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627)
아크 더 레전드-627화(627/875)
[627] space 1. 시작되었다! (2)“마치 폭풍이 지나간 것 같네요.”
“그렇죠? 하여간 화랑 씨 주위 사람들은 하나같이 시끄럽기 짝이 없죠. 하지만 나는 점잖 빼는 남자들보다 저런 삼촌들이 몇 배나 더 좋더라고요.”
“저도 그래요.”
조민선이 얼굴을 붉히며 끄덕였다.
그리고 문득 문을 돌아보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박소미가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자 조민선이 무안한 표정으로 혀를 빼물며 대답했다.
“아, 죄송해요. 갑자기 좀 전에 하던 말이 다시 생각나서…….”
“무슨 말이요?”
“아버님과 현우 씨가 따님을 안고 울었다는 얘기요. 솔직히 저 그때 굉장히 당황했거든요. 다른 아빠들도 아기를 안고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지만 아버님은 정말…… 전 어른이 그렇게 우는 건 처음 봤어요. 아니, 그렇게 울 수 있는지도 몰랐어요. 아,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실례가 되나요?”
“그럴 리가 있나요.”
박소미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화랑 씨는 정말 기뻤던 거예요, 그 기쁨을 말이나 웃음으로도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부모 자식 사이도 인간관계라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하지만, 적어도 아이를 처음 품에 안을 때 아버지의 심정은 모두 같은 거예요. 물론 민선 씨의 아버지도.”
“아니…… 제 아버지는…….”
이어지는 박소미의 말에 조민선의 얼굴이 흐려졌다.
그리고 말을 잇지 못하고 한숨을 불어 내자 그녀의 손등 위에 박소미의 손이 포개졌다.
“언제가 좋을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지금이 좋겠네요.”
“네? 뭘…….”
“일전에 같이 식사할 때, 민선 씨가 말한 적이 있었죠?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다는. 그때 난 생각했어요. 사람은 모두 나름의 상처가 있고 다른 사람이 함부로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그러니 그냥 말없이 상처까지 감싸 안아 주면 된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좀 이기적이었던 것 같아요.”
“이기적이라니요? 어머님 같은 분이 왜 그런…….”
“나는 민선 씨의 말을 듣고 그게 민선 씨의 상처라고만 생각했어요. 하지만 화랑 씨가 아기를 안고 울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기억났어요, 현우의 친아버지도 그랬다는 것을. 그게 아버지예요. 그러니 알고 있었어야 했어요. 아버지와 사이가 틀어져 민선 씨도 상처를 받았겠지만 아버지도 민선 씨 이상의 상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이에요.”
“아버지는 그런 분이 아니에요.”
“그럴지도 모르지요.”
박소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확인해 봐야 하지 않겠어요?”
“확인이라니…….”
“말했죠? 남자는 몇 살을 먹든 어린애 같은 구석이 있다고. 애정을 표현하는 방법도 바보스럽기 짝이 없어요. 그러다 보니 때때로 오해가 생기기도 하죠. 물론 내가 민선 씨와 아버님의 사이도 그런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그런 오해 탓이라면 너무 슬프지 않겠어요? 그러니 한 번쯤은 먼저 마음을 열고 손을 내밀어 봐요.”
“어머님, 저는…….”
“물론 쉬운 일은 아닐 거예요. 무섭기도 하겠죠. 하지만 한번 믿어 봐요, 아버지의 사랑을. 만약 그래도 그분이 민선 씨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을 한다면…….”
박소미가 짐짓 화난 표정으로 팔을 걷어붙였다.
“내가 쫓아가서 혼쭐 내 줄게요!”
“어머님은 정말…….”
조민선이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 얼굴로 웃었다.
* * *
“후후후! 어떠냐?”
권화랑이 우쭐한 표정으로 갱생단을 돌아보며 웃었다.
“봤지? 봤지? 그냥 가만히 누워만 있어도 번쩍번쩍 빛이 나는 아기. 그 아이가 바로 나! 권화랑과 박소미 여사의 따님이다.”
“그만 좀 하십시오. 그 말만 몇 번째인지 아십니까? 누가 형님 딸 아니랍니까?”
“내가 믿기지 않아서 그래!”
“에?”
“넌 갑자기 로또에 맞으면 현실감이 느껴지겠냐? 아니, 이건 로또 따위에 비교할 수도 없어. 그렇게 예쁜 여자아이가 내 딸이라니! 쉽게 믿어질 리가 없잖아! 안 그래?”
“내 눈에는 다 똑같아 보이더구먼…….”
“뭐야? 넌 사기꾼이라는 놈이 왜 그리 사람 보는 눈이 없어?”
