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824)
아크 더 레전드-824화(824/875)
[824] SPACE 9. 롤플레잉 (1)-어떤가?
패널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방.
중심의 단상에 떠 있는 홀로그램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그 앞의 청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나쁘지 않군요.”
-나쁘지 않다? 핫, 듣던 것보다 건방진 구석이 있는 녀석이군.
“아니, 공작님의 힘은 충분히 느끼고 있습니다.”
그렇게 대답하는 청년은 바로 이얀.
너브 전쟁에 참가했을 때부터 은하연방의 공훈 순위 1위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막판에 아크와 데커드에게 밀려 결국 3위로 마감한 불운의 유저였다.
‘하지만…….’
이얀은 그대로 끝나지 않았다.
아니, 그대로 끝낼 수 없었다. 아직 이얀은 숙적으로 생각하는 아크와 검 한번 제대로 나눠 보지 못한 것이다.
뭐 이얀은 이미 노드에서 호크에게 발린 적이 있었고, 그게 아크 탓이었으니 결과적으로 아크에게 발린 것이나 다름없기는 하지만.
‘그런 건 인정 못 해!’
그건 아크에 대한 이얀의 적개심을 더 불태우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이얀에게 또 다른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그의 앞에 떠 있는 홀로그램, 벨테란 공작이었다.
그리고 이얀은 말한 대로 이미 그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했다.
지금 이얀이 있는 곳은 너브 지역의 혹성이다.
너브 전쟁 이후에 은하연방 소속이 된, 그리고 지금은 벨테란 공작의 소유가 된 9개의 혹성 중 하나.
정작 전쟁에는 참가도 하지 않은 벨테란 공작이, 아니 심지어 신의 군대와 내통했다는 의심까지 받는 그가 11개 혹성 중 9개를 차지해 버린 것이다.
일단 그것만으로도 벨테란 공작이 보통 인간이 아니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이얀이 말한 ‘힘’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
두 달 가까이 지속된 전쟁에 당연히 너브 지역의 혹성은 황폐화되어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혹성은 여전히 그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지만 적어도 벨테란 공작 소유의 혹성은 아니었다.
지금 이얀이 와 있는 혹성도 그렇지만, 그 외에 8개의 혹성에도 이미 기지와 관련 시설이 대부분 들어서 있는 것이다.
그게 벨테란 공작이 가진 힘의 실체!
금력이다.
그런데 왜 이얀이 벨테란 공작의 기지에 와 있는가?
-내 힘을 충분히 느끼고 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그럼 이제 자네가 내게 증명할 차례로군. 무능하지 않다는 것을 말이야.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충고 하나 해 주지. 나는 그런 식의 말을 좋아하지 않아. 보통 그런 식으로 막연하게 떠들어 대는 놈들은 나중에 변명도 많은 법이거든.
“확실하게 밟겠습니다, 아크를.”
-그래, 그렇게 구체적으로 말해야 알아듣지.
이얀이 정정하자 벨테란 공작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끄덕였다.
-하지만 고작 아크라니, 너무 소박하군. 설마 내가 9개나 되는 혹성을 너에게 맡긴 이유가 아크라는 놈 하나를 잡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겠죠.”
-그래, 아니다. 그런 놈, 굳이 번거롭게 너와 얽히지 않아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은하연방에 발붙이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어. 내 목적은 어디까지나 아크의 뒤, 마틴 후작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황제 폐하와 뜻이 통한 거지.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네가 뭘 해야 할지도 알겠지? 아크는 어디까지나 미끼다. 마틴 후작을 잡기 위한 미끼. 그리고 미끼는 그냥 놔둬서도 안 되지만, 섣불리 흔들어 대도 안 되는 법이다. 적당히 흔들어 줘야 사냥감을 유인할 수 있는 것이지. 그게 네가 해야 할 일이다. 그 조심성 많은 마틴 녀석이 덥석 물고 싶어질 만큼 말이야.
“할 수 있습니다.”
그건 이얀에게도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었다.
