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653)
아크 더 레전드-653화(653/875)
[653] SPACE 1. 그들의 개전開戰 (3)* * *
‘뭐 기대했던 것과는 좀 다르지만…….’
아크가 입맛을 다시며 실버스타의 옆을 스쳐 지나가는 전함을 바라보았다. 여기저기에서 시커먼 연기를 뿜어내며 아크 함대의 후방으로 이동하는 전함.
실버스타의 통신 창에서 아크를 향해 경례를 붙이고 있는 아사드의 전함이었다.
-대장님, 감사합니다!
방금 전까지 적 함대에 줄기차게 얻어맞으며 격침 직전까지 몰려 있던 아사드 입장에서 보면 아크는 그야말로 구세주! 그 입장에서도 당연히 행운이라고 할 만한 일이었지만.
‘……운이 따라 주는군.’
아크가 시선을 돌리며 씨익 웃었다.
아크 함대는 편성부터가 에러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함대원 절반이 얼마 전까지 적이었던 칼리 일당과 발렌시아. 그리고 막상 생각해 보면 레피드도 한때는 아크의 적이었다. 그래도 100% 믿을 수 있는 정의남과 이슈람도 끼어 있지만, 한쪽은 아버지고 다른 한쪽은 스승이다.
뉴월드와 갤럭시안을 거치며 산전수전 공중전, 이제 우주전까지 섭렵한 아크지만 이런 황당한 조합의 파티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이미 함대 파티는 만들어졌다. 이제 와서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봐야 소용없지. 그리고 불안 요소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아버지와 이슈람 형님이 있는 한, 내가 걱정하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겠지.’
다른 건 몰라도 그 부분은 믿을 수 있었다.
아크는 정의남과 칼리 일당, 이슈람과 발렌시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뭐 발렌시아의 경우에는 대강 짐작이 된다―, 분위기를 보면 안다.
발렌시아도 그렇지만, 칼리 일당도 정의남을 대하는 태도가 사뭇 진지한 면이 있었다.
그건 이들 사이에 이미 단순한 친분 관계 이상의 뭔가가 형성되어 있다는 뜻!
그러니 적어도 아크가 걱정하는 일, 그러니까 전투 중에 갑자기 뒤통수에 포탄이 박히는 참사(?)가 벌어지지는 않으리라. 그러나 그것과 함대 운용은 또 다른 문제였다.
함대 운용의 핵심은 공조!
칼리 일당과 발렌시아가 아크의 뒤통수에 포탄을 박아 넣지 않는다고 함대의 구성원으로 제 역할을 해 준다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그래도 이들은 나름 함대전 경험이 풍부한 편이야. 아니, 칼리 일당은 경험만으로 따지면 나보다 많겠지. 뭐 아직은 내 지시에 제대로 따라 준다는 보장은 없지만, 아버지와 이슈람 형님이 함께 움직이는 동안에는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거야. 되레 함대 운용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하면 칼리 일당이나 발렌시아보다 더 불안한 것은 그 둘이다.’
정의남과 이슈람!
이 둘은 아직 게임을 시작한 지 몇 달 되지 않았지만 시작부터 휘하에 ‘절대 충성!’ 하는 국정원 요원과 특수부대원을 150명씩이나 거느리고 있었다.
덕분에 폭풍 성장!
부하들이 열과 성의를 다해 경험치를 몰아준 덕분에 벌써 중상급 유저 수준의 레벨이 되어 있었다.
게다가 현실의 신체 능력이 일정 부분 적용되는 가상현실 게임의 특성을 고려하면 이미 정의남과 이슈람의 전투력은 상급 유저와 맞먹는 수준이리라.
그러나 개인의 전투력과 전함은 전투력은 별개다.
그리고 정의남과 이슈람은 불과 며칠 전에야 전함을 구입해 막 우주로 나온 초짜!
결국 아크 함대는 절반 이상이 적이었던 유저와 나머지 둘은 함대전 경험은커녕 전함조차 처음 타 보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함대인 것이다.
