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798)
아크 더 레전드-798화(798/875)
[798] space 8. 그 남자와 그 여자, 그리고 그 남자와 그 여자 (3)“역시 아크 님!”
“은하연방의 실권자도 껌뻑 죽는다니, 우리 함대의 앞길은 창창하군요!”
“뭐 그렇지.”
현우가 씨익 웃으며 끄덕였다.
뭐 이래저래 와전된 부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리고 이얀이 신경 쓰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아크 함대’는 유저 최초로 모함을 보유하게 된 것이다.
일단 그것만으로도 간지 나지 않는가!
물론 현우가 간지 하나 때문에 2,500이나 되는 공훈치를 쏟아부은 것은 아니었다. 그만큼의 공훈치를 쏟아부은 이유는, 그 이상의 이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은 됐고!
“자! 마시자! 오늘은 끝까지 내가 쏜다!”
“아크 함대장 만세!”
“건배!”
“부어라! 마셔라!”
현우와 함대원들은 술집을 거덜 낼 기세로 퍼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껏 취해 노래방으로 직행! 김부장의 ‘일송절’을 들으며 분위기가 급다운되었지만, 김평사원―이것도 아이디란다―이 최신 가요를 부르며 다시 분위기 반전에 성공!
2차! 3차! 4차! 5차!
“아우…….”
현우가 휘청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란 자식은 어디 간 거야?”
“아까 카야 언니하고 같이 나가던데요. 집에 간 모양이에요.”
“의리 없는 자식.”
현우가 울컥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실실 웃기 시작했다.
“왜요? 아란 씨가 카야 언니하고 사귄다니까 웃겨요?”
“뭐 그런 것도 있지만…… 그 녀석, 이제 똑바로 걷더라고요.”
“똑바로 걷다니요? 그게 무슨…… 아, 그러고 보니 전에 투자 설명회에서 봤을 때는 한쪽 다리를 좀 절고 있었죠? 어머, 그건 생각도 못 하고 있었어요.”
“네, 좋네요.”
현우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아란이 한때 식물인간이었던 것이나 깨어난 뒤로도 다리를 절었던 것이 현우의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때문에 현우는 아란에게 어느 정도 부채 의식이 있었다.
사실 틈만 나면 무자비하게 ‘흉탄’을 갈겨 대는 아란에게 불평을 하면서도 정작 진지하게 화를 내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과 관련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새 아란은 다리를 절지 않게 되었다.
술기운 탓인지 모르지만 막상 눈으로 확인하니 왠지 눈물 나게 고마웠다. 그런 생각을 하던 현우는 문득 조민선의 시선을 느끼고 겸연쩍은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누구누구 남아 있는 거예요?”
“그 김부장이라는 분들요. 아직 멀쩡하시던데요? 6차로 다시 노래방 가자고 난리예요. 아까 미처 못 부른 노래가 있다고요.”
“……갈래요?”
“현우 씨가 가면요.”
“난 싫어요.”
현우가 조민선의 손을 잡고 얼른 밖으로 나왔다.
물론 5차 술값은 계산했다. 시집장가 갈 나이에 100원만 줘도 행복해한다는 자식을 키우는 분들에게 술값을 뒤집어씌울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모처럼 그녀의 손을 잡고 한적한 공원을 걷다가 벤치에 앉았다.
앉으니 피로가 몰려온다. 그래서 누웠다. 그러자 갑자기 머리 뒤로 부드러운 감촉이 전해졌다. 생각지도 못했던 현우가 얼른 몸을 일으키려 하자 그녀의 손이 머리에 닿았다.
“그냥 있어요.”
“내 머리 딱딱한데…….”
“괜찮아요. 제 허벅지도 단단하거든요.”
거짓말이다. 깃털처럼 부드럽다. 이대로 누워 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러나 대놓고 감촉을 느끼는 것도 변태 같아 현우는 얼른 말을 돌렸다.
“아, 고맙다는 말을 깜빡했네요. 그 도시락, 내가 아도니스 전쟁에서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가 그 도시락 덕분이에요.”
“피, 거짓말.”
조민선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조금 열기가 식어 가는 가로등을 등진 그 얼굴이 마치 천사와 같이 느껴졌다. 그 모습은 마력이 있었다, 진심을 말하게 만드는.
“사랑해요.”
“알고 있어요, 나도 그러니까.”
그 얼굴이 다가와 현우의 얼굴에 포개졌다.
“……저 술 냄새나요.”
“알고 있어요, 나도 그러니까.”
그리고 입술이 포개졌다.
그때, 갑자기 벤치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에 조민선은 화들짝 놀라 입술을 떼었고, 현우도 튕기듯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벤치 뒤의 나무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좀 전까지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다행히 그 사람들은 아직 현우와 조민선을 알아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들은 현우와 조민선보다 더 열정적으로 키스에 열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는 사람이었다.
