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8)
아크 더 레전드-8화(8/875)
[8] SPACE 3. 다시 처음으로 (1)R-14의 중앙 광장.
광장의 한 면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는 선착장에서는 지구발發 스페이스 쉽이 쉴 새 없이 들락거렸다.
그때마다 수백의 쫄쫄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와 놀란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님프를 만지작거리며 여기저기 흩어졌다.
수백 명씩 실어 나르는 스페이스 쉽이 쉬지 않고 들어오니 R-14의 선착장은 월드컵 때의 여의도 광장을 방불케 하는 인파에 뒤덮여 있었다.
이들은 유저, 그것도 이제 막 갤럭시안을 시작하는 유저들이다. 당연히 의욕 만땅! 새로운 시스템을 파악하고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레벨을 올리고, 조금이라도 먼저 우주 개척지에 깃발을 꽂기 위해 일개미처럼 바쁘게 움직였다.
그 중앙 광장의 후미진 구석.
암울한 포스에 휩싸여 있는 청년이 있었다.
마치 그 주위만 흑백 처리가 된 것처럼 암울한 분위기에 잠겨 있는 청년은 아크. 아크가 퀭한 눈을 들어 창 너머로 보이는 혹성을 바라보았다.
“저게 지구인가…….”
영롱한 푸른빛으로 반짝이던 인류의 모성 지구.
그러나 창 너머로 보이는 지구는 암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무지한 인간들의 과욕 탓에 이미 200년 전에 불모지로 변해 버린 것이다.
사실 말이 좋아 우주 개척 시대지, 지구 입장에서 보면 뻔뻔하게 얹혀살며 실컷 뜯어먹다가 부모가 거덜 나자 매몰차게 버리고 독립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아크도 처음 R-14에 왔을 때는 그런 지구를 보면서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런 배경 설정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러나 지금은 느낌이 달랐다. 인간의 욕심에 황폐해져 암울해진 지구가 지금 자신의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다른 점은, 지구는 인간에 의해 그렇게 됐지만 아크는 스스로 그런 꼴이 돼 버렸다는 것이다.
멍하니 지구를 바라보던 아크가 와락 머리를 쥐어뜯었다.
“병신 같은 놈! 멍청한 자식!”
필요 이상의 지식은 혼란을 일으킬 뿐이다.
그게 아크의 지론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게임을 시작한다.
아크는 오래전 뉴월드를 처음 시작했을 때 너무나 초보적인 정보조차 몰라 개고생을 했던 경험이 있었다. 뭐 따지고 보면 그 덕분에 숨겨진 직업을 찾아 뉴월드의 최강자로 군림할 수 있었지만 우주가 아크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 한 그런 행운이 또다시 일어날 확률은 매우 적었다.
때문에 아크는 갤럭시안을 하기 전에 기초 지식은 알아 두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재생 시스템이었다.
《갤럭시안 재생 시스템 ‘페어리’》
-갤럭시안에서의 부활은 재생 시스템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이는 2000년대부터 활발하게 진행된 클론 기술을 응용한 시스템으로 만약 유저가 사망할 경우, 미리 등록된 유전자 정보에 의해 자동으로 육체를 복원해 주는 기능입니다. 이때 복원되는 육체는, 등록 당시의 육체와 100% 동일합니다.
-이 시스템을 이용해 육체를 복원하는 데는 상당한 자원이 필요합니다.
-이는 등록된 육체의 능력―레벨―이 높을수록 더 많은 시간과 자원을 필요로 합니다. 만약 재생에 필요한 자원이 부족할 경우, 육체가 제대로 재생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육체나 정신의 손상이 심하면 평생 불구로 살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구연방에서는 우주 개척을 장려하기 위해 초보 개척자에 한해 무료로 서비스해 주고 있습니다.
-재생 시스템만 있으면 죽어도 안심!
-많은 이용 바랍니다.
‘죽어도 안심?’
……사탕발림이다.
죽기 전에 등록한 유전자 정보로 100% 동일한 육체를 복원한다. 이는 죽어도 경험치나 스텟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물론 돈이 들지만 점점 가혹해지는 가상현실 게임의 사망 페널티에 비하면 정말 ‘안심’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시스템에는 함정이 있었다.
바로 등록된 유전자 정보의 육체로 복원된다는 부분이다.
만약 레벨 1부터 100까지 키우는 동안 한 번도 등록하지 않은 유저가 사망했다면 레벨 100이라도 마지막에 등록된 시점, 다시 말해 레벨 1의 육체로 복원된다는 뜻이다.
게다가 재생 시스템은 그리 많지도 않았다.