이런 함대가 갑자기 전장에 나가 제대로 싸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 아니, 경우에 따라서는 자중지란自中之亂을 일으켜 싸워 보지도 못하고 괴멸될 위험마저 있었다. 그러니 아크로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적 함대가 나타나 주었다.
‘그것도 8척, 만만하게 볼 정도는 아니지만 그리 부담스럽다고 할 만한 숫자도 아니야. 다시 말해 본 게임에 들어가기 전에 함대의 전력을 체크하기에 적당한 상대라는 말이다.’
아크가 운이 따라 준다고 했던 이유가 그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전황은 100점 만점에 90점을 줘도 될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아사드의 구조 요청 신호를 수신하고 주둔지로 향하던 함대를 선회, 기습적인 주포 사격으로 타격을 입힌 뒤에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고 집중포화를 쏟아붓기까지!
걱정과 달리 정의남과 이슈람, 또 발렌시아와 칼리 일당도 아크의 지시에 잘 따라와 주었다.
그리고 지금!
퍼퍼퍼펑! 퍼퍼퍼펑!
주포로 기선이 제압된 적 함대는 아크 함대의 포격에 제대로 반격도 못 하고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이쯤 되면 이미 승패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신의 군대에 당한 유저들이 꽤 많다고 해서 긴장했는데 이거야 원…… 하긴, 같은 신의 군대라도 함대마다 전력이 다르니 속단할 수는 없겠지. 그리고 이것도 나쁘지는 않아. 훈련 같은 실전이라도 이기지 못하면 의미가 없으니까. 아니, 자신감을 붙이기에는 이편이 나을지도 몰라.’
아크가 여유로운 표정으로 통신 창을 돌아보았다.
“내 말이 맞죠? 이쪽 항로로 이동하면 뭐라도 주워 먹을 게 있을 거라고 했잖아요.”
-쳇, 어쩌다 한 번 맞았다고 잘난 척은…….
이슈람이 입술을 삐죽였다.
-그리고 바르고 예쁜 말 다 놔두고 주워 먹는다가 뭐냐, 주워 먹는다가? 우리가 무슨 땅 거지냐? 하이에나냐?
-내가 너와 함께 다니기 싫어하는 이유가 그거다. 어째 떠들어 대는 말마다 하나같이 빈티가 묻어나냐? 덕분에 덩달아 나까지 수준 떨어지는 기분이 든단 말이야.
레피드도 냉큼 한마디 덧붙였다.
“나 참, 별걸 다 가지고 트집이네. 엎어치나 메치나! 폼 잡고 얘기하면 경험치가 더 들어옵니까? 어쨌든 내 덕에 공짜나 다름없는 경험치를 먹게 된 건 사실이잖아요. 이럴 때는 그냥 순순히 함대장의 선견지명에 감탄하며 칭찬해 주면 안 돼요?”
-대화 중에 미안하지만…….
아크가 볼을 부풀리며 말할 때였다.
함대장님의 말씀을 패널에 세운 팔에 턱을 괸 불량한 자세로 묵묵히 듣고 있던 대머리 해적 칼리가 눈썹을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이대로 잡담이나 하고 있어도 될지 모르겠군. 내가 보기에 저놈들은 공짜 경험치를 주고 싶은 생각은 없는 것 같은데 말이지.
“뭐?”
칼리의 말에 아크는 적 함대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전황은 딱히 달라진 것이 없었다. 아크 함대는 여전히 쉬지 않고 포격을 가하고 있었고, 적 함대는 반격조차 못 하고 불길에 휩싸여 있는 것이다.
이에 아크가 ‘뭔 소리야?’라는 눈빛으로 돌아보자 칼리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직 눈치채지 못한 거냐? 하긴, 네 위치에서는 안 보일 수도 있겠군. 어이, 부관. 각 전함으로 화면을 전송해라.
뒤이어 실버스타의 모니터에 떠오르는 영상, 칼리 함의 위치에서 잡히는 적 함대의 영상을 바라보던 아크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어? 이, 이건……?”
