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801)
아크 더 레전드-801화(801/875)
[801] SPACE 1. 그레이스톤 (1)“어디 보자…….”
아크가 계기판을 살펴보았다.
지금 실버스타는 이면 세계를 항해하는 중이다.
고대하던 모함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들이닥친 붉은학살자의 닦달에 갑자기 2차 각성 퀘스트 《고대의 부름-Ⅱ》를 진행하게 돼 버린 탓이다.
“나쁘지 않아.”
그러나 아크는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끄덕였다.
일이 많아 주말에도 쉬지 못하던 직장인이 주위의 권유로 어쩔 수 없이 야외로 나왔지만 의외로 좋더라, 하는 게 딱 지금 아크의 기분이었다.
이번 여행은 예정된 일도 아니었고 아직 할 일도 많았다.
때문에 처음에는 그리 달갑지는 않았지만 막상 길을 나서니 그런 감정은 금세 사라졌다.
“생각해 보면 그동안 너무 각박하게 지내기는 했지. 너브 전쟁에 참전한 뒤로 거의 두 달 가까이 다른 유저와 공훈치 경쟁을 하며 쉴 시간도 없이 뛰어다녔으니까. 뭐, 결과가 좋으니 불평할 일은 아니지만 이제 좀 여유를 가지고 미뤄 뒀던 일을 처리하는 것도 좋겠지.”
물론 《고대의 부름-Ⅱ》도 일단은 퀘스트.
1차도 쉽지는 않았지만 2차니 당연히 난이도는 더 높으리라. 그러나 이제 너브 전쟁 때처럼 다른 유저와 경쟁하는 것도 아니고 신경 써야 할 함대도 없다. 그것만으로도 속이 뻥 뚫리는 해방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좋긴 뭐가 좋아?”
울컥한 눈으로 째리며 구시렁대는 레피드였다.
“네 여가 활동에 애먼 사람까지 덤으로 끼워 넣지 말라고, 이 자식아!”
“또 그 소리냐?”
아크도 짜증 나는 눈으로 돌아보며 되물었다.
“대체 너는 뭐가 그렇게 불만이야?”
“하, 뭐가 불만이냐고? 그게 사람을 다짜고짜 납치한 놈이 할 말이냐?”
“너야말로 공짜로 전함에 태워 주고 있는 사람에게 그게 할 말이냐? 아니, 뭐 좋아. 너도 처음으로 전함을 구입했으니 얼른 타 보고 싶겠지. 하지만 너도 각성 퀘스트는 어차피 해야 하는 거고, 잠시 도크에 놔둔다고 전함이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니잖아. 네가 무슨 애냐? 새로 산 전함을 당장 못 타 본다고 내내 구시렁대게?”
“그런 게 아니야!”
“그런 게 아니면? 문제가 뭔데?”
“그건…….”
잠시 우물거리던 레피드가 버럭 소리쳤다.
“시끄러, 인마! 어쨌든 너! 하는 짓이 하나도 마음에 안 든다고!”
“아, 너무하네.”
아크가 슬픈 표정으로 콧구멍을 후비적거렸다.
“딴에는 너만 왕따시키는 것 같아서 데려왔는데 마음에 안 든다니, 나 상처받았다고.”
“이 자식이…….”
아크의 성의(?) 없는 태도에 레피드가 다시 울컥한 표정을 지었을 때였다.
-관둬라. 너만 손해야.
스크린 속에서 한심한 눈으로 지켜보던 붉은학살자가 끼어들었다.
-저 녀석은 태어날 때부터 사람 열 받게 하는 스킬이 탑재되어 있던 놈이야. 말을 섞을수록 너만 더 열 받는다고. 그리고…….
참고로 말하자면, 아크와 레피드가 갑자기 《고대의 부름-Ⅱ》를 시작하게 된 건 붉은학살자 때문이었다. 정말이지 하나같이 뻔뻔하기 짝이 없는 파티였지만.
파지지지! 파지지지!
-도착했다.
붉은학살자가 갈라지는 스파크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레피드가 쉬지 않고 불평불만을 쏟아 내는 사이에도 실버스타와 아수라는 쉬지 않고 이면 세계를 항해해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그래, 저 혹성이 그레이스톤이다.”
아크가 스파크 너머로 떠오르는 회색 혹성을 바라보며 끄덕였다. 그러자 붉은학살자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러쿵저러쿵해 봤자 이미 여기까지 와 버렸다고. 그러니 이제 레피드, 너도 그만 포기하고 즐기자고. 간만에 우리만의 모험이잖아.
“그래, 게다가 2차 각성 퀘스트라고. 1차 때보다 더 강한 스킬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잖아. 약간의 스릴과 서스펜스는 덤이지. 뭔가 시작도 하기 전에 불타오르지 않냐?”
