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829)
아크 더 레전드-829화(829/875)
[829] SPACE 1. 룬의 성전 (4)“뭐야? 남은 열 받아 죽겠는데 어떤 놈이…… 헉!”
귓가로 스며드는 웃음소리가 울컥하며 고개를 돌리던 아크가 헛바람을 들이켰다.
성전의 입구에서 ‘쿠휀의 보갑’을 날치기했던 작은 인영, 그리고 방금 전에 아크가 밟아 죽인(?) 바로 그 인영, 그가 석탑 옆에서 웃고 있는 괴기스러운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아! 갑옷! 내 갑옷!”
황망한 눈으로 바라보던 아크가 화들짝 놀라며 몸을 더듬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입구에서처럼 아머가 갑자기 사라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믿을 수 없는 놈이라 다른 장비품을 둘러봤지만 다행히 모두 제대로 붙어 있었다.
“젠장, 놀랐네. 어이, 대체 네놈은…….”
일단 안심은 했지만 아크는 여전히 경계 어린 눈빛으로 인영을 바라보았다.
그때, 갑자기 인영의 형상이 변하기 시작했다.
아니, 지금까지는 바로 앞에서 봐도 흐릿하게 보이던 형상이 또렷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이구나.”
그리고 인영, 아니 그가 웃으며 말했다.
“너…… 아니, 당신은…… 말도 안 돼……. 어떻게 당신이 여기에…….”
“귀신이라도 본 표정이구나.”
귀신 맞다. 방금 전에 아크가 밟아 죽였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아크의 앞에서 웃고 있는 ‘그’는 그보다 아득한 과거에 죽은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인영은 몰라도 ‘그’의 시체는 아크가 직접 두 눈으로 목격했다, 무라티우스타에서.
그렇다, ‘그’는 바로.
“쿠, 쿠휀…….”
무라티우스타에서 짧은 만남을 가졌던, 그럼에도 아크의 기억 속에서 잊히지 않고 있는 과거의 호루스 쿠휀이었다.
이에 아크가 멍한 눈으로 바라보자 쿠휀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아직 내 이름을 잊지는 않았군. 뭐랄까, 좀 고맙군. 그리고 이런 과거의 모습으로 다시 네 앞에 서게 되니 좀 쑥스럽기도 하고 말이지.”
“과거의 모습?”
“음, 네 눈에는 그때 그 모습으로 보이겠지만 지금의 나는 임종 직전의 늙은이다.”
“임종 직전이라면…….”
“귀신은 아니니까 안심해도 된다는 말이지. 물론 그렇다고 실체도 아니다. 내가 죽을 때가 되어서야 얻은 시공간의 룬을 이용해 과거의 내 모습을 투영시키고 있는 것이지.”
“아니, 하지만 보갑에 숨겨져 있던 편지에는 시공간의 룬으로도 나를 찾지 못했다고…….”
“아, 그거 말이지.”
아크의 말에 쿠휀이 무안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무턱대고 시공간을 뒤졌으니 못 찾는 게 당연하지.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의외로 쉬운 방법이 있더라고. 네가 그 편지를 발견하면 이곳으로 올 테니 장소를 먼 미래의 룬의 성전으로 특정해 놓으면 찾을 수 있지 않겠나? 그런데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보갑에 편지를 봉인한 뒤였어. 그래서 뭐, 이렇게 된 거지.”
“…….”
아크는 할 말을 잃었다.
어느 부분에서 놀라고, 어느 부분에서 어이없어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갑옷을 훔쳐 도망친 이유가…….”
“글쎄?”
아크의 질문에 쿠휀이 슬쩍 시선을 피하며 얼버무렸다.
그러나 아크도 굳이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쿠휀의 등장으로 이미 추격전을 벌이며 쌓여 가던 의혹은 모두 풀렸으니까. 모든 것은 아크를 이곳까지 인도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아니, 그래도 처음부터 정체를 밝히지 않은 이유는 좀 납득하기 어렵지만.
“아니, 가만!”
지금은 그보다 더 궁금한 것이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방금 전에 이 석탑에서 난이도를 선택했는데 시험은 호루스밖에 받지 못한다고 나오더라고요!”
“그래, 그래서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네?”
“그것도 보갑에 편지를 봉인한 뒤에야 깨달았지. 내가 룬의 성전에 왔던 것은 호루스가 된 직후였으니 지금의 내게는 꽤 오래전의 일이라 잊고 있었거든.”
토트의 말로는 무라트 역사에서도 손꼽히는 호루스라더니 의외로 덜렁대는 구석이 있었던 모양이다. 하긴 아크가 봤을 때도 철두철미한 성격으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럼 나는 대체 왜 여기에…….”
“말했지 않나? 그래서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이라고.”
