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64)
아크 더 레전드-64화(64/875)
[64] SPACE 6. 감동의 재회 (1)쿠오오오오—!
혹한의 대지를 길게 가로지르고 있는 설산.
그 설산의 한쪽, 비교적 완만한 경사를 따라 10여 대의 바이크가 눈보라를 일으키며 내려오고 있었다. 좌우로 넓게 펼친 대형으로 쾌속 이동하는 바이크에 타고 있는 것은 라마족.
설상 위장용으로 코팅된 흰색 아머를 입은 라마전사들!
이들은 라마족이 ‘더 보더(The border)’라고 부르는, 라마족과 연방군 사이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설산 주변에 배치된 정찰부대원들이었다. 이들의 주된 임무는 설산 주변의 경계와 연방군 정찰부대의 요격. 그러나 지금의 목적은 달랐다.
[정지!]바이크가 비탈을 모두 내려왔을 때.
선두의 라마전사가 팔을 들어올리며 소리쳤다.
눈보라를 일으키며 돌진하던 바이크가 그를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라마전사가 시퍼런 안광의 눈동자로 대원들을 돌아보며 입김을 뿜어 올렸다.
[놈의 흔적은?] [도중에 몇 몇 흔적을 발견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모두 시간이 꽤 지난 것들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발견한 흔적이 여기서 불과 1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걸 생각하면…….] [한참 전에 보더를 넘었다는 말이겠지.]라마전사가 침음성을 흘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상황이 점점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며칠 전, 기지에서 날아온 호넷-연방군의 캐리어MR-II와 같은 연락용 기기-으로 기지의 이변을 전해듣고 만약을 대비해 보더 주변의 순찰을 강화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불빛 신호가 발견되어 주변을 수색하자 동면 가사상태의 연방군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이 자가 기지에서 벌어진 일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쉽게 추측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에 정찰부대의 분대장은 심문을 위해 적군을 생포해 벙커에 가두었다.
그리고 만의 하나 있을지도 모를 잔당을 확인하기 위해 정찰부대는 보더의 주요길목을 수색하고 있었다. 그 수색임무를 마치고 벙커로 돌아갔던 게 하루 전.
‘그 사이에 분대장과 메딕이 당해버리다니…….’
정황으로 보자면 감옥에 갇혀있던 놈의 짓이 틀림없다.
다른 연방군의 기습이 있었나 싶었지만 외부에서 침입했던 흔적은 없었다.
수갑이 채워진 채 감옥에 갇혀있던 놈이 대체 어떻게? 그것도 라마족 내에서도 실력자로 손꼽히는 분대장을, 심지어 메딕까지 한꺼번에 살해할 수 있었는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당장은 그런 문제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놈이 탈출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놈은 라마족 거점의 위치를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놈이 연방군 기지까지 살아서 돌아간다면 아군의 거점 위치가 알려지게 되는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것만은 막아야한다. 최선은 놈을 다시 생포하는 것, 그게 안 되면 죽여서 놈의 님프에 기록된 GPS정보라도 삭제시켜야한다.
[잡아라! 우리가 벙커를 비운 것은 18시간. 걸어서 도주 중이라면 따라잡을 수 있다!]라마전사들은 곧바로 바이크를 몰고 탈주자를 추격했다.
그러나 보더를 넘어 반대쪽까지 왔지만 아직 놈을 찾아내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보더 너머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군.]라마전사가 짜증스러운 눈길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보더는 절벽이 많아 이동할 수 있는 길이 한정되어 있다. 그 중 다른 곳은 정찰부대가 수색 중이었으니 남은 길은 하나, 벙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잡은 길뿐이다.
10여 명의 부대원만으로도 충분히 수색할 수 있는 범위.
그러나 놈이 이미 보더를 넘어왔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보더의 반대쪽은 광범위하게 펼쳐진 벌판. 사방으로 지평선이 보이는 벌판에서 사람 하나를 찾아내는 것은 사막에서 바늘 찾기나 다름없었다. 연방군이니 연방군 기지로 도망치고 있겠지만, 연방군 기지가 어느 방향인지 알면 애초에 이 고생도 하지 않았으리라.
