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757)
아크 더 레전드-757화(757/875)
[757] space 3. 아크는 어디에? (2)같은 시각 아도니스의 궤도.
수천 척의 전함이 반원형으로 길게 늘어서 있었다.
우주복을 입은 엔지니어가 다닥다닥 붙어서 스파크를 튀겨 대는 이 전함들은 방금 전 서부 전선에서 퇴각한 신의 군대의 함대였다.
그리고 그 함대의 중심!
-멍청한 자식!
한 전함의 내부에서 성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목소리가 흘러나온 스크린 속에 떠 있는 것은 한 쌍의 붉은 눈동자. 후드를 눌러쓴 얼굴은 흐릿하지만 붉은 눈동자만은 유독 선명하게 도드라져 보이는 사내였다.
신의 군대의 숨은 실세, 대공이었다.
“드릴 말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사람은 펜릴.
그러나 대공은 펜릴의 사과에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한층 격앙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게 네놈이 고개를 숙인다고 해결될 일이냐? 나와 벨테란이 그 위성 기지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왔는지는 너도 모르지 않을 터! 그런데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하고 잃었다니? 지금 그걸 보고라고 하는 것이냐?
“…….”
펜릴은 대답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러자 성난 고함을 쏟아 내던 대공은 잠시 펜릴을 노려보며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크게 한숨을 불며 다시 입을 열었다.
-위성 기지가 왜 중요한지는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그건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당연히 위성 기지의 목적은 아도니스를 방어하기 위해.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신의 군대를 독립국으로 인정받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현재 은하 3국의 함대는 페미온 성좌 바로 앞에 포진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건 신의 군대 쪽에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은 아니었다.
물론 이런 상황이 된 건 예상하지 못한 여러 악재―신의 눈의 파괴 같은― 탓이었지만 언젠가, 그렇다. 언젠가는 이런 상황이 오리라는 예상은 하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번 전쟁은 이길 수 없다!
독립국을 선포하기 전에 이미 신의 군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하다. 상대는 은하 3국이다. 물론 실제로 전쟁에 참전한 것은 유저들뿐이지만, 이 세계에서 유저는 불사의 존재. 신의 군대의 군사력이 아무리 막강해도 유저를 전멸시킨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그러니 유저를 상대로 싸워서는 끝이 나지 않는다.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 공략해야 하는 상대는 되레 은하 3국!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놈들이 길어지는 전쟁에 지치고 부담을 느낄 때까지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이게 신의 군대가 이번 전쟁에서 살아남을 유일한 방법이었다.
지금 신의 군대를 압박하는 유저의 배후에는 은하 3국이 있다. 그러나 사실, 은하 3국은 이번 전쟁을 길게 끌고 갈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이미 은하 3국은 이번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내전과 같은 상황을 겪었기 때문이다.
은하연방에서는 쥬벨의 쿠테타, 라마는 황위계승권을 둘러싸고 벌어진 황자들의 전쟁, 그리고 아슐라트는 국가의 핵심시설인 연구 혹성 이젠트를 습격당한 것이다.
은하 3국은 이로 인해 내부적인 혼란은 물론, 상당한 경제적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여파는 아직도 여러 분야에서 은하 3국을 압박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페미온 성좌의 전쟁까지 길어지면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으리라.
물론 지금 전쟁에 참전한 것은 유저다.
그러나 그런 유저를 움직이고 있는 것은 은하 3국이 약속한 보상이다. 은하 3국은 되레 정규군을 움직일 때보다 더 많은 자금을 쏟아부으며 유저를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은하 3국은 재정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 때문에 공훈치라는 방식으로 보상을 미루고 있지만 그 역시 지불해야 하는 돈이고, 그건 전쟁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때다.
-그리고 이제 준비가 끝났다. 한 번 더 은하 3국을 내부에서 흔들 준비가.
아직 펜릴도 대공에 대해 모두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공이 어떤 존재인지는 대강 알고 있었다. 까마득한 과거부터 은하계에 암약해 온 비밀결사 ‘생명의 나무’를 지배하고 있는 존재!
은하 3국은 ‘생명의 나무’를 테러리스트 정도로 알고 있지만 그 실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방대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대공의 조력자인 벨테란 공작!