“아란? 카야?”
SPACE 9. 스페이스 유니온 (1)
“왔나?”
조그만 카페.
구석진 테이블에서 책을 읽던 중년 남자가 고개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 앞에는 건장한 체구의 청년이 서 있었다.
비가 오기 시작하는지 어깨가 좀 젖어 있었지만 그게 청년의 얼굴에 드러나 있는 불쾌감의 이유는 아니었다.
바로 그 앞에 앉아 있는 중년 남자 때문이다.
“무슨 용건이십니까?”
“일단 앉지.”
“앉아야 할 정도로 길게 얘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앉게. 내 목이 아프니.”
뒷목을 탁탁 치며 말하는 중년 남자는 문지훈, 국정원에서 루시퍼 헌팅 계획을 주도하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마지못해 앉는 청년은 박창수, 호크였다.
“앉았습니다. 얘기하시죠.”
“안부부터 묻고 싶지만…… 그런 분위기가 아니군. 알겠네. 용건만 얘기하지. 내 팀으로 들어오게.”
“팀이라고요?”
박창수의 눈가가 실룩였다.
분명한 불쾌감의 표현이었지만 문지훈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 자네도 알다시피 국정원에는 루시퍼 헌팅이라는 팀이 가동 중이네. 하지만 그 녀석들은 글렀어. 돼먹지 못한 놈들이 팀장으로 들어와서 다 망쳐 놨다는 말이네. 그리고 게이머라는 놈들도 하나같이 제가 잘난 줄 알고 말을 들어 먹지를 않아. 그래서 그나마 말이 통하는 녀석들만 따로 추려서 새로 팀을 짜고 있네. 내가 직접 관리하면서 말이야.”
“불쌍한 녀석들이군요.”
박창수가 웃기지도 않는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문지훈도 이 말에는 조금 기분이 상했는지 미간에 주름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 주름을 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네 기분은 이해하네. 일전의 일로 마음이 상했겠지.”
일전의 일. 박창수가 쥬벨과 함께 쿠데타를 일으켰다 실패하고 도망자 신세가 되자 국정원이 지원금을 바로 끊은 일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리고 반은 정답이었다.
사실 박창수에게 돈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물론 초기에 그 돈이 도움이 됐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그리 쪼들리는 형편은 아니었다.
박창수는 잘나가는 게이머였고, 갤럭시안을 시작하기 위해 이전에 하던 게임을 정리했을 때 이미 평범한 유저들은 상상도 못 할 자금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쿠데타에 실패했을 때 개척지의 하이브 투란을 매각해 그 돈은 다시 현찰이 되어 그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와 있었다.
박창수가 화난 이유는 돈보다도 버려졌다는 사실이다.
마치 쓰고 버리는 일회용 도구처럼 너무나 간단히, 편지 한 장으로. 더는 기대할 게 없다는 듯이 버려졌다는 사실이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물론 돈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만 돈 때문에 다시 그런 자들과 얽히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더 할 얘기가 없으면 일어나겠습니다.”
“어허, 그런 식으로 행동하면 곤란할 텐데?”
박창수가 몸을 일으키려 하자 문지훈이 눈가를 찌푸리며 말했다. 이에 박창수가 돌아보자 문지훈이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나는 자네 삼촌하고 친한 사이라고. 잊었나?”
“……협박입니까?”
“그렇게 들린다면 그런 거겠지.”
“저는 문 과장님이 공무원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아니었습니까?”
“공무원이니까 그런 거네.”
문지훈 손으로 미간을 주물거리며 말했다.
“나도 사실 남에게 싫은 소리 못 하는 사람이네. 하지만 국가와 민족을 위한 일이라면 얘기는 달라지지. 본의 아니게 모질어질 수도 있다는 말이야.”
확실히, 협박이었다.
잠시 문지훈을 노려보던 박창수가 다시 제대로 자세를 잡고 앉으며 말했다.
“이해할 수가 없군요. 아시다시피 저는 쿠데타에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국정원에서도 저를 버렸습니다.”
“버렸다는 말은 동의하기 힘들지만 뭐, 대체로 사실이네.”
“그리고 이번에는 신의 군대라는 조직에 들어가 재기하려고 했지만 또 실패했습니다. 함대고 뭐고 모두 잃어버렸다는 말입니다. 조만간 현상금도 걸리겠죠. 그때와 다를 바가 없는데 왜 이제 와서 저를 끌어들이려고 하는 겁니까?”
“내가 말이지…….”
