덤으로 공적치도 올랐다.
“……사, 살았다.”
아크가 10여 미터 너머에서 뭉개뭉개 피어오르는 폭연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크가 살아날 수 있었던 것, 그건 헬 하운드 덕분이었다.
18연타를 발동시키기 직전, 아크는 헬 하운드에게 중화기병을 향해 달리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그때까지 중화기병은 룰루랄라 아크를 골로 보낼 미사일을 장전하느라 헬 하운드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바로 아크가 18연타로 크리스털을 흔들어대자 위기감에 서둘러 미사일을 발사하려는 찰나, 헬 하운드가 앞에서 불쑥 나타난 것이다.
당연히 헬 하운드는 발사된 미사일에 직격 당해 Die.
그리고 코앞에서 미사일이 터진 덕분에 생명력이 40%밖에 없던 중화기병도 덩달아 Die.
변태 개의 희생으로 상황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버린 것이다.
“임팩트 샷!”
쿠쿵— 쿠쿠쿠쿠쿠!
그리고 잠시 후, 아크는 18연타로 균열이 번져있던 크리스털을 부수고 나왔다.
이크람의 제물로 사용해서인지 심각하게 훼손된 총기병의 시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뭐 굳이 비교하자면 개와 함께 폭발에 휘말린 중화기병의 시체가 더 심각한 수준이었지만…….
-C-6(×3)
아이템 타입: 폭발물
공격력: 500(시설물에 대해 ×5)
전통적인 플라스틱 폭탄으로 널리 알려진 C-4의 개량형으로 은하계 전반에 걸쳐 널리 사용되는 폭발물입니다. 원형이 된 C-4는 TNT와 RDX를 적당한 비율로 섞어 만들었지만 C-6은 거기에 REX를 추가해 침투력을 수배로 증폭시킨 폭발물입니다. 때문에 특히 금속이나 석재로 만들어진 시설물에 대해 괴멸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습니다.
《타깃에 장착 후 타이머를 설정해 폭발합니다.》
※주의! 폭발물 관련 스킬이 없을 경우 매우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중화기병이라 별 걸 다 가지고 다니는군. 젠장, 차라리 식량이나 줄 것이지.”
구시렁거리며 C-6을 챙겨 넣은 아크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찌어찌 추격하던 라마전사 둘을 처리했지만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카락 사육장에 불을 질러 라마기지를 혼란스럽게 만들었지만 없어진 바이크의 존재를 언제까지고 모를 리가 없었다. 게다가 방금 전에는 미사일까지 폭발했다. 이곳에서 라마기지까지는 수십 킬로미터의 거리가 있지만 이변을 알아챘을 가능성이 많았다.
“놈들이 몰려오기 전에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아크의 눈동자가 까마득해 보이는 지평선 너머로 향했다.
-현재 위치에서 은하연방의 기지까지: 444km
“444킬로미터…….”
숫자마저 불길하기 짝이 없었다.
SPACE 2. 사선을 넘어서 (1)
푸슈—!
단단하게 조여져있던 갑각의 이음새가 벌어졌다.
그 틈새로 증기가 뿜어지며 갑각이 하나 하나 분리되었다.
그렇게 몸에서 분리된 갑각은 마치 퍼즐처럼 회전하고 접히며 작은 방패 크기의 육각형 물체로 변했다. 뒤이어 공간이 갈라지더니 육각형 물체가 빨려 들어가듯 그 속으로 사라졌다.
갑각이 뿜어낸 증기 속에서 한 사내의 모습이 떠오른 것은 그때였다.
“헉헉헉, 헉헉헉!”
바닥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헐떡이는 사내.
“헉헉헉, 빌어먹을…… 헉헉헉, 여기가…… 한계인가…….”
퀭한 눈동자로 눈보라가 몰아치는 벌판을 바라보는 사내는 바로 아크였다.
