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738)
아크 더 레전드-738화(738/875)
[738] space 5. 아크 & 이얀 (1)휘이이이잉-!
페미온 성좌의 북부에 자리 잡은 위성 디피아.
동부 위성 노드와 같은 숲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오직 눈과 얼음에 덮인 대지만이 펼쳐져 있는 디피아의 지표 위를 균열처럼 가로지르는 계곡이 있었다.
그 얼음 계곡 속에서 지금!
-하아…….
한숨을 불어 내는 사내가 있었다.
이름보다 별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이 붉은 아머를 입은 이 사내는 붉은학살자. 라마의 특공대에 참가했던 유저였다. 그리고…….
-30%의 확률인가?
붉은학살자도 걸렸다. 그 30%의 확률에.
그가 바라보는 계곡의 중간 부분에는 우주선 1대가 끼어 있었다. 기체 외부에 거대한 에어백이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상태로. 이 우주선은 바로 고스트.
라마 특공대가 타고 오던 고스트도 워프 상태로 대기권을 돌파하다가 G-3―라마에게 지원된 고스트의 시스템―이 맛이 가 버리는 바람에 악전고투 끝에 비상착륙을 한 것이다.
이로써 이미 3척 중 2척이 고장!
사고율 30%라는 시험 비행 결과라는 것도 의심스러워지기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때 붉은학살자가 아크도 같은 사고를 당했는지 알 리가 없었고, 설사 안다 해도 그에게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사고가 생겼지만 라마 특공대는 전원 무사하다. 특공대에는 엔지니어도 있으니 고장 난 고스트도 수리하면 그만이다.
지금 붉은학살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영하 70도에 달하는 디피아의 추위! 그리고…….
-아이, 추워. 나 춥다고.
이를 빌미 삼아 엉겨 붙는 여자 라마였다.
-너는 도대체…….
-왜? 뭐? 춥잖아. 추우니까 어쩔 수 없잖아.
-그러니까 왜 어쩔 수 없냐고! 본대에서 출발하기 전에 내가 따로 모아서 브리핑했잖아! 디피아는 영하 70도, 밤에는 영하 100도 이하로 내려가는 혹성이라고! 그런데 대체 방한복도 하나 안 챙기고 뭐 한 거야?
-그게 방한복 챙기라는 말인 줄 몰랐지.
모르는 거냐? 방한복이 뭔지?
붉은학살자는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입술을 삐죽대는 여자 라마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여자 라마는 그런 눈길 따위는 무시!
다시 붉은학살자의 팔과 옆구리 사이로 파고들기 위해 머리를 들이밀고 기를 써 가며 주장했다.
-그러니까 지금, 연약한 여자가 추위에 떨고 있잖아! 원래 이럴 때는 남자가 보호해 줘야 하는 거라고! 그렇다고 옷을 벗어 달라는 것도 아니잖아! 뭐랄까, 그냥. 음. 그래, 그 남들이 다 하는 거 있잖아. 찰싹 달라붙는 그거! 더는 안 바라! 그거만 해 주면 돼!
-연약한 여자라고?
붉은학살자의 얼굴이 괴상하게 일그러졌다.
사실 라마 특공대의 불행은 고스트가 고장 난 것만이 아니었다. 대체 무슨 악운이 끼었는지 고스트가 불시착한 직후 10여 마리의 몬스터에게 습격을 받았다.
디피아처럼 혹한의 혹성에 서식하는 위험도 A의 몬스터 예티! 마치 설인처럼 생긴 몬스터였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바닥에 누워 있었다. 피 떡이 돼서, 지금 추위에 떨며 붉은학살자의 품으로 파고드는 이 여자 라마에게. 이 연약한(?) 여자 라마의 이름은 글라도스.
라마 최강의 전사였다.
‘하지만…….’
‘연약’까지는 몰라도 여자인 것만은 사실!
오돌오돌 떨어 대며 품으로 파고드니 좀 애처로워 보이기도 한다. 그러니 안아 줘도 그만이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계곡에 있는 라마는 붉은학살자와 글라도스만이 아니었다.
그 둘을 제하고도 28명의 특공대원이 있는 것이다.
글라도스가 예티 떼를 작살 낼 때 뒤에서 열심히 응원을 보내 준 특공대원이! 게다가 그중 절반은 오래전부터 붉은학살자를 따르는 부하들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붉은학살자는 냉혹, 비정, 카리스마로 통하는 것이다.
‘할 수 있겠냐? 그런 짓을?’
그리고 뭣보다, 지금 붉은학살자는 바빴다.
방금 전에 작전 지역으로 잠입했다. 당연히 작전에 돌입하기 전에 점검해야 할 일이 많았다. 그러나 당장은 그보다도 급한 일이 있는 것이다.
-좀 물러나 있어. 자꾸 거치적거리잖아.
-뭐야? 연약한 여자가 불쌍해 보이지도 않는 거냐? 아니, 그보다 대체 아까부터 뭘 하고 있는 거야?
-보면 몰라? 예티 가죽을 무두질하고 있잖아.