아크 함대가 쉬지 않고 뿜어내는 포탄이 폭발하는 곳은 적함이 아니었다.
그 앞의 100여 미터 전방, 아니, 정확히 말하면 100여 미터 앞에 우산처럼 펼쳐져 있는 투명한 막이었다.
진영의 중심에 위치한 아크는 적 함대의 정면이라 폭광 탓에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포탄은 모두 그 투명한 막에 피폭되고 있었던 것이다.
“광역 실드!”
-그래, 상대는 단순한 해적이 아니라 군대다. 저 정도 규모의 함대라면 광역 실드를 사용할 수 있는 전함이 1척쯤은 배치되어 있겠지. 다시 말해 지금 우리의 공격은 거의 먹히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광역 실드가 아니다. 저 광역 실드의 성질이지.
“성질이라면…….”
-보통 광역 실드를 사용하는 전함은 엔지니어 계열의 인시너레이터와 에스퍼 계열의 퍼큘리어. 이 두 가지 타입의 전함이다. 형태를 보면 아마도 저 실드는 후자. 퍼큘리어의 광역 실드다. 그리고 퍼큘리어의 광역 실드는 인시너레이터 타입과 달리…….
“이, 이런! 함대 산개!”
칼리의 말에 끝나기도 전에 아크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포격을 중지하고 즉시 현 위치를 이탈하라!”
-한참 신나는데 갑자기 뭔 소리야?
“설명할 시간이 없어요! 일단 움직여요!”
아크가 이슈람의 질문을 묵살하며 재차 소리쳤다.
아크와 칼리를 제외한 나머지 함장은 이슈람처럼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일단 함대장의 명령, 바로 포격을 멈추고 좌우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콰콰콰콰! 콰콰콰콰!
옅어지는 폭광 속에서 느닷없이 뻗어 나오는 뇌전!
-크윽! 뭐, 뭐야? 주포?
-저, 저 자식들! 어떻게 저런 상황에서…….
붉은 경광등이 번쩍이는 함교에서 레피드와 발렌시아가 당혹성을 터뜨렸다.
그러나 레피드와 발렌시아는 함대전 경험이 있어 이런 반응이라도 보이는 것이다.
초짜인 정의남과 이슈람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고 우왕좌왕하는 영상이 전해졌다. 그러나 그것도 아크가 직전에 이동 명령을 내려 직격을 피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조금만 늦었다면 이번 공격으로 적어도 2~3척은 심각한 대미지를 입었으리라.
따지고 보면 칼리 덕분이라고 할 수 있지만.
-눈치는 느려도 반응은 빠르군.
“너…….”
아크가 히죽대는 칼리를 노려보았다.
인시너레이터와 퍼큘리어 타입의 전함이 사용하는 광역 실드의 차이.
그건 인시너레이터의 실드는 단순히 장벽과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는 데 비해 퍼큘리어의 실드는 외부의 공격은 막고 내부의 공격은 통과시키는, 말하자면 실드를 펼친 상태로 반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적 함대는 공격을 받고만 있었다.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 약간의 대미지를 감수하며 한 방 크게 먹여 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게 방금 전의 주포! 다행히 칼리의 경고로 실드에 대미지를 입는 정도의 피해만 입고 피할 수 있었지만.
“너!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
아크가 칼리를 노려보는 이유가 그것이다.
칼리는 포격전을 시작할 때부터 적 함대가 퍼큘리어의 광역 실드로 보호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당연히 적 함대의 의도도 파악할 수 있었을 터. 그럼에도 주포를 발사하기 직전이 되어서야 아크에게 알려준 것이다.
-물어보지 않았잖아?
“너 이 자식, 그걸 지금 말이라고…….”
-나는 네 지시를 받겠다고 했다. 너를 리더로 인정한 이상 그 약속은 지킨다. 하지만 자발적인 협조는 또 다른 문제지. 우리가 정의남 형님을 따르는 이유는 그분이 그만한 역량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너 역시 우리의 자발적인 협조를 원한다면 그만한 역량을 보여라. 리더를 맡고 있으면서도 적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고, 좀 늦게 전해 줬다고 불평이나 늘어놓지 말라고.
