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831)
아크 더 레전드-831화(831/875)
[831] SPACE 2. 이건 아니잖아! (3)철컹!
쇳소리가 울리며 철창이 열렸다.
“들어가!”
이어 2명의 사내가 우악스러운 손길로 피투성이의 사내를 철창 안으로 내팽개쳤다.
사내는 몸을 가눌 힘도 없는지 그대로 바닥에 처박히며 축 늘어졌다. 그럼에도 바로 고개를 들어 올리고 사내들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네놈들…….”
“하! 저 자식, 저 꼴이 되고도 아직 눈깔에 줄 힘은 남아 있는 모양이지? 좋아, 그게 얼마나 갈지 두고 보지.”
“그런 데 쓸 힘이 있으면 차라리 머리에 쓰는 편이 좋을 거다. 뭐가 좋은 선택인지. 무슨 생각으로 버티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죽으면 다 소용없다고.”
“네놈들은 귓구멍이 막혔냐? 몇 번이나 말했냐? 나도 버티기 싫다고! 하지만 뭘 알아야 불든 말든 할 거 아니야!”
울컥한 표정으로 소리치는 사내는 다름 아닌 아크였다.
그리고 그 말대로, 아크는 여전히 저놈들이 무슨 대답을 하라는 건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맞았다. ‘부모님에게도 맞은 적이 없었는데…….’라고 말할 인생을 살지는 않았지만, 정말이지 태어나서 이렇게까지 맞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맞았다.
맞는다고 모르는 것을 갑자기 알게 될 리가 없으니까.
그러나 이놈들은 말이 통하지 않았다.
“뭐, 잘 생각해 보라고.”
역시나 이번에도 아크의 말 따위는 무시하고 제들끼리 키득대며 사라졌다.
‘빌어먹을!’
덕분에 아크는 돌아 버릴 지경이었다.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일단 지금의 상황이 1도 이해되지 않는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이게 석탑에 적혀 있던 시련이라는 건가? 그런데 왜 아무런 설명이 없는 거지? 정보창은 왜 나오지 않고? 게다가 뭐야, 이 무지막지한 통증은? 패인 수치는 20%로 맞춰 놨는데 왜 이렇게 아픈 거야? 정말 시스템이나 캡슐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아크가 한숨을 푹푹 불어 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슥, 슥, 슥.
문득 뒤에서 기음이 들려왔다.
찔하며 고개를 돌리던 아크가 헛바람을 들이켰다.
어둠 속에서 번들거리는 시커먼 눈동자! 감옥 안쪽에서 10여 쌍이나 되는 눈동자가 아크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 눈동자들이 갑자기 아크를 향해 달려들었다.
‘젠장, 이건 또 뭐야?’
이에 아크가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올리는 순간!
누군가 그 팔을 덥석 잡으며 소리쳤다.
“오오! 동지여!”
“……에?”
이건 또 무슨 상황인가?
아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팔을 잡은 사내, 아니 주위로 모여든 사내들을 바라보았다.
아크처럼 거적때기를 걸친 사내들의 팔과 다리에도 수갑과 족쇄가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거적때기 사이로 드러난 피부에 여기저기에 새겨져 있는 상처들.
아무래도 같은 처지의 사람들인 모양이다.
“무사히 돌아왔군. 같이 끌려 나간 동지는 죽었다고 들어서 불안했는데, 다행이네. 아니, 이런 모습을 보고 다행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
“잔인한 놈들!”
사내들이 아크의 몸을 훑으며 분개했다.
“당신들은…… 아니, 잠깐. 방금 뭐라고 했습니까? 무사히 돌아왔다고? 방금 그렇게 말했습니까?”
아크의 반응에 사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그래, 뭐 잘못됐나?”
당연히 잘못됐다. 아크는 이들을 모르니까.
그러나 이들은 마치 이전부터 아크를 알고 있다는 듯이 행동하고 있었다. 그러니 아크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그런 건가?’
문득 손으로 얼굴을 더듬던 아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아크 주위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얼굴의 반은 차지하고 있는 손바닥만 한 검은 눈동자에 뾰족한 귀, 청백색 피부를 가진 외계 종족이었다.
그리고 아크 역시!
지금까지는 그런 생각조차 못 해 봤지만―맞느라 생각할 시간도 없었다!― 손으로 더듬어 보니 아크의 얼굴에도 이따만 한 눈과 뾰족한 귀가 만져지는 것이다.
그러나 아크는 놀라지 않았다.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해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무라티우스타…….’
쿠휀과 인연을 맺은 과거의 무라티우스타.
블랙홀을 통해 들어갔던 그곳에서 만난 NPC들도 마치 아크를 오래전부터 아는 것처럼 행동했다.
아니, 실제로 아는 사람이었다. 당시 아크는 과거의 엘림이었던 ‘제드’라는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뭐 그때는 외모까지 변하지는 않았지만.
‘뭐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지.’
중요한 것은 지금, 아크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좀 전까지는 확신이 없었지만 이제 알겠어. 무라티우스타 때처럼 다른 사람이 되어 시험의 과제를 완수하는 것. 느닷없이 채찍질을 당한 건 어이가 없지만 확실해. 그게 룬의 성전의 시험이다.’
일단 여기까지는 이해했지만.
