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657)
아크 더 레전드-657화(657/875)
[657] space 2. 주둔지 입성! 그리고…… (3)‘어째 얌전하다 싶었지.’
이어지는 대답에 아크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크가 아는 한, 은하계가 아무리 넓어도 이런 낯 뜨거운 대사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떠들어 대는 사람은 1명밖에 없었다. 바로 아크의 아버지, 정의남!
아니나 다를까, 뚜벅뚜벅 걸어온 정의남이 아크의 옆에 떡하니 자리를 잡았다.
그러자 일격에 이얀 패거리를 공으로 만들어 버린 칼리와 아리온, 유진, 장보고가 마치 정의남을 호위하듯이 양옆에 늘어섰다. 그리고 조금 늦게 도착한 레피드와 발렌시아, 이슈람이 그 뒤로 모였다.
‘하아, 이래서야 꼭…….’
아크가 살벌한 눈으로 노려보는 이얀 패거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함대원들을 돌아보았다.
아마도 대부분은 무슨 일인지도 모르겠지만―뭐 관심도 없겠지만― 이 함대원들은 발렌시아나 칼리 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정의남이나 이슈람, 심지어 직원인 레피드까지!
하나같이 함대장인 아크도 통제하기 힘들 정도로 만만치 않은 성격의 소유자들이다. 뭔지는 몰라도 일단 상대가 이런 식으로 째리면…….
“뭘 쪼개, 이 자식들아?”
이런 식으로 대꾸할 줄밖에 모르는 인간―특히 이슈람―들인 것이다.
뭐 사실 아크도 남 말 할 처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일단은 함대장이다. 함대원들이 날뛴다고 무턱대고 덩달아 날뛸 입장이 아닌 것이다.
‘역시 함대장 따위, 맡는 게 아니었어.’
그러나 뒤늦은 후회다.
그리고 후회나 하고 있을 때도 아니었다.
정의남이 불을 지르고―실제로 저질러 버린 녀석들은 칼리 일당이지만―, 이슈람이 부채질을 한 덕분에 이얀 패거리의 분위기는 한층 더 흉흉해졌다. 당장이라도 패싸움이 벌어질 분위기! 함대장으로서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저기…….”
“어? 바, 발렌시아?”
그러나 침묵을 깬 건 엉뚱한 사람이었다.
아크 함대원들이 한자리에 모이자 갑자기 이얀 패거리 속에서 당혹성이 터져 나온 것이다. 이에 시선이 집중되자 한 사내가 얼른 입을 막으며 물러나는 장면이 보였다.
‘어? 저 녀석은 어디선가…….’
금세 사람들 사이에 묻혔지만 아크는 그를 알아보았다.
처음 이스타나의 도시 네팔림에 발을 디뎠을 때 시비가 붙은 적이 있었던 양아치. 꽤 오래전이라 이제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그 양아치가 분명했다.
‘저 녀석도 이얀의 함대에 끼어 있었던 건가? 아니, 그보다 저 자식이 왜 발렌시아를 보고 놀라는 거지? 서로 아는 사이인 건가? 뭐 상관은 없지만…….’
“아는 사이야?”
“글쎄? 딱히 기억나는 사람은 아니군.”
아크의 질문에 발렌시아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엉뚱한 놈 때문에 선수를 놓친 아크가 머뭇거리는 사이, 불쾌한 눈빛으로 아크를 바라보던 이얀이 정의남으로 시선을 옮기며 물었다.
“너는 뭐냐?”
“저 자식이 감히 어따 대고 반말을…….”
칼리가 눈썹을 바짝 치켜 올리며 한 걸음 내디뎠다.
그러자 정의남이 손을 들어 제지하며 이얀을 향해 또다시 아들이 듣기에도 낯 뜨거운 대사를 내뱉었다.
“이미 대답했다. 정의라고.”
“정의? 웃기는군. 단체로 뭔가 이상한 약이라도 먹은 건가? 아니면 무슨 사이비 종교에 미치기도 한 건가? 느닷없이 나타나서 사람을 패고 정의라니?”
약은 몰라도 사이비 종교라는 부분은 딱 잘라 부정하기 힘들지만.
“사람도 사람 나름이지.”
정의남이 슬쩍 아사드를 쳐다보며 대꾸했다.
“얘기는 대강 들었다. 저기, 우리가 여기 오는 길에 주운 저 녀석, 듣자니 저 녀석을 꼬드겨 한 패로 넣어 주는 척하면서 미끼로 사용했다면서?”
“그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히 해명했다고 생각하지만, 뭐 그야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더 이상 설명하고 싶지도 않다. 그래, 표현이 영 거슬리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네 말대로 나는 저 녀석을 미끼로 이용했다고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설사 그렇다 해도 그게 너희와 무슨 상관이지? 이건 내 함대의 일이다.”