-무두질? 그런 건 또 언제 배웠는데?
-여기 오기 전에. 4황자를 패 죽이고 유배되었던 혹성에서.
슥슥슥, 삭삭삭, 슥슥슥, 삭삭삭.
붉은학살자가 능숙한 솜씨로 예티의 가죽을 무두질하며 대답했다.
-패 죽이다니, 멋져!
이상한 부분에서 감동받는 글라도스였지만.
-처음에는 눈앞에 깜깜했는데 유배지 생활도 익숙해지다 보니 꽤 시간이 남더라고. 그래서 남는 시간에 배워 뒀지.
그렇다. 그의 유배지 생활은 그저 추위와 굶주림의 시간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붉은학살자는 이전 게임 때부터 ‘뒤로 넘어져도 뭐라도 주워 일어난다.’가 철칙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 더!
‘스킬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도!
‘생각해 보면 조금이라도 빨리 아크와 결판낼 생각으로 너무 전투 스킬에만 집중했어.’
그런 붉은학살자에게 유배지는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그리고 ‘삽질’을 습득해 배고픔을 해결한 뒤에야 그는 유배지야말로 그런 시행착오를 극복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유배지에는 광산과 농장, 목장, 공장까지, 각종 생산 시설이 다 모여 있었고, 이미 수년을 그곳에서 보낸 덕분에 각 분야의 전문가가 돼 버린 죄수들이 넘치는 것이다.
그리하여 생산 스킬 습득 작업에 착수!
-스킬 [무두질]을 습득했습니다!
-스킬 [벌목]을 습득했습니다!
-스킬 [꾀병]을 습득했습니다…….
닥치는 대로 배워 나갔다.
물론 이런 1차 생산 스킬은 그냥 반복 작업만 죽어라 해도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일단 작정하고 나선 붉은학살자는 그렇게 느긋하게 배울 생각이 없었다. 그리하여 작 시설의 죄수들을 찾아다니며 습득! 습득! 습득!
-잘은 모르겠지만 대장님이 그렇게 마음먹었다면 최선을 다해 보좌하겠습니다!
그리고 충성스러운 부하들은 손에 물집이 아물 새가 없이 삽질! 삽질! 삽질!
꾸역꾸역 우주 식량―유배지의 죄수들 사이에서는 우주 식량이 곧 화폐였다―을 모아 느닷없이 배움의 길로 접어든 붉은학살자의 학자금(?)을 대 주었다.
그런 부하들의 눈물겨운 뒷바라지 덕분에 유배 생활이 끝날 때까지 붉은학살자가 습득한 생산 스킬은 무려 14개!
‘후후후! 이제 나는 못할 것이 없다! 이런 것도!’
무두질을 끝낸 붉은학살자는 번뜩이는 눈으로 날카로운 금속 물체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놀라운 속도로…….
슥슥! 슥슥!
무두질이 끝난 ‘예티의 모피’를 꿰매 나갔다.
-아, 안 어울려…….
이에 글라도스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지만.
-젠장, 나도 좋아서 이러고 있는 게 아니야!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한 땀, 한 땀, 모피를 꿰매 가는 붉은학살자가 울컥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그렇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네가 떨고 있으니까!
바느질을 끝낸 붉은학살자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글라도스의 몸에 덮이는 북실북실한 예티의 모피로 만든 망토!
붉은학살자가 유배지에서 배운 스킬을 총동원해 가며 부지런히 가죽을 벗기고, 무두질을 하고, 손가락을 찔러 가며 바느질을 하고 있던 이유가 바로 이것!
-부, 붉은학살자…….
-뭐 생각만큼 잘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글라도스가 당황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붉은학살자가 팩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러나 내심 만족하고 있었다.
새로 배우는 데만 집중한 나머지 생산 스킬은 모두 Lv.1. 그런 점을 고려하면 꽤 잘 만들어진 망토였다. 게다가 ‘방한도 +30%’ 옵션까지 붙었다. 당연하다. 실력이 부족한 만큼 공을 들여 만들었으니까.
글라도스를 위해.
아니, 글라도스에게 전해 주기 위해.
나는 냉혹, 비정, 카리스마의 남자다. 그래서 부하들 앞에서 낯 뜨거운 짓을 하지는 못하지만 너를 향한 내 마음은 이렇게 따뜻하다고! 이게 진심이라고! 그리고 붉은학살자의 진심은 전달되는 것 같았지만.
-아니야!
글라도스가 그의 ‘진심’을 바닥에 내팽개치며 소리쳤다.
-이래서는 방한복을 가져오지 않은 의미가 없잖아!
그리고 밝혀지는 진실!
붉은학살자는 그제야 깨달았다.
글라도스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 보고 싶은 거다.
눈 덮인 설원에서 두 남녀가 서로의 체온을 의지하며 긴 발자국을 찍어 가는, 뭐 그런 장면을!
……말해 두지만 지금은 잠입 작전 중이다.
‘차라리 아크와 있을 때가 좋았어.’
붉은학살자의 입에서 다시 한숨이 흘러나왔다.