“뭐야?”
-오호! 한 방 먹었군.
-키키키, 애송이들이 투닥대는 것도 나름 흥미진진한데?
아크는 울컥했지만 정의남과 이슈람은 되레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히죽거릴 뿐이었다. 그리고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레피드와 발렌시아도 입꼬리를 실룩거리고 있었다.
정말이지. 이놈의 함대는…….
‘재미있냐? 재미있어? 어이! 당신들, 남의 일이 아니잖아! 조금만 늦었어도 주포에 박살 나는 건 당신들 전함이라고! 그런데 지금 그런 말이 나와?’
이런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었다.
그러나 막상 입 밖으로 꺼내려니 받아칠 말이 없었다.
확실히, 딴생각을 하느라 적 함대의 동향을 파악하지 못한 것은 리더인 아크의 실책이다. 그리고 그런 여유도 없었다.
퍼펑! 퍼펑! 퍼퍼퍼펑!
회심의 일격(?)이 실패로 돌아가자 적 함대는 바로 포격전으로 전환, 흩어져 있는 아크 함대를 향해 함포를 난사하기 시작했다.
-자, 이제 어쩔 거냐, 함대장?
그러나 칼리는 여전히 턱을 괸 자세로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아크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없다면 함대장 자리를 대신 맡아 줄 용의도 있다만?
“웃기는 소리!”
-……뭐 그렇겠지.
칼리가 피식 웃으며 끄덕였다.
확실히 퍼큘리어 타입 전함은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였다.
그러나 주포에 직격당했다면 모를까, 과정이야 어찌 됐든 피한 이상 아직 전력은 아크 함대가 우세했다.
아니, 설사 불리한 상황이라도!
‘이제 시작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칼리나 발렌시아에게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지!’
“2번함! 5번함과 함께 적 함대의 우측으로 이동한다!”
2번함은 레피드, 5번함은 정의남.
“3번함! 4번함과 함께 적 함대의 좌측으로 이동한다!”
3번함은 이슈람, 4번함은 발렌시아다.
-어쭈? 반말이냐?
“나 참, 전투 중이잖아요!”
-그래, 인마. 작전 첨 해 보냐? 세상에 어떤 놈이 작전 중에 일일이 존댓말 붙여 가며 명령하냐? 까불지 말고 움직여. 그나저나 살다 보니 아들놈이 지휘하는 전투를 다 해 보는군.
이슈람과 정의남이 떠들어 대며 지시에 따라 좌우로 갈라졌다. 그러자 칼리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이대로 괜찮은 거냐?
‘괜찮고말고…….’
지금 상황에서는 이게 최선이었다.
적 함대의 전면에 펼쳐져 있는 퍼큘리어의 광역 실드.
전함의 등급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최소 50%, 많게는 70~80%의 대미지를 막아 내는 실드였다.
반면 적 함대는 실드와 상관없이 포격이 가능하다.
10 대 8, 숫자로는 아크 함대가 우세하지만 정면에서 포격전을 벌이면 승산이 없는 것이다.
정의남과 레피드, 이슈람과 발렌시아를 좌우로 이동시키는 이유가 그것이다.
‘광역 실드는 한 방향으로만 펼칠 수 있다. 그렇다면 방법은 간단하지. 정면과 좌우에서 동시에 공격하는 3면 공격이다. 걱정되는 것은…….’
-놈들도 바보는 아니다. 3면 공격 진형이 완성될 때까지 구경만 하고 있을 리가 없다. 그 전에 돌파를 시도할 거야. 그리고 지금 양쪽으로 이동하는 전함은 각각 2척. 게다가 레피드나 발렌시아는 그렇다 쳐도 함께 이동하는 정의남 형님과 이슈람은 함대전 경험조차 없는 사람들이다. 만약 놈들이 그중 한 방향으로 돌파를 시도한다면 순식간에 당한다.
바로 이 부분이다.
그러나 아크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 그게 무리라는 것쯤은 너도 잘 알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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