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610)
아크 더 레전드-610화(610/875)
[610] space 4. 영혼의 심장 (2)그러나 그때!
-어머! 어어? 뭐, 뭐야?
갑자기 카야가 비명을 터뜨리며 앞으로 툭 튀어나갔다.
그리고 발끈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자 뒤에서 제피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어? 왜? 너만 믿으라며? 그래서 쩨쩨하게 탐지기 같은 것으로 시간 낭비하는 것보다 믿을 수 있는 네가 확인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 그런 건데 왜? 식겁했어? 그럼 그런 말을 하지 말든가. 그래도 뭐 다행이네. 함정은 없는 것 같아서.
-너…… 죽을래?
-네가? 나를? 무리일걸. 난 말이야.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허접한 엔지니어가 아니라고. 너처럼 드세지는 않지만 너와는 여기, 이 부분에 내장된 CPU의 성능이 다르다고나 할까? 네가 386이라면 나는 제논급이라는 말이지. 앗, 미안. 내가 너무 어렵게 말했지? 그냥 넌 바보고 난 천재라는 말이었어.
-똥개가 되고도 그딴 말을 할 수 있는지 보자!
-흥, 무리라니까 그러네.
카야가 눈을 부라리며 팔을 들어 올리자 제피가 잽싸게 뒤로 물러나며 수상한 약병을 꺼내 들었다. 결국 참다 못 한 레피드가 와락 인상을 구기며 소리치려는 순간!
철컥!
제피의 발치에서 들려오는 불길한 소리!
동시에 레피드와 사다인, 파크, 심지어 눈치 없는 쿠라칸의 눈에도 ‘X 됐다!’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리고 불행히도 그들의 예감은 적중했다.
쿠쿠쿠쿠! 콰콰콰콰!
굉음이 울리며 일행이 모여 있던 지면이 움푹 꺼지며 내려앉은 것이다. 그리고 그 아래의 경사면을 따라 엄청난 속도로 굴러 떨어지기 시작했다.
급경사! 좌로! 우로! 다시 급경사! 좌로! 우로!
워낙 오래 떨어지다 보니 나중에는 익숙해진 나머지 굴러가면서도 하품이 나올 정도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컥!”
-우갸갸갸!
-꺄악!
일행은 다채로운 비명을 터뜨리며 바닥에 처박혔다.
“여, 여기는 대체……?”
레피드가 황급히 몸을 일으키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뿌옇게 번져 나가는 플래시 스틱의 빛에 윤곽을 드러내는 것은 거대한 동굴이었다. 마치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람 같은 섬뜩한 형상의 바위가 뒤엉켜 있는 동굴.
고개를 들어 보니 수십 미터 높이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아마도 저 동굴로 떨어진 것이리라.
‘이 소혹성은 다른 소혹성과 달리 중력이 있지만 상당히 약하다. 그래서 저 높이에서 떨어지고도 대미지를 10%도 받지 않은 것이지만…….’
그래도 중력이 존재하기는 한다.
고압의 산소를 이용하는 우주복의 추진 장치로는 수십 미터 높이의 동굴을 되돌아 나갈 수가 없었다.
아니, 동굴까지는 어찌어찌 날아간다 해도 굴러떨어진 거리는 최소 수십 킬로미터. 동굴을 벗어나기 전에 산소가 떨어지리라.
‘다행히 여분의 산소통은 넉넉하게 챙겨 나왔지만 비행 도중에 산소를 충전할 수는 없다. 그러니 떨어진 통로를 되짚어 나가는 것은 무리야.’
-이게 다 너 때문이야!
그때 뒤에서 카야가 이를 갈아붙이며 소리쳤다.
-이게 왜 나 때문이야? 네가 먼저 공격하려고 했잖아! 난 정당방위를 하려던 거라고! 그러니까 너 때문이지! 사실 애초에 네가…….
“작작 좀 해!”
