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73)
아크 더 레전드-73화(73/875)
[73] SPACE 9. 파멸의 기계(PART: 2) (1)“이제 거의 정리가 되었다.”
핏빛으로 물든 발렌시아가 주위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기간틱이 마지막 남은 중갑전차를 밟으려는 순간, 전차병에게 급전을 보내 핵융합 엔진을 자폭시킨 것은 발렌시아였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때 이미 기간틱은 실드가 모두 벗겨진 상태. 그리고 평범한 장갑으로는 핵융합 엔진의 폭발력을 견뎌낼 수 없었다.
결국 기간틱은 그 폭발로 다리가 통째로 날아가며 전복되어버렸다.
그 순간 발렌시아는 발빠르게 움직였다.
“페드로, 기간틱으로 돌입한다!”
발렌시아는 곧바로 10여 명의 심복을 이끌고 뻥 뚫린 기간틱의 하부로 돌입했다.
그렇게 내부로 들어서자 수명의 라마족이 눈에 들어왔다. 기간틱은 외부의 방해전파 따위를 원천 봉쇄하기 위해 승무원이 탑승해 조종하는 방식의 기체였다. 발렌시아와 기갑전사들이 돌입하자 조종사들이 총격전을 벌이며 저항했지만 어차피 엔지니어들.
연방군 최정예 기갑전사들의 상대는 아니었다.
“그대로 돌진해 기간틱의 동력로를 제압하라!”
발렌시아와 기갑전사들은 단숨에 엔지니어들을 짓밟으며 동력로까지 돌진!
동력로를 파괴해 기간틱의 숨통을 끊어놓을 수 있었다.
-기간틱을 파괴해 3,000의 승점을 획득했습니다!
발렌시아와 10명의 부하들 눈앞에 경쾌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덕분에 사기가 치솟은 발렌시아는 다시 기간틱을 빠져나와 남아있는 라마족 잔당까지 말끔하게 청소해버렸다. 그와 함께 쭉쭉 올라간 승점이 마침내 4,000을 돌파했다.
‘그 전에 얻은 공적치가 라마 중앙기지의 정보를 보고해 얻은 것까지 합하면 대략 8,000. 거기에 이번 전투에서 얻은 승점까지 합하면 12,000이다!’
금성무공 훈장과 작위 수여는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남은 기간틱까지 쓰러뜨렸을 때의 얘기겠지.’
라마기지에서 나온 기간틱은 2대. 아직 1대가 남아있는 것이다.
뭔가 맛이 가버린 것인지 그 1대는 라마족이 괴멸될 때까지 엉뚱한 곳에서 돌아다니고-실은 아크를 밟아 죽이려고 그런 것이다-있었지만 연방군의 공격이 받으면서도 그러고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러나 그보다 큰 문제는 남은 연방군의 전력이었다.
‘남은 병력은 불과 150정도. 그것도 기갑소대원은 50밖에 되지 않는다.’
기간틱과 붙었던 기갑소대원의 피해가 가장 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기간틱과 라마군의 협공에 중갑전차를 모두 잃었고, 실드를 펼칠 수 있는 메머드도 3기나 파괴되어 2기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할 수밖에 없다. 기간틱을 쓰러뜨리지 못하면 전쟁을 끝낼 수 없어.’
“페드로, 전열을 재정비해라. 라마군 잔당을 소탕하며 남은 기간틱을 향해 진군한다!”
그렇게 발렌시아가 병력을 이끌고 기간틱을 향해 진군할 때였다.
수십 명의 병사가 반대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뭐지? 저 놈들은 왜…… 가만? 혹시……?’
미간을 찡그리며 그들을 살펴보던 발렌시아의 눈이 번뜩였다.
기억에 있는 병사들이었다. 보더를 우회하며 이동하던 도중 후미에서 트럭이 구렁에 빠졌다며 아크의 졸개들을 붙여줬던 용병부대원들이었다.
‘그리고 기간틱이 나타나기 직전, 아크와 함께 라마족의 사령부에서 나왔다. 그렇다면…….’
전투 내내 풀리지 않던 궁금증.
대체 아크와 졸개들이 어떻게 본대보다 먼저 적진에 들어와 있을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건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한 가지만은 분명했다. 아크와 졸개들의 이해할 수 없는 이동에는 그 용병부대가 관련되어 있을 거라는 것! 그리고 그게 사실이라면 트럭이 구렁에 빠졌다는 것도 발렌시아를 속이고 본대에서 떨어지기 위한 계략이었으리라.
‘그리고 기간틱이 쓰러지니 도망치려는 것인가? 감히!’
발렌시아가 이를 갈아붙이며 페드로를 돌아보았다.
“페드로, 기갑소대를 움직여 저 놈들을…….”
쿠콰콰콰콰콰콰—!
엄청난 굉음이 전장을 뒤흔든 것은 그때였다.