문지훈이 양손을 깍지 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원래 나는 게임이라는 건 관심이 없었어. 하지만 지식이 없다 보니 권화랑이나 이명룡, 아, 루시퍼 헌팅의 팀장들 말이네. 그런 녀석들을 제어할 수가 없더란 말이지. 그래서 팀을 꾸리면서 이것저것 공부를 하고 있네.”
문지훈이 테이블에 놓여 있는 책을 슬쩍 돌아보며 말했다.
박창수가 들어올 때 읽고 있던 책이었다.
-나는 될 수 있다! 먼치킨이!
책 제목이었다.
“뭐 이런 게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모니터도 꼼꼼하게 하고 있지. 그러니까 대강 짚이는 게 있더란 말이네. 그 신의 군대라는 거, 아무리 생각해도 쥬벨이라는 NPC 혼자 만든 조직이 아니야. 뒤에 뭔가 다른 조직이 있겠지. 그리고 그건 적어도 신의 군대보다 훨씬 뿌리가 깊어. 그렇지 않나?”
박창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문지훈이 얼굴에 주름을 만들며 웃었다.
“어리군. 아니, 내가 나이가 든 건가? 이보게 박 군. 나는 분명 게임에 대해서는 자네보다 모르지만 국정원에서 꽤 오래 근무한 사람이네. 정보를 조합해 뒤를 캐는 게 내 일이지. 그런 일을 하다 보면 저절로 보이는 게 있어.”
“저는 모릅니다.”
묵묵히 듣고 있던 박창수가 대답했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물론 그도 신의 군대 뒤에 대공과 벨테란 공작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대공은 죽고 벨테란 공작은 배신했다.
펜릴에게는 뭔가 계획이 있는 것 같지만 박창수도 아직 거기까지는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문지훈이 다시 물었다.
“하지만 너브 전쟁에서 자네와 펜릴이라는 유저는 살아남았지. 같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요?”
“그럼 됐네. 내 용건이 그거니까.”
“무슨…….”
“일전에도 말했듯이 국정원에서는 갤럭시안의 유저들을 관찰하고 있네. 루시퍼가 유저로서 게임에 참가하겠다고 말한 이상, NPC로 움직이지는 않고 있을 테니까. 그리고 의심스러운 유저를 100여 명 정도 추려 놓았지. 카이저도 그중 하나였지만 이번 전쟁을 통해 얻은 몇몇 정보로 아니라고 판정이 났어. 대신 유력한 용의자가 나타났지. 그게 누구 같나?”
“설마…….”
“그래.”
“말도 안 됩니다. 그는…….”
“그를 직접 만나 본 적이 있나? 아니면 직접 통화라도 해 봤나? 한 번이라도 그런 적이 있다면 내 용건은 끝났네. 가 봐도 좋아.”
박창수는 일어나지 못했다. 아니, 완전히 당황해 버렸다.
펜릴이 루시퍼라니? 지금까지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막상 문지훈의 말을 듣고 보니 딱 잘라 아니라고 얘기할 수가 없었다.
게임 밖에서 만난 적이 없다. 그리고 전화 통화를 해 본 적도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확실히 그는 다른 유저와 다른 구석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걸리는 것은 그의 힘이다. 마치 수천의 함대가 움직이는 타이밍을 모두 계산하고 있는 것 같은 그 인간 같지 않은 감각. 아니, 그게 진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인가?’
한번 의심하기 시작하니 의혹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그때 문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뭔가 의심할 만한 부분은 있나 보군.”
“아니…….”
“됐네. 지금 당장 대답을 하라는 건 아니니까. 의심하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해. 좀 더 주의 깊게 관찰하게. 지금은 그게 자네 일이야. 물론 되레 의심을 사면 곤란하겠지. 대놓고 만나자거나 전화번호를 물어보는 멍청한 짓을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네.”
“……만약 그가 진짜 루시퍼라면 어쩔 생각입니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봐야겠지.”
문지훈이 ‘나는 될 수 있다! 먼치킨이!’라는 책에 손을 올리며 대답했다.
“들었겠지만 루시퍼가 제시한 승리 조건은 ‘궁극적인 목표’라는 것이야. 하지만 안타깝게 이 책에도 그게 뭔지는 적혀 있지 않더군. 하지만 적어도 죽인다고 끝나는 것은 아니겠지. 일단 그게 뭔지부터 알아보는 것이 순서 아닐까?”
“루시퍼가 아니라면?”
“그것도 모르지. 하지만 그때는 서로 도움이 되는 파트너가 될 수도 있지 않겠나? 자, 내 얘기는 여기까지네. 일주일에 한 번쯤은 목소리라도 들으며 살자고.”
문지훈이 테이블에 명함을 올려놓으며 일어났다.
그리고 옆에 세워 둔 우산을 집어 들고 돌아보며 웃었다.
“사람은 준비성이 좋아야 하는 법이라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