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612)
아크 더 레전드-612화(612/875)
[612] space 4. 영혼의 심장 (4)띠링-!
뜬금없이 떠오르는 정보창.
‘어라? 이건 혹시?’
아크는 당황했지만 바로 눈동자를 반짝였다.
척 하면 척이다. 정보창과 함께 콧구멍으로 밀려들어오는 골드의 냄새!
P-301의 몸속에서 귀족의 인장이 새겨진 견갑이 나왔을 때부터 좀 이상하기는 했다.
그러나 막상 생각해 보니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었다.
라바란스는 은하연방의 귀족만이 들어갈 수 있는 생태 보호 혹성. 아마도 이 견갑은 관광차 들른 후안 백작이 잃어버린 것이리라. 그게 어떤 경로로 P-301의 몸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일단 말은 되는 것이다.
‘그걸 내가 찾아 주면 당연히…….’
귀족이 무엇보다 중요시 여기는 것은 체면!
떡하니 가문의 인장까지 박혀 있는 견갑을 찾아 준 아크를 빈손으로 보내지는 않으리라.
이런 허접한 견갑이라도! 그 가치의 몇 배에 달하는 보상을 해 줄 것이 분명하다. 아니, 그게 아니라도 이런 정보창까지 떠올랐다면 뭔가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런 기회, 그냥 넘어갈 아크가 아니었다.
‘뭔지 몰라도 일단 쑤셔 보자!’
“후안 백작과 잘 아는 사이십니까?”
“그야 잘 알지. 후안 백작님도 꽤 오랫동안 군에서 근무하셨으니까. 지금은 퇴역해서 나베실 외곽의 숲속에 있는 별장에서 지내고 계신다. 후안 백작님은 퇴역한 귀족 중에서도 최고참에 속하는 분이라 나도 몇 번 들러 본 적이 있지.”
“위치를 알려 주시겠습니까?”
“찾아갈 생각이냐?”
“네, 이 견갑에 새겨진 문장이 후안 백작님의 인장이라면서요? 그럼 후안 백작님이 잃어버린 걸지도 모르잖아요. 그렇다면 당연히! 직접 찾아뵙고 돌려 드려야죠.”
아크가 개구리처럼 입을 벌리며 웃었다.
찜찜한 눈으로 잠시 아크를 바라보던 마틴 후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좋다. 사실 그 견갑에 대해서 짚이는 바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짐작만으로 입에 담을 말은 아니지. 그리고 네가 직접 찾아가겠다니, 후안 백작님을 만나 뵈면 어차피 알게 될 터. 나도 그편이 좋을 것 같다. 대신 심부름을 좀 해 줘야겠다.”
“심부름요? 저 바쁜데요?”
“이 자식이 말도 꺼내기 전에! 잃어버린 물건 돌려주러 갈 시간은 있고 내 심부름할 시간은 없다는 말이냐? 네놈은 대체 내가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아니, 뭐…….”
“됐다. 네 녀석하고 이런 말싸움 해 봐야 남는 것도 없지. 어쨌든 후안 백작님을 찾아가겠다는 거지? 심부름은 그 후안 백작님에게 편지를 전해 주는 일이다. 요즘 바빠서 나도 꽤 오래 뵙지 못했으니 안부 편지를 써 줄 테니 가는 길에 전해 드려라. 설마 그것도 바빠서 못하겠다고 하지는 않겠지?”
“제가 언제 바빠서 못하겠다고 했어요? 그냥 바쁘다고 했지.”
아크가 금세 말을 바꾸며 웃었다.
“이 녀석은 정말…….”
마틴 후작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봤지만 더 이상 따지지는 않았다. 어차피 이런 놈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마틴 후작도 ‘이런 놈’이라 아크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이다.
물론 항상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자, 받아라.”
뒤이어 아크가 마틴 후작의 편지를 받아들었을 때였다.
-마틴 후작의 <안부 편지>를 획득했습니다.
《마틴 후작의 편지》
당신은 마틴 후작으로부터 라바란스에서 얻은 견갑의 주인이 후안 백작이라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이에 마틴 후작은 후안 백작이 견갑을 잃어버린 경위에 대해 알아보라는 말과 함께 안부 편지를 건네주었습니다.
