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770)
아크 더 레전드-770화(770/875)
[770] space 8. 아크의 역습 (1)퍼펑! 콰콰콰콰-!
폭음이 울리며 전함이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리고 후미에서부터 연쇄적으로 터져 나오는 폭광!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인 전함은 마치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선박처럼 서서히 내려가다가 이내 거대한 섬광을 일으키며 산산이 흩어졌다. 그런 전함이 1척이 아니었다.
무수한 포화가 쉬지 않고 오가는 전장 여기저기에서 몇 분 사이에도 수십 척이 폭발을 일으키고 있었다.
먼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밀란, 지금 피해를 입은 함대의 소속을 확인하라.”
“아이언 함대입니다.”
“아이언…… 피해 상황은? 확인 가능한가?”
“자기장 왜곡이 심하고 시야를 방해하는 장애물이 많아 정확하게 확인하기는 힘들지만 10여 분 전부터 시작된 포격전으로 현재까지 적어도 80여 척 이상이 격침되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리고 당장 수리를 필요로 하는 전함은 그 배는 될 것 같습니다.”
“80여 척…….”
레피드가 신음을 삼켰다.
은하 3국이 연합 함대를 구성하며 사령관으로 임명된 카이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각 진영의 구조조정이었다.
적게는 30, 많게는 60개 이상으로 나뉘어 있던 각 진영의 함대를 4개 이하로 줄이는 것이다.
물론 이건 함대 자체를 통폐합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 하면 지금까지 함대끼리 경쟁하며 모은 공훈치까지 뒤섞여 버리기 때문이다. 단지 명령 체계를 간소화시키기 위해 함대를 묶어 놓는 방식을 사용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은하연방도 상위 4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얀과 아크, 데커드, 아이언 함대에 하위 함대를 편입시켜 각각 400척 규모의 함대로 재편성되어 있었다.
말하자면 지금 은하연방 진영은 이얀과 아크, 데커드, 아이언, 이 4개 함대로 구성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중 아이언 함대가 80척 이상의 전함이 격침되고 그 2배 가까운 전함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면 사실상 절반 이상이 제대로 전투를 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말이다. 이건 함대로서 치명적인 타격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레피드가 딱히 아이언 함대원들과 친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니다!’
지금은 함대별로 전투를 하고 있는 게 아니다.
모든 함대가 같은 전장에서 싸우는 중이다. 그러니 운명 공동체, 다른 함대의 피해는 곧 자신을 포함한 아군 전체의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은하연방의 한 축이 무너졌다.
-이건 무리라고밖에는 할 수 없군. 나도 수많은 전장을 겪어 봤지만 이렇게까지 연계가 되지 않는 함대가 이기는 건 본 적이 없어. 내 평생 임전무퇴를 좌우명으로 삼고 살아왔지만 이번에는 더 늦게 전에 물러나는 게 좋을 것 같다. 레피드, 듣고 있냐?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거냐? 어른이 충고하잖아! 어이! 어이!
……이전 전투에서 도망가자고 난리 치던 토트의 말이다.
덕분에 신빙성이 매우 떨어지지만 이번만은 레피드도 동감이었다. 지금 아이언 함대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상황이 연합 함대 전체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팽팽하게 진행되던 함대전이 이처럼 급격히 기울어지기 시작한 이유는…….
‘카이저!’
레피드가 후방에 자리 잡고 있는 카이저의 전함, 엠퍼러를 돌아보았다.
‘그의 역할이 이렇게까지 컸단 말인가?’
레피드도 이전 전투에서는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물론 카이저는 연합 함대의 총사령관, 전체적인 지휘는 이전 전투에서도 그가 맡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카이저가 하는 일은 함대의 위치를 지정하고 진퇴를 결정하는 정도, 실제 전투는 각 함대장의 몫이었다.
때문에 레피드마저 착각하고 있었다. 카이저가 전황에 주는 영향이 사령관이라는 지위만큼 크지는 않다고.
그러나 이번 전투로 깨달았다.
카이저가 실제로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지금, 연합 함대가 밀리는 이유도 그 카이저가 제 역할을 해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호크 함대를 상대로 돌파를 시도하다가 실패한 카이저 함대가 후방까지 퇴각하며 받은 피해는 250여 척. 500척 규모의 카이저 함대의 절반에 달하는 숫자였다. 그러나 연합 함대 전체로 보면 치명적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치명적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그때의 실패!’
그 실패가 카이저를 흔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속았다! 호크 함대는 이전 전투부터 일부러 장기전에 약한 모습을 보이며 함정을 파고 있었던 거다! 난 거기에 걸린 거야! 그렇다면 함정이 그것뿐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아니, 내가 파악했다고 생각한 적의 전력, 그 모든 게 잘못된 것일지도 몰라! 이런 상황에서는 섣불리 움직이지 못한다!
