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75)
아크 더 레전드-75화(75/875)
[75] SPACE 9. 파멸의 기계(PART: 2) (3)‘이제야!’
금발 청년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가 갤럭시안을 시작한 이유는 단 하나, 아크라는 유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가 아크의 행적을 쫓아 네팔림에 도착했을 때, 정작 아크는 어이없는 사고를 치고 벨타나라는 분쟁 혹성으로 끌려갔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때문에 한동안 네팔림에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보름이 지나자 그의 인내심도 바닥을 드러냈다.
그래서 저질렀다.
-묻지마 살인, 이대로 괜찮은가?
한동안 네팔림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의 주인공이 바로 그였다.
덕분에 그는 쇠고랑을 차게 됐지만 바라던 바였다.
‘뉴스를 검색해 본 바로는 근래 연방군은 여러 전장에서 병력부족에 허덕이고 있어 개척자가 범죄를 저지르면 모두 강제징용형에 처한다고 들었다. 그리고 지난 몇 달, 대부분의 죄수들이 강제 징용된 곳은 벨타나! 아크가 있는 곳이다!’
당연히 그도 벨타나로 보내지리라.
그곳에서 무슨 일을 겪게 될 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아크를 만나겠다는 생각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이제 곧 만나게 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그런데…….
“자네, 터무니없는 짓을 저질렀군.”
체포 직후 은하연방의 수사관이 그를 찾아왔다.
“네팔림이 생긴 이후 이런 사건은 처음이야. 하, 정말 웃기지도 않는군. 경비 안드로이드를 3대나 부수고 경비병들에게 부상까지 입히고 나서 그냥 울컥해서 저질렀다고 떠들어댔다지? 조사해보니 네놈은 R-14에서 임무관련 마스터의 칭호까지 받은 놈이더군. 그런 놈이 그냥 울컥해서 그런 범죄를 저질렀다? 웃기는군. 설마 그런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라는 거냐? 혹시 은하연방의 수사관들을 모두 바보라고 생각하는 거냐?”
바보라고 생각한 적 없다.
달리 핑계거리가 없었을 뿐이다.
“그게 사실입니다…… 범죄를 부인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냥 형벌을 주십시오.”
“걱정 마라. 형벌은 네놈이 원하는 것 이상으로 받게 될 테니. 하지만 당장은 아니야.”
“당장은…… 아니라니요?”
“배후를 대라.”
“배후…… 무슨 배후 말입니까?”
“말했지? 연방정부의 수사관은 바보가 아니야. R-14에서 임무관련 마스터까지 됐던 놈이 갑자기 미쳐서 그런 범죄를 저질렀다는 말을 믿을 정도로 순진하지도 않아. 분명 뭔가 다른 목적이 있겠지. 대체 누구냐? 누구의 지시를 받고 그런 사건을 일으켰지? 기계생명체를 반대하는 반 안드로이드 조직 생명의 나무냐?”
“생명의 나무가…… 뭔지도 모릅니다.”
“훗, 역시 순순히 불지는 못하겠다 이건가? 잘 생각해라. 생명의 나무는 이름만 그럴 싸한 사이비 종교단체나 다름없어. 네놈이 어쩌다가 그런 놈들과 한패가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이라도 묻는 말에 순순히 대답하면 강제징용형만은 당하지 않도록 손써주지.”
“그건…… 곤란합니다…… 저는 강제징용형을…… 받기 위해…….”
“뭐? 강제징용형을 받고 싶어서 범죄를 저질렀다고? 하, 정말 놀고 있군. 강제징용형을 받고 싶어서 범죄를 저지르는 미친놈이 어디 있어? 아무래도 안 되겠군. 내가 사근사근하게 말하니 만만하게 보인 모양인데, 은하연방에는 대 테러 특별법이 있다는 것도 모르나?”
“대 테러…… 특별법?”
“테러리스트로 의심되는 놈의 인권은 무시한다는 법이지.”
그때부터 금발 청년의 인권은 무시당했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뇌를 긁어대는 듯한 소음으로, 어떤 날은 온몸의 피부를 들어내고 싶을 정도로 간지럽게 만드는 주사약-SMT-158이었다-으로. 고문이 시작된 것이다.
보통 유저라면 단 몇 분도 버티기 힘든 고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식물인간으로 1년을 넘게 살아온 유저다. 참기 힘든 고통도 그때 느꼈던 좌절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아무리 고문이라도 게임 속. 그 어떤 고통이라도 유니트를 나가면 그만이다. 그러나 그는 도망치지 않았다.
“나는…… 정말 울컥해서…… 배후 따위는 없습니다…… 그냥 강제징용을…….”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온갖 고문을 참아내며 필사적으로 무죄(?)를 주장하기를 보름.
“지독한 놈이군. 좋다. 그렇게 강제징용형을 받고 싶다면 보내주지. 흥, 멍청한 자식. 죄수의 신분으로 전장에 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뼈저리게 느껴봐라!”
