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55)
아크 더 레전드-55화(55/875)
[55] SPACE 2. 사선을 넘어서 (2)“핫!”
눈이 떠졌다.
그와 함께 벌떡 상체를 일으킨 그는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치 앞도 분간하기 힘든 어둠. 그러나 크고 까만 눈동자를 몇 번 깜빡이자 희미하게나마 주위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투박한 벽이었다. 인테리어 감각 따위는 눈곱만큼도 느낄 수 없는 투박한 벽이 둘러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맞은 편에는 철창.
붉은 녹이 번져있는 철창이 한 면을 빽빽하게 채우고 있었다.
멍하니 철창을 바라보던 그의 입에서 한숨을 흘러 나왔다.
“휴, 꿈이었구나.”
북실거리는 앞발로 이마의 땀을 닦아내는 사람. 아니, 햄스터.
새삼스럽지만 아크가 벨타나에서 개고생을 하고 있는 이유는 한때 네팔림을 들썩이게 만들었던 ‘연방 정부 박물관 절도사건’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아크 혼자 저지른 일이 아니었다. 공범자.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주동자는 바로 이 햄스터, 토리였다.
따지고 보면 아크는 토리의 꾐에 빠져 절도사건을 휘말리게 된 것.
이래서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는 것이다.
뭐 어쨌든…….
“평소에는 꾸지도 않던 꿈을 왜 갑자기…… 게다가 방금 전 꿈에 나온 건 분명…….”
토리가 머리를 긁적이며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꿈속에서 모든 것이 얼음에 뒤덮인 벌판 위로 눈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단지 기억을 되살리는 것만으로도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추운 곳이었다. 그 눈 폭풍 속에 한 사내가 쓰러져 있었다. 퀭한 얼굴로 눈 속에 파묻힌 채 차갑게 얼어붙어 가는 사내. 아니, 시체! 놀랍게도 그 시체의 정체는…….
“아크! 틀림없이 아크였어.”
시체는 지난 두 달 동안 잊고 있던 아크였다.
“그러고 보니 아크 자식, 벨타나라는 혹성으로 강제징용 당했지? 벨타나는 영하 50도의 기온에 한 번 폭풍이 시작되면 보름에서 한 달이나 계속되는 곳이라고 들은 적이 있어. 으, 상상 만해도 춥다. 하여간 그 녀석도 재수라고는 약에 쓸래도 없어. 하필 강제징용 형을 받아도 그딴 곳이냐? 그런데 왜 갑자기 그 녀석이 꿈에 나온 거지? 평소에 꾸지도 않던 꿈을 꾸질 않나, 그것도 하필이면 아크 녀석을…… 가만? 혹시…… 어쩌면 이 꿈은…….”
웅얼거리던 토리가 퍼뜩 고개를 들어올렸다.
여기서 잠시 설명하자면 ‘연방 정부 박물관 절도사건’으로 암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사람은 아크만이 아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토리는 개척자-페어리로 부활이 가능한 체질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아크처럼 분쟁지역에 강제징용 되는 형벌은 피할 수 있었지만 사업권 박탈과 전재산 몰수, 그리고 궤도감옥 스텔라에서 2년 징역을 선고받았다.
‘뭐 그래도 아크보다는 낫겠지만…….’
감옥 생활도 결코 안락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은하연방은 죄수에게 공짜 밥을 먹이며 빈둥빈둥 놀게 해 피둥피둥 살을 찌워줄 정도로 만만한 곳이 아니다. 하루 6시간 제공되는 취침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는 노역장에 끌려나가 뼈 빠지도록 일해 하루 할당량을 채워야 겨우 식량 하나를 받는 것이다.
그조차 우주벌레를 가공해만든 싸구려 우주식량.
도토리와 해바라기 씨를 주식으로 삼는 채식주의자(?)로서는 괴롭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살기 위해 먹고는 있지만 두 달 사이에 체중이 10킬로그램이나 줄었다. 토리의 자랑거리였던 두툼한 아랫배가 훌쭉해지다못해 복근이 만들어지는 비참한(?) 몰골이 된 것이다.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2년을 이렇게 지낼 수는 없어!’
그래서 토리는 결심했다.
‘탈출한다!’
스텔라를 탈출하기로!
물론 스텔라는 햄스터가 마음먹는다고 들락거릴 만큼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궤도 감옥이라는 이름처럼, 스텔라는 은하연방의 중심지 이스타나의 혹성 궤도에 만들어진 우주 감옥. 완벽한 보안으로 지난 수십 년 동안 단 한 명도 탈출에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토리에게는 허점을 공략할 계획이 있었다. 그리고 지난 두 달, 토리는 뼈 빠지는 강제노동과 토 나오는 우주식량을 씹으며 계획의 밑 준비를 하나 하나 진행시켜 왔다.
그리고 마침내 결행 일이 며칠 앞으로 다가온 지금!
갑자기 아크가 죽는 꿈을 꾸게 된 것이다.
‘어쩌면…… 어쩌면 이 꿈은…….’
“길몽이다!”
토리가 손가락을 튕겨며 씨익 웃었다.
