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576)
아크 더 레전드-576화(576/875)
[576] SPACE 1. 이건 뭥미? (1)‘하아, 뭐냐고 이건…….’
현우가 심란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이스타나에서 벌어지던 긴 전쟁이 끝났다. 친분이 생긴 유저들과 뒤풀이도 했다. 뭔가 커다란 줄기 하나가 정리된 기분이었다.
그리하여 새 마음 새 뜻으로, 뭔가 새롭게 시작하는 기분으로 졸린 눈을 비벼 가며 오랜만에 도장을 찾아왔다.
음, 나쁘지 않다.
뭐 본의 아니게 밤을 새워 버려 피곤하기는 하지만 간만에 접해 보는 새벽 공기도, 오랜만에 맡아 보는 체육관 특유의 냄새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그것도 방금 전 웬 사내자식과 만나기 전까지의 얘기다.
“너! 아크! 맞지? 이 새끼, 죽여 버리겠다!”
그 사내자식이 대뜸 죽도를 들이밀며 이딴 소리를 해 댄 것이다. 어떤 정신 나간 인간이 아침 댓바람부터 살해 협박을 받고도 상쾌할 수 있겠는가?
하물며 현우는 이 사내자식, 박경진이라는 이름을 들어 본 적도 없다. 그러니 당연히 당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그 당혹감은 박경진이 처음 보는 놈이라든가,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또냐…….’
너무 잘 이해해서 문제다.
사실 예전에 이 도장을 그만둔 이유의 절반은 이런 문제 때문이었다.
게임 속에서 발린 놈들이 종종 이런 식으로 시비를 걸어오는 일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도장 안에서 이런 식으로 죽도를 들이밀며 설치는 놈은 처음이지만.
어쨌든 이제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현우가 아크로서 얼굴이 알려진 것은 뉴월드 시절이었다.
그러나 뉴월드에 접속하지 않은 것도 이제 거의 1년이 되어 간다. 박경진이 누구든, 무슨 원한이 있든 적어도 1년 전의 일이라는 말이다.
그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훅! 훅! 훅! 훅! 훅!
호면 사이로 훅훅 뿜어져 나오는 거친 숨결, 그 위에서 현우를 향해 번뜩이는 눈빛은 1년이나 지난 원한을 가지고 시비를 거는 놈의 눈빛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현우 얼굴을 보고 갑자기 1년 전의 일이 생각나 이러는 것도 아닌 모양이다.
“아크라고? 아크라면…… 들어 본 적이 있는데…… 아, 그렇군. 저기 적혀 있었지.”
둘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스승, 박종훈이 문득 생각난 표정으로 도장 구석의 타격대를 가리켰다.
방금 전까지 박경진이 살벌한 기세로 두들겨 패던 타격대.
거기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아크.
쓴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였다.
그럼에도 이름이 적힌 부분이 너덜너덜하게 변해 있었다.
종합하자면 박경진이라는 녀석과 언제 원한 관계가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그 감정은 현재진행형일 뿐만 아니라, 꽤나 의욕이 충만하다는 뜻이다.
“나는 저게 파이팅 같은 의미인 줄 알았는데…….”
박종훈이 타격대와 현우, 박경진을 번갈아 보며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아닌 모양이군. 서로 아는 사이였냐?”
“아니요!”
“네!”
현우와 박경진이 이구이성으로 대답했다.
“한쪽은 모른다. 한쪽은 안다. 무슨 수수께끼냐? 하지만 표정을 보니 현우 너도 짚이는 바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닌 모양이군. 설명이 좀 필요하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다.”
“삼촌은 나서지 마십시오! 이건 저 녀석과 제 문제입니다!”
“에? 사, 삼촌?”
뒤이은 말에 현우가 당혹성을 터뜨렸다.
느닷없이 죽도를 들이미는 또라이와 박종훈이 친척이었다니, 놀라는 것은 둘째치고 뭔가 확 불리해지는 기분이다.
아니, 뭐 그렇다고 동네 양아치처럼 박종훈이 덮어 놓고 ‘내 조카를 건드리다니!’ 하며 달려들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뭔가! 이 상황은 뭔가 말이다!
그런 생각으로 현우가 살짝 움찔했을 때였다.
“하아?”
박종훈이 미간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다.
단지 그뿐이다. 그럼에도 햇살이 비쳐 들어오는 도장의 공기가 한순간에 얼어붙는 것 같은 한기가 느껴졌다.
현우는 그 한기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멀쩡한 사람을 순식간에 불구자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만이 뿜어낼 수 있는 살기!
“지금 누, 구, 에, 게 그따위 말을 하는 거냐?”
“네? 아, 아니, 제 말은…….”
“닥쳐라.”
이어지는 말에 박경진이 얼른 닥쳤다.