이런 식으로!
당연히 전투는 수비적이 될 수밖에 없다. 아니,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겁을 먹은 상태라고 할 수 있었다.
섣불리 뭔가를 시도하면 역으로 당할지도 모른다!
그런 자신에 대한 불신감 탓에 적이 대담하게 공격해 들어와도, 아니 적이 대담하게 공격하면 할수록 카이저는 더 ‘뭔가 있다!’라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는 정신 상태가 돼 버린 것이다.
데커드가 비아냥거리는 기분으로 붙인 ‘백전불패’라는 별명처럼 카이저는 승리보다는 패배를, 성공보다는 실패를 두려워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호크 함대를 상대로 시도한 작전의 실패는 그런 카이저의 약점을 고스란히 드러나게 만든 것이다.
펜릴은 그런 카이저의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퍼펑! 퍼펑! 퍼퍼퍼펑!
그리고 바로 수십의 돌격 함대를 편성, 연합 함대 전역으로 돌진시켰다.
그러나 이때 이미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여 있던 카이저는 그런 유격전에 대응해 함대를 움직이지 못했다.
이에 연합 함대는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고, 그런 피해가 반복되자 일선 지휘관들은 점점 카이저의 지휘를 믿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각자 독단적으로 함대를 움직이다가 더 큰 피해를 초래하는, 그리고 그런 지휘관의 실수는 또다시 하위 함대의 함대장이 직속 지휘관을 불신하게 만드는, 악순환이 반복되어 연합 함대가 사분오열 되는 지경이 이르렀다.
‘그래도 그런 상황치고는 그럭저럭 잘 버티고 있는 셈이다.’
세븐 소드 덕분이다.
함대들이 독단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은하연방은 데커드, 라마는 글라도스, 아슐라트는 에리얼과 바론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성향이 너무 달랐다.
“위기야말로 사내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기회다! 용기를 발휘해라! 싸움은 적에게 겁을 먹는 순간 지는 거다! 그러니 돌격이다, 돌격!”
이건 데커드.
-저 녀석은 글렀어! 그냥 바보야! 살짝 뭔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역시 그냥 바보였어! 가망이 없는 놈이라고!
그리고 데커드는 토트에게 이런 평가를 받고 있었다.
-나한테 묻지 말고 그냥 다들 알아서 해! 싸움은 어차피 혼자 하는 거야! 난 애초에 함대 지휘 같은 건 알지도 못한다고! 아, 정 뭐하면 붉은학살자에게 부탁하든지.
이건 글라도스.
-쟨 뭐야? 저런 얘가 왜 전장에 나왔어? 심지어 함대장이라니? 장난하냐?
그리고 글라도스는 토트에게 이런 평가를 받고 있었다.
“나는 후방 지원만 해 봤는데…….”
“나도 이만한 함대를 지휘해 본 적은 없다. 그리고 호크가 세븐 소드에 있을 때 모의 함대전을 해서 이겨 본 적도 없어. 할 수 없지. 일단 방어를 굳히고 상황을 지켜보자고.”
이건 에리얼과 바론.
-저놈들은 또 왜 뒤에서 쭈뼛거리는데? 싸울 마음이 있기는 한 거냐?
그리고 에리얼과 바론은 토트에게 이런 평가를 받고 있었다.
뭐 토트의 평가는 대체로 레피드와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진영의 함대를 유지하는 것을 보면 썩어도(?) 세븐 소드라고 할 만한 구석은 있었다. 그러나 연합 함대 전체로 보면 손발이 맞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형님, 우측에서 적 함대가 접근해 오고 있습니다! 기수에 충각이 확인되었습니다! 돌격 함대입니다! 규모는 약 20척, 아이언 함대에서 격침당한 전함의 데브리―잔해―에 섞여 진군해 와서 발견이 늦어진 것 같습니다! 같은 이유로 포격으로 저지하기가 힘듭니다!”
“데브리에 섞여 돌진해 온다고?”
포격전이 벌어지는 전방을 바라보던 레피드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12, 13함대의 인시너레이터 전함은 마그네틱 탄으로 데브리를 제거하라고 전해라! 나머지 전함은 타깃을 적 돌격 함대로 전환하고 대기!”
“마그네틱 탄 발사합니다!”
헤겔의 말에 함대 우측에서 서너 개의 구체가 날아갔다.
그러자 넓은 지역에 흩어져 있던 데브리들이 그 구체를 따라 이동하며 달라붙기 시작했다. 보통 흩어진 우주선의 잔해를 모아 처리할 때 사용하는 마그네틱 탄이다.
그리고 데브리가 사라진 공간에 모습을 드러내는 적 함대!
“일제 포격!”
퍼펑! 퍼펑! 퍼퍼퍼펑!