토리는 자신이 이런 처지가 된 게 아크 탓이라고 생각했다.
근거 없는 생각이 아니다. 그때 아크가 엉뚱한 폭발만 일으키지 않았으면 박물관 털이는 성공, 지금쯤 토리는 골드 방석을 깔고 앉아 해바라기 씨를 배터지게 먹고 있었으리라.
이런 감옥에서 단백질 덩어리나 씹어대게 된 건 100% 아크 때문인 것이다.
“쿠히히히히, 맞아. 그런 아크 자식이 얼어 뒈지는 꿈을 꿨다면 당연히 길몽이지. 결행 일이 며칠 안 남았을 때 그런 길몽을 꾸게 되다니! 쿠히히히히, 뭔가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걸? 이건 계획이 성공할 거라는 하늘의 계시가 분명해.”
토리가 킬킬거리며 떠들어대고 있을 때였다.
“야!”
거친 목소리가 방을 흔들었다.
움찔하며 고개를 돌린 토리의 얼굴이 당혹감에 물들었다.
어둠 속에서 10여 쌍의 눈동자가 키득거리는 토리를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하나 더 설명하자면 은하연방은 죄수에게 아늑한 독방을 배정해 줄 정도로 자비로운 곳이 아니었다. 방 하나에서 대략 10여 명의 죄수가 함께 생활하는 것이다.
사실 토리가 탈출을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그것이었다.
궤도 감옥 스탈라는 사고방지를 위해 비슷한 종족을 한데 묶어 관리한다.
지구인은 지구인끼리, 외계인은 그 종족과 같은 외계인끼리, 따라서 원래대로라면 토리는 햄스터-정식 명칭은 타이니 족-들과 함께 지내야한다. 그러나 보통 타이니 족은 선량한 성품이라 이스타나 전역의 범죄자가 모이는 스탈라에도 토리 외에 다른 햄스터가 없었다.
때문에 토리는 통칭 수인(獸人)족으로 분류되어 방을 배정 받았는데…….
“이 쥐새끼가 밤에 왜 떠들어대고 지랄이야?”
노란 눈동자를 번뜩이며 송곳니를 드러내는 죄수들은 캐츠 족.
일명 묘족이라고 불리는 고양이 형태의 외계인이었다.
햄스터는 쥐, 묘족은 고양이…… 오붓한 관계가 이뤄질 리가 없다.
덕분에 토리는 스탈라에 들어온 이후부터 틈만 나면 캐츠 족에게 얻어맞는 게 일과였다.
‘무리야! 이런 놈들하고 2년이라니? 그럴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나아!’
토리도 나름대로 치열한 생존투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10여 쌍의 고양이 눈동자 앞에서 토리가 식은땀을 뚝뚝 흘리며 떠듬거렸다.
“그, 그게 꿈을 꾸는 바람에…….”
“꿈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방장을 맡고 있는 덩치 큰 묘족이 머리를 긁적이며 토리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동료들을 돌아보았다.
“감히 잠자는 게 유일한 낙인 묘족의 잠의 깨우다니, 간이 배밖에 나온 쥐새끼로군. 어이, 저 녀석이 아직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이다. 아무래도 좀 더 교육이 필요하겠어.”
“자, 잠깐만요! 자, 잘못했습니다! 사, 살려주십시오!”
“누가 죽인데?”
방장이 피식 웃었다.
“그냥 놀자는 거야. 야, 시끄러우니까 덮어!”
순간 묘족들이 달려들어 토리를 모포로 둘둘 말았다.
그와 동시에 방장 이하 10여 명의 묘족이 둘둘 말린 모포를 밟아대기 시작했다.
우주에서 벌어지는 집단 따돌림의 실태! 21세기의 사회문제는 24세기에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뭐, 고양이와 쥐라는 점을 생각하면 집단 따돌림이라고 말하기도 뭐하지만…….
‘아욱! 비, 빌어먹을! 아욱! 이것도 다 아크 자식 때문이야! 망할 자식 뒈져버려라!’
토리는 피떡으로 변해가며 아크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
휘이이이이—!
여전히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혹한의 혹성 벨타나.
은하연방의 중앙기지 외곽에서 그 눈보라를 뒤집어쓰며 망부석이 된 아이가 있었다. 회색 피부에 크고 까만 눈을 가진 그는 일명 ‘눈이 큰 아이’로 불리는 그레이 족의 헤겔이었다.
“형님…….”
헤겔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을 때였다.
“아직까지 여기 있었던 건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씁쓸한 표정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암묵적으로 아크 친위대의 부대장을 맡고 있는 최고참 죄수 멜린이었다.
멜린이 창백한-원래 그레이 족의 피부는 회색이지만- 헤겔의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크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건 자네만이 아니야. 예전에는 한 막사에서 지내면서도 통성명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던 우리가 이렇게 뭉칠 수 있었던 건 그 중심에 아크가 있었기 때문이지. 하지만 아크가 사라지고 난 뒤에야 깨달았네. 그의 존재는 단순히 그 정도가 아니었다고. 그는 우리에게 위안이자 희망, 그 자체였네. 나는 물론 모든 대원들이 그가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어.”