노드에서 아크에게 당한 이얀이 이를 갈면서도 복수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니까.
물론 이얀이 아크를 공격한다고 바로 마틴 후작이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아크와 마틴 후작은 이미 공동체나 다름없는 사이다. 전면에 나서지는 않더라도 후원은 할 것이다. 그 증거가 바로 얼마 전에 아도니스 궤도에 자리 잡은 모함이다.
이미 마틴 후작은 이얀이 너브 지역의 혹성을 관리하게 될 것을 예상하고 아크에게 모함을 넘긴 것이다.
이건 이얀이나 벨테란 공작이 아크를 건드리면 좌시하지 않겠다는 마틴 후작의 경고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이얀은 건드릴 생각이다.
그게 벨테란 공작의 뜻이기도 하지만 설사 그게 아니라도 이얀은 아크의 존재를 용납할 수 없으니까.
-뭐 표정을 보니 내가 일일이 간섭할 필요는 없겠군. 좋아, 일단 믿고 맡겨 보지. 하지만…….
그때 벨테란 공작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황제 폐하와 의견이 같은 것은 거기까지다. 나는 말할 것도 없이 황제 폐하의 충실한 종이지만, 때때로 의견이 다를 수도 있겠지. 그때 네가 누구의 의견을 따를지, 미리 생각해 두는 편이 좋을 거야.
그 말에 이얀은 움찔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잠시 고민하던 이얀은 한참이 지난 뒤에야 대답했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흠, 그런가? 모범 답안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뭐 괜찮겠지. 적어도 냉큼 고개를 끄덕이는 놈보다는 믿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나 역시, 아직 네가 얼마나 쓸 만한 놈인지 모른다. 그러니 일단 지켜보도록 하지.
벨테란 공작은 그 말을 끝으로 사라졌다.
이에 이얀이 고개를 돌리자 바로 옆에서 고함이 터졌다.
“이얀, 저게 무슨 말이냐!”
“……핌.”
“방금 전에 벨테란 공작이 한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너에게 황제 폐하를 배신할 수 있느냐고 물은 거야! 그런데 생각해 보겠다니? 그런 대답을 할 일이 아니잖아! 우리가 누구인지 잊은 거냐? 우리는 황제의 비밀 수호 기사야! 바로 저런 놈들과 싸워야 하는 사람이라고! 아크가 아니라!”
“그만! 이제 좀 그만해!”
이얀이 와락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
“알아! 나도 안다고! 하지만 너도 알잖아! 지금 아크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벨테란 공작의 힘이 필요하다는 걸! 그게 황제 폐하를 위하는 길이야!”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
“뭐?”
“네가 아크에게 그렇게까지 연연하는 이유가 정말 황제 폐하를 위해서냐고 묻는 거다.”
“그건…….”
“이얀, 너는 지금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어. 물론 황제 폐하가 마틴 후작과 반목하는 이상, 마틴 후작의 부하나 다름없는 아크도 동료라고 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되레 벨테란 공작이 몇 배는 더 위험하다. 그런 자의 힘을 빌려서까지 아크를 상대하겠다는 것은 말이 안 돼. 아니, 너는 지금 뭔가 착각하고 있어. 아크에게 품고 있는 네 감정은 적개심 같은 것이 아니야. 내가 보기에 너는 되레 아크를…….”
“더는 말하지 마라.”
이얀이 위협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아크에게 품고 있는 감정이 어떤 것이든 상관없어. 그리고 이미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이미 놈과 나는 양립할 수 없는 사이라는 것이다.”
“……끝까지 가겠다는 거냐?”
“그래, 이미 내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 그러니 할 수밖에 없다. 아니, 한다, 내 의지로. 그리고 보여 주겠어. 내가 놈보다 못하지 않다는 것을.”
“이얀…….”
핌이 답답한 한숨을 불어 내며 이얀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얀은 핌을 보고 있지 않았다. 이얀이 바라보는 것은 창문 너머, 보이지는 않지만 아도니스의 궤도에 떠 있을 모함이 있는 방향이었다.