“젠장.”
붉은학살자와 아크의 말에 레피드가 벅벅 머리를 긁다가 한숨을 불었다.
“하여간 이놈이나 저놈이나…… 할 수 없지. 됐으니까 군소리하지 말고 얼른 가기나 해! 진짜 네놈들의 전함을 확 불 싸지르기 전에!”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이냐?
레피드의 협박에 토트가 불편한 심경을 토로했지만.
“협박하지 않아도 간다고! 실버스타, 돌입!”
간만에 자유의 몸(?)이 된 아크는 의욕적으로 실버스타의 엔진을 가동!
콰아아아아!
-혹성 <그레이스톤>의 항로가 등록되었습니다.
《실버스타의 항법 장치에 우주 개척지 동북부의 혹성 네이블의 좌표가 등록되었습니다. 이후 별도의 좌표 입력이 없어도 우주 어디에서든 인쿼리까지 워프 항해를 할 수 있습니다.》
※모험치 +50
‘뭐 이런 것도 소소한 즐거움이지.’
굉음을 일으키며 단숨에 네이블의 대기권을 뚫고 돌입했다. 그리고 《고대의 부름-Ⅱ》 퀘스트와 함께 받은 좌표를 따라 목적지로 이동했을 때였다.
-……뭐냐, 이건?
붉은학살자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그만이 아니었다. 아크와 레피드의 얼굴에도 같은 표정이 떠올랐다.
새삼스럽지만 본래 각성 퀘스트는 NPC 사이에 떠도는 소문을 추적해 한정된 숫자의 메모리칩을 손에 넣어야 시작할 수 있는 퀘스트다.
말하자면 숨겨진 퀘스트라는 말이다.
때문에 각성 퀘스트 자체를 알고 있는 유저도 아직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건 수많은 유저가 모여 있던 너브 전쟁에서도 각성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유저는 거의 보지 못했다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2차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1차 퀘스트를 진행하던 던전에 숨겨져 있는 단서를 찾아내야 한다.
그건 앞서 각성 퀘스트를 진행했던 붉은학살자나 아크와 함께 진행했던 레피드조차 찾지 못했던 것!
당연히 2차 각성 퀘스트까지 진행할 수 있는 유저는 극소수 중에 극소수이리라.
때문에 아크와 레피드, 붉은학살자는 네이블이 1차 각성 퀘스트를 진행했던 화성보다 더 인적이 드문 혹성일 거라고 지레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좌표를 따라 도착한 고대 유적 주위에는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바글거리고 있는 것이다. 아니, 유적 근처에는 아예 커다란 마을까지 자리 잡고 있었다.
“정말 여기가 맞기는 한 거야? 각성 스킬이라는 거, 4대 천족의 예지자들에게 선택된 전사들에게만 전수되는 뭐 그런 거 아니었어?”
“일단 설정이 그렇기는 하지만…….”
“그런데 뭔 놈의 선택받은 전사가 이렇게 많아? 선택받은 전사가 무슨 연말에 펑펑 뿌려 대는 사은품 교환권 같은 거냐? 이러다가 혹시 줄 서서 기다려야 하는 거 아니야?”
“저 사람들이 모두 2차 각성 퀘스트를 받고 온 유저들이고, 1차처럼 2차도 관련 던전에 입장 제한이 있다면 그러지 말라는 법도 없지.”
난감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던 아크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아직 저 사람들이 모두 각성 퀘스트를 하러 온 사람들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어.”
-그래.
아크의 말에 붉은학살자가 끄덕였다.
-2차 퀘스트의 단서는 나도 찾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걸 저 많은 사람들이 모두 찾아냈을 리가 없어.
“네가 잘났다는 말이냐, 못났다는 말이냐?”
“내가 잘났다는 말이지.”
레피드의 질문에 대답한 사람은 아크였다.
덕분에 레피드와 붉은학살자가 동시에 썩은 표정을 지었지만 어쨌든!
“뭐가 됐든 둥둥 떠 있을 수는 없으니 일단 내려가자고.”
아크는 마을 인근에 우주선이 모여 있는 장소로 이동해 실버스타를 착륙시켰다.
밖으로 나오자 바로 옆에 착륙한 아수라에서도 붉은학살자가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맞은편의 아크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너…… 아크냐?
“그런데?”
-얼굴이 왜 그래? 그사이에 레피드에게 맞았냐?
아크의 얼굴은 정상이 아니었다.
쭉 째진 눈에 당장이라도 발사될 것처럼 툭 튀어나와 있는 광대, 말할 때마다 드러나는 불쾌감 넘치는 뻐드렁니!