문명이 존재하는 곳, 일종의 마을 같은 곳에나 하나씩 있다. 유저가 초보 지역을 벗어나 본격적으로 우주 개척지를 모험하는 시기가 되면 그런 곳에서만 생활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다시 말해 실제 전투가 벌어지는 개척지나 던전에서 죽으면 그동안 올린 모든 경험치를 얄짤없이 날려 먹는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빌어먹을, 많은 이용을 바란다고?’
레벨 업을 하지 말란 얘기다.
“알고 있었는데…….”
R-14의 재생 시스템이 있는 곳은 중앙 광장.
게임을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보였던 게 바로 그 재생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아크는 한 번도 등록하지 않았다.
퀘스트 보상을 마일리지로 전환시킨 탓에 굳이 사냥터를 떠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수천 명의 유저가 득실대는 2구역에서 지난 5시간 동안 죽은 유저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 그런 곳에서 자신이, 전설의 게이머 아크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대가로 받은 페널티는 도루묵!
‘5시간 동안 죽어라 올린 경험치가 몽땅 날아갔다!’
5시간의 경험치, 뭐 길고 긴 게임 생生을 생각하면 별거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생후 5시간 된 아크에게는 인생 전부를 바친 시간이었다.
그 평생을 바쳐 올린 경험치. 게다가 아크의 의욕에 불을 지폈던 ‘우주 전투 감각’ 스킬까지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조차 지금 아크에게는 걱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단검!’
정확히 말하면 박살 난 단검이다.
당연히 단검은 재생 시스템으로도 복원되지 않았다.
잃어버린 경험치는 언제고 복구가 되겠지만 한번 깨져 버린 단검은 그걸로 끝이다.
비록 초보자에게 주어지는 기본 단검이지만, 지금 아크에게는 유일한 무기이자 전 재산. 그 전 재산이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막 재생됐을 때는 그래도 희망이 있었다.
‘지금까지 완료한 퀘스트가 8번, 그걸 몽땅 마일리지로 적립했으니 보너스가 제법 붙었을 거야. 초보 퀘스트지만 여기도 초보 마을, 저렙용 단검 한 자루는 살 수 있겠지.’
아크는 거기에 한 가닥 희망을 걸고 뷰라드를 찾아갔다.
그러나 뷰라드는 쌩 깠다.
“자네의 마일리지는 방금 전에 소멸됐네.”
“네? 소, 소멸되다니요?”
“내가 분명히 말했을 텐데? 우주 벌레에게 죽는 허접스러운 놈에게는 보수를 줄 수 없다고.”
그러고 보니 퀘스트를 받을 때 설핏 그런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마일리지는 죽기 전에 쌓아 둔 거잖아요.”
“쌓인 마일리지는 그다음 임무의 보상으로 등록되는 거야. 그러니 임무 도중에 죽어 버리면 이전의 마일리지까지 몽땅 날아가는 게 당연하지. 나 참, 그런 것도 모르고 있었나? 잘 모르면 그냥 매번 보수를 받아 갔어야지.”
“그건 아저씨가 마일리지 적립을 추천한다고 해서…….”
“뭐야? 내 탓을 하겠다는 거냐?”
뷰라드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힘들게 쌓은 마일리지를 떼어먹으면서 되레 성질이다.
정말이지 마음 같아서는 수염을 왕창 뜯어 버리고 싶었지만 그것도 단검이라도 있을 때의 얘기다. 레벨 1짜리가, 단검도 없이 NPC와 멱살잡이를 해서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아크는 한숨을 불어 내며 동정심에 호소해 보았다.
“실은 제가 우주 벌레와 싸우다가 한 자루밖에 없는 단검을 깨 먹었어요. 보상을 받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요. 사람 하나 살리는 셈치고 제발 사정 좀 봐주십시오.”
“그게 규칙이라 나도 어쩔 수 없어.”
이빨도 들어가지 않았다.
“자네도 알겠지만 재생 시스템은 비싸. 자네처럼 허접스러운 개척자를 재생시키는 데도 적지 않는 돈이 들어간단 말이네. 연방 정책 때문에 R-14에서는 어쩔 수 없이 무료 서비스를 해 주고 있지만 요즘 개척자가 엄청나게 불어나 항상 예산 부족에 시달리고 있어. 그런데도 어떤 개척자 놈들은 장난삼아 이용하기도 한단 말이네. 이런 식으로 벌금이라도 받지 않으면 우주정거장을 운영할 수조차 없어. 그러니 그냥 이용료라고 생각해.”
심지어 떳떳하게 떼먹는 이유까지 설명한다.
공짜라는 둥, 안심하고 많이 이용하라는 둥의 말은 모두 개구라였던 것이다.
정말이지 따지고 싶은 게 한둘이 아니었지만…….
“아, 용건 끝났으면 이제 좀 비켜 주시죠?”