‘아크,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얀이 복수를 다짐하고 있는 그때!
정작 아크는 이얀이 바라보는 방향과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 * *
“휴!”
아크는 함장석에 몸을 눕히며 한숨을 불어 내고 있었다.
글라도스와 카야, 이리나의 2차 각성 퀘스트를 안내한 뒤에도 붉은학살자와 레피드는 그레이스톤에 남았다.
-그사이에 다른 데로 튀면 이번에는 정말 국물도 없다? 알지?
“몽땅 개로 만들어 삶아 버릴 거야!”
이런 말을 남기고 진화의 신전으로 들어간 글라도스와 카야를 기다리기 위해서다. 그러나 굳이 아크까지 그레이스톤에 남아 있을 이유는 없었다.
죄(?) 많은 붉은학살자나 레피드와 달리 아크는 지은 죄가 없을 뿐만 아니라 어차피 어제, 그러니까 그녀들이 진화의 신전에 들어간 다음 날 이리나와 데이트 약속이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배신자 자식!
“기억해 두마! 두고 보자고!”
그리하여 이렇게 떠들어 대는 붉은학살자나 레피드의 말을 무시하고 자유의 몸이 되어 탈출!
그러나 그게 한가하게 지내고 있었다는 말은 아니었다.
아크는 할 일이 많았다.
두 달 가까이 너브 전쟁에 묶여 있는 사이에 미뤄 놓은 일이 한둘이 아닌 것이다.
그중에서도 역시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퀘스트였다.
원래 아크가 너브 전쟁에 참전할 때 가지고 있던 퀘스트는 4개였다. 그중 직업 퀘스트였던 《음에너지의 조사》는 너브 전쟁을 진행하는 사이에 엉겁결에 완료! 그리고 각성 퀘스트 《고대의 부름-Ⅱ》는 그레이스톤에서 완료!
그러니 2개가 남아 있어야겠지만.
-진행 중인 퀘스트 : 《야쉬라의 유산》, 《룬의 비밀》, 《도미니크의 불행》, 《난파선에서 찾은 편지》, 《하이센의 유언》, 《오지 않을 구조선을 기다리며.》…….
여전히 정보창을 꽉 채우고 있는 퀘스트!
그 대부분이 바로 돌발 퀘스트 《이면세계에서 날아든 SOS!》를 진행할 때 난파선 속에서 찾은 항해일지로 받은 퀘스트들이었다.
그래서 아크는 생각했다.
‘생각해 보면 그동안 정말 정신이 없었지. 뭔가 다른 일 좀 하려고 하면 일이 터지고, 터지고, 터지고, 이게 얼마 만에 생긴 여유인지…… 아니, 아직 안심하기는 일러. 사라진 호크나 펜릴도 그렇고, 이얀도 너브 지역에 있으니 언제 또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그러니 기회가 있을 때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해 놓자!’
……라고!
그리하여 그레이스톤에서 나오자마자 GO! GO! GO!
은하계의 동서남북을 쉬지 않고 날아다니기 시작한 지 사흘! 항해일지로 받은 퀘스트 8개를 모두 완료할 수 있었다.
“뭐 보상은 그저 그런 수준이지만.”
사흘이라고는 해도 대부분은 항해에 걸린 시간이었다.
퀘스트 자체는 대부분 관련 NPC를 찾아 보고만 하면 끝나는 것이었다.
물론 전투를 해야 하는 퀘스트도 있었지만 상대는 고작 레벨 180~200대의 몬스터. 현재 아크의 레벨에 비하면 난이도가 꽤 낮은 퀘스트라 보상도 하나같이 그저 그런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8개나 모이니 무시할 수 없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그사이에 레벨이 2나 올랐고, 보상으로 받은 돈이 합계 70골드! 그리고 비록 등급은 낮지만 아이템도 2개나 얻었다.