“여기는 내 도장이다. 그리고 나는 관장이다. 이는 그게 누구라도 일단 이 도장의 문턱을 넘어 들어오는 순간 내 제자라는 뜻이고, 예로부터 무가에서 스승이란 제자를 올바르게 키우기 위해서라면 때려죽어도 된다는 불문율이 전해져 내려오지.”
‘아니, 그건 좀 아니지 않나요? 이미 죽인 시점에서 올바르게 키우기는 글렀잖아요!’
남의 일이지만, 딴지를 걸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속으로. 무서우니까!
그건 박경진도 마찬가지였다. 박종훈의 일갈에 흠칫 놀라며 동작을 멈추었다. 그리고 잠시 뭔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다가 결국 고개를 떨구며 떠듬거렸다.
“죄, 죄송합니다. 저는 다만…… 하지만…….”
“됐다.”
박종훈이 말을 끊었다.
그리고 잠시 현우와 박경진을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생각해 보니 내가 괜한 질문을 했군. 본시 사람이란 자신의 입장밖에 모르지. 원한 관계가 있을 때는 특히. 그러니 지금 내가 너희들의 얘기를 듣는다 한들, 너희들은 서로 자기 입장만 말할 것이다. 그리고 이미 지난 일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은 어려운 일. 아니, 분명하게 말해서 귀찮다.”
스승님은 솔직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나는 억지로 악수시키고 이제부터 친하게 지내라는 말 한마디로 할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무책임한 스승이 아니니까.”
스승님은 책임감도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묵은 감정은 가능한 한 빨리 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남자들이 묵은 감정을 푸는 방법은 예로부터 하나밖에 없지. 그런 점에서 너희들은 행운아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예비용 호구가 많다. 최악의 경우라도 죽을 걱정은 없다는 말이지.”
스승님은 대범한 사람이었다.
“아니, 여기는 도장. 설사 최악의 경우라도 어떻게든 되겠지.”
……그게 어떻게든 되는 문제였던 겁니까?
따지고 싶은 말이 엄청 많지만 일일이 따지자면 한도 끝도 없었고, 박종훈을 상대로 따질 용기도 없었다.
그러나 순순히 납득하고 넘어갈 수는 없었다. 현우는 아직 박경진이 누군지도 모르고, 왜 싸워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바라던 바입니다!”
박경진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는 순간!
‘어쭈? 네 눈에는 내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인다 이거냐?’
“저도 하겠습니다!”
덕분에 현우의 머릿속 스위치도 ON!
대답과 함께 상황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현우는 챙겨 온 도복 위에 예전에 사용하던 호구를 착용. 죽도를 움켜쥐고 박경진과 마주서게 되었다.
훅! 훅! 훅! 훅! 훅!
그사이를 못 참고 아크―타격대―를 패던 박경진의 호면 사이에서는 이미 스팀처럼 달아오른 숨결이 훅훅 뿜어져 나왔다. 그 위에서 희번덕거리는 눈도 정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현우도 이미 전투 모드인 것이다.
“시작해라. 지켜봐 주지.”
“으랏!”
그리고 박종훈이 물러나는 순간.
박경진이 우리에서 풀려난 짐승처럼 달려들었다.
초보자라면 그 기세만으로도 몸이 경직되어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현우는 되레 맥이 빠졌다.
너무나 예상대로의 공격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공격이라고 하기도 힘들다. 이건 그냥 무턱대고 달려드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런 공격, 맞아 주기도 힘들다고!’
현우는 왼발을 뒤로 빼며 죽도를 사선으로 세웠다.
그 죽도를 따라 미끄러지듯이 옆으로 빠져나가는 박경진의 죽도. 이에 박경진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죽도를 회수하는 현우를 돌아보는 순간!
딱-!
놈의 면상에서 경쾌한 타격 음이 울렸다.
현우가 휘청거리며 두어 걸음 물러나는 박경진을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그것으로 시합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보통 검도 시합은 3판 2선승제지만, 무학관은 그딴 물러 터진 점수제는 적용되지 않는다.
-승부는 오직 단판!
-패자는 죽는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죽는다!
무학관을 다닐 때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말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일격은 누가 봐도 한판! 얄짤 없는 한판이었다. 너무 순식간의 일이라 현우조차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였지만 규칙은 규칙. 이 일격으로 시합은 끝난 것이다.
이에 현우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박종훈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박종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뭐 하냐?”
“네? 뭐냐니요? 방금 한판 땄잖아요. 무학관은 원래 단판 승부 아니에요?”
“에?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우와아아아아!”
그때 박경진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긴장을 풀고 있던 현우는 화들짝 놀라 황급히 죽도를 휘둘렀다. 그러나 박경진은 죽도를 무시하고 성난 멧돼지처럼 밀고 들어와 가슴을 어깨로 들이받았다.
“컥! 이, 이 자식이 무슨…….”