뭐 본래 아크가 미남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지금은 거기에 ‘못생김 +100’의 효과가 붙어 있는 얼굴인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나도 좋아서 이런 얼굴을 달고 있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어쩌겠어? 알아서 조심해야지.”
아크는 기억하고 있었다.
아도니스에서 은하 3국 공동 1위로 발표되는 순간 벌 떼처럼 몰려든 유저들에게 밟혀 죽을 뻔했던 섬뜩한 경험을. 당연히 아크는 같은 경험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미리 안전 조치를 해 두었다.
-<하이드 헬멧>의 메모리에 등록되어 있는 얼굴을 페이스 가드로 재생하고 있습니다.
아크가 추남으로 변한 이유가 이것!
마을에 득실거리는 유저들을 의식해 미리 ‘하이드 헬멧’으로 얼굴을 성형해 버린 것이다. 말하자면 연예인이 마스크를 쓰는 것과 같은 이유다.
-놀고 있군.
이에 붉은학살자는 같잖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남말할 처지냐? 너는 색이 왜 그래? 갑자기 누군가에게 두들겨 맞았냐?”
-염색했다.
붉은학살자의 아머는 아예 파란색으로 변해 있었다.
물론 그의 변신에도 이유는 있었다.
-알아보면 곤란하니까.
붉은학살자도 공동 3위!
1위인 아크보다는 못하지만 일단 유명인인 것이다.
“너야말로 놀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냐? 아니, 그보다 너 붉은학살자 아니었어? 그런데 파랑? 개그냐? 극적 반전, 뭐 그런 거야? 이참에 아예 별명도 파랑학살자로 바꾸지 그래? 아니, 그냥 알기 쉽게 스머프라고 불러 주마.”
-뭐야, 인마? 못생긴 주제에!
“그래도 나는 너처럼 아예 정체성을 바꿔 버리지는 않았거든?”
-어쩔 수 없잖아!
“하긴 뭐, 적어도 나는 이해할 수 있지.”
아크가 씁쓸한 표정으로 레피드를 돌아보며 말했다.
“유명하지 않은 녀석은 좋겠다, 굳이 이런 짓을 하지 않아도 알아봐 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래, 좋지.”
레피드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이에 아크가 얼른 붉은학살자를 돌아보며 말했다.
“자, 자,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레피드는 바쁘다고. 모처럼 새 전함을 마련했으니 빨리 타 보고 싶지 않겠어? 그러니 잡담하지 말고 얼른 각성 퀘스트에 대해 알아보자고. 그래서 쓸데없는 일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일부러 변장까지 한 거잖아. 안 그래, 스머프?”
-이 자식이 정말…….
스머프라는 말에 붉은학살자가 울컥한 표정을 지었지만.
-뭐 그렇지. 이것도 다 얼른 각성 퀘스트를 진행하기 위해 그런 거지. 자, 변장도 했으니 얼른 마을로 들어가 퀘스트에 대해 알아보자고!
금세 고개를 끄덕이며 뛰어갔다.
그 역시 레피드가 권총을 쥐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아크 파티는 의욕적(?)으로 마을로 이동했다.
‘네이블’이라는 마을의 시가지로 들어서자 전함에서 목격했던 것처럼 각양각색의 종족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전함에서는 보지 못했던 것이 있었다.
-닥사 파티 모집합니다!
레벨 200~210 기준으로 하루에 평균 1레벨 업 보장!
《모집 인원 : 3/10 전리품 분배 : 순차적(장비품은 직업 우선 주사위)》
-유적 지하 던전에서 아이템 사냥을 갈 파티 모집합니다!
레벨 최소 230 이상. 최소 레어 등급 장비품 3개 이상 착용자에 한함. 고렙 유저 환영! NPC 부하 보유자 환영!(단, NPC에게는 전리품을 따로 분배하지 않습니다.)
《모집 인원 : 14/20 전리품 분배 : 무조건 순차적》
-초고속 잡퀘 주행 파티 모집합니다!
레벨 180~250 초보자 환영! 최소 4시간 이상 함께할 유저만 모집합니다.
《모집 인원 : 2/5 전리품 분배 : 퀘템 외에는 주사위》
대로의 양옆으로 늘어선 유저들의 머리 위에 떠 있는 각종 전광판!
-이거…….
“적어도 줄 서서 대기할 걱정은 없다는 말이군.”
붉은학살자가 눈매를 좁히며 웅얼거리자 레피드가 끄덕였다. 그 많은 파티 모집 공고의 어디에도 각성 퀘스트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각성 퀘스트를 목적으로 모인 유저들은 아니라는 의미다.
“각성 퀘스트? 그게 뭔데요?”
“못 들어 봤는데요?”
그건 몇몇 유저들의 반응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게 딱히 아크 일행에게 좋은 일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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