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599)
아크 더 레전드-599화(599/875)
[599] SPACE 9. ……아! (3)‘이대로는 안 돼!’
부룸은 그렇게 생각했고.
‘설사 죽더라도 이곳을 탈출해야 한다!’
……라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그러나 탈출할 수 있었다면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탈출했을 것이다.
물론 부룸 일족이 있는 유적은 어마어마한 고래도 드나들 수 있는 문이 있었다.
그러나 그 문은 무슨 장치가 되어 있는지 고래가 드나들 때만 열렸다. 고래의 눈을 피해 그 문으로 탈출한다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 청소를 하며 유적 구석구석을 살펴봤지만 다른 통로는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부룸도 무턱대고 탈출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 나름대로 생각해 둔 탈출구가 있었던 것이다.
‘식량 저장고!’
고래가 해산물을 담아 두는 거대한 저장고였다.
부룸은 이곳에 있는 사이, 그 저장고의 해산물이 일정 시간이 되면 사라진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건 저장고가 어딘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뜻!
‘이유는 모르지만 고래는 이 유적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아마도 저장고의 해산물이 일정 간격으로 사라지는 것은 썩기 전에 버리기 위한 것. 그런 썩은 해산물을 유적 내부에 쌓아 둘 리가 없어. 그렇다면 저 저장고와 연결된 곳은 아마도 고래에게 납치되기 전에 봤던 바다!’
그 외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저 저장고에 쌓여 있는 엄청난 양의 해산물을 헤치고 밖에 나가기 전에 고래에게 들키면 모든 게 끝장이야. 그때는 정말 목숨을 장담할 수 없다. 그러니 기회는 단 한 번! 기회를, 완벽하게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기다려야 해.’
그런데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며칠 전부터 고래가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때부터 저장고의 해산물이 평소의 몇 배나 되는 속도로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부룸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지금이라고!
-자, 가자!
그리하여 저장고로 다이빙!
-시간이 없다! 고래가 돌아오지 않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살아 있다면 분명 저장고가 비기 전에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만약 고래에게 무슨 일이 생겼어도 이곳에 계속 남아 있으면 굶어 죽을 뿐이다! 그러니 지금! 저장고가 바닥나기 전에 탈출해야 한다!
부룸이 수북한 해산물을 파고 들어가며 소리쳤다.
부룸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저장고 바닥까지 파고 들어가니 파이프처럼 위쪽으로 연결된 통로가 나타난 것이다.
문제는 그 통로가 각종 해산물로 꽉 채워져 있다는 것.
그러나 그 역시 빠른 속도로 위쪽으로 흡수되며 사라지고 있었다.
지금 부룸 일족이 모여 있는 공간이 바로 그 통로!
부룸 일족은 그 해산물에 섞여 위쪽으로 올라가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아직은 그게 100% 바다로 나가는 통로라는 확신은 없었다. 그러나 어차피 유적에 남아 있으면 똥돼지가 되거나 굶어 죽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숨이 붙어 있는 한 자유를 향해 뛰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설사 그 끝이 죽음이라도!
Dead or Alive!
자유를 향한 문어들의 사투는 계속되었다.
* * *
‘뭐냐 이건…….’
아크가 황망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서 잠시 설명하자면 아크는,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문어들을.
문어를 찾아 해저 유적에 들어와 놓고 ‘광선검파’나 바사크의 성장에 정신이 팔려 정작 문어의 존재는 머릿속에 떠올리지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아크는…….
‘두 달이나 늦었는데 이제 와서 새삼 닷새쯤이야. 토리 말대로 여기는 몬스터가 득실거리니 죽었으면 진즉에 죽었을 거고, 살아 있으면 아직 어딘가에서 잘 버티고 있겠지.’
Cool하게 넘어갔다.
뭐 어쩌겠는가? 잊고 싶어서 잊은 것도 아닌데.
그러나 몰랐으면 모르되 알고 나서도 마냥 놀고 있을 수는 없었다.
‘뭐 이제 바사크의 레벨도 잘 안 올라서 슬슬 같은 곳을 돌며 사냥하는 것도 그만둘 생각이었으니, 아직 가 보지 않은 지역을 뒤지며 겸사겸사 자렌족도 찾아볼까?’
그리하여 겸사겸사 자렌족 수색을 시작!
……라고 해 봐야 이미 대부분의 지역은 첫째 날 수색이 끝난 상태였다.
아직 가 보지 않은 곳은 상층.
유적 중심부는 커다란 원형 광장처럼 되어 있었는데, 광장 천장에 수직으로 뻗어 있는 통로 위까지는 아직 가 보지 못한 것이다.
당연히 목적지는 그 통로 위쪽이 되었다.