그중 하나는 그냥 그런 수준의 검이라 바로 팔았지만 남은 하나는 아크도 쓸 수 있는 것이었다.
전사의 반지(마법)
아이템 타입 : 반지 착용 제한 : 레벨 150
도미니크가 약혼녀에게 선물했던 반지입니다.
그러나 도미니크가 불행한 사고를 당해 연락이 두절된 사이, 약혼녀는 이미 다른 남자의 연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에 약혼녀는 도미니크의 소식을 전해 준 당신에게 반지를 건네주었습니다. 이 반지는 전투력을 상승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종합 전투력 +5%》
바로 ‘전사의 반지’!
아이템 정보창을 보면 알겠지만 《도미니크의 불행》 퀘스트로 받은 보상이었다.
뭐 성능이 좋은 반지는 아니지만 아크는 아직 반지가 하나―반지는 2개까지 착용할 수 있다―밖에 없었다. 그리고 전투력 상승 옵션은 반지에 붙는 옵션 중에서는 최상위!
“이래서 간단한 퀘스트도 무시할 수 없다니까. 뭐가 나올지 모르니까 말이지. 그런데 나야 좋지만…….”
아크는 사흘 전에 직접 목격했다.
붉은학살자와 레피드가 여자 친구들에게 멱살이 잡히는 광경을. 그런데 약혼녀에게 전투력 상승 반지라니? 도미니크라는 녀석, 제정신이 아니었다고밖에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도미니트는 이미 고인이고, 살아서 ‘전사의 반지’로 부쩍 강해진 약혼녀에게 얻어맞는다 해도 아크가 알 바는 아니니 넘어가고!
아크가 확 줄어든 퀘스트 정보창을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이제 남은 퀘스트는 2개! 어쨌든 사흘 동안 뛰어다닌 보람이 있군.”
-그게 네가 뛰어다닌 거냐? 내가 날아다닌 거지?
그때 토트가 구시렁거렸다.
모처럼 좋은 기분에 찬물을 끼얹는 토트가 짜증 나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크가 혼자 여유롭게 퀘스트 격파 여행을 다닐 수 있는 것은 그 덕이다.
실버스타와 한 몸이 된 토트 덕에 자동 항해도 이전보다 안정적이었다. 또한 항해 중 발생하는 작은 문제는 굳이 아크가 뛰어다니지 않아도 처리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조디악 나이트로 전직하고 《음에너지의 조사》까지 완료하자 토트도 이전처럼 뭔가 하라고 난리를 치지도 않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내가 감지한 음에너지를 발산하던 호문클루스는 처치했지만 그게 카르마의 위협이 사라졌다는 의미는 아니야. 그리고 대공이라는 놈이 죽었는지도 확실하지 않지 않나? 긴장을 늦추지 마라. 적은 의외로 가까이 있을지도 몰라.
뭐 종종 뜬금없이 이런 잔소리를 해 대기는 하지만.
“그러니까 이렇게 쉬지 않고 돌아다니고 있는 거잖아요. 가만히 앉아 있으면 누가 정보를 가져다줍니까? 움직여야 뭐라도 듣지. 그리고 엘림의 후예의 사명은 은하계를 지키는 거라면서요? 그건 사람들을 도우라는 말이잖아요.”
-어? 그렇게 되나?
“네, 그렇게 되죠. 그러니 일일이 불평 좀 하지 마요.”
-쳇, 누가 뭐라냐? 그냥 그렇다는 거지. 그래서, 이제 뭘 할 건데? 난 웬만하면 이제 좀 쉬고 싶은데…….
“아직 할 일이 남았어요.”
아크가 토트의 기대를 짓밟으며 대답했다.
그렇다. 아크는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아니, 사실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아크가 난파선에서 받은 퀘스트를 먼저 시작한 것은, 그저 그게 더 빨리 끝날 것 같아서였다.
사실 속마음은 그보다 남은 2개를 더 먼저 하고 싶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게 지금까지 처리한 퀘스트보다 몇 배는 좋은 보상을 받을 수 있으니까.
