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828)
아크 더 레전드-828화(828/875)
[828] SPACE 1. 룬의 성전 (3)그리고 그 3시간 동안.
‘대체 뭐지?’
아크의 머릿속에는 계속 이런 의문이 맴돌고 있었다.
처음에는 인영이 그저 자신을 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뭐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런데 단순히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함정이 그런 경우였다.
‘대체 놈이 어떻게 이 거대한 미로 속에 있는 함정의 위치를 모두 알고 있는 거지? 게다가 지금까지 놈은 내가 도착하기 전에 함정을 작동시키고 도망칠 기회가 몇 번이나 있었어. 하지만 항상 기관 근처에서 얼쩡거리다가 내가 도착하고 난 뒤에야 도망쳤다.’
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왜 놈이 지나갈 때는 함정이 작동하지 않는 거지?’
바로 이거였다.
놈이 함정을 작동시켰다면 당연히 놈이 지나갈 때도 함정이 발동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적은 없었다.
‘정말 놈이 함정을 작동시키고 있기는 한 건가?’
때문에 이런 합리적인 의심이 생겼지만, 실제로 발동되었던 첫 함정도 인영이 지나갈 때는 작동하지 않다가 아크가 발을 들여놓은 뒤에야 작동했다.
‘이유는 모르지만 놈은 함정을 발동되지 않는 존재라는 말인데…… 대체 놈의 정체가 뭐야? 행동만 보면 놈은 마치…….’
함정을 해제하는 기관의 위치를 알려 주고 있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물론 장비품을 훔쳐 도망가는 놈이 그럴 리는 없지만, 달리 납득이 갈 만한 이유를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간이 지날수록 의문만 더 쌓여 가는 가운데.
“헉헉헉, 어? 여, 여기는?”
거친 숨을 몰아쉬던 아크가 움찔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금까지는 좁고 몇 미터 간격으로 꺾이는 통로가 계속되고 있었는데 모퉁이를 돌아서자 처음으로 광장이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사각 뿔 형태로 수십 미터 높이까지 치솟아 있는 천장이 있는 광장. 아무래도 피라미드 형태로 되어 있는 성전의 최상층인 모양이다.
그리고 문제의 도둑놈은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장물―쿠휀의 보갑―을 품에 안고 광장의 중심에 자리 잡은 석탑 옆에 서 있었다.
“……너!”
아크가 놈을 향해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후후후, 후후후후.”
그러나 인영은 여전히 웃음소리를 흘리며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다음 순간, 갑자기 인영이 훅 사라졌다. 그리고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나타났다.
아니, 나타났다 싶은 순간 다시 사라지고, 또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빠른 속도로 짧은 거리를 순간 이동하는 블링크!
“뭐야, 이 자식? 그런 기술도 쓸 수 있는 거야? 아니, 기술은 그렇다 쳐도 무슨 블링크를 대기 시간도 없이 연달아 사용해? 아니, 가만? 그럼 혹시 그동안 놈이 함정을 그냥 통과할 수 있었던 것도…….”
당황하던 아크가 와락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제 뭐든 상관없어! 그래, 어디 잡아 보라는 거냐? 좋아, 놀아 주지. 하지만 이번에도 당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면 착각이다. 이런 장소를 선택한 게 네 처음이자 마지막 실수가 될 거다. 룬 문자 쿠엠라돈!”
아크의 손이 푸른 빛에 물들었다.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공간에 새겨지는 문양에서 한 줄기 섬광이 솟구쳤다.
천공의 눈을 만드는 룬 문자 ‘쿠엠라돈’!
전후좌우에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인영의 순간 이동 속도는 눈으로 좇기도 힘들 정도로 빨랐지만, 위에서 내려다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어디로 이동하든 단번에 광장 밖으로 사라지지 않는 한 천공의 눈을 피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여기서 승부를 내야 한다! 놈이 다시 통로로 도망치면 일부러 잡혀 주기 전에는 잡을 수 없어. 그러니 단 한 번! 한 번에 놈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 이런 광장이라면!’
아크가 블레이드를 치켜 올리며 소리쳤다.
“슬레이어! 유성!”
워리어의 유일한 광역 스킬 ‘유성’!
순간 블레이드에서 뿜어져 올라간 빛이 천장에서 무수한 광점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폭발적으로 거대한 바위처럼 확대되며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지역에서 순간 이동을 반복하던 인영이 움찔하며 몸을 돌리며 사라졌다.
‘하지만…….’
“여기다! 마이트! 격돌!”
아크는 망설임 없이 몸을 돌리며 돌진했다.