그리고 방금 전, 아크는 리젠된 몬스터를 정리하며 통로를 따라 위로 올라왔다.
아크를 황망하게 만든 상황은 그 직후에 벌어졌다.
수직으로 뻗어 있는 통로는 10여 미터 높이에서 다시 수평으로 바뀌었는데 그 근처에서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
알아먹을 수 없는 문자였다.
그러나 그 옆에는 보다 알기 쉬운 것이 있었다.
바로 레버!
“뭐 던전에 이런 게 있으면…….”
아크가 반짝거리는 눈동자로 바라보자 토리가 펄쩍 뛰며 소리쳤다.
-하, 하지 마요! 하지 마! 뭐가 나올지도 모르잖아요! 아니, 나와요! 십중팔구! 뭔가가! 그 옆에 적혀 있는 것도 ‘누르지 마시오.’일 거예요! 분명! 100퍼!
“그러니 눌러 봐야지.”
철컥!
그때였다, 충격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은.
레버를 당기자 굉음이 울리며 유적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쿠쿠쿠쿠! 쿠쿠쿠쿠! 쏴아아아아!
유적을 채우고 있던 물이 빠져나가 버린 것이다.
레버의 정체는 유적에 고여 있는 물을 밖으로 방출시키는 장치였던 것이다.
그 순간 아크의 머릿속에 지금까지 유적에 들어와 수중 페널티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과 닷새간의 치열한 전투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깨달았다.
일찌감치 여기에 와서 레버를 당겨 봤다면…….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이었다!’
그건 다시 말해…….
‘삽질이었다!’
-저기…….
“아무 말도 하지 마라.”
뭐랄까, 그런 말을 하면서도 이 상황은 뭔가, 뭔가 말이다!
그나마 위안은 레버를 유적 탐사가 끝난 뒤에 찾은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상층의 통로에도 몬스터가 나와 주었던 것이다.
아니, 많았다. 하층보다 몇 배는 더 많았다. 그러나 아크는 이미 수중에서도 크랩이나 모레이 떼를 몰살시키며 놀았던 유저였다. 거기에 이제 수중 페널티도 없어진 지금 그런 놈들이 새삼 아크의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게다가 지금 아크는 살짝 빈정까지 상해 있는 상황!
“받아라! 분노의 검!”
파직! 파직! 퍼퍼퍼펑! 콰직!
아크는 나오는 족족 분해시키며 거침없이 진격했다.
그렇게 대략 2시간이 더 지났을 때였다. 언제부터인가 점점 몬스터가 적어진다 싶더니 길게 이어진 통로가 확 넓어지며 커다란 광장이 나타났다.
‘이런 곳은 좋지 않은데…….’
거침없이 진격하던 아크도 여기서는 좀 신중해졌다.
사실 던전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곳은 좁은 통로보다 되레 이런 장소였다.
통로는 퇴로만 확보해 놓으면 최악의 상황이라도 도망칠 수는 있다. 그러나 넓은 장소에서는 아차 하는 사이에 포위되어 오도 가도 못하고 맞아죽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하물며 지금 아크의 앞에 나타난 광장은 딱 보기에도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대체 뭐지? 이건?”
바닥과 벽, 천장까지 뒤덮고 있는 정체불명의 물체.
어찌 보면 유적 곳곳에서 본 해조류같이 보이기도 하고, 어찌 보면 마치 동물의 생체조직이나 내장 기관처럼도 보인다. 확실한 것은 딱 하나!
‘뭔가 있다!’
“토리, 넌 일단 여기서 대기해라.”
잠시 주위를 둘러보던 아크가 토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러나 이미 토리도 아크와 같은 결론에 도달했는지 어느새 저 멀리 떨어진 구석으로 물러나 산소 탱크 뒤에 숨어 있었다.
-저 설치류는 보면 볼수록 마음에 안 듭니다.
그건 아크도 동감이지만.
‘뭐 저 정도면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바사크,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너도 일단 실드로 돌아와라.”
아크는 바사크를 실드로 되돌리고 잠시 휴식을 취하며 생명력과 포스를 회복했다. 그리고 그사이 장비 점검까지 꼼꼼히 마친 뒤에야 광장으로 들어섰다.
‘조용하군.’
아니, 너무 조용했다.
이퀄라이저의 빛으로 주위를 살피며 광장 중앙까지 이동했지만 그 흔한 크랩 1마리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광장을 뒤덮은 벽과 바닥을 뒤덮은 정체불명의 물질이 점점 두꺼워지다가 어느새 뒤엉킨 굵은 줄기 형태로 변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줄기를 따라가듯이 좀 더 들어가자 곧 막다른 장소에 도착했다. 이에 주위를 둘러보던 아크는 흠칫하며 움직임을 멈추었다.