그는 은하연방의 4대 기업 중 하나인 헬리온의 총수로 막대한 자금력을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은하연방, 아니 은하 3국의 정재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얼마 전 은하 3국이 겪은 내전과 같은 사건의 배후에는 바로 이 둘, 대공과 벨테란 공작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건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은하계 전역에 퍼져 있는 비밀결사 생명의 나무를 동원해 은하 3국의 내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대규모 사건을 일으킨다!
이게 대공이 준비하던 한 수!
그런 일이 벌어지면 길어지는 너브 지역 전쟁과 내부 혼란으로 은하 3국은 엄청난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알게 되리라.
신의 군대를 몰아내고 너브 지역을 나눠 갖는 것보다 전쟁이 장기화되어 받는 피해가 더 크다는 것을.
다음은 벨테란 공작이다.
적당히 시기가 무르익을 때쯤 벨테란 공작은 자신의 영향력이 닿아 있는 귀족들을 동원해 너브 전쟁을 포기하도록 은하 3국의 정부를 압박할 계획이었다.
그리고 안팎으로 압박을 받은 은하 3국이 결국 물러나면 신생 독립국 신의 군대 완성!
‘아마도 벨테란 공작과 달리 대공의 계획은 그다음부터가 진짜 시작이겠지만…….’
일단 너브 전쟁의 시나리오는 여기까지다.
그리고 여기에 가장 필요한 것은 대공이 말한 대로 시간!
은하 3국이 지칠 때까지 버틸 수 있는 시간이다. 그리고 페미온 성좌의 위성 기지들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그때까지 시간을 벌어 줄 수 있는 성벽이었다. 그런데 방금 전 그 성벽을 잃었다.
대공이 분노하는 것도 당연했다.
“제가 하겠습니다.”
그때 펜릴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신의 군대의 독립을 위해 필요한 시간, 제가 지켜 내겠습니다.”
-……할 수 있겠느냐?
“맡겨 주십시오.”
펜릴의 대답에 대공은 잠시 말없이 그의 얼굴을 응시했다.
그리고 한참 뒤에야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뭐 지금으로써는 달리 방법이 없겠지. 너 외에 달리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봐주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다. 만약 또다시 나를 실망시키는 일이 벌어진다면 아무리 너라도…….
“각오는 하고 있습니다.”
펜릴이 대공의 말을 끊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대공과 같은 붉은 눈동자로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나 역시 그러기를 바란다. 너만큼 쓸 만한 놈을 찾기는 쉬운 일이 아니니까. 명심해라. 이번이 마지막이다.
“네.”
펜릴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것을 끝으로 스크린에 떠 있던 대공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제야 고개를 들어 올린 펜릴이 다시 함대를 비추는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죄송합니다.”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펜릴의 눈매가 좁아지며 음험한 분위기의 빛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다시 본래의 눈빛으로 돌아온 펜릴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몸을 돌렸다.
“본의 아니게 창피한 모습을 보이게 됐군요.”
“굳이 그런 식으로 감싸 주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이번 일은 모두 제 실수고, 저는 남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내는 호크였다.
“그 말은 좀 섭섭하군요.”
“네?”
“저는 호크 님을 남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아니, 그건…….”
호크가 당황한 표정을 떠올렸다.
그러자 펜릴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무슨 말인지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딱히 제게 미안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폭발한 것이 노드뿐이었다면 분명 호크 님의 잘못입니다. 하지만 디피아와 라드는 호크 님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죠. 놈들의 작전을 알아채지 못한 내 잘못이죠. 뭐 아크가 노드에 잠입한다는 정보를 숨기고 제게 말도 없이 전장을 이탈한 것은 확실히 실수였지만 이제 와서 누구 잘못이 더 큰지 따져 봐야 소용없는 일이겠죠. 그리고…….”
펜릴이 슬쩍 눈매를 좁히며 말했다.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복수하고 싶다는 감정,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 말은?”
“전에도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제게도 빚을 갚아 줘야 하는 상대가 있다고. 뭐 빚을 갚는 방식은 호크 님이 생각하는 방법과 제가 생각하는 방법이 좀 다르겠지만.”
“다르다니? 무슨 말입니까?”
호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그러나 펜릴은 특유의 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건 저도 자세히 설명하기 힘들군요. 그보다 궁금하군요. 그 아크라는 자에게 원하던 복수는 하고 돌아온 겁니까?”
“그건…….”