‘그중 먼저 받은 퀘스트는…….’
바로 《야쉬라의 유산》! 아크가 사용하는 두 자루의 블레이드와 세트로 되어 있는 장비품을 찾은 퀘스트다.
그리고 퀘스트를 준 후안 백작에게 관련 자료를 받았지만 아직 위치를 특정 지을 만한 정보가 부족했다.
아니, 설사 충분한 정보가 모였어도 《야쉬라의 유산》은 미뤄 두었을 것이다.
그보다 더 빨리 진행하고 싶은 퀘스트가 있으니까!
바로 하나 더 남아 있는 《룬의 비밀》! 그러나 그게 《야쉬라의 유산》보다 더 좋은 보상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는 아니었다. 이 퀘스트를 준 NPC 때문이었다.
‘쿠휀!’
바로 오래전 무라티우스타에서 만난 NPC 쿠휀!
물론 쿠휀은 가늠하기도 힘든 과거의 NPC였다. 그리고 《룬의 비밀》은 그때 받은 퀘스트도 아니었다. 그 퀘스트는 사실 아크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크가 퀘스트를 받은 것은 조디악 나이트로 전직할 때!
파파파팡!
그때 ‘쿠휀의 보갑’에 새겨져 있던 문장이 산산이 부서졌었다. 그리고 신기였던 ‘쿠휀의 보갑’이 평범한 레어 등급의 장비품으로 전환되는 것과 동시에, 흩어진 조각이 하나로 모여 피라미드가 변했다.
무라트의 황제, 호루스를 상징하는 문장이 새겨져 있던 그 피라미드 속에는 장문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나의 벗 아크여.
그대가 이 편지를 보고 있다면 정식 엘림이 되어 있을 것이다. 본래 보갑에 새겨 넣은 문장은 오신기가 모두 모여야 봉인이 풀리게 되어 있으니까.
그러니 먼저 그대가 정식 엘림이 된 것을 축하한다.
그러나 내가 일부러 이런 봉인까지 해 놓은 이유는 그저 축하의 메시지를 전해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가 말년이 되어서야 깨달은 진실을 전해 주기 위해서다.
사실 말년의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자네를 그리워하며 지냈다. 그리고 시공간의 룬을 이용해 몇 번이나 먼 미래로 떠난 자네를 찾아봤지만 아쉽게도 보지는 못했지.
대신 다른 것을 보았다.
이미 무라트를 비롯한 4대 천족이 멸망하고 그 뒤에 은하계가 어둠에 휩싸이는 장면이었다.
나를 걱정스럽게 하는 것은, 그게 자네가 살아가는 시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내가 보갑에 문장을 새겨 놓은 이유는 그 때문이다.
그건 그대가 살아가는, 아니 그대가 겪을 미래. 나는 그대가 그 미래에서 살아남기를 바란다. 그러나 나는 이미 은하계를 덮칠 그 어둠이, 설사 그대가 오신기를 모아 정식 엘림이 되어도 저항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에 나는 무라트의 전통을 깨서라도 그대에게 전해 주고자 마음먹었다.
아니, 멸망이 정해져 있는 무라트의 전통 따위는 이미 아무런 의미가 없겠지. 그러나 그대가 살아가는 은하계에도 남아 있을 것이다.
룬의 성전聖殿.
내가 그대에게 전해 주고자 하는 것이 그것이다.
오직 호루스만이 들어갈 수 있는, 무라트의 상징과도 같은 룬의 비밀이 숨겨져 있는 룬의 성전. 만약 그대가 성전의 비밀을 모두 풀어낼 수 있다면, 그대는 룬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역대 호루스가 그랬듯이 룬을 지배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어둠과 맞서야 하는 숙명을 가진 그대에게 줄 수 있는 나의 마지막 선물이다.
아크여, 부디 이겨 내기를 바란다.
-쿠휀으로부터 《룬의 비밀》 퀘스트를 받았습니다!