권화랑의 말에 강유진이 울컥한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아니, 여기서 왜 제 전직은 들먹입니까?”
“전직이든 현직이든! 사기꾼의 기본은 사람 보는 눈 아니야? 그런데도 딱 보면 모르겠냐? 호수같이 맑은 눈동자! 오뚝한 코! 앵두 같은 입술! 그게 미인이 아니면 뭐야?”
“야, 너 그런 눈 봤냐?”
“아니, 눈도 뜨지 못했는데 무슨 재주로 보냐?”
“떴어! 살짝! 아빠가 보고 있으니까 딱 알아채고 살짝 눈뜨고 봤다고! 어휴, 내 새끼, 기특하기도 하지. 어떻게 벌써 아빠를 알아보는지.”
“딸 바보라는 말도 있지만…….”
“저건 환자로군. 입원해야 할 사람은 형수님이 아니라 형님이었어.”
신생아실을 다녀온 뒤로 쉬지 않고 쏟아 내는 권화랑의 딸 자랑에 갱생단은 자포 자기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나 현우는…….
‘이제 그만 눈치 좀 채라고요!’
다른 문제로 권화랑을 째리고 있었다.
권화랑이나 갱생단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현우는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병원 휴게실은 사람이 넘치는데도 이들이 차지한 자리 둘레의 의자는 비어 있었다. 그리고 멀찍이 앉은 사람들도 권화랑과 갱생단을 곁눈질하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뭐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갱생단은 전직 범죄자, 그리고 그런 경력에 어울리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나름 예의를 차린답시고 단체복처럼 똑같은 양복까지 입고 있으니…….
이건 누가 봐도 조폭이다.
그리고 그런 사내들과 같이 앉아 있는 사람은 불과 1시간 전에 병원에서 난동을 피운 권화랑과 현우. 뭐 이쯤 되면 주위에서 수군거리는 내용은 뻔하지 않겠는가?
‘아버지는 조폭 두목. 난 그 후계자쯤으로 보이겠지.’
사실 현우는 그래도 상관없다.
문제는 어머니와 조민선이다. 못해도 사나흘은 더 입원해 있어야 하는 어머니가 병원 사람들에게 그런 식의 오해를 받는 게 달가울 리가 없지 않은가.
‘뭐 이미 늦은 것 같지만…….’
“아버지, 이제 그만하고 식사라도 하러 가시죠.”
주위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진 현우는 자연스럽게 일행을 밖으로 이끌었다.
“응? 난 아직 배 안 고픈데?”
그러나 권화랑은 눈치를 밥 말아먹은 아버지였다.
‘이 바보 아버지가 정말!’
현우가 울컥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려 할 때였다.
“아, 현우야, 잠시 나 좀 보자.”
유안국이 갑자기 생각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현우를 잡아끌었다. 그리고 병원 밖의 흡연 장소까지 나가 담배를 꺼내 물고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한번 만나러 올 생각이었다.”
“왜요? 무슨 일 있어요?”
“그건 내가 물을 말이다. 너,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거냐?”
“갑자기 무슨 말이에요?”
“택산 지구 말이다.”
유안국이 답답한 표정으로 담배를 뻑뻑 빨아 대며 말했다.
“난 도무지 이해를 못 하겠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 땅을 더 사들이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거야? 너도 알잖아? 그때 이후로 택산 지구 부동산 가격은 계속 떨어지고 있어.”
그건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다.
이러쿵저러쿵해도 현우는 그 ‘문제’의 부동산을 적지 않게 가지고 있는 지주니까.
그러나 지금 유안국이 문제 삼고 있는 것은 그게 아직도 ing. 현재 진행형이라는 부분이었다.
다시 말해 그때, 택산 지구의 부동산 시세가 10분의 1까지 곤두박질 친 이후에도 현우는 자금이 생길 때마다 유안국을 통해 택산 지구의 부동산을 사 들이고 있었다.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내 말이 그 말이야. 그걸 아는 놈이 왜 그러냐고?”
“그건 전에 말한 것처럼…….”
“그래, 묻지 않기로 했지. 나도 묻지 않을 생각이었다. 네가 돈 가지고 장난치는 놈도 아니고, 뭔가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네 말대로 형님에게 숨기고 땅을 매입해 줬지만 상황은 계속 나빠지고 있어. 이제 10분의 1도 아니고 12분의 1 가격밖에 되지 않아. 이쯤 되면 이미 택산 지구는 끝난 거나 다름없다고.”
“반가운 소식이네요.”
“뭐?”
“이제 12분의 1 가격으로 살 수 있다는 말이잖아요.”