움찔하며 고개를 돌리자 혼자 놀던(?) 기간틱이 쓰러지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생각지도 못했던 장면에 시선을 집중시키던 발렌시아의 눈이 이따만 해졌다.
“저, 저 놈은……?”
“아크! 저 놈은 아크입니다!”
기간틱 앞에 서있는 사람은 놀랍게도 아크였다.
‘놈도 아직 도망치지 못하고 있었던 건가?’
그 순간 발렌시아의 머릿속에서 용병단 따위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건 기회다! 전투가 모두 끝나버리면 놈을 처치하기 힘들어진다. 하지만 아직은 전투 중. 기간틱과 전투 중에 병사 하나쯤 실수로 죽인다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아. 설사 카오틱이 된다해도 벨타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전쟁영웅이 되면 어떻게든 무마시킬 수 있어. 그보다는 놈이 살아 돌아가 캐리어MR-II에 대해 보고하는 것을 막는 게 우선이다!’
“페드로, 따라와라!”
쿠콰콰콰콰콰콰—!
발렌시아가 배틀슈트의 엔진을 풀 가동시키며 아크를 향해 돌진했다.
그 뒤로 10여 기의 기갑전사가 뒤따랐다.
그렇게 발렌시아가 눈이 벌개져서 아크를 향해 돌진해올 때.
아크 역시 눈이 벌개져서 쓰러진 기간틱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기간틱을 유인해 쓰러뜨린 것은 아크의 작전이었다.
‘이대로는 기간틱을 따돌리고 탈출할 방법이 없어. 그렇다고 난전이 벌어지는 연방군 틈으로 끼어 들어가는 것은 자살행위. 일단 전장을 벗어나 숨어 있다가 전투가 끝난 뒤에 연방군과 합류하는 게 최선이다. 그러려면 먼저 기간틱의 움직임을 봉쇄해야해.’
이게 아크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리하여 생각해낸 방법이 기간틱의 시야에서 벗어난 별동대를 이용하는 것!
아크는 자신이 기간틱의 미끼가 되어 시간을 버는 사이에 별동대를 움직여 특정 지역에 수십 개의 C-6을 매설해놓은 것이다. 그리고 기간틱이 X표식이 붙어있는 그 자리에 발을 디디는 순간, 전자기 기뢰로 기간틱의 발에 둘러쳐진 실드를 해제시키고 C-6을 폭파!
발에 데미지를 줌과 동시에 땅을 함몰시켜 기간틱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기간틱의 움직임을 봉쇄할 수는 없어!’
다리가 2개밖에 없지만! 게다가 386컴퓨터가 탑재된 멍청한 기계덩어리지만!
명색이 전장의 악마로 불리는 기간틱이 한 번 넘어졌다고 일어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기간틱은 다리를 180도로 회전시키며 거체를 일으키려 하고 있었다.
‘지금 놈을 완전히 주저앉혀야한다!’
아크가 기간틱을 향해 달리는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아직은 전자기 기뢰가 작동해 기간틱의 다리 주변 실드가 복구되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수십 개의 C-6이 발바닥 아래에서 폭발해 발목 아래가 너덜너덜해져 있는 상태.
아크는 단숨에 그곳으로 달려가 검을 휘둘렀다.
깡—! 깡—! 깡—!
폭발로 장갑이 약해졌다지만 검격 따위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러나 아크도 검 따위로 놈의 발목을 어쩔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검으로 기간틱의 발목을 때린 것은…….
“저기다!”
아크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검으로 후려치는 순간 기간틱의 다리를 덮고 있는 장갑에 얼룩덜룩한 색이 번져 나왔다.
전체적으로 파란 색이었지만, C-6의 폭발에 직격 당한 발목 아랫부분은 주황색이나 빨간색으로 변해있는 부분이 많았다. 이 색이 나타내는 것은 바로 장갑의 내구력이었다. 파란색은 거의 데미지를 받지 않은 장갑, 그리고 빨간색은 내구력이 바닥까지 내려간 장갑.
보이지는 않지만 장갑 내부에는 균열이 번져있다는 뜻이었다.
‘야금술을 이렇게 쓰게 될 줄은 몰랐군.’
토리에게 사기 당하지 않기 위해 익힌 스킬 야금술!
아크가 기간틱 장갑의 상태를 단숨에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야금술 덕분이었다.
검으로 장갑을 두들긴 것은 울리는 소리로 장갑의 상태를 알아내기 위해!
‘지금 기간틱의 다리 장갑 중에 가장 약해진 곳은 여기다!’
아크는 가방에서 C-6을 꺼내 붉은 빛으로 변해있는 장갑에 부착했다.
그리고 반대쪽으로 몸을 날리며 납작 엎드리는 순간!
퍼퍼퍼퍼펑—!
폭음과 함께 발목 부분의 장갑에 구멍이 뻥 뚫려버렸다.
“됐다!”
아크가 환호성을 터뜨리는 것과 동시에 몸을 일으키던 기간틱이 휘청거리며 다시 쓰러졌다.