“아하! 제법 말을 잘하는 놈이군.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내가 주책없이 끼어든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어.”
“그게 사실인 것 같은데?”
“그래, 남의 일에 끼어들었다는 부분은 인정하지. 하지만 그렇기에 정의라는 거다. 자기가 억울한 일을 당해 싸우는 걸 정의라고 하지 않는다. 그건 권리지. 정의란 설사 남의 일이라도 불의와 맞서 싸우는 것! 그리고 그런 짓을 하고도 잘도 함대 운운하는군. 심지어 항의하는 사람을 폭력으로 찍어 눌러? 그런 못된 짓은 대체 어디에서 배운 거냐?”
정의남의 말에 이얀이 피곤하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지. 그러니 내가 해 줄 말은 하나뿐이다. 너희가 참견할 일이 아니라는 것.”
“싫다면?”
“후회하게 되겠지.”
이얀이 살기 어린 눈으로 째리며 협박처럼 뇌까렸다.
그러자 그 뒤로 아크 일행보다 적어도 서너 배는 되어 보이는 패거리들이 같은 눈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이얀의 말투에서 묻어나는 자신감처럼 어지간한 유저는 그 눈빛만으로도 꼬리를 내리고 물러나리라.
그리고 아크도 제발 좀 그래 주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상대는 정의남이었다.
“보아하니 나이도 아크와 비슷한 것 같은데 말하는 투가 싸가지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군. 나는 기본적으로 비폭력주의자다. 하지만 싸가지없는 놈에게는 매가 약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어른이기도 하지.”
“난 폭력주의자다! 그런 이유가 없어도 원한다면 패 주지!”
이슈람이 냉큼 끼어들며 한마디 덧붙였다.
“형님만 허락하신다면!”
거기에 칼리 일행도 망설임 없이 나섰고.
“정말이지 대책 없는 함대로군. 기껏 주둔지까지 와서 같은 은하연방의 유저들과 싸움이라니? 하지만 뭐, 나도 마총을 시험해 보고 싶었으니까.”
레피드도 무표정하게 탄창을 채우며 말했다.
‘정말이지, 이놈의 함대는…….’
아크가 고개를 푹 숙이며 한숨을 불었다.
물론 아크도 이얀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타투인 전투에서의 일도 그렇고, 지금 아사드에게 하는 짓도 그렇고, 뭣보다 아크나 정의남을 깔아 보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사실 다른 때였다면 정의남이나 이슈람보다 아크가 먼저 저 재수 없는 면상에 한 방 먹였으리라.
‘하지만 여긴 아니잖아! 여긴 은하연방의 주둔지라고! 그런데 왜 다들 못 싸워서 안달이야? 나만 정상이냐? 나만 정상이야? 어차피 함대장은 나라 이거야?’
설사 이겨도 본전도 못 찾을 싸움.
아니, 고맙게도 칼리 일당이 선방을 날려 준 덕분에 잘해야 카오틱이다. 기껏 A-001까지 날아와서 공훈치는커녕 쇠고랑을 먼저 차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고맙게도 함대장을 시켜 준 덕분에 아크는 다른 함대원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감방에서 보내야 하겠지.
당연히 아크는 그런 배려 따위는 사양이었다.
“자, 자, 이제 그만하세요. 애들도 아니고 뭐 하는 겁니까? 어이, 거기 이얀이라고 했지? 너도 이제 그만 눈에 힘 좀 풀지? 솔직히 너도 잘한 건 없잖아. 아니, 뭐 따지자는 게 아니라, 너나 나나 이득 될 것도 없는 싸움을 할 필요는 없잖아.”
“……아크인가?”
“날 알아?”
“알지, 여러모로.”
이얀이 슬쩍 입술을 치켜 올리며 끄덕였다.
“네 말대로다. 그리고 나 역시 이런 곳에서 싸움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 그러니 이번에는 네 얼굴을 봐서 그냥 넘어가 주지. 단, 너희가 더는 주제 넘는 참견을 하지 않는다면 말이야. 몇 번이나 말하지만 이건 내 함대의 일이다. 상관없는 사람들은 빠져 줬으면 좋겠군.”
“누가 네 함대 소속이냐!”
그때 물러나 있던 아사드가 버럭 소리쳤다. 그러자 이얀이 한쪽 눈썹을 찡그리며 아사드를 돌아보았다.
“그 말은 내 함대에서 탈퇴하겠다는 뜻인가?”
“당연하지!”
아사드가 아크를 가리키며 재차 소리쳤다.