동시에 아크 함대의 우측에서 포화가 빗발쳤다.
그러나 적 돌격 함대는 전방에 실드를 집중시키고 대응사격을 펼치며 전속항진을 계속했다.
“적 함대의 실드가 예상보다 강합니다! 놈들이 현 속도를 유지한다면 아군 함대와 충돌하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3…… 2…… 1! 충돌합니다!”
콰쾅! 콰콰콰콰-!
함대 우측에서 엄청난 굉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반으로 갈라지는 아군 전함을 뚫고 나오는 적의 돌격 함대!
“빌어먹을!”
레피드가 이를 갈아붙였다.
이게 함대의 손발이 맞지 않아 일어나는 일이다.
적 돌격 함대의 진입 경로는 은하연방과 아슐라트 함대의 사이! 함대들의 연계가 되지 않으면 이런 곳은 사각 지대가 돼버린다. 지금 신의 군대는 그런 빈틈을 노리고 소수의 돌격 함대를 진입시켜 함대를 혼란으로 몰아넣는 전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건 당연히…….
퍼펑! 퍼펑! 퍼퍼퍼펑!
“전방 적 함대의 포격입니다! 우측 함대 상당수 피해!”
전방에 포진되어 있는 적의 본대의 포격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전법이었다. 물론 돌격 함대가 입히는 피해 역시 무시할 수 없었다.
“할 수 없지. 우리가 움직인다!”
레피드가 ‘이미지 웨폰’을 움켜쥐며 소리쳤다.
“이미지 웨폰! 슬라이드!”
기이이잉!
그와 함께 기음을 발하며 횡이동으로 아군 전함 사이를 가로지르는 실버스타! 순식간에 밀집된 아군 함대를 빠져나온 레피드의 눈에 신의 군대 돌격 함대가 떠올랐다.
“이미지 웨폰! 연사! 실버스타 함포 발사!”
퍼퍼퍼펑! 퍼퍼퍼펑! 퍼퍼퍼펑!
레피드의 명령과 함께 불을 뿜는 실버스타의 함포!
여기에 ‘이미지 웨폰’으로 ‘연사’를 발동시키자 포격 속도가 기존의 2배로 상승했다. 여기에 우측 아군 함대의 포격이 더해지자 적함 4척이 순식간에 불을 뿜으며 폭발했다.
이에 레피드는 ‘슬라이드’와 ‘연사’를 연이어 발동시키며 적함의 진로를 막고, 아군 함대와 함께 남아 있던 적함도 하나씩 격파해 나갔다.
그러나 그사이에 밀집된 함대의 측면을 뚫고 들어온 적 돌격 함대와 충돌해 10여 척의 전함이 격침되고, 그 이상의 전함이 항해 불능 상태에 빠진 뒤였다.
이런 일이 연합 함대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봐! 글렀다고, 이 전투는!
그러니 토트가 말대로 이미 전황은 기울었다고 할 수 있었다. 이제 설사 카이저가 실패의 두려움을 떨치고 일어난다 해도 기울어진 전황을 회복하기는 늦은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일 것이다.
‘……이번에는 나오지조차 않는 것인가?’
레피드가 전방에서 쉬지 않고 포격을 뿜어 대는 적 함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레피드가 보고 싶은 것은 그 뒤, 그 함대에 포격 명령을 내리고 있을 적의 사령관이다.
바로 이전 전투에서 격돌했던, 그리고 잊지 못할 패배감을 안겨 준 펜릴!
레피드는 펜릴과 다시 한 번 붙고 싶었다.
이번에는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따위가 있어서는 아니다. 그저 이대로 물러나고 싶지는 않다는 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전투가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펜릴은 후방에서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레피드가 일부러 적 함대 앞까지 진격해 도발하는 행동을 해도 움직일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나에게는 관심도 없다는 건가?’
레피드로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지만 사실 펜릴이 나올 이유는 없었다.
이런 상황이면 승패는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고, 굳이 적 함대의 사령관이 나서 봐야 이미 패색이 짙은 연합 함대에 기회를 주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으니까.
‘하지만…….’
아직 연합 함대가 승리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기적이 일어난다면! 그렇다. 이 전황을 뒤집을 수 있는 방법은 기적밖에 없었다. 지금 레피드가 버티고 있는 것은 그 기적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기적이라고 갑자기 신을 믿게 됐다는 말이 아니다.
레피드가 기다리는 기적은 그보다는 현실적인, 거기에 하나 더 덧붙이자면 그런 기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자존심이 상하는 녀석이 만들어 주기를 기대하는 기적이다.
‘네 녀석이 실패해도 알 바 아니지만 올 거면 빨리 와라! 더 늦으면 진짜 가망이 없다! 이런 말을 하기도 열 받지만 이제 전황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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