[부 분대장님, 이제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놈이 우리측 기지의 위치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의혹이 있는 한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정보가 넘어가면 벨타나 전선 자체가 위험해져. 어떻게든 막아야해!] [그럼……?] [보더를 넘었다지만 놈이 도보로 이동하는 것은 분명하니 결코 멀리 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멀어봐야 20킬로미터 내외일 거야. 그러니 수색 범위를 40킬로미터로 설정하고 여기서 3개조로 나눠 9시, 12시, 3시 방향으로 이동하며 수색한다. 그리고 40킬로미터 지점까지 놈을 찾아내지 못하면 10시, 1시, 4시 방향으로 바꿔 되돌아오며 수색한다. 눈 폭풍도 점점 가라앉고 있으니 그런 식으로 범위수색을 하면 흔적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알겠습니다.]쿠콰콰콰콰콰콰! 쿠콰콰콰콰콰콰!
뒤이어 10여 기의 바이크가 짐승처럼 포효하며 쏘아져 나갔다.
그리고 바이크가 뿜어내는 배기음에 하얗게 피어올랐던 눈가루가 서서히 가라앉을 무렵.
들썩, 들썩, 들썩…… 뿅!
근처의 눈 더미가 들썩이더니 사람 머리가 쑥 솟아올랐다.
“훗, 멍청한 놈들.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건가?”
그 사내는 라마 정찰부대가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는 그 놈, 바로 아크였다.
“산전수전 다 겪어본 내가 네놈들이 뻔히 생각할 수 있는 대로 움직일 것 같아?”
아크가 눈 더미 속에서 기어 나오며 히죽 웃었다.
새삼스럽지만 아직 아크는 안전하다고 할 수 없었다.
어찌어찌 분대장과 메딕을 쓰러뜨리고 벙커를 탈출했지만 멀지 않은 곳에 라마족 정찰부대가 돌아다니고 있다. 분대장은 그들이 벙커로 돌아오는 게 내일이라고 했지만, 그게 꼭 24시간 뒤라는 말은 아니다. 그들이 언제 벙커를 나갔는지 알 수 없는 아크로서는 그 내일이 10시간 뒤인지, 20시간 뒤인지 가늠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굳이 내일이라고 말했다면 적어도 몇 시간 내에 돌아오지는 않을 거야. 모니터로 알아낸 길이라면 10시간 안에 설산을 넘을 수 있다. 그러니 놈들이 벙커로 돌아오는 게 10시간 이후라면 일단 설산을 넘기 전에 따라잡힐 걱정은 없다는 뜻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라마 정찰부대원들이 난감해했던 것처럼 설산 너머는 끝없는 벌판.
그런 곳에서 한 사람을 찾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도 그만한 거리가 벌어졌을 때의 얘기다.
‘놈들과 10시간의 거리가 있지만 놈들은 바이크를 타고 있어. 걸어서 10시간의 거리라도 바이크로 추격하면 30분도 되지 않아 따라잡히게 된다. 설산을 넘은 상태라도 실제적으로 몇 킬로미터 거리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바이크로 범위 수색을 하는 놈들의 시야를 벗어날 방법이 없어. 그렇다면 차라리…….’
거기까지 생각한 아크는 필살의 장비를 꺼내들었다.
이제 아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장비로 자리잡은 전가의 보도, 삽!
‘……숨는다!’
파파파파! 파파파파!
아크는 설산을 관통하는 길이 끝나는 지점의 눈 더미에 구멍을 뚫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속으로 기어 들어가 눈을 덮어 위장하고 은둔술 스킬을 사용해 기척을 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사실을 알 리 없는 라마 정찰부대는 그 사이에 아크가 시야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멀리 도망쳤다고 판단하고 서둘러 진군한 것이다.
물론 그들도 무턱대고 뒤를 쫓지는 않았다.
3개조로 나누어 전 방위를 수색할 수 있는 동선을 짜서 움직였다.