난이도 : –
‘이런 것도 퀘스트로 등록되는 거야?’
아크가 눈을 꿈뻑거리며 연이어 떠오르는 퀘스트 정보창을 바라보았다.
좀 의외이기는 했지만 좋은 일이다.
고작 안부 편지나 전해 주는 퀘스트지만 그래도 퀘스트. 하다못해 경험치 10이라도 들어오겠지. 말하자면 공짜! 그리고 아크는 공짜를 매우 좋아하는 유저였다.
“나중에 뵙겠습니다!”
아크는 편지를 받자마자 뛰어나갔다. 그리고…….
SPACE 5. 야쉬라의 유산 (1)
돔Dome형의 넓은 공간.
4명의 사내가 모여 있었다. 작은 체구의 백발노인 벨테란 공작을 시작으로, 조금 흐트러진 모습의 쥬벨, 나머지 두 청년은 호크와 펜릴이었다.
그러나 방금 전 또 다른 존재의 형상이 나타났다.
커다란 단상에 흐느적거리는 검은 베일로 몸을 휘감은 흐릿한 ‘어떤 자’ 앉아 있었다.
그는 실체가 아닌 홀로그램으로 만들어진 영상이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도, 심지어 전체적인 형상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 이유는 홀로그램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호크의 하나밖에 없는 눈동자에 경계심이 떠올랐다.
‘저자는…… 뭔가 다르다.’
단순히 홀로그램으로 만들어진 영상임에도 그런 느낌을 들게 만들었다. 그러나 벨테란 공작은 그런 모습에도 익숙한 듯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어떻소?”
-만족스러운 수준이군. 수고했소.
“돈 밖에 없는 늙은이가 한 일이 뭐가 있겠소? 다 저 친구가 부지런히 움직여준 덕분이지.”
-음, 수고했다.
벨테란 공작의 말에 검은 형체의 시선이 펜릴에게 향했다.
펜릴은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검은 형체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잠시 펜릴을 바라보다가 벨테란 공작을 돌아보며 웅웅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군.
“그렇소. 이 정도까지 계획이 진행되면 아무리 필터를 깔아 놨다 해도 곧 눈치를 채겠지.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들켰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싫으니, 몇 가지 일만 더 마무리되면 시작할 생각이오.”
-우리의 대리자는 저 사람인가?
“음, 이 사내가 일전에 말했던 쥬벨이오.”
벨테란 공작이 멍한 표정의 쥬벨을 가리키자 검은 형체의 붉은 눈동자가 훑듯이 스쳐 지나갔다.
쥬벨이 퍼뜩 정신을 차리며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처, 처음 뵙겠습니다! 쥬, 쥬벨입니다! 이런 중대한 일을 맡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쥬벨, 목숨을 걸고 두 분의 기대에 보답하겠습니다!”
-그래…….
베일 아래로 드러난 검은 형체의 입 끝이 슬쩍 치켜져 올라갔다.
-꽤 믿음직스러운 인물을 찾아냈군. 공작.
“뭐 그렇지.”
벨테란 공작도 웃음기를 머금으며 대답했다.
검은 형체와 벨테란 공작이 웃음을 보이자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짓던 쥬벨은 영문도 모르고 따라 웃었다.
‘……삐에로가 따로 없군.’
호크는 쥬벨이 한심하다 못해 불쌍해 보일 정도였다.
상상 이상의 막강한 힘을 가진 벨테란 공작, 그리고 정체는 모르지만 검은 형체 역시 그에 못지않은 힘을 가지고 있는 것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 두 존재가 쥬벨을 대리자로 내세우고 있다. 이에 쥬벨은 꽤 들뜬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호크에게 그 모습은 종이 왕관을 쓰고 좋아하는 어린애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뭐 이제 나와는 상관없지만.’
그러나 호크는 이제 쥬벨 따위를 걱정할 입장이 아니었다.