‘해, 해냈다! 드디어! 드디어 아크가 있는 곳으로!’
오직 아크를 만나겠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보름의 고문을 버텨낸 금발 청년!
그의 얼굴이 성취감으로 붉게 상기될 때였다.
“네놈이 지옥을 체험하게 될 장소는 분쟁 혹성 하난이다.”
“하…… 하난? 베…… 벨타나가 아닙니까?”
“벨타나? 그곳은 이미 끝났어.”
“끄…… 끝나다니요……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내가 네놈에게 그런 것까지 일일이 설명해 줘야하냐? 닥치고 나와!”
“자…… 잠깐만요…… 저는…….”
그가 수사관에게 이끌려 감옥 밖으로 나왔을 때였다.
복도에 붙어있는 모니터에서 동영상과 함께 긴급 뉴스가 떠오르고 있었다.
-은하연방이 벨타나 혹성 전쟁에서 라마족을 물리쳤습니다!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격전을 벌이던 벨린 성좌의 벨타나에서 위대한 연방정부의 용사들이 오늘 새벽, 마침내 비열한 외계종족 라마를 몰아냈다는 소식입니다.
군부의 발표에 의하면 라마족 중앙기지의 위치를 알아낸 연방정부는 벨타나 주둔군 사령관으로 파견되었던 하만 남작의 요청에 따라 이스타나의 용병단을 급파, 기습적으로 라마족 중앙기지를 습격해 일궈낸 성과라고 합니다. 또한 이때 라마족의 기간틱이 나타났었다고 하지만 용맹한 연방정부의 용사들의 분투로 대파, 페어리와 스타게이트까지 폭파해 벨타나의 소유권은 은하연방이 차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에 은하연방에서는 금일 오후, 벨타나 주둔군이 귀환하는 대로 공적치에 따른 포상식이 거행될 예정입니다.
이 포상식에서 벨타나 주둔군의 대표를 맡기로 예정된 용사는 놀랍게도…….
‘이건 말도 안 돼!’
금발 청년의 얼굴이 시커멓게 타 들어갔다.
*****
“이건 말도 안 됩니다!”
발렌시아가 탁자를 내리치며 소리쳤다.
“이번 전투를 지휘한 건 접니다! 그런데 기간틱을 파괴한 것도 접니다! 그동안 기갑 1소대를 지휘하며 쌓은 공적과 이번 전쟁의 공적을 합하면 벨타나 전쟁에서 가장 많은 공적을 쌓은 것은 저란 말입니다! 그런데 벨타나 주둔군 대표를 왜 놈이…….”
“지금 자네는 그런 말할 때가 아니네.”
하만이 한숨을 불어내며 고개를 저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던 발렌시아가 미간을 찡그리며 되물었다.
“그런 말할 때가 아니라니…… 무슨 뜻입니까?”
“라마족과의 전투를 끝내고 기지로 돌아왔을 때 죄수 부대장 베라툴의 보고를 받았네. 자네가 가져온 라마족 중앙기지의 정보. 원래는 다른 병사가 적지에서 보낸 캐리어MR-II의 정보였다더군. 해당 병사의 님프 기록을 확인해보니 사실이더군.”
“그, 그건…….”
“그것만이 아니야. 전장에서 의도적으로 아군을 공격했다는 증언도 있었네.”
“그건 모함입니다!”
불안하게 눈을 뒤룩거리던 발렌시아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전투 중에 폭격의 스플레시 데미지에 아군이 부상을 입는 일은 흔히 있던 일 아닙니까? 그리고 의도적으로 아군을 공격한 것은 제가 아니라 그 놈입니다! 그 놈은 의도적으로 중갑전차의 핵융합 엔진을 폭파시켜 저와 기갑부대원 10명을 죽였습니다!”
“증명할 방법이 있나?”
하만의 질문에 발렌시아가 침음성을 발하며 입을 다물었다.
본래 갤럭시안에서는 목격자가 없어도 PK를 당하면 살해자는 자동으로 카오틱이 된다.
그러나 예외도 있었다. 먼저 공격받은 상태에서 반격으로 상대를 죽이게 된 경우, 정당방위로 인정되어 PK를 면책 받는 것이다. 발렌시아가 당한 게 그런 경우였다.
발렌시아가 10여 명의 기갑소대원과 함께 기간틱의 동력로에 모여있을 때 놈은 의도적으로 핵융합 엔진을 자폭시켜 발렌시아와 부하들을 먼지로 만들어버렸다. 그러나 그 전에 먼저 발렌시아가 놈에게 데미지를 입힌 적이 있어 PK로 인정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발렌시아와 부하들은 몽땅 폭사.
전투로 쌓은 경험치와 함께 님프의 자료도 몽땅 날아가 증거자료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뭐 님프의 정보가 남아있어도 증거자료로 제출할 수는 없겠지만.