발목에 구멍이 뚫리자 이제 50여 미터나 되는 동체를 지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게 아크의 최종목적. 기간틱의 움직임을 완전히 봉쇄시킨 것이다. 이제 나머지는 연방군에게 맡기고 별동대와 함께 전투가 끝날 때까지 숨어 있다가 합류하면 그만이다. 전투가 끝난 뒤라면 아무리 발렌시아라도 아크를 공격하지는 못하리라.
‘발렌시아 자식,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군.’
아크가 똥 씹은 얼굴의 발렌시아를 상상하며 흐뭇해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님프에서 헤겔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형님! 위, 위험해요!
“뭐?”
아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슈슈슈슈! 슈슈슈슈! 슈슈슈슈!
눈앞으로 10여 발의 포탄이 날아오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러나 아크의 눈이 향한 곳은 포탄이 아닌 그 뒤에서 눈보라를 일으키며 돌진해오는 10여 기의 기갑전사들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선두에서 게들링을 난사하는 단 한 명!
“……발렌시아!”
콰콰콰콰! 콰콰콰콰!
거의 동시에 아크가 서있던 자리가 통째로 폭발했다.
10여 발의 포탄이 떨어지자 시커먼 연기가 치솟으며 불길이 번졌다.
그러나 발렌시아는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쏴라! 놈을 결코 살려둬서는 안 된다!”
“발사! 놈의 시체가 발견될 때까지 사격을 멈추지 말아라!”
“다른 병사들이 오기 전에 놈을 처리해야한다!”
투투투투! 투투투투! 투투투투!
발렌시아와 10여 명의 기갑전사들은 눈밭을 가로지르며 쉬지 않고 게들링을 난사했다.
빗발치는 탄환에 지면에서 쉴새 없이 흙과 얼음 조각이 튀어 오르며 벌집처럼 변해갔다. 그 사이에 거리를 좁힌 발렌시아가 빔 소드를 뽑아들고 폭연 속으로 뛰어들어가며 소리쳤다.
“놈의 시체를 확인하는 게 먼저다! 찾아라!”
“보이지 않습니다!”
“여기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럴 리가 없다! 그 포화 속에서 살아남았을 리가 없어! 아니, 살아있어도 상관없다. 살아있다면 분명 어딘가에 숨어있을 것이다. 놓쳐서는 안 된다! 찾아서 숨통을 끊어라!”
발렌시아가 서슬 퍼런 표정으로 무지막지한 명령을 내릴 때였다.
폭연 속에서 페드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장님! 여기를 보십시오!”
고개를 돌리자 페드로가 뻥 뚫린 기간틱의 발목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누군가 들어간 흔적이 있습니다. 놈은 이 구멍을 통해 내부로 들어간 것 같습니다!”
“쥐새끼 같은 놈. 그 사이에 용케 도망쳤군. 하지만…….”
발렌시아가 번들거리는 눈동자로 구멍을 바라보며 입 끝을 치켜올렸다.
“알아서 연방군 병사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도망가주다니, 스스로 무덤을 파는군. 페드로, 기간틱 내부로 진입해 놈을 추격한다. 기간틱 내부에 있는 것은 모두 적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쓸어버려라. 뒷 책임은 내가 진다. 기간틱 내부에 있는 놈들을 모두 쓸어버리면 이 전쟁은 우리 연방군. 아니, 나와 너희들의 승리다!”
“알겠습니다!”
기갑전사들이 살기 등등한 표정으로 기간틱의 내부로 뛰어들었다.
이들의 목표는 기간틱을 조종하는 엔지니어들과 동력로. 그리고…… 아크였다. 아니, 이미 기갑소대원들이 기간틱 내부로 돌입한 이상 라마족 엔지니어의 처리와 동력로 파괴는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따라서 기갑소대의 최우선 처리목표는 아크! 그리고 발렌시아와 기갑전사들이 아크가 남긴 흔적을 따라 기간틱의 기관부로 돌진하고 있을 때였다.
“대장님, 전방에서 움직이는 물체가 포착되었습니다!”
“놈이다!”
발렌시아가 눈동자를 번뜩이며 소리쳤다.
“이곳은 좁은 통로다. 도망갈 곳이 없어. 사격하며 돌진한다!”
투투투투! 투투투투! 투투투투!
발렌시아의 명령에 10여 명의 기갑전사가 게들링을 난사하며 돌진했다.
폭이 3미터밖에 되지 않는 기간틱의 내부 통로에서 미친 듯이 폭사되는 수백 발의 탄환! 발렌시아와 기갑전사들은 통로를 탄환으로 가득 채울 기세로 쉬지 않고 탄환을 뿜어냈다.
그렇게 대략 10여 미터를 전진해 동력로가 있는 곳까지 도달했을 때였다.
정신 없이 도망치던 그림자가 외마디 비명을 터뜨리며 쓰러졌다.
“깨깽—!”
개죽음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