쥬벨과는 입장은 달라도 호크 역시 처지는 다르지 않다. 또한 쥬벨처럼 그 역시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아니, 여지가 있었어도 선택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이 방법이 최선이니까.
-……이제 재미있어지겠군.
“재미있어진다기보다는 재미있게 만들어야겠지. 이따위 은하계는 지루하니까.”
-크크크, 그렇지. 그럼 나머지는 맡기겠소.
“지켜보시오.”
그사이에 그들만의 대화를 이어 가던 벨테란이 몸을 돌려세웠다.
-펜릴, 너는 남아라. 따로 할 말이 있다.
그리고 검은 형체가 지목한 펜릴을 뒤로하고 벨테란 공작, 쥬벨, 호크는 방을 나왔다.
“저자, 믿을 수 있는 겁니까?”
원형으로 길게 휘어진 복도를 따라 묵묵히 걷던 호크가 슬쩍 벨테란 공작을 돌아보며 입을 연 것은 한참 뒤였다.
그러자 벨테란 공작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파트너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가 아니다. 그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지. 그런 의미에서 보면 저만한 파트너는 없다.”
“그렇다면…….”
“나는 이 자리에 오기까지 수많은 적을 상대했다. 하지만 언제나 최후의 순간에 내게 치명타를 입히는 것은 함께 싸운 동료였지. 명심해라. 적에게 너무 몰입하면 정작 가까운 곳에 있는 칼을 보지 못하는 법이니까. 네가 적보다 주의해서 살펴야 할 것은 펜릴이다. 그리고…… 저 녀석에게도 관심이 필요하겠지.”
벨테란 공작이 뒤에서 히죽거리며 따라오는 쥬벨을 돌아보았다.
“너로서는 납득하기 힘들지도 모르지만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 그런 점에서 저 녀석은 이번 일의 시작을 알리는 데 가장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지. 그리고…….”
“오! 오오오오!”
그때 뒤에서 쫓아오던 쥬벨이 퍼뜩 고개를 들어 올리며 입을 쩍 벌렸다. 그리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뛰어와 맞은편 응접실의 한 면을 채우고 있는 창가에 달라붙었다.
“이거다! 이게 힘이야!”
쥬벨이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쿠테타 실패 이후, 한결같이 정신 나간 모습을 보여 주는 쥬벨이지만 그런 증세는 요 며칠 사이에 한층 더 심각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호크는 쥬벨의 기분도 이해할 수 있었다. 호크 역시 그 장면을 처음 봤을 때는 충격을 받았을 정도니까.
아니, 몇 번을 봐도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이 정도였을 줄이야…….’
창문 밖으로 보이는 것은 전함!
헤아리기도 힘든 숫자의 전함이 함대를 이루며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그러나 이조차 벨테란 공작과 홀로그램으로 본 검은 형체가 가진 힘의 일부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힘은 지금 처음으로 은하계에 그 모습을 드러내려 하고 있었다.
‘오래 기다리지 않게 하겠다, 아크!’
입을 꾹 다물고 창밖을 바라보는 호크의 귀에 쥬벨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우하하하! 마틴,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 죽지 않았다고!”
* * *
“뭐냐, 이건?”
아크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마틴 후작의 편지를 받아 든 아크는 다시 임시 본부 근처에 주차(?)해 둔 실버스타를 타고 나베실로 날아갔다.
후안 백작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잠시 말하자면, 후안 백작의 집은 의외로 찾기 힘들었다. 집이 시델린 외곽을 빽빽이 뒤덮은 숲 속에 자리 잡고 있어 실버스타를 근처에 착륙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실버스타는 숲 바깥에 착륙시키고 도보로 30분. 이렇다 할 길도 없어 수풀을 헤치며 한참을 걸은 뒤에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공사다망한 아크가 이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돈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도착해 보니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곳으로 오는 내내 아크는 멋진 숲속의 저택을 상상하고 있었다. 당연하다. 백작이니까! 귀족이니까! 그러나 지금 아크의 눈앞에 있는 것은…….
“그냥 오두막이잖아?”
크기는 제법 되었지만 그냥 통나무로 지어진 오두막.