“하지만 더 큰 문제가 있네.”
하만이 찜찜한 눈길로 발렌시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동안 자네가 기갑 1소대장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죄수 부대원들에게 상납금을 받아왔다는 내부 고발이 있었네.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런 행위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는 자네도 잘 알겠지? 조사 결과 사실로 밝혀지면 지위 박탈 정도로 끝나지 않을 거네.”
“무, 무슨! 누가 그 따위 모략한단 말입니까? 그 놈! 그 놈입니까?”
발렌시아가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을 때였다.
대답이 들려온 곳은 등뒤였다.
“접니다.”
움찔하며 고개를 돌린 발렌시아의 얼굴에 경악이 물들었다.
“다, 당신이…… 당신이 어째서…….”
“그녀는 사실 벨타나의 정황을 파악하기 위해 중앙정부에서 파견된 감찰관이네. 일전에 벨타나의 죄수 부대를 거쳤던 개척자가 자네를 고발해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죄수 부대의 보급소에서 근무하며 관련 증거 자료를 수집해오고 있었지.”
“그게 이겁니다.”
제복차림의 여자가 두툼한 서류뭉치를 들어올렸다.
“당신이 말하는 놈이라는 유저 덕분에 자료를 수집하기 한결 쉬웠죠.”
무표정한 얼굴로 말하는 여군장교는 이리나였다.
*****
벨린 성좌의 최대 격전지 하난 혹성.
벨타나와 달리 끝없는 사막으로 이루어진 전장에 헤아리기 힘든 숫자의 연방군이 시체가 되어 흩어져 있었다. 묵묵히 그 전장을 지켜보던 라마전사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벨타나 전선이 무너졌다고?] [네, 어제 새벽, 주둔군이 연방군의 공격을 받고 괴멸했다고 합니다.] [벨타나에는 혹한의 환경에서 실전 실험을 하기위해 기간틱 2대를 전송할 예정이었다고 들었는데? 기간틱이 전송되기 전에 스타게이트를 파괴당했다는 말인가?] [아니, BK-III와 BK-IV는 예정대로 전송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괴멸 당했다는 말인가?]라마전사가 빙글 몸을 돌려세웠다.
그러나 그의 붉은 눈동자에 떠오른 것은 분노가 아닌 호기심이었다.
[누구냐? 벨타나에서 연방군을 지휘했던 지휘관이?] [발렌시아라는 자입니다.] [발렌시아? 못 들어본 이름이군.] [본국에서 흘러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벨타나 연방군의 기갑 1소대장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은하연방에서 이번 전쟁의 최고 공훈자로 지목한 사람은 다른 자였습니다.] [지휘관도 아닌 자를 최고 공훈자로 내세웠다고?] [네, 아크라는 이름이었습니다.] [아크!]라마전사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그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떠올랐다.
[아크…… 그 자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지.] [아시는 이름입니까?] [물론이지. 알고 있다. 아니, 잊을 수 없지.] [하지만 같은 이름을 쓰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지 않습니까?] [그래, 같은 이름을 쓰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지. 아크라는 이름이라면 말할 것도 없어. 나 역시 이곳에서 아크라는 이름을 쓰는 연방군을 본 적이 있으니까. 하지만 기간틱까지 전송된 전장에서 최고 공훈자로 지목될만한 자라면 내게 검 한 번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고 죽어 나자빠진 놈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 아마도 진짜는 그 자일 것이다.] [진짜라니? 진짜와 가짜가 있단 말입니까?] [글쎄? 어떨까?]미묘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라마전사가 몸을 돌렸다.
[어쨌든 그가 움직였다면 나도 여유나 부리고 있을 시간이 없겠군.]붉은 학살자.
하난에서 그를 지칭하는 이름이었다.
*****
같은 시각 네팔림 은하연방 건물 내의 광장.
푸른 빛 줄기와 함께 한 유저가 스타게이트로 전송되었다.
그러자 빛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주변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잠시 인터뷰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죄수의 신분으로 벨타나에 강제징용 되었다가 최고 공훈자가 되어 돌아오셨는데요, 지금 심정이 어떠십니까? 혹시 당시 전장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연방정부에서는 벨타나에 라마족의 기간틱까지 등장했었다고 하던데요?”
“기간틱도 직접 쓰러뜨린 겁니까?”
“아직 스폰서가 정해지지 않았다던데요. 이번 공훈으로 은하연방과 4대 기업에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올 텐데, 마음에 정해두신 스폰서는 있으십니까?”
스타게이트로 몰려드는 사람들은 벨타나의 언론 기관에서 나온 기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속사포 같은 질문세례를 받는 귀환병의 이름은…….
“아크 님! 죄수의 신분으로 전장에 나가 영웅이 되어 돌아온 소감을 말씀해주십시오!”
아크, 새로운 영웅의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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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 더 레전드 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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