* * *
“젠장, 똥 되는 줄 알았네.”
그때 아크는 구시렁대며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농담이 아니다. 몬스터가 나타났을 때는 정말 놈들의 똥이 돼 버리는 줄 알았다.
그러나 다행히 그런 참담한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그때, 아크는 전신 타박상을 입고 대大자로 뻗어 있었지만 주둥이는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침을 질질 흘리며 다가오는 몬스터를 점잖게 타일러 돌려보냈다는 말이 아니다.
“나와라, 바사크!”
아크의 보디가드 바사크!
뭐 저렙 때는 되레 아크가 보디가드 역할을 해야 했지만 지금은 바사크도 레벨 170대, 웬만한 유저 못지않다.
-형님은 내가 지킨다! 저리 가! 쉭쉭!
덕분에 그럭저럭 몬스터를 막으며 버틸 수 있었고.
“야, 이쪽이 확실하지?”
“네, 분명 이 근처로 떨어지는 걸 똑똑히 봤습니다.”
“좋아. 모두 님프를 통신 모드로 전환하고 계속 아크와 접속을 시도하라. 이 근처 어딘가에 살아 있다면 통신이 연결될 거다.”
“아, 이쪽입니다!”
“몬스터! 몬스터에 포위되어 있습니다!”
“그럼 뭘 보고하고 앉았어? 얼른 가서 처리해!”
수색 작업을 시작한 팀원들이 바사크와 가세, 순식간에 몬스터를 쓸어버리고 아크를 구조해 주었다. 그리고 고스트가 불시착해 있는 장소로 돌아와…….
“타박상에는 이 파스가 즉효입니다. 기본 성능도 좋지만 내가 개발한 약품까지 더해서 효과×2! 잠깐만 붙이고 있어도 타박상 정도는 금세 회복될 겁니다. 그리고 팔의 골절상도 조직 재생 광선을 쬐고 있으면 몇 분 만에 붙을 거고, 뭐 생명력은 역시 이거죠!”
푹!
-생명력 +125!
-생명력 +125…….
팀 닥터(?) 페핀이 놔 주는 링거를 맞으며 요양.
이미 골절에 전신 타박상까지 입었던 몸도 개운하게 회복된 상태였다. 그러나 페핀의 의술도 기분까지 개운한 상태로 만들어 주지는 못했다.
그렇다. 무사히 구조되기는 했지만 아크는 기분이 몹시 불편했다.
사고 때문이 아니다.
여전히 그따위 우주선을 작전용이랍시고 보내온 카이저에 대해서는 여전히 울컥 치밀지만, 이제 와서 어쩌겠는가? G-2의 말대로 팔자라고 생각하는 수밖에.
문제는 지금까지의 일이 아니라, 지금부터의 일이었다.
아니, 좀 더 콕 짚어 말하자면.
‘……저 자식!’
아크가 째리는 사내, 바로 이얀이었다.
밖으로 나가 고스트의 에어백을 작동시킨 아크!
사실 혼자였다면 굳이 그런 위험을 감수할 필요도 없었다.
낙하산처럼 활강이 가능하게 해 주는 스킬이 붙어 있는 ‘아스트랄 망토’! 오신기인 ‘샤이어의 망토’를 사용하느라 장착은 하지 않고 있지만 그 망토는 여전히 아크의 백팩―사실 떨어진 뒤에야 깨달았지만!―에 보관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 확인해 보지 않아 낙하 대미지까지 막아 주는지는 모르겠지만 ‘샤이어의 망토’에도 모든 대미지를 막아 준다는 ‘방어의 피라미드’ 스킬―당연히 그것도 그때는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지만!―이 붙어 있었다.
그럼에도 굳이―다시 말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위험을 감수하고 에어백을 작동시킨 것은 특공대를 구하기 위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얀 일당은 수색 작업에도 참가하지 않았다.
아크 덕분에 목숨이 붙어 있는데도 말이다. 심지어 막 구조되어 왔을 때는 애석하다는 표정까지 지어 보이며 아크의 복장을 뒤집어 주었다.
하지만 뭐, 여기까지는 좋다.
특공대를 구하기 위해서였다고는 하지만 그게 이얀 일당을 말하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놈들에게 그런 기대 따위는 눈곱만큼도 하지 않았으니까.
‘문제는 그, 런, 놈, 들과 함께 이번 퀘스트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당면한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이것!
과연 저런 놈과 아크가 서로 협조하며 퀘스트를 진행할 수 있느냐.
아크에게는 노드의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적군이나 몬스터보다 되레 그게 걱정이었다.
솔직히 맘 같아서는 특공대고 뭐고 바로 해체하고 아크 팀만으로 진행하고 싶었다. 되레 그게 더 성공률이 높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부분은 이얀도 같은 생각이리라.
‘하지만…….’
카이저가 지급한 ‘헬파이어’는 각 진영의 특공대당 하나.
설사 실패율이 99%까지 치솟는다 해도 같이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다른 한쪽이 여기까지 와서 순순히 물러나 주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지금, 아크의 기분이 개운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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