“헉헉헉, 그때…… 조금만 결정이 빨랐어도…….”
아크가 회한이 서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얼마 전 두 명의 라마전사를 쓰러뜨린 것은 아크에게 큰 의미가 있는 사건이었다.
어느덧 갤럭시안을 시작한지도 대략 두 달, 이는 수많은 시행착오 반복했던 시간이었다.
이전 게임의 시스템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새로운 게임에 적응하지 못했고, 그런 주제에 전직(?) 전설의 게이머라는 자만심은 버리지 못해 하지 않아도 될 실수를 저질러 겪지 않아도 될 고난을 자초했다. 벨타나에서 이런 개고생을 하게 된 이유도 바로 그것.
덕분에 아크는 살짝 의기소침해져 있었다.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잘난 줄 알고 자란 사람이 처음으로 사회의 벽에 부딪히게 된 심정이랄까? 물론 그때마다 나름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오기는 했지만 처음 갤럭시안을 시작할 때처럼, 정부를 상대로 흥정할 때와 같은 자신감은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의기소침함은 벨타나에 강제징용 되었을 때 정점을 찍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리듐을 구하지 못하면 굶어 죽는다.
어찌어찌 식량을 구해도 전투가 벌어지면 총알받이로 동원된 죄수들의 사망률은 80%!
그야말로 일말의 희망조차 찾을 수 없는 혹독한 벨타나의 환경에 아크와 같은 시기에 강제징용 형을 받은 죄수 가운데는 아예 게임을 접어버리는 유저도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아크는 버텼다. 그 역시 굶주림에 시달렸지만 삽질로 해결방법을 찾았고, 총알받이로 전장에 동원됐지만 친위대를 조직해 생존율을 올리며 조금씩 공적치를 쌓아갔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은 얼마 전에 찾아낸 피라미드였다.
피라미드 속에서 열흘 간의 분투로 아크는 광렙과 득템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크가 레벨 40대의 라마전사와 2대 1로 붙어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그 덕분이었다.
그리고 이 승리는 그동안 아크가 가지고 있던 불안감을 일거에 씻어주었다. 어떠한 고난이 닥쳐도 포기하지 않는 한 희망은 있다. 아니, 고난이야말로 더 강해질 수 있는 기회. 고난을 이겨내는 그 자체가 성장의 과정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러나 승리의 기쁨은 아주 잠깐이었다.
“빌어먹을!”
전투가 끝난 직후, 아크의 입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님프에 떠올라있는 메시지 때문이었다.
-님프가 바이크의 시스템에 접속했습니다.
자체 진단 결과 바이크의 엔진과 배터리팩에 심각한 손상이 확인되었습니다.
바이크의 주요 기능이 80%이상 파괴되어 현 상태로는 운행이 불가합니다.
처음 라마전사들이 따라붙었을 때 아크는 불안했다.
피라미드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아크에게 평균 레벨 40대의 라마전사는 절대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한 적이었다. 그런 적이 하나도 아닌 둘. 때문에 아크는 일찌감치 전투를 포기하고 어떻게든 따돌릴 궁리만 하고 있었다.
“그때…… 바이크가 이렇게 되기 전에 라마전사들과 싸울 각오를 했다면…….”
통렬한 후회가 쓰나미처럼 밀려들었다.
결국 소극적인 대처로 인해 유일한 희망이었던 바이크를 잃게 된 것.
메카닉을 수리하는 스킬 따위가 있을 리가 없는 아크로서는 속수무책. 그렇다고 다시 라마기지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현재 라마기지는 아크 덕분에 벌집을 들쑤셔놓은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다시 그곳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자살행위.
남은 선택은 하나뿐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갈 데까지 가보는 수밖에 없어.”
이때 남은 식량은 4개. 연방군 기지까지의 거리는 444킬로미터.