레피드가 와락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
“사람이 가만있으니까 장난감으로 보이냐? 더 이상은 나도 한계다! 너! 제피, 다시 한 번만 내 남자니 해부니 하는 소리를 하면 카야보다 내가 먼저 머리에 구멍을 내 주겠어!”
-엣헹, 거 봐라. 레피드는 말이지…….
“카야, 너도 적당히 해! 난 아직 너와 사귀겠다고 대답한 적 없어! 아니, 설사 사귀는 중이라도 이런 식으로 네 것인 양 군다면 사절이다!”
-에에에?
이어지는 레피드의 말에 사다인과 파크, 쿠라칸의 눈이 이따만 해지며 입이 쩍 벌어졌다.
그러나 이미 꼭지가 돌아 버린 레피드는 그런 사내들의 반응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입을 댓 발 내밀고 툴툴대는 제피나 당장 울 것 같은 표정의 카야도, 아니, 카야의 반응은 살짝 신경 쓰이지만 어쨌든!
‘살아 나간다!’
레피드는 오직 거기에만 집중했다.
왜냐! 만의 하나 죽기라도 하면 아크 자식이 무슨 소리를 할지 뻔하니까! 적어도 지금의 레피드에게는 카야와 헤어지는 것―뭐 정식으로 사귀는 것도 아니었지만―보다 아크에게 갈굼당하는 것이 백 배! 아니, 천 배를 싫은 것이다.
“이제부터 모든 지시는 내가 내린다. 위에서처럼 내 지시 없이 엉뚱한 짓을 하는 것은 용서 못 해. 장담하건대 그만한 대가를 치르게 해 주겠다. 특히 거기 두 여자!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제대로 이해했겠지?”
-……네.
카야와 제피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에 항해 내내 두 여자가 만들어 내는 숨 막히는 긴장감에 스트레스가 팍팍 쌓여 가던 사다인과 파크는 1.5리터짜리 사이다를 원샷한 표정을 지었지만, 잠깐이었다.
“……적이다.”
플래시 스틱을 앞세우고 걷던 레피드가 걸음을 멈추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앞에서 떠오르는 붉은 빛, 그 빛의 정체는 바로…….
-저건…… 나쿠마? 여기에 왜 나쿠마가?
“중요한 건 상대가 어떤 몬스터인가가 아니야. 얼마나 강한 놈이냐다.”
레피드의 말대로 였다.
넓은 지하 광장에 득실거리는 나쿠마의 레벨은 250대!
그중 유난히 큰놈은 300이 넘었다. 반면 레피드 일행의 평균 레벨은 150 수준―쿠라칸이 평균을 왕창 깎아먹었다―. 던전 정보창에 적혀 있던 것처럼 확실히, 엄청 빡 센 몬스터가 득실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두 여자 덕분에 이미 퇴로는 사라졌다.
-……할 수밖에 없나?
“힘들겠지만 풀링으로 서너 마리씩만 유인하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어. 풀링은 내가 맡는다. 파크, 나쿠마를 유인하면 오토봇으로 탱킹해 줘. 그리고 사다인과 쿠라칸은 나쿠마가 오토봇에 붙으면 방어가 취약한 배후로 돌아가 딜링에 전념한다. 너희 둘은…… 방해만 말아 줘.”
그렇게 전투가 시작되었다.
작전대로 레피드가 기회를 엿보다가 연사로 3~4마리의 나쿠마를 유인하면 파크가 공룡을 닮은 오토봇 쿰과 비행형 카를 진격시켜 탱커 역할을 수행했다.
그 사이 사다인과 쿠라칸은 공격력을 높이기 위해 뒤로 돌아가 1마리씩 집중 공격했다.
-천광! 파쇄의 창!
푸른빛을 뿜어내는 창이 내리치자 나쿠마의 몸에 붙어 있던 기계 덩어리가 스파크를 일으키며 떨어져 나갔다. 뭐 사다인의 공격력이야 익히 알려진 바였지만.
-받아라! 개조에 개조를 거듭한 M-620!
퍼펑-! 퍼펑-!
의외였던 것은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던 쿠라칸이었다.