‘저건…… 얼굴……?’
수십 가닥의 줄기가 뒤엉킨 벽의 중심에 거대한 얼굴이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형태가 사람과 닮은, 2미터는 되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대체 뭐지, 이 얼굴은? 석상인가? 하지만 석상치고는 꽤…… 헉!”
얼굴을 살피던 아크가 헛바람을 들이켰다.
석상처럼 보이던 얼굴이 갑자기 번쩍 눈을 떴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웅웅거리는 목소리가 흘러 들어온 것은 그때였다.
-너는 누구인가?
“누, 누구냐니…….”
그건 아크가 묻고 싶은 말이다.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해저 유적에 붙어 있는 얼굴이라니, 정체가 궁금해지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다시 머릿속에 울림이 퍼졌다.
-네가 신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에? 신?”
-그렇다. 신, 나를 창조하고 이곳으로 보낸 위대한 창조주.
“이곳으로 보냈다고?”
-당연하지 않은가. 아직 이 혹성의 생물은 바다에서 벗어나지도 못한 미개한 존재들. 나처럼 위대한 존재를 창조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위대한 존재? 뭐야? 방금 전에는 위대한 창조주가 어쩌고 하더니, 이제 너도 위대하다는 거냐? 대체 어느 쪽이 위대하다는 거야?”
아크는 얘기를 하면서도 이런 벽에 붙어 있는 거대한 얼굴과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하는 자신이 황당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뭐, 원래 이런 세계니까 넘어가자.
어쨌든 얼굴은 아크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둘 다다. 나는 위대한 창조주의 힘을 그대로 물려받았으니까.
“창조주의 힘?”
-그래, 유일무이한 힘, 창조다.
얼굴이 거대한 눈동자를 움직여 주위를 훑어보며 말을 이었다.
-대체 얼마나 지났을까…… 너무나 오래되어 나조차 가늠할 수 없는 과거. 나는 창조주의 의지에 따라 P-301이라는 이름을 부여받고 수많은 동료들과 함께 긴 여행을 시작했다. 우리들의 목적은 오직 하나, 신의 첨병이 될 군사를 생산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별의 숫자만큼이나 많은 날이 지나서야 이 혹성이 닿았지. 이 혹성은 내가 원하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풍부한 대양. 오염되지 않은 그 대양은 신의 첨병을 생산하기 위한 좋은 양수羊水가 되어 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굴, 자칭 P-301의 목소리에 한숨이 섞여들었다.
-예상치 못했던 기후 변화가 이 혹성을 뒤덮었고, 당시 이 유적의 시스템을 만드느라 모든 힘을 소진해 버린 나는 막을 힘이 없었다. 그 결과 대양은 한순간에 얼음이 되어 버렸고 지각 변동에 의해 나는 깊은 지하에 봉인되어 잠들어 버렸다.
“휴…….”
아크가 한숨을 불었다.
이제야 아는 부분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 혹성, 그러니까 라바란스는 인류가 왔을 때 지하에 얼음 상태의 물만 존재했다고 한다. 그 얼음이 녹고 지금의 라바란스가 된 것은 테라포밍을 시작한 뒤였다.
뭐 너무 과해서 인류가 발붙일 땅까지 몽땅 바닷속에 잠겨 버리게 됐지만 어쨌든, P-301이라는 저 거대 면상은 그 덕분에 깨어난 모양이다.
‘그렇다면 P-301은 인류가 라바란스에 오기 전부터 이곳에 있었다는 말인데…… 대체 저 녀석이 신이라고 부르는 건 어떤 종족이지?’
의혹은 깊어지는 가운데.
-긴 잠에서 깨어난 나는 천체로 시간을 가늠해 보고 절망했다. 내 임무는 위대한 신께서 이 세계에 강림하실 때 대적하는 무리를 쳐부술 신의 첨병을 생산하는 것! 그러나 내가 깨어났을 때는 이미 그 약속의 때가 지난 뒤였다. 때문에 나는 신께서 강림하셔 나를 깨웠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신은 찾아 주시지 않았다. 그건 신의 은총을 거부하는 자들에 의해 강림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뜻. 내가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얼음 속에 갇혀 있는 사이에 신의 강림이 좌절된 것이다.
P-301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2미터는 되어 보이는 얼굴이 어둠 속에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으니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아크는 그보다 P-301의 말이 더 신경 쓰였다.
‘다른 세계에서 강림하는 신이 대적자들에게 패퇴해 물러났다고? 가만? 이거 어디서 들어 본 얘기 같은데? 설마 이 녀석이 떠들어 대는 신이라는 게…….’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때 P-301이 광장을. 아니, 아크의 머릿속이 뒤흔들릴 정도로 크게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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