“퀘스트 혼자 받습니까? 기다리는 사람 안 보이세요?”
뒤에서 기다리던 유저들의 닦달에 결국 고개를 떨구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억울하다. 따지고 싶은 것도 많다.
그러나 NPC가 원래 시스템이 그렇다는데 어쩌겠는가?
물론 지금까지 겪어 본 가상현실 게임의 NPC를 생각하면 호감도가 높아지면 뭔가 다른 방법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도 우주 벌레 퀘스트라도 할 수 있을 때 얘기였다.
아크가 사망하자 2구역에서 자리를 잡고 있던 파티도 자동으로 해체되었다. 다시 취직자리를 구해야 하는데, 단검조차 없는 아크를 어느 파티가 끼워 주겠는가?
자칫하면 이대로 우주 노숙자가 되어 버릴 위기!
‘그리고 그 원인은…….’
처음에는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은 뷰라드를 원망했다.
그다음에는 제대로 퀘스트 관련 정보를 알아보지 않은 자신을 원망했다. 그러나 구석에 찌그러져 우울해하는 사이에 아크는 근본적인 문제를 깨달았다.
‘그래, 문제는 처음부터 내 정신 상태에 있었어.’
갤럭시안을 처음 시작했을 때 아크는 레벨은 1로서 새로운 각오를 해야 한다고 지껄였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건 말뿐이었다.
스스로 깨닫지 못했지만 전설의 게이머니 뭐니 하는 칭호에 취해 은연중에 같은 초보라도 다른 유저와는 다르다고 생각했었다.
유저와의 접촉을 극도로 꺼리던 아크가 구직 광고에 버젓이 ‘아크’라는 이름을 이따만 하게 만들어 내걸고, 파티장이 되자마자, 굳이 3인 파티를 만들어 무리한 전투를 치렀던 것도 그런 오만함이 작용한 결과였다.
전설의 게이머라는 명함이 만들어 낸 오만함!
거기까지 생각하자 모든 문제가 명확하게 보였다.
‘우주 벌레와 싸울 때 뜻대로 전투를 할 수 없었던 걸 다른 게임이라서, 레벨이나 스킬, 장비품이 받쳐 주지 않아서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 분명 뉴월드의 아크는 강하다. 지금 다시 들어가도 강하겠지. 하지만 그건 내가 강한 게 아니야. 뉴월드의 아크가 강한 것뿐이다. 분명 아크를 그렇게 만들 때까지의 나는 강했지만, 아크가 최강 캐릭터가 된 뒤의 나는…… 단지 그 능력에 빌붙어 있었을 뿐이야.’
이미 최강이니 강해질 이유가 없었다.
전투를 할 때도 이전처럼 이것저것 궁리할 필요가 없었다.
그것이 전사로서의 아크를 녹슬게 만들었다. 아크는 갤럭시안의 전투 감각에 익숙해지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그 전투 감각을 오래전에 잃어버렸던 것이다.
최강의 전사가 황제가 된 뒤로는 그저 왕좌에 앉아 늙어 가듯이…….
짝-!
“정신 차려라, 아크!”
아크가 양손으로 자신의 뺨을 후려쳤다.
아크는 이곳에 놀기 위해 들어온 것이 아니다.
이전처럼 먹고살기 위해 들어온 것도 아니지만 분명한 목표는 있었다.
물론 아크는 루시퍼의 위협을 막을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는 ‘구세주병’에 걸린 환자가 아니었다.
본의 아니게 쫄쫄이를 입고 있지만 슈퍼맨이 됐다는 망상에 빠져 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한 번의 실수로 좌절할 정도로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들인 일 역시 아니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기필코 해내겠다는 각오는 있었다. 그게 정부를 상대로 당당하게 세 가지나 되는 요구 조건을 내밀 수 있었던 자신감의 원천이다.
그 자신감이 지나쳐 실수를 저질렀지만 이제라도 잘못을 알았으니 고치면 그만이다.
‘저만 잘났다는 썩어 빠진 정신부터 고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잘못을 깨달으면 확실하게 반성하는 아크다.
이미 지난 일에 연연하지도 않는다. 미련을 버리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미련을 버리려면 먼저 생각을 고쳐먹어야 한다.
“여기에 뉴월드의 최강자는 없다. 전설의 게이머도 없어. 여기가 출발점이다. 지금 여기에는 이제 막 우주로 나온 초보 개척자 아크가 있을 뿐이다.”
아크는 모든 것을 떨치고 일어났다.
동시에 전설의 게이머 아크는 죽었다.
그리고 레벨 1의 초보 개척자 아크가 태어났다. 그 순간 아크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레벨 1의 유저답게!
* * *
“헤헤헤, 안녕하세요?”
아크가 실실 쪼개며 양손을 비비적거렸다.