전투가 시작되자 그 말대로 개조에 개조를 거듭해 이제 총인지 대포인지도 알 수 없게 된 총을 꺼내들자 일격에 수십 발의 탄환이 터져 나왔다.
이게 절망적인 사격 솜씨를 가지고 있는 쿠라칸이 선택한 최후의 방법!
총신을 아예 다발로 이어 붙여 산탄총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쯤 되니 이미 ‘헤비 거너―중화기 전문가―’인지 엔지니어인지 정체성마저 모호했지만 어쨌든! 덕분에 일단 꺼내 들면 움직이기도 힘들어 보였지만 위력은 확실했다.
그리고 뭣보다…… 빗나가지 않았다!
아니, 빗나갈 리가 없었다!
한 번 방아쇠를 당기면 탄환이 아예 일대를 뒤덮어 버리니 빗나가고 싶어도 빗나갈 수도 없는 것이다.
또 하나의 의외는 제피였다.
-의문의 약품 TN-544!
제피가 녹색 액체가 든 약병을 던지자 나쿠마의 몸이 매캐한 연기를 뿜어 올리며 녹아내리는 것이다.
그와 함께 쭉쭉 빠져나가는 생명력!
제피가 꽤 고렙이기는 했지만 엔지니어라 전투에는 그냥 혹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엔지니어는 그 나름의 전투법이 있었던 것이다.
-에너지 블래스터!
거기에 DNA 조작 전문의 에스퍼지만 상당한 위력의 에너지 탄을 뿜어내는 카야! 그리고…….
“슬라이드! 속사! 연사!”
미끄러지듯이 이동하며 나쿠마의 급소에 엄청난 속도로 탄환을 박아 넣는 레피드까지!
전투는 예상했던 것보다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나쿠마는 엄청나게 많고 던전은 끝도 없이 넓었다.
그러나 뭣보다 답답한 것은 갑자기 수십 킬로미터를 굴러떨어져 대체 여기가 어디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얼마나 가야 하는지도 감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닷새, 덕분에 몸도 마음도 지쳐 가는 레피드였지만.
-훗, 너 에스퍼라면서 할 줄 아는 게 그냥 반짝거리는 공 집어 던지는 것밖에 없냐? 그냥 차라리 이참에 직업을 바꾸지 그래? 투수 같은 걸로.
-그것 말고도 많지. 예를 들면 너를 멍멍이로 바꿔 버리는 스킬이라든가. 한번 체험해 보면 그딴 소리는 두 번 다시 못 하게 될 걸.
뒤에서 속닥거리는 카야와 제피.
뭐 이렇게 속닥거리니 대놓고 뭐라고 하기도 힘들지만 이건 뭐랄까…….
‘젠장! 나쿠마! 나쿠마 어디 있어?’
차라리 피 튀기며 싸우는 편이 나은 레피드였다.
* * *
“음…….”
마틴 후작이 침음을 발하며 시선을 들었다.
그러자 맞은편에 앉은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개구리처럼 입을 벌린 사내는 더 할 수 없이 밉살스러운 표정이었다.
마틴 후작은 살짝 미간을 찡그리고 다시 손에 들린 서류로 시선을 내리며 입을 열었다.
“이거, 위조는 아니겠지?”
“아니, 무슨 그런 벼락 맞아 죽을 소리를 하십니까? 서류 한두 번 보십니까? 딱 보면 알잖아요. 진퉁! 그것도 본인에게 받자마자 바로 가져온 따끈따끈한 진퉁이라고요.”
“뭐 진짜 같아 보이기는 한다만.”
“같아 보이는 게 아니라 진짜라니까요!”
“뭐 그래, 진짜라고 하지.”
마틴 후작이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
“나 참, 굳이 그걸 제 입으로 말해야 합니까? 뻔하잖아요. 토리의 고물상 기어는 박물관 절도 사건으로 몰수당했지만 보다시피! 그 고물상은 모두 토리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고물상의 지분 중 30%는 젝슨, 아! 여기서 잠시 설명드리자면 젝슨이라는 사람은 R-14의 공기 순환 시설 관리자로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은하연방에 봉사한다는 긍지를 가지고 실로 근면 성실하게 근무해 온 공무원으로…….”