마음만 먹으면 폭격 범위를 넓혀 광장 전체를 타깃으로 삼을 수도 있었지만 그런 경우 유성의 간격도 넓어져 적중될 확률이 낮아진다. 때문에 아크는 범위를 좁혔다.
그러나 그게 ‘유성’으로 인영을 맞히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아니, 그냥 맞아 죽어 주면 좋겠지만 그보다는 놈이 이동하는 장소를 예측하기 위해서였다. 대부분의 지역을 타깃으로 삼고 일부 지역만 남겨 두면 그곳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나왔다!’
아크가 돌진하는 방향에서 나타나는 인영!
일단 의도대로 놈을 유인하는 데는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타이밍이었다. ‘격돌’은 힘을 기반으로 하는 마이트의 스킬.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은 것이다. 이에 바로 앞까지 돌진해 오는 아크를 발견한 인영은 곧바로 사라졌다.
“후! 후!”
그리고 3~4미터 떨어진 곳에서 다시 나타나며 안도의 한숨을 불었지만 인영은 모르고 있는 것이 있었다.
아크는 이번에도 인영이 어디서 나타날지 예상하고 있었다. 당연하다. 유성이 떨어지는 지역, 그리고 아크가 돌격하는 지역, 이 두 장소를 제외하면 남는 공간은 불과 5~6미터밖에 되지 않으니까.
때문에 타이밍이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순간 아크는 바로 ‘격돌’을 취소했다. 그리고 인영이 나타났을 때는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룬 문자 화이람!”
바로 거인의 발을 소환하는 룬 문자 ‘화이람’!
인영은 블링크를 사용한 직후다. 더구나 ‘화이람’은 룬 문자를 사용하는 위치―아크―와 발동되는 위치―인영의 머리 위―가 다른 스킬. 아크의 고함에 움찔하며 고개를 돌린 인영은 뒤늦게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거인의 발을 발견했지만.
콰쾅-!
바닥을 울리며 떨어지는 거인의 발!
이번에는 적중이다. 그 밉살스러운 놈이 그대로 뭉개지는 장면을 똑똑히 목격한 것이다. 이에 아크는 지체 없이 ‘쾌속’을 발동시키며 뛰어갔다. 도망치기 전에 거인의 발에 밟혀 해롱대는 놈을 박살 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런 의욕도 잠시.
“어? 뭐야?”
아크는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거인의 발이 사라진 장소에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움푹 들어간 바닥에 남아 있는 푸른빛의 아머.
‘쿠휀의 보갑’이었다.
“그 자식…… 한번 찍히고 죽어 버린 거야? 아니, 하지만 어째 죽은 것치고는…….”
전리품은 그렇다 쳐도 경험치조차 들어오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시체도 보이지 않는다.
“대체 뭐였던 거야, 그 자식?”
일단 ‘쿠휀의 보갑’은 되찾았으니 목적은 달성한 셈이지만 어째 찜찜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놈은 이미 사라졌다. 아크가 찜찜하든 상쾌하든 당장 눈에 보이지 않으니 뭔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러니 일단 놈의 생각은 접어 두고!
“이건 뭐랄까…….”
아크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광장을 훑어보았다.
뭐 그 정체불명의 인영 탓에 뒤죽박죽이 돼 버린 느낌이 있지만 아크가 룬의 성전을 찾아온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룬의 비밀》 퀘스트를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퀘스트가 그렇듯이 아마도 《룬의 비밀》 역시 일단 이곳에서 뭔가를 찾아야 하리라.
예를 들면 바로 이 광장, 그리고 그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석탑 같은 것을 말이다. 그렇다. 아크는 이미 그런 ‘뭔가’가 있는 장소에 도착해 있는 것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째 마지막까지 놀림을 받고 있는 기분이군.”
없어졌는데도 찜찜한 놈이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눈앞에 뻔히 보이는 석탑을 무시하고 다른 곳을 헤맬 수도 없는 일. 아크는 천천히 주위를 살피며 석탑으로 다가갔다.
멀리서 볼 때는 그저 검은 돌처럼 보였지만 가까이 가 보니 크리스털처럼 속이 비쳐 보였다. 그리고 그 속에서는 옅은 푸른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뭐지, 이 석탑 속의 빛은?”
이에 아크가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바짝 다가가 한 손을 석탑에 붙였을 때였다.
일렁이던 빛이 갑자기 잘게 부서졌다.
그리고 깨알 같은 글자로 변형되며 스크롤처럼 매끈한 석탑의 표면을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의 후예이자 후대의 호루스여.