“그게 무슨……?”
“이런 말이지.”
그때 쿠휀이 석탑으로 다가가 손을 뻗었다.
그러자 내부의 글자에 노이즈가 번지며 석탑 앞에 푸른 빛의 포탈이 생성되었다.
“이, 이건?”
“시공간의 룬의 힘으로 석탑의 인증 시스템을 교란시켜 시험의 문을 연 것이다.”
“에?”
“그런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을 시간이 없다. 말했듯이 이건 시스템을 교란시켜 만든 문이다. 본체도 아닌 내 힘으로는 그리 오래 문을 유지할 수 없다. 그러니 필요한 말만 하겠다. 아크,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문을 열고 들어간 사람은 없으니 네가 그 속에서 무슨 일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겨 내기 바란다. 내 바람이자 은하계의 미래를 위해서. 자, 시간이 없다.”
“아, 아니, 잠깐!”
쿠휀의 독촉에 반사적으로 걸음을 옮기던 아크가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젠장! 얼마 유지도 못 할 문이라면서 왜 이렇게 느닷없이 열어 버린 거예요?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은 줘야 할 거 아니에요! 그리고…… 얼마 만에…….”
“오랜만이라고 말했지.”
아크의 말에 쿠휀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와 나의 시간은 다르다. 나는…… 그 말처럼 정말, 정말 많은 시간을 지내고 나서야 너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말했듯이 너와 나의 시간은 다르다. 그리고 내게는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남은 시간이 없다니…….”
“말했지 않나? 지금의 나는 임종 직전의 늙은이라고.”
“임종…… 서, 설마?”
아크가 흠칫 놀라며 쿠휀을 돌아보았다.
“그런 거다.”
쿠휀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내게 남은 것은 불과 한 줌도 되지 않는 시간. 하지만 나는 그 한 줌의 시간이 수십 년의 시간보다 고맙다. 너를 만나 하고 싶었던 것을 할 수 있었으니까.”
“하, 하고 싶었던 것?”
“그래, 내가 너를 보내고 가장 후회해 왔던 것은…….”
쿠휀이 어린 시절에 보여 주었던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너와 놀았던 기억이 없다는 것이었다.”
“쿠, 쿠휀?”
“즐거웠다, 아크.”
“쿠휀!”
아크의 목소리가 고함으로 변했다.
쿠휀의 모습이 모래처럼 흩어져 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석탑의 포탈도 점점 빛을 잃어 가고 있었다.
“이제 이별이다. 아크, 부디…….”
점점 작아지는 쿠휀의 목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아크는 들었다, 귀가 아닌 심장으로.
“그래, 해내겠어! 무슨 시험이든, 해내겠다!”
아크는 세차게 몸을 돌리며 옅어지는 포탈을 향해 뛰어들었다. 포탈 속으로 들어오자 무수한 푸른빛의 입자로 채워진 공간이 나타났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뒤에서 포탈이 닫히는 순간!
“어? 뭐, 뭐야?”
퍼펑! 콰아아아아-!
포탈이 사라진 방향에서 갑자기 정체불명의 기류가 뿜어지며 아크를 휘감고 끝없는 어둠 속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성전의 시험 : 난이도 ???]가 개방되었습니다.
눈앞으로 이런 메시지가 휙 스쳐 지나갔지만.
“우아아아아!”
아크는 보지 못했다.
SPACE 2. 이건 아니잖아! (1)
“크…….”
아크가 신음과 함께 눈을 떴다.
아니, 사실 지금까지 눈을 감고 있었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포탈이 사라지며 휘몰아치기 시작한 정체불명의 기류는 아크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내팽개쳤다. 게다가 쉬지 않고 상하좌우로 흔들어 대 감각마저 모호하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확실하게 살아 있는 감각이 있었다.
아프다! 겁나 아프다!
좀 전까지 뒈지게 얻어맞은 사람처럼 삭신이 쑤셨다.
문제는 정작 신음을 흘리는 아크도 왜 온몸이 쑤시는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끙끙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일단 상황을 파악하는 게 먼저다. 지금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내가 있는 이곳이 정말 룬의 성전의 시험을 받는 장소냐는 거야.’
일단 눈에 보이는 주위의 풍경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석탑이 있던 광장은 넓고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지금 아크가 있는 곳은 좁고, 어둡고, 음습한 분위기의 석실이었다. 잠깐 사이에 전혀 다른 장소로 이동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크는 확신할 수 없었다.
‘내가 뛰어들 때의 포탈은 거의 사라지고 있었다.’
이 부분 때문이다.
물론 확실히, 아크는 포탈이 사라지기 전에 들어오기는 했다. 그러나 그 직후 포탈이 닫히며 정체불명의 기류가 아크를 어둠 속으로 내팽개쳤다.