“이제 이분이 왔으니까! 아크! 타투인 전투의 의용군 대장이었던 이분이 내 대장이다! 네가 타투인 전투에서 1위를 했다고 거들먹거리지만, 그것도 아크 님과 의용군이 없었다면 턱도 없는 일이었어! 알아? 네가 아크 님의 공을 가로챘다는 것쯤은 당시 의용군에 참가한 유저라면 다 아는 사실이야! 너 따위는 상대도 되지 않는다고! 두고 봐! 이제 네가 이곳에서 잘난 척하는 것도 이제 끝이니까!”
“호오…….”
이얀이 아크를 돌아보았다.
“네 생각은 어떻지? 받아들일 생각인가?”
‘돌겠군.’
아크가 내심 답답한 한숨을 불었다.
붉은학살자를 시작으로 호크와 발렌시아, 그리고 칼리 일당! 지금까지 본의 아니게, 심지어 그중 몇몇은 정작 아크도 이유도 모르게 적의를 품은 그놈들 때문에 피곤하기 짝이 없는 겜생을 보내야 했다.
뭐 그중 호크를 제외한 나머지는 어쩌다 보니 같은 함대원이 돼 버리기는 했지만, 적이었을 때보다 더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아크는 이번 경험으로 단단히 마음먹었다.
‘이제 적 따위는 만들지 말자!’
……라고!
그런데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이런 일이 벌어졌다.
방금 전 이얀의 질문은, 질문이 아니었다. 이건 도발! 명백하게 적의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얀의 도발을 받는 순간, 아크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꾸역꾸역 적이 생기는 이유, 그건 적도 적이지만 아크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왜냐하면…….
“그래, 이제 아사드는 내 함대원이다.”
아크가 이얀을 향해 빙긋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그러니까 그만 꺼지시지.”
……이런 식으로 말할 수밖에 없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 * *
“뭐라고?”
호크가 고개를 돌리며 되물었다.
그러자 거구의 사내, 할리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이번 이소트 방어전을 시작하기 전에 발견한 적 정찰함대를 추격하던 15번 함대 말입니다. 아무래도 전멸한 것 같습니다.”
“그게 말이 되나? 그때 도망치던 정찰함대는 불과 3척이었다. 15번 함대는 8척, 일부러 지고 싶어도 질 수 없는 숫자가 아닌가?”
“지원군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지원군? 설마 그게 함정이었다는 말인가?”
“거기까지는 모르겠습니다. 15번 함대가 보내온 영상은 다른 함대가 나타나는 장면까지밖에 없었습니다. 그 뒤로 연락이 두절되어 자세한 상황을 판단하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그 영상에 호크 님이 보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할리가 패널을 조작하자 모니터 위로 입체 영상이 떠올랐다. 시커먼 연기를 뿜어 올리며 도주하는 전함을 추격하는 8척의 전함, 방금 전 보고 받은 15번 함대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갑자기 측면에서 뻗어 온 푸른 광선이 15번 함대의 전함 2척을 관통했다. 그와 함께 노이즈가 번지는 영상 속에서 나타나는 함대!
호크의 눈매가 좁아진 것은 그때였다.
“저 전함은……?”
“역시 제 짐작이 맞습니까?”
“형태는 좀 달라졌지만 확실하다. 저 전함은…….”
호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영상 속의 함대를 바라보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1척의 전함이었다. 유난히 번들거리는 은빛 전함! 이 전함의 함장은 바로…….
“아크다.”
호크가 얼굴을 불쾌감으로 물들이며 말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일그러진 얼굴 위로 옅은 미소가 번졌다.
“이제야 참전한 건가?”
“역시 아크였군요. 정말이지 번번이 울화통이 치밀게 하는 놈입니다. 15번 함대가 적을 추격한 것은 위장, 앞으로의 전투를 위해 미리 포석을 깔아 두기 위해 ‘그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진짜 목적이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허망하게 전멸 당하다니…… 15번 함대를 잃은 것도 아깝지만 만약 아크가 우리의 계획을 눈치채고 한 짓이라면…….”
“그건 아닐 거다.”
“네?”
“운이겠지. 그런 놈이다, 아크는.”
호크가 생각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하지만 그 운도 여기까지다. 놈이 이곳에 온 이상, 내가 놈의 운을 끝내 주지. 할리, 복수의 검에 편입되어 있는 모든 함대에 이 영상을 전하라!”
호크가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전선에 배치된 함대는 전장에서 이 영상 속의 은색 전함을 발견할 경우, 어떤 상황이든 최우선적으로 격파한다. 또한 모든 예비 함대는 이후 은색 전함의 추적에 주력한다!”
그리고 떨어지는 아크 척살령!
뭐랄까…… 참 적도 많은 아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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