현우가 떠밀리자 박종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역시 하루라도 더 다닌 놈이 낫군. 무학관의 규칙을 제대로 알고 있는 걸 보니. 현우야, 네 말이 맞다. 무학관의 시합은 단판 승부다. 하지만 쩨쩨하게 1점, 2점 따위를 말하는 건 아니야. 무학관의 단판은 상대가 움직이지 못할 때까지라는 의미다.”
잊고 있었다.
박종훈은 이명룡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한 인간은 아니었다는 것을.
그렇다고는 해도 명색이 검도 시합이다.
그런데 몸통 박치기. 뒤이어 이번에는 아예 상체를 숙이고 태클을 걸듯이 돌진하는데도 박종훈은 그저 지켜만 보고 있었다.
“이 새끼, 죽여 버리겠어!”
그사이에 박경진이 현우의 품속으로 파고들어 와 다리를 감싸 안았다. 그대로 힘으로 밀어붙여 넘어뜨리려는 것이다.
순간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오른쪽 다리를 잡히는 순간, 현우는 반사적으로 왼 다리로 뛰어오르며 무릎으로 놈의 면상을 쳐 올려 버린 것이다. 박경진의 머리가 튕겨 올라갈 정도로 호쾌한 니킥!
당연히 검도 기술이 아니다.
“어? 이, 이건…….”
이에 현우는 당혹성을 터뜨렸지만…….
“오호! 멋진 니킥이다!”
박종훈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 주었다.
검도장 관장 맞나? 아니, 그보다 이대로 괜찮은 거냐, 이 도장?
심하게 딴지 걸어 주고 싶었지만 그런 여유는 없었다.
만약 길거리 싸움이었다면 박종훈이 극찬할 정도의 니킥 한 방으로 승부가 났겠지만, 이건 검도 시합(?). 호면을 쓰고 있는 박경진은 서너 번 머리를 흔들더니 다시 죽도를 휘두르며 달려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박종훈이 인정했다! 발 차기를!
그렇다면 더 눈치 볼 필요 없다.
대놓고 발 차기 봉인 해제! 앞차기! 간격 벌리고, 뒤돌아 뛰어 차기! 물러나는 놈을 추격하며 나래차기!
-검은 그저 거들 뿐…….
누군가의 명언처럼 지금 현우에게 죽도는 그저 장식.
쉬지 않고 박경진의 호구를 강타하는 것은 다년간 수련한 현우의 그림 같은 발 차기였다.
검도장에서! 검도용 호구를 입고!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어 보이는 장면이었지만 관장은 연신 OK 사인을 보낼 뿐이었다. 그리고 박경진도 딱히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얌전히 샌드백이 되어 주지도 않았다.
딱!
“아오!”
경쾌한 소리와 함께 발목으로 전해지는 통증!
현우가 발 차기로 몰아붙이자 박경진은 죽도로 발목을 노리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히 반칙이지만!
“음, 좋아! 그거다! 어떤 무술이든 공격할 때는 항상 몸보다 발이 앞에 나와 있지. 그러니 발목을 노리는 공격은 매우 효과적이다. 발목 주위는 근육이 없어서 무지 아플 뿐만 아니라 발 기술을 사용하는 녀석들에게는 공격력을 반감시키는 효과도 있지.”
그러나 대범한(?) 관장님은 이 역시 OK!
그건 관장만이 아니었다.
“어? 이게 뭐야?”
“저 녀석은 며칠 전부터 나온 경진이고, 상대는 누구야?”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한데? 어이, 너! 제법이다! 응원하마!”
“허허, 아침부터 기운도 좋군. 역시 젊음이 좋아.”
“뭐 젊을 때는 싸우면서 크는 거지.”
하나둘 모이기 시작하는 관원들도 대범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이미 현우와 박경진은 주위에서 떠드는 소리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퍽! 텅! 파파팍!
“헉헉헉! 어, 어떠냐, 이 자식아!”
“큭, 이 새끼, 어디서 같잖은 발재간 좀 배웠다고 잘난 척하지 말라고! 여긴 검도장이야! 검도장에 왔으면 제대로 된 검도 기술로 싸우란 말이다!”
딱! 따악! 따다다닥!
“먼저 시작한 게 누군데? 게다가 너! 아까부터 발만 노리고 있잖아! 그건 제대로 된 검도 기술이냐? 발등 찍기 같은 기술은 들어 본 적도 없다고!”
“진짜는 이거다! 이 빌어먹을 놈아!”
콰직!
“컥! 뭐, 뭐야? 박치기? 정말 막가자는 거냐?”
“못할 것도 없지!”
콰직! 퍽! 콱콱콱! 우지끈!
차라리 길거리 싸움이었다면 일찌감치 깔끔하게 승패가 갈렸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둘은 웬만한 대미지는 무시하는 검도용 호구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싸움은 자연히 대미지를 받지 않는 것보다 대미지를 주는 쪽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해 일단 상대를 패고 본다는 말이다.
당연히 시합은 개싸움, 막장을 향해 전속력으로 치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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