그게 시험에 들어오는 사람이 모두 겪는 일이라는 확신이 없는 것이다. 말하자면, 강제로 연 포탈이 닫히며 뭔가 오류가 발생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리고…….’
만약 제대로 시험에 참가한 것이라면 목표가 있을 터.
그리고 보통 그런 경우라면 퀘스트가 갱신되든, 별도의 정보창이 생성되든, 진행 방향이나 최소한 힌트 정도는 주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정보창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여기까지 생각하던 아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직 아무것도 속단할 수 없어. 그리고 제대로 시험의 장소로 들어왔는지 아닌지는 여기가 어디인지부터 제대로 확인하고 나서 고민해도 늦지 않아. 아직 여기가 안전한 장소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뭐가 됐든 이대로 누워서―아프니까!― 머리만 굴린다고 해답이 나올 리가 없다. 이에 몸을 일으키려 할 때였다.
짜악-!
뒤에서 들리는 날카로운 소리!
낑낑대며 몸을 일으키던 아크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옅은 빛이 흘러나오는, 그래서 더 음침하게 느껴지는 석실의 맞은편에 모여 있는 서너 명의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뭐, 뭐야, 저건?’
아크는 흠칫 놀라며 당혹성을 삼켰다.
이유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장면 때문이다. 아크가 바라보는 곳에 모여 있는 사내들은 등을 돌리고 있었는데, 그 앞에는 한 사내가 처참한 몰골로 쇠사슬에 결박되어 있었다.
짜악-! 짜악-!
그리고 이미 넝마가 된 몸 위로 떨어지는 채찍!
주위의 사내들은 결박된 남자를 채찍질하고 있는 것이다.
‘대체 뭐야?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내가 왜 이런 곳에 와 있는 거야? 저놈들은 뭐고? 아니, 지금은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저렇게 무자비하게 채찍을 휘둘러 대는 놈들이다.
그런 놈들이 아크에게 호의적일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물론 아직 상황을 1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니 무턱대고 공격할 수는 없지만 대비는 해 두어야 한다.
이에 아크의 손이 허리로 향했지만!
휘적, 휘적.
‘어? 뭐야? 왜…… 엑?’
시선을 돌린 아크의 얼굴이 당혹감에 물들었다.
없다! 허리에, 그것도 2개나 차고 있던 ‘야쉬라의 에너지 블레이드’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아니, 블레이드만이 아니라 오신기도!
힘들게 되찾은―뭐 장난이었지만― ‘쿠휀의 보갑’도! 심지어 기본 장착인 님프와 쫄쫄이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알몸은 아니었다.
폼 나는 레어 템 대신 아크의 몸에 걸쳐져 있는 거적때기 같은 천 조각이었다. 그리고 액세서리 대신인지 팔과 다리에는 수갑과 족쇄가 채워져 있었다.
‘대체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거야? 장비품은? 다 어디 간 거야?’
“장비품 정보창!”
아크가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러나 정보창은 떠오르지 않았다.
“캐릭터 정보창! 스킬 정보창!”
연이어 다른 정보창을 호출했지만 그 역시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레벨이나 장비품, 스킬이 제한되는 상황은 이전에도 겪어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아예 정보창조차 열리지 않는 상황은 처음이다. 아니, 들어 본 적도 없었다.
덕분에 아크는 완전히 패닉!
‘버, 버그? 아니면 캡슐이 고장 나기라도 한 거야?’
이해하기 힘든 황당한 상황에 아크가 허둥대고 있을 때였다. 그때까지 계속 채찍을 휘둘러 대던 사내가 거친 숨을 불어 내며 말했다.
“휴! 이 자식, 기절한 모양이군.”
“그게 아니라…….”
그러자 축 늘어진 남자를 살피던 사내가 고개를 저었다.
“죽었습니다.”
“뭐? 쳇, 나약한 놈 같으니. 하긴, 사바트가 다 그렇지. 뭐 아쉽지만 할 수 없지. 어이, 이 자식 치워. 그리고…….”
사내가 슬쩍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흠, 아까는 완전히 맛이 가서 곧 죽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용케 아직 살아 있군. 좋아, 저 자식을 데려와라.”
‘……헉!’
그 말에 아크가 헛바람을 들이켰다.
왜냐하면, 채찍을 든 사내가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바로 아크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놈이 데려오라는 ‘저 자식’은 아크라는 말이리라.
그리고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이리 와!”
2명의 사내가 우악스러운 손길로 아크를 잡아끌었다.
“자, 잠깐!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아니, 그보다 여기는 어디야? 네놈들은 누구야? 내가 왜 이런 곳에 있는 거냐고!”
철컥! 철컥!
그리고 발버둥치는 아크를 벽에 결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