아크가 어느 방향으로 도주하든 수색망에 걸릴 수밖에 없는 동선으로. 그러나…….
“다 들었다, 거무튀튀한 자식들아.”
아크가 길목이 끝나는 지점에 숨어있던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설산을 가로지르는 길은 일직선이니 생각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설산이 끝나고 벌판이 펼쳐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무턱대고 내달릴 수는 없으니 뭔가 작전을 세우리라.
그 작전을 의논할만한 곳은 벌판이 시작되는 바로 이 지점!
라마 정찰부대의 대화를 엿들은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후후후, 네놈들의 가장 큰 실수는 상대가 바로 나, 아크라는 사실을 몰랐다는 거야.”
뭐랄까, 역시 썩어도(?) 아크랄까?
사실 아크도 자신의 변화에 스스로도 놀라는 중이었다.
갤럭시안을 시작하고 지금까지, 아크는 자기가 보기에도 어벙하기 짝이 없는 실수를 연달아 저질렀다. R-14에서 단검을 깨먹은 것부터 시작해서 돈 벌레 같은 햄스터 자식과 가계약을 맺은 것, 그리고 사기나 다름없는 퀘스트에 얽혀 범죄자가 되기까지.
‘나 정말 아크 맞아?’
오죽하면 이런 생각까지 들었겠는가?
그러나 벨타나에 오고 나서부터 상황은 조금씩 달라졌다.
벨타나에 와서도 절망스러운 상황은 여러 번 겪어봤지만, 같은 절망적인 상황이라도 그 전과는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녹슨 머리에 윤활유를 뿌려진 느낌이랄까?
이전과 달리 머리가 팽팽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마치 뉴 월드의 아크처럼!
‘그래, 이 느낌이야. 한동안 잊고 있었지만…… 이게 나다. 이게 아크야.’
벨타나는 지금껏 아크가 겪어본 전장 중에서도 최악의 환경이었다.
그런 최악의 환경은 게임 속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었다. 느닷없이 10분의 1가격으로 떨어진 부동산. 만약 정말 택산 원전에 무슨 사고라도 생기면 부동산은 통째로 날아간다. 그게 아니라도 루시퍼의 위협이 사라지지 않는 한 부동산 가격이 올라갈 일은 없었다.
그리 생각하니 루시퍼의 위협이 보다 현실적으로 와 닿았다.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안 돼!’
그런 게임 안팎의 상황에 잠자고 있던 아크의 생존본능이 깨어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언제까지나 이런 곳에서 빌빌거리고 있을 수는 없어. 전장은 전장 나름대로 얻을 게 있지만 한계도 있다. 죄수 신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아무리 발버둥쳐봤자 남들보다 앞설 수 없어. 하물며 루시퍼라면 말할 필요도 없겠지. 그러니 이런 곳에서 네놈들에게 잡혀서 축낼 시간 따위는 없단 말이야.”
아크가 번뜩이는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미 라마 정찰부대가 어떻게 움직일지는 완벽히 파악된 상태다.
그 동선을 피해 수색망을 벗어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자, 그럼 일단 배부터 채우고…….”
덥석! 우물, 우물, 우물.
아크가 벌레를 입에 넣고 씹었다.
벙커의 보급상자에서 우주식량을 20개나 챙겨 나왔지만 아크는 여전히 벌레를 먹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래야 ‘강철같은 위장’ 스킬의 숙련도가 올라가니까.
강철같은 위장은 그저 벌레를 먹기만 해도 숙련도를 올릴 수 있는 스킬이다.
그러나 막상 작정하고 올리려면 의외로 쉽지 않았다. 만복도가 떨어지지 않은 상태로는 아무리 벌레를 씹어대도 숙련도는 1도 올라가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벌레도 아무데서나 잡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리고 또 다시 식량이 떨어졌을 때 잡을 수 있는 벌레가 치사량의 맹독을 가지고 있다면 강철같은 위장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
숙련도를 올릴 수 있을 때 최대한 올려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벌레를 먹는 게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만, 캐릭터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면 그 이상의 일도 기쁜 마음으로 참아낼 수 있는 게 아크였다.