《해당 퀘스트는 오직 1명만이 진행할 수 있는 퀘스트입니다.》
이게 《룬의 비밀》 퀘스트를 받게 된 과정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아크는 당장 퀘스트를 하러 가고 싶었지만, 그때 이미 너브 전쟁이 시작된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제야 자유의 몸이 된 것이다.
-맙소사!
그때 토트가 어이없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보갑에 숨겨진 힘은 유일한 엘림만이 찾을 수 있다고 했는데…… 설마 그 유일한 엘림이라는 게 너 같은 놈일 줄이야…….
“뭐예요? 그 너 같은 놈은?”
-아니, 뭐 너니까…….
아크가 홱 고개를 돌리자 토트가 우물거리며 말을 돌렸다.
-그나저나 확실히 내 예상대로 아직 안심할 때는 아닌 모양이군. 쿠휀 대제는 역대 호루스 중에서도 시공간의 룬을 가장 잘 다루던 호루스였다. 당시 무라트가 가장 번성할 수 있었던 것도 그 힘 덕분이었지. 그런 분의 예지라면 100% 일어날 일이라고 봐야 해.
그건 아크도 알고 있다.
진화의 신전에서 만난 예지자들도 쉬지 않고 떠들어 대던 것이니까. NPC, 그것도 꽤 있어 보이는 NPC들이 그렇게 떠들어 대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리가 없는 것이다.
분명! 지금도 어디선가 그와 관련된 일이 벌어지고 있으리라.
-하지만 보갑에 숨겨져 있다는 엄청난 힘이 설마 룬의 성전에 관련된 것인지는 상상도 못 했다. 성전의 위치는 나조차 모르고 있었던 것이니까. 어쨌든 그런 일이라면 확실히 미룰 일은 아니군. 아니, 그런 게 있으면 진즉 갔어야지!
“젠장, 나라고 미루고 싶어서 미뤄 왔는지 알아요? 그 전에 잡다한 일을 다 정리해야 집중해서 할 수 있을 거 아니에요!”
-응? 아, 뭐 그렇기는 하지. 그래서, 이제 더 이상 없는 거지? 아직 남은 거 있으면 얼른 해치워! 괜히 도중에 T-20이나 이큘러스 같은 곳에 일이 생겼다고 하다 말고 돌아오지 말고!
“뭐 그쪽은 할 일이 많지만…….”
이어지는 토트의 말에 아크가 문득 생각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크는 너브 전쟁이 끝난 뒤에도 아직 두 달 가까이 비워 둔 T-20과 이큘러스에 들르지 못했다.
붉은학살자가 각성 퀘스트에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물론 멜린이나 하마드란 관리자를 남겨 두었지만 역시 직접 확인하지 못하니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지금은 레피드까지 카야와 놀러(?) 다니는 중이다. 때문에 한층 걱정이 앞서지만 이제 그쪽은 신경 끄기로 했다.
이리나가 말했기 때문이다.
-이제 내게 맡겨요!
……라고!
얼마 전에 아크가 이리나에게 괜찮냐고 물어봤던 것이 바로 그거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너브 전쟁이 끝난 직후, 이리나는 연방군에 사표를 던지고 다크에덴에 가입해 버린 것이다.
아크가 바깥일을 하는 사이에 자신이 T-20과 이큘러스, 모함, 그러니까…… 살림을 챙기겠다며 말이다.
그리고 말했다.
-아크 님도 그쪽 일은 당분간 신경 쓰지 말아 줘요.
……라고!
뭐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짐작이 되지만.
‘잘하고 있나 모르겠군.’
역시 남친으로서 좀 걱정이 되기는 했다.
그러나 사실 따지고 보면 이리나만큼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믿어 줘야 한다. 아크는 그녀의 하나뿐인―둘이면 큰일 난다!―남친이니까.
“좋아! 워프 돌입!”
-그래, 간다! 꽉 잡아라! 발진!
그리하여 아크는 토트와 함께 빛이 되어 은하계 저편으로!
다음 목적지는 룬의 성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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