“적어도 너보다는 훌륭한 사람이겠지. 그러니 그건 넘어가고. 그래서?”
“어쨌든 박물관 절도 사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당시 은하연방은 죄 없는 젝슨의 재산까지 몰수했다는 말입니다. 있을 수 없는, 아니,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거죠.”
“결론은?”
“은하연방에 정식으로 재산 반환과 이로 인해 성실한 공무원인 젝슨이 받은 심적, 물적 피해에 대한 보상을 청구하는 바입니다!”
이렇게 소리치는 사람은…….
“바로 젝슨에게 지분을 위임받은 이 아크가!”
씨익 웃으며 말하는 사내!
뭐, 말할 필요도 없이 아크였다.
그리고 이게 바로 아크가 OTL 직전에 찾은 한 줄기 희망의 빛이었다. 아니, 찾았다고 할 것까지도 없었다.
이미 말한 것처럼 기어가 연방에 몰수당한 이유는 토리의 범죄 때문에. 그러나 애초에 기어는 토리만의 것이 아니었다. 기어의 30%는 선량한 공무원인 젝슨의 재산이었다.
당연히 돌려받을 자격이 있지 않은가!
하물며 아크는 이제 은하연방의 실권자로 확실히 자리 잡은 마틴 후작과 매우 친한 사이다.
언제든지 1대1 독대가 가능할 정도로!
그리하여 이스타나로 돌아오자마자 마틴 후작에게 직행!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쳇, 귀찮게스리…….”
뭐 마틴 후작 입장에서는 그리 달갑지 않겠지만.
“이미 1년이 다 되어 가는 일을 가지고 하필 이제 와서 이런 서류를 들이미는 건 대체 무슨 심보냐? 네가 지금 타투인 상황을 몰라? 뭣보다, 그때 이 사건은 내무부 관할이었다고. 내가 왜 쥬벨 녀석의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 거냐?”
“후작님이 쥬벨을 내쫓았으니까요.”
“남의 얘기처럼 말하는군.”
마틴 후작이 못마땅한 눈으로 아크를 흘기며 말했다.
“쥬벨과 호크를 찾으라고 했더니 어디서 이런 거나 찾아와서…… 하여간 네놈은 좀 마음에 든다 싶으면 꼭 이런 식으로 복장을 뒤집어 놓는단 말이야.”
“아니, 후작님에게 물어 달라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러십니까? 은하연방에 청구하겠다는 거잖아요. 말하자면 공금. 그러니까 이참에 남의 돈으로 인심 한번 팍팍 쓰세요. 선심 정치! 뭐 그런 거 있잖아요. 다른 정치인들을 잘만 그러던데.”
“이놈이 뚫린 입이라고…….”
마틴 후작이 와락 인상을 구기며 소리쳤다.
“내가 그런 쓰레기 같은 인간들과 같다고 생각하냐!”
“물론 아니죠.”
아크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후작님은 공명정대! 모든 정치인이 귀감으로 삼을 만큼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번 일도 공명정대! 확실하게 처리해 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아주 들었다 놨다…….”
마틴 후작이 이맛살을 찌푸렸지만 그것도 잠시.
“뭐 좋다. 네 녀석이 히죽거리는 표정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런 이유로 묵살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하지만 문제가 있다. 말했듯이 당시 사건을 담당한 것은 내무부. 그리고 알다시피 내무부는…… 뭐 저렇지.”
마틴 후작이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당연하다. 타투인에서 일어난 전투로 황성과 연방 사령부가 박살 나 마틴 후작도 천막 수준의 임시 본부에서 복구 작업을 지휘하는 형편이다.
하물며 악의 본거지였던 내무부 건물이 멀쩡할 리가 없었다. 내무부는 진즉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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