합쳐보니 4자가 4번 겹치는 4444! 마치 ‘후후후, 넌 글렀어. 포기해라. 미래는 없다고.’라고 말하는 듯한, 시작도 하기 전에 의욕이 뚝뚝 떨어지게 만드는 숫자였다.
‘역시 무리야. 식량 4개로 40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걸어가기는.’
1+1=2인 것처럼 답이 딱 나와있는 상황.
그러나 선택의 여지 따위는 없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아크가 살아날 확률은 0.0001%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포기하면 100%죽는다. 동시에 그동안 올린 레벨 13의 경험치와 스킬이 날아가는 것이다. 유서나 쓰면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기적도 포기하지 않는 자에게나 일어나는 법이다.
“흥! 웃기지마! 이딴 숫자 따위!”
아크가 벌떡 일어나 식량 하나를 씹어 삼켰다.
그렇게 4444를 3444로 만들며 30%까지 떨어져 있던 만복도를 50%로 올린 아크는 지체 없이 그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눈 폭풍을 헤치며 이어지는 행군, 행군, 행군!
-만복도가 50%이하로 내려가 [배고픔]상태가 되었습니다.
《만복도가 49%이하가 되면 스텟에 페널티가 붙기 시작합니다. 식량을 섭취해주십시오.》
우물, 우물.
만복도가 50%가 되면 우주식량을 씹으며 걷고.
-배틀슈트 하이퍼 드론의 마나가 100%충전되었습니다.
파파파파! 파파파파!
배틀슈트가 충전되면 냉큼 꺼내 입고 달리고.
아크는 그렇게 꼬박 이틀을 유니트에 박힌 채 쉬지 않고 행군했다.
덕분에 이틀만에 약 150킬로미터를 이동했을 때였다.
“헉헉헉! 이, 이럴 수가!”
아크는 절망이라는 글자를 실체화시켜놓은 듯한 장면과 마주하게 되었다.
님프의 GPS는 목적지의 방향과 거리만 표시된다. 아크가 피라미드에서 전송되어 나온 곳에서 연방군 기지까지는 아직 가본 적이 없는 지역이라 지도가 표시되지 않는 것이다. 일전에 낙오병이 되어 라마족에게 쫓길 때 크레바스에 가로막히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다시 그때와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다른 점은 이번에는 크레바스가 아닌 거대한 설산이라는 것뿐.
복잡하게 얽힌 설산이 아크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 높지는 않지만 눈과 얼음에 뒤덮인 산이다. 이미 체력이 바닥난 아크에게는 그야말로 벽이나 다름없이 보였다.
물론 찾아보면 돌아갈 수 있는 길도 있겠지만…….
-만복도가 20%이하로 떨어져 [굶주림] 상태가 되었습니다.
《모든 스텟에 -50%의 페널티가 주어지고 0%가 되면 사망하게 됩니다.》
“여기까지인가…….”
사실 문제는 그 설산이 아니었다.
150킬로미터를 이동하는 사이에 남은 식량도 모두 사라졌다.
당연히 만복도가 떨어져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 방금 전 배틀슈트를 입고 달린 것은 마지막 발버둥이었다. 그러나 이제 배틀슈트도 벗겨졌다. 몸을 감싸고 있던 갑각이 떨어져나가니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한기가 밀려들었다.
체온조차 유지하기 힘들어진 것.
게다가 스텟이 떨어진 만큼 몸도 몇 배나 무겁게 느껴졌다.
“아직 연방군 기지까지는 290킬로미터…….”
게다가 앞에는 거대한 산이 가로막고 있었다.
이제 답이 나왔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일말의 희망도 없다.
힘겹게 걸음을 옮기던 아크가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털썩 주저앉았다.
“더 이상의 발버둥은 아무런 의미도 없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여기가…… 끝이다.”
기다렸다는 듯 영하 50도의 눈 폭풍이 아크의 몸을 뒤덮었다.
하얗게 얼어붙은 눈꺼풀이 내려왔다.
어둠이 찾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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