이곳은 룬의 성전, 수많은 무라트 중에서도 선택받은 자만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이다.
그대가 이 석판을 보고 있다는 것은 이미 무라트의 미래를 책임져야 하는 자리에 있는 자라는 뜻이리라. 그러나 그게 그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자격이란 선대로부터 받는 것이 아닌, 스스로 증명하여야 하는 것.
이 성전은 그대의 자격을 시험할 것이고, 그 시험을 통과해야 비로소 무라트를 이끄는 진정한 지도자로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량이란 개개인이 모두 다른 법. 그대에게 이제부터 받을 시련의 수준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
단, 명심하라.
기회는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물론 보다 높은 수준의 시련을 통과하면 보다 강한 힘을 얻을 수 있겠지만, 과욕은 실패를 부르는 법이다.
하물며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과욕이야말로 가장 경계해야 할 일. 자신의 역량을 냉정하게 판단해 시련의 수준을 선택하라. 그것이 무라트의 차기 지도자가 될 그대에게 주어지는 첫 번째 시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대가 선택할 수 있는 시련은 세 가지, [수행의 길], [고난의 길], [고행의 길]이다.
[수행의 길]을 선택하면 큰 어려움 없이 시험을 통과하겠지만 쉽게 얻은 힘은 깊이도 낮을 수밖에 없는 법, 룬의 진리에 도달하기는 힘들 것이다. [고난의 길]은 수행보다 힘든 시련이 그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겨 낸다면 그대는 룬의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고행의 길]을 선택한다면 그대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극한의 경험은 그대의 몸과 마음을 한층 성장시켜 줄 것이다, 룬을 지배할 수 있을 정도로.“이거구나!”
순간 아크의 눈이 반짝였다.
이건 뭐, 말할 필요도 없다. 이 석탑이 바로 《룬의 비밀》의 목적지, 아니 정확히 말하면 본격적으로 퀘스트를 시작할 수 있는 장소인 것이다.
‘그 도둑놈을 쫓아온 길을 생각하면…….’
룬의 성전 내부는 상상 이상으로 거대하고 상상 이상으로 복잡했다. 혼자 그런 미궁 같은 통로를 더듬으며 돌아다녔다면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얼마나 걸렸을지 짐작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아니, 도처에 ‘하자스카’로도 찾기 힘든 함정이 설치되어 있었으니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인영을 추격하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그것도 불과 3시간 만에 목적지까지 도착한 것이다.
‘이쯤 되면 되레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할 정도로군. 하지만 뭐, 이미 밟아 죽였으니 그냥 패스하고. 그보다…….’
아크가 심란한 표정으로 다시 석탑을 바라보았다.
글의 내용을 보자니 아무래도 《룬의 비밀》은 석탑을 통해 어떤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그게 일방통행이 아니다.
“난이도를 선택하라고?”
세 가지 난이도 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진행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크는 고민하지 않았다.
“뭐 이런 경우라면 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지.”
석탑에 떠오른 글에 의하면 시험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다.
그러니 쉬운 길을 선택하는 편이 안전하지만 당연히! 지나치게 친절한 석탑의 글에 적혀 있지 않아도 난이도가 낮은 과제는 성공해도 보상이 적다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이다.
그리고 아크는…….
“그런 보상으로 만족할 리가 없잖아!”
실패해도 후회하겠지만 하급 난이도를 선택하면 설사 쉽게 통과해 보상을 받아도 후회하리라. 그건 중급 난이도도 마찬가지. 아크는 그런 선택을 할 바에는 차라리 땅을 치고 후회하거나, 펄쩍펄쩍 뛰어오르며 좋아할 기회가 있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인간인 것이다.
“도 아니면 모! 최고 난이도다! 고행의 길!”
이에 아크가 망설임 없이 힘차게 소리쳤을 때였다.
동시에 석탑이 웅웅 진동하며 내부의 빛이 다시 합쳐지더니 거대한 문자로 바뀌었다.
그 순간 아크는!
-성전의 시험은 무라트의 호루스만이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다!
“……에?”
얼빠진 표정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펄펄 뛰며 소리쳤다.
“이, 이게 무슨 말이야? 호루스만 시험을 받을 수 있다니? 아니, 그런 내용은 퀘스트를 받을 때도 설핏 본 기억이 나지만 퀘스트잖아!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와서 시험을 못 받는다고 하면 어쩌라고? 그냥 가? 돌아가라고? 장난하냐! 그럴 거면 첨부터 퀘스트를 주질 말든가! 아니, 이건 버그야! 버그가 분명해!”
“후후후, 후후후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