그러자 뷰라드가 마뜩잖다는 눈길을 보내며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뭐야? 아직도 미련이 못 버린 거냐?”
마일리지 소멸 문제로 다툰 뒤로 뷰라드는 아크를 좋게 보지 않았다. 뭐 애초에 좋게 봤던 적도 없었지만, 어쨌든 아크는 잽싸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그때는 너무 놀라고 당황해서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저 구석에 처박혀 하나하나 다시 짚어 가며 생각해 보니 역시 제 잘못이더라고요.”
“이제라도 알게 됐다니 다행이군.”
“그래서 다시 찾아뵙고 사과를 드리려고 왔습니다.”
“사과?”
“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지금 R-14에 저 같은 지구 촌놈이 얼마나 많이 기어 들어오고 있습니까? 그런 무지렁이들을 혼자서 관리하는 게 얼마나 힘들지 저는 짐작도 못 하겠습니다. 그런데 저처럼 아무런 연고도 없는 사람에게 일거리까지 주신 뷰라드 님에게 고작 마일리지 몇 점 잃었다고 따지고 들었으니 화가 나시는 것도 당연하죠.”
아크가 쉴 새 없이 양손을 비비적거리며 말했다.
아크가 생각한 레벨 1다운 일이란 바로 이것이었다.
가상현실 게임에서 NPC와 호감도를 올려 두면 뭐든 이득이 되는 법이다. 아크는 갤럭시안에도 그런 호감도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막 게임을 시작해 그럴 여유가 없었고, 곧 떠날 초보 지역의 NPC를 상대로 굳이 호감도를 올려야 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방금 전까지는.
그러나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단검을 깨 먹어 버린 지금 아크는 문자 그대로 거지!
있는 거라고는 주둥아리 하나뿐이다. 그렇다면 주둥아리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한다는 게 아크가 내린 결론이었다. 방금 전의 아크처럼 레벨을 올려 초보 지역을 벗어날 생각밖에 없는 유저들이 아크의 사정을 생각해 줄 리가 없다.
미우나 고우나 지금 아크가 기댈 만한 것은 NPC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일단 뷰라드와의 관계 회복!
그게 지금의 아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었다.
사실 이게 아크의 전문 분야였다. 그리고 아크는 NPC에게는 얼마든지 비굴해질 수 있는 유저! 일단 작정하고 나서니 혀가 기름을 바른 것처럼 매끈하게 움직였다.
“실은 저도 방금 전까지는 미련을 떨쳐 내기 어려워 광장 구석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몇 시간 동안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계시더군요.”
“그게 승무원 규칙이라…….”
“제 말이 그 말입니다. 누가 감시하고 있는 게 아닌데도 철두철미하게 규칙을 지키시는 것을 보고 전 감동했습니다.”
“그야 승무원 근무 태도는 모두 CCTV로 찍히니까…….”
“그러니까요. CCTV에 찍히는데도 아닌 건 아니라고 분명하게 잘라서 말씀하시는 대범함! 민원이 들어오면 그저 눈치만 살살 보면서 얼렁뚱땅 넘기려는 공무원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지만 뷰라드 님은 옳다고 생각하시면 딱 잘라 버리지 않습니까? 확고한 직업관과 신념을 가지고 계시다는 말이죠. 실로 공무원의 귀감이십니다.”
뷰라드가 살짝살짝 삐딱선을 탔지만 혀에 기름을 바른 아크는 매끈하게 받아넘기며 그를 정신없이 띄워 주었다.
그 효과가 나타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 없었다.
“빨리 좀 하죠?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 안 보이십니까?”
“어허! 지금 나와 얘기하고 있는 거 안 보이나? 왜 그렇게 안달이야?”
뷰라드가 불평하는 유저들을 째리며 쏘아붙였다.
그리고 한결 부드러워진 표정으로 아크를 바라보았다.
“음, 아까는 나도 말이 좀 심했네. 자네 말대로 요즘 신입 개척자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신경이 좀 날카로워졌던 모양이야. 자네가 이해하게.”
“이해하고 말고 할 게 어디 있겠습니까? 그게 규정인데.”
“그래, 사실 나도 자네 사정이 안타깝지 않은 건 아니야. 하지만 규칙이 그런 걸 어쩌겠나? 마음이 아파도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입장도 있는 거야. 그러니 자네도 지난 일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마음 단단히 먹게.”
“감사합니다. 무턱대고 우주에 나왔다가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단검을 잃어버려 막막했는데 진심 어린 충고를 해 주는 분을 만나니 왈칵 눈물이 솟구칩니다.”
“어허! 이 친구, 다 큰 사람이 고작 이 정도 일로 눈물까지 보이면 쓰나?”
뷰라드가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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