멜린이 한숨을 불어내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아크가 행방불명 된지 벌써 12일이 지났네. 그때 베라드의 증언과 달리 어찌어찌 살아남았다고 해도 12이나 지난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어. 난 이곳에서 1년이나 지냈지. 이런 곳에서 오래 지내다보면 싫어도 보게 되는 게 있지. 어제까지도 의욕에 차있던 사람이 갑자기 부활을 포기하는 것처럼. 어쩌면 아크도…….”
“그럴 리가 없습니다!”
거친 목소리가 멜린의 말을 끊었다.
멜린과 헤겔이 움찔하며 고개를 돌리자 퀭한 몰골의 사내들이 서있었다.
베라드와 랄프, 칼리벤을 위시한 아크 친위대원들이었다.
친위대원들의 몰골은 아크가 행방불명 된 12일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아크가 있을 때, 그들은 적어도 식량 걱정은 하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아크가 사라지자 사정이 달라졌다. 식량 보급을 전적으로 아크에게 의지하고 있던 친위대로서는 식량 수급에 심각한 문제가 생겨버린 것이다. 거기에 발렌시아는 한술 더 떠 죄수 부대원들을 압박, 친위대의 이리듐 채취를 방해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친위대의 식량사정은 오히려 이전보다 몇 배는 더 심각해져 대원들은 12일 사이에 몇 번이나 굶어죽어야 했다.
덕분에 친위대원들은 이전처럼 좀비와 같은 몰골로 돌아가 있었지만…….
“형님이 우리를 버릴 리가 없습니다!”
랄프의 말에 베라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저는 아직도 형님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나 하나라도 살리겠다고 적을 부둥켜안고 크레바스로 몸을 던지시던 형님의 모습을! 크윽, 그야말로 불굴의 의지를 가진 전사! 그런 형님이 피를 나눈 형제나 다름없는 우리를 포기할 리가 없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형님은 돌아오실 겁니다!”
“전장에서 저를 대신해 적의 총탄을 맞아도 웃어주던 형님입니다! 전 형님을 믿습니다!”
“저도! 설사 한 달. 아니, 1년이 지난다해도 형님을 기다릴 겁니다!”
“자, 자네들…….”
멜린이 충격을 받은 눈으로 대원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이내 주름진 눈가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며 말했다.
“크윽! 그, 그래. 그래. 실은 나도 같은 마음이네. 자네들 말대로야. 암, 아크가 우리를 버릴 리가 없지. 그럴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그는 우리에게로 돌아올 거야. 그리 믿네. 믿고 말고. 자, 좀 더 용기를 내세. 희망을 잃지 말고 그를 기다리세. 우리는 아크 친위대니까.”
“우오오오, 멜린 할배!”
친위대원들이 우르르 멜린에게 달려왔다.
그리고 한데 뭉쳐 부둥켜안고 감격의 눈물을 분수처럼 뿜어 올리고 있을 때였다.
우우우웅—!
갑자기 중앙광장의 페어리가 진동하며 빛을 뿜었다.
“페, 페어리가!”
“며칠 동안 전투도 없었는데 페어리가 울리다니? 혹시?”
“형님이다! 형님이 돌아오신 거야!”
헤겔의 말에 친위대원들이 기대어린 눈으로 페어리를 바라보았다.
그 사이에 페어리에서 나온 빛은 마치 3D복사기처럼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분자 단위로 나뉘어진 생체조직이 층층이 겹쳐지며 만들어지는 형상은 바로!
“……쿠파?”
친위대의 일원 쿠파였다.
기대어린 눈으로 지켜보던 대원들의 얼굴이 실망에 물들었다.
“너…… 그 사이에 또 굶어죽은 거야?”
“배가 고파서 앉아 있다가 깜빡 졸았는데 그대로 죽었었나봐.”
쿠파가 우울한 표정으로 홀쭉한 뱃가죽을 내려다보며 웅얼거렸다.
사실 아크 친위대에는 그레이 족의 헤겔 외에도 2명의 외계인이 있었다. 그 중 한 명은 지구인과 거의 비슷하지만 눈이 3개나 달린 운가라 족 칼리벤. 삼지안 운가라 족은 눈이 3개나 있어서인지 시력이 뛰어나 칼리벤처럼 스나이퍼에 특화된 종족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가 지구인의 2배에 달하는 몸집을 자랑하는 터빌 족, 쿠파였다.
터빌 족은 지구인의 2대에 달하는 몸집에 걸맞게 에너지 소비량도 2배!
때문에 다른 대원이 서너 번 굶어죽는 동안 쿠파는 이번까지 포함하면 8번째였다.
쿠파가 부활하자마자 꼬르륵 소리가 나는 배를 움켜쥐고 눈물을 글썽였다.
“흑, 배고파. 나 또 죽는 거야?”
쿠파를 바라보는 대원들은 그저 답답한 한숨을 불어낼 뿐이었다.
“하다 못해 형님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라도 확실하게 알 수 있다면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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