‘이거 괜히 삽질하는 거 아니야?’
아크의 얼굴에 불안감이 번지기 시작했다.
귀족이지만, 이런 곳에 사는 사람이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 줬다고 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워 줄 것 같지는 않았다.
어쩌면 견갑만 털릴지도 모른다.
아크는 그런 불안감에 선뜻 문을 두드리지 못하고 머뭇거렸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중요한 건 형편이 아니라 후안 백작이 귀족이라는 거야. 그것도 허영심만 빵빵하게 들어차 있는. 이 견갑만 봐도 알 수 있잖아. 방어력은 고작 10인 주제에 겉모양은 완전 레어. 무슨 전설의 아이템 같잖아. 오두막에 살면서 이런 견갑을 차고 다닐 정도면 뻔한 거 아니겠어. 그렇다면 아직 희망을 버릴 이유가 없지.’
아크는 그런 NPC를 좋아한다.
그런 NPC를 쪽쪽 뽑아먹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런 귀족이라면 탈탈 털어도 가책 따위는 받지 않아도 되니까.
‘좋아! 주머니를 탈탈 털어 주마!’
그리하여 전투력(?) 상승! 의욕이 생긴 아크는 성큼성큼 다가가 문을 두드렸다.
“후안 백작님 계십니까?”
“누구인가?”
“저는 아크라고 합니다. 마틴 후작님의 편지를 전해 드리러 왔습니다.”
“마틴 후작이? 허! 들어오게.”
‘음, 나쁘지 않아! 아니, 이 정도면 충분해!’
오두막에 들어선 아크의 얼굴에 음흉한 미소가 번졌다.
밖에서 볼 때는 그냥 허름한 오두막이었지만, 막상 안으로 들어와 보니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제법 호사스러운 가구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이 정도면 못해도 50, 아니 100골드도 뜯어낼 수 있겠어!’
순식간에 가구며 장식 따위를 스캔한 아크의 머리에 바로 견적이 나왔다.
물론 이런 행동을 티내서는 곤란하다.
후안 백작은 다름 아닌 마틴 후작의 지인, 뜯을 때 뜯더라도 티 나지 않게 뜯어야 뒤탈이 없는 것이다.
“이리 가져와 주겠나?”
그때 벽난로 앞에 앉아 있는 노인이 아크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말할 것도 없이 그가 후안 백작이리라.
이에 아크는 성큼성큼 걸어가 편지를 건네주었고, 후안 백작이 편지를 개봉해 읽어 내려가자…….
-《마틴 후작의 편지》 퀘스트가 완료됐습니다.
퀘스트가 완료되며 쥐똥만 한 경험치가 들어왔다.
그리고 바로 이때!
‘지금이다!’
슬쩍슬쩍! 슬쩍슬쩍!
아크는 견갑의 후안 백작의 눈에 띄게 팍팍 들이밀었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뭔가 하고 고개를 들어 올리던 후안 백작이 흠칫 놀라며 소리쳤다.
“아니? 자, 자네!”
“네? 왜 그러십니까? 제가 무슨 실수라도?”
“아니, 그게 아니라…… 자네, 그 견갑은…… 어디서 얻은 것인가?”
“갑자기 이 견갑은 왜……?”
“모르고 있었던 건가? 하긴 몰랐으니 아무렇지도 않게 그 견갑을 차고 나를 찾아왔겠지. 그 견갑에 새겨진 인장. 그건 내 가문의 문장이네.”
“네? 그럼 이게 원래 백작님의 견갑이었다는 말입니까?”
아크는 짐짓 놀라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러자 후안 백작이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허! 그렇게 찾아도 보이지 않던 것을 마틴 후작의 편지를 전해 주러 온 사람이 가지고 있다니…… 이것 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군. 이보게, 자네. 아크라고 했지? 자네가 그 견갑을 나쁜 방법으로 손에 넣지 않았다는 것은 알고 있네. 하지만…… 괜찮다면 그 견갑을 어디서, 어떻게 얻게 되었는지 말해줄 수 있겠나?”
“네, 뭐 그야…….”
바라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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