“그야 그렇지. 아니, 그 가격에도 못 팔아서 안달하는 사람이 많으니 흥정하기에 따라서는 13, 14분의 1 가격으로 살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건 그만큼 가망이 없다는 말이다. 솔직히 나도 얼마 전까지는 혹시나 하는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 수준까지 시세가 폭락하면 더는 희망이 없는 거야. 그게 현실이라고!”
흥분해서 소리치던 유안국이 한숨을 불어 내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는 건 안다. 네 기분도 이해해. 그 정도 손해를 입고 물러나느니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잡고 싶겠지. 하지만 아닌 건 아닌 거야. 손해를 보기 싫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이미 그건 투자도 뭣도 아니야. 현우야, 형으로서 진지하게 말하마. 지금이라도 물러나라. 네가 맘만 먹으면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팔아 줄 테니까.”
“팔 생각 없습니다. 아니, 여유가 되는 대로 더 매입할 생각입니다.”
“현우야!”
“형님이 절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는 건 잘 압니다. 그리고 저도 정말 많이 고민했어요. 그래서 나온 결론이 그겁니다.”
“대체 왜 이렇게 고집이야?”
“고집이 아니에요.”
유안국에서 말한 것처럼 현우는 이 문제로 꽤 오랜 시간 고민했다. 당연하다. 택산 지구의 부동산에 쏟아부은 돈은 문자 그대로 현우의 전 재산! 김밥 하나, 라면 하나로 끼니를 때우며 모은 피땀의 결정체와 같은 돈이었다.
그 돈이 한순간에 10분의 1로 줄어들었다.
사실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부동산을 매각하지 않은 이유는 유안국의 말처럼 손해를 보기 싫어서였다.
부동산을 매각하는 순간, 전 재산이 10분의 1로 줄어들었다는 것이 현실이 돼 버릴 테니까.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부동산이 폭락한 이유!’
현우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짐작이었지만 이제 확신할 수 있는 정보도 몇 가지 입수했다.
루시퍼가 택산 지구 인근의 원전을 볼모로 잡고 정부를 협박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정부 차원의 개발이 진행될 리가 없었고, 관련자들에게는 극비 운운하면서도 ‘알 만한’ 놈들은 다 알아서 미리 사 놓은 땅을 매각하며 택산 지구 부동산을 똥값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건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현우에게 책임이 전혀 없다고는 말하기 힘들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루시퍼가 원전을 점거한 사건부터 현우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으니까.
그리고 지금, 그런 루시퍼의 행동은 현우에게 현실적인 위협이 돼 버린 것이다.
그게 운명의 장난인지, 아니면 그조차 루시퍼의 의도였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현우가 해야 할 일은 달라지지 않는다.
‘루시퍼를 해치우는 것!’
현실적으로 현우가 피해를 보상받을 방법은 그것뿐이다.
그러나 루시퍼는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현우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다.
‘꼭 이겨야 하는 싸움이라면 물러날 자리 따위, 만들어서는 안 돼! 내 모든 것을 건다! 그런 각오로 임하지 않으면 안 돼!’
현우가 유안국의 만류를 뿌리치고 택산 지구의 부동산을 매입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이건 도박이 아니다.
기필코 이기겠다는 필승의 의지! 그리고…….
“이건 투자입니다! 부동산이 아닌 나에 대한 투자!”
현우가 단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뭔 소리를 하는 건지…….”
유안국이 한숨을 불어 내며 머리를 흔들었다.
“하여간 누가 부모 자식 아니랄까 봐 하는 짓이 똑같냐?”
“그건 무슨 말이에요?”
“형님 말이다. 입국했을 때는 부동산 문제로 엄청 화내며 무슨 수를 써서라도 흑막을 캐겠다고 하더니 얼마 전에 갑자기 일단 덮어 두라고 하더라고. 내가 형님을 모르냐? 일단 맘먹으면 상대가 미국 대통령이라도 순순히 물러날 양반이 아니잖아. 그런데 물러났다. 이건 내가 살면서 겪은 가장 미스터리한 일 중에 하나야. 지금 네가 하는 짓도 그렇고.”
처음 듣는 말이지만 대강의 사정은 짐작할 수 있었다.
권화랑도 대강 감을 잡은 것이다. 루시퍼의 원전 점거 사건과 택산 지구의 일이 연관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번 사태를 관리하는 것은 국정원.
그건 다시 말해 부동산 폭락의 배후를 캐며 거슬러 올라가면 최종적으로 국정원과 맞닥뜨리게 된다는 말이었다.
국정원이 쉬쉬하는 일을 전직 범죄자들이 캐고 다닌다.
그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상상하는 것은 바보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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