-만복도가 100%상태가 되었습니다.
벌레를 6마리 먹자 만복도가 만땅이 되었다.
강철같은 위장 덕에 마리 당 3%의 만복도가 추가된 덕분이다.
-현재 위치에서 은하연방의 기지까지: 243km
“이제 남은 거리는 243킬로미터…….”
처음 피라미드에서 나왔던 곳에서 아직 절반도 오지 못했다.
하루 평균 이동거리를 70~80킬로미터로 잡으면 아직 사흘 넘게 남은 거리였다.
“하지만 눈 폭풍이 가라앉고 있다. 곧 통신이 재개될 거야.”
통신이 재개되면 100킬로미터 내외의 거리는 님프로 무선연락이 가능하다.
연방군 기지에 구조요청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결국 남은 거리는 140킬로미터 내외, 불과 이틀거리다.
‘그래, 앞으로 이틀! 문제없어! 살아서 돌아갈 수 있다!’
아크가 힘차게 걸음을 내딛었다.
물론 추격대의 동선을 파악하고 있다해도 방심할 수는 없었다.
눈 폭풍이 가라앉고 있다. 이전처럼 아크의 족적(足跡)을 숨겨줄 눈이 적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문제는 이미 한참 전에 해결방법을 찾아냈다.
사사사사! 사사사사!
체중을 분산시켜 늪지에서 미끄러지듯이 움직이게 해주는 늪지보행술!
처음에는 발이 눈밭에 푹푹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응용했던 스킬이다. 그러나 설원 위에서 꾸준히 사용하다보니 얼마 전에 뜻밖의 정보창이 떠올랐다.
-[늪지보행술] 스킬에 새로운 추가 능력이 생겼습니다.
일부 스킬에는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특별한 ‘비결’이 존재합니다. 이런 비결이 있는 스킬이 중급 이상이 됐을 때 유저가 응용이 가능한 새로운 기술을 깨달으면 관련 스킬에 추가 능력이 붙는 경우도 있었다. 늪지보행술을 응용해 설상보행술을 터득했습니다.
+설상보행술: 늪지보행술과 같은 요령으로 설상에서의 이동속도를 올려줍니다.
《설상에서 행동제약이 감소, 회피율이 10%상승합니다.》
※설상에서 이동 시 발자취를 남기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늪지보행술의 추가 능력 설상보행술!
아크가 거의 흔적을 남기지 않고 설산을 넘을 수 있었던 비결이 이것이었다.
문제는 그냥 걷는 것보다 체력소모가 심하다는 것이었지만…….
덥석! 우물, 우물, 우물.
잡아둔 벌레가 넉넉해 문제되지 않았다.
그렇게 벌레를 팝콘처럼 씹으며 눈밭을 걷기를 하루.
벙커를 탈출했을 때부터 계산하면 꼬박 30시간 넘게 쉬지 않고 걸은 셈이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아찔한 현기증과 함께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았지만 아크는 입술을 깨물며 버텼다. 그 사이에 이동한 거리가 90킬로미터. 이미 한참 전에 라마 정찰부대의 수색망은 벗어났다고 생각됐지만 방심할 수 없었다.
동면 가사상태로 전환했다가 라마족에게 생포된 게 불과 30시간 전이다.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곳에서 무방비 상태로 쉴 수는 없는 것이다.
“헉헉헉, 이제 남은 거리는 150여 킬로미터. 젠장, 겁나 멀군. 헉헉헉, 하지만 그 사이에 눈 폭풍도 완전히 그쳤으니 이제 50킬로미터만 더 가면 기지에 구조요청을 할 수 있다. 헉헉헉, 길어야 10시간. 헥헥헥, 그때까지는 어떻게든 버텨야해!”
아크가 밀려드는 잠과 싸우며 님프를 확인하고 있을 때였다.
문득 님프의 아이콘 중 하나가 깜빡거리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어라? 이건? 왜 이런 곳에서 이게 반응하는 거지?”
아크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아이콘을 클릭했다.
-새로운 GPS정보가 입력되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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