호크가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하긴, 제 입으로 말하기는 힘들리라. 기껏 노드까지 갔더니 그게 아크의 음모였고, 덕분에 엉뚱한 놈―이얀―만 죽이고 돌아왔다는 말은. 그러나 호크가 노드까지 갔던 일이 완전히 삽질이었다고 할 수는 없었다.
“제 손으로 처리하지는 못했지만 아크는 죽었습니다. 그것만은 확실합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적어도 본전은 한 셈이니.”
“네? 본전이라니요?”
“아크, 어쩌면 3개의 위성을 잃은 것보다 그가 죽은 것이 더 이득일지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그건 적어도 이 전장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 거라는 말이니까.”
펜릴의 말에 호크가 미간을 모으며 물었다.
“아크를…… 본 적이 있습니까?”
“아니요. ‘저’는 직접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럼…….”
“하지만 그가 어떤 유저인지는 알고 있죠. 네, 아마도 호크 님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가 무슨 짓까지 할 수 있는 유저인지도. 그런 존재를 적으로 만나면 확실히 위험하죠. 호크 님이 적당한 시기에 처리해 주신 겁니다.”
“펜릴 님이 그렇게까지 말할 정도로 대단한 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 봤자 길어야 하루입니다. 놈도 유저이니까요.”
“아니, 적어도 이 전장에서 아크를 다시 볼일은 없을 겁니다.”
펜릴이 붉은 눈동자를 가늘게 만들며 대답했다.
“놈들은 분명 오늘 밤을 넘기기 않고 다시 공격해 올 겁니다. 그리고 그게 놈들의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회복하기 힘든 타격을 입게 될 테니까.”
“가능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저와 호크 님이 힘을 합친다면. 그러니 호크 님도 이번에는 제대로 집중해 주십시오. 아니, 지금은 함대 수리가 먼저군요.”
“알겠습니다.”
호크가 고개를 숙이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 함교의 문 앞에서 멈춰 서더니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
“이런 질문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왜 제게 호의적인 겁니까? 저는 벨테란 공작의 사람입니다. 펜릴 님 입장에서는 마냥 달갑지만은 않은 사람일 텐데요?”
“글쎄요? 뭐랄까…….”
펜릴은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로 슬쩍 입꼬리를 치켜 올리며 대답했다.
“처음 봤을 때부터 뭔가 인연이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 좀 엉뚱하게 들리겠지만 지금은 그렇게밖에 대답할 수가 없군요. 그게 좋은 인연일지 악연일지는 더 두고 봐야겠지만 말입니다. 호크 님은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펜릴의 질문에 호크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건 그냥 의미 없이 던지는 질문이 아니다. 묻고 있는 것이다. 대공이나 벨테란 공작과 상관없이, 아니 그들과 등을 돌리더라도 자신과 손을 잡을 생각이 있는지.
그리고 호크도 이전부터 어느 정도 감은 잡고 있었다.
펜릴이라는 사내, 그저 맹목적으로 대공을 따르고 있는 건 아니다.
그가 왜, 무슨 생각으로 대공의 밑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그는 대공과는 다른,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 그러나 아직 호크는 그게 뭔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그러니 섣불리 대답할 수도 없었다.
“저도 생각을 해 봐야겠군요.”
이에 호크는 애매한 태도를 취했고.
“그러십시오.”
펜릴도 당장 대답을 기대하지 않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호크가 함교를 나가고 잠시 후, 스크린 속에서 전함의 상부에 붙어 있던 호넷 1기가 함대로 날아가는 장면이 비쳤다. 호크가 타고 있는 호넷이다. 잠시 묵묵히 호넷을 바라보던 펜릴이 함장석에 몸을 묻으며 읊조렸다.
“아크…… 죽었는가?”
마치 컴퓨터에서 흘러나오는 기계음처럼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목소리였다.
“할 수 없지. 나도 아직은 좀 이르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래, 지금은 그보다 연합 함대다. 먼저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유저들에게 어떤 벌을 줄지부터 생각해야겠지. 나의 적은 아크만이 아니라 유저라고 불리는 자들 모두이니까.”
붉은 눈동자에서 위험한 빛이 번뜩였다.
그러나 이때, 위험한 눈빛을 번뜩이는 펜릴도 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었다. 바로 그가 몇 번이나 입에 올리고 있는 아크!
‘그’ 아크가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아니,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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