‘하지만 룬의 성전은 무라트의 성지잖아? 그럼 무라트와 관련된 과제가 있어야 정상인데 이들은 무라트가 아니잖아. 대체 이들은 누구지? 그리고 고문하던 놈들은 누구고?’
여전히 돌아가는 상황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아크는 알고 있었다, 그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능 아이템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거기까지 생각하는 순간!
“……윽!”
아크가 갑자기 머리를 움켜쥐며 비명을 터뜨렸다.
“어이! 어이! 갑자기 왜 그러나?”
“아니…… 그게…… 무사히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여러분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려고 하자 머리가…… 모르겠습니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요. 여러분이 누구인지……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건지…… 심지어 내가 누구인지도…….”
“뭐, 뭐라고?”
“맙소사! 기억을 잃다니? 그럼 기억상실증에 걸렸다는 말인가?”
그 만능 아이템이 바로 이거다.
기억상실증! 그리고 사실 이건 거짓말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실제로 아크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니까. 게다가 이번에는 납득할 만한 이유도 있었다.
“멀쩡한 사람이 기억상실증에 걸려서 돌아오다니? 대체 그사이에 얼마나 끔찍한 짓을 당했기에…… 나쁜 놈들!”
아크는 방금 전까지 고문을 당하고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아크의 리얼한 연기가 더해지자 사내들은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 눈치였다.
이로써 무대는 갖춰졌다. 이에 아크는 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당신들은 누구입니까? 왜 갇혀 있는 겁니까?”
지금 가장 궁금한 것은 그거였다.
그게 지금 아크가 빙의된 누군가의 정체와 느닷없이 채찍질을 당한 이유를 설명해 줄 테니까. 그러자 처음에 팔을 잡았던 사내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사바트이기 때문이겠지.”
“사바트?”
그러고 보니 고문하던 놈도 아크를 사바트라고 불렀던 기억이 있었다. 아크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묻자 사내가 한숨을 불었다.
“중증이군. 하긴, 자기 이름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라니 말 다 했지만. 어쨌든 사바트라는 단어마저 잊었다니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군.”
“그래도 설명을 해 줘야겠지.”
“그래, 이 친구도 자기가 왜 이런 일을 겪는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나? 혹시 얘기를 듣는 사이에 기억이 돌아올지도 모르고.”
“어차피 우리는 달리 할 일도 없고 말이지, 안타깝게도.”
“그렇긴 하지.”
주위의 말에 사내가 감옥을 둘러보며 한숨을 불었다.
그리고 다시 아크를 돌아보며 말했다.
“일단 자네 이름부터 말해 주지. 자네는 비비디네.”
“비비디…….”
“그래, 좀 기억이 나나?”
“아니, 하지만 내 이름인데도 왠지 낯설게 들리는군요. 그보다는 차라리 아크라고 불러 주시겠습니까? 왠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게 더 내 이름처럼 느껴집니다.”
아크가 짐짓 머리가 아프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름까지 바뀌어 버리면 더 혼란스럽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비비디라는 괴상한 이름으로 불리고 싶지도 않다.
“아크? 이상한 이름이군. 하지만 뭐, 자네가 원한다면 할 수 없지. 알겠네. 그래, 비비디, 아니, 아크, 자네는 같이 원래 우바디…… 음, 같이 끌려 나갔다가 죽은 사람이네. 그와 자네는 우리의 수행원이었지.”
“수행원이라면?”
“보디가드 같은 거지.”
“그럼 어디를 가고 있었다는 말입니까?”
“그건…….”
아크의 질문에 사내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우리는 변경의 작은 마을을 돌아다니며 물물교환을 하는 교역상이네. 때문에 우바디와 자네를 고용한 거지. 이런 도시와 달리 변경의 사막에는 우리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위험한 몬스터가 많으니까.”
아크는 그의 말에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숨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건 약간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사내를 돌아보는 다른 사내들이 반응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들은 아크만큼 거짓말에 능숙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캐물으면 뭘 숨기는지 알아낼 수도 있겠지만 그만두었다. 괜히 의심을 살 위험도 있고, 지금은 정보를 하나라도 더 많이 확보하는 것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이런 곳에 갇혀서 고문을 당하고 있는 겁니까?”
“그건 우리도 모르겠네. 이 도시에서 갑자기 체포되었으니까. 그래도 한 가지 이유를 대자면 아까 말한 것처럼 우리가 사바트이기 때문이겠지.”
그러니까 그 사바트가 뭐냐고!
“이곳, 오리진에는 두 종족이 살고 있네. 하나는 무자드, 오리진을 지배하는 종족이지. 자네를 고문했던 병사들도 모두 무자드네. 그리고 다른 하나가 사바트. 바로 우리네. 무자드에게 지배당하는 노예 계급의 종족.”
“노예 계급?”
“그래, 우리에게는 아무런 권리가 없네. 사실 사바트에게는 교역도 불법이지. 태어난 마을에서 나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으니까. 하지만 물물교환조차 못하면 변경의 사바트들은 살아갈 수가 없네. 때문에 무자드도 적당히 눈감아 주고 있었는데, 이 도시를 지날 때 병사들에게 갑자기 체포된 거야. 그리고 허가도 없이 돌아다니는 이유를 대라고 하더군. 물론 대답했네. 우리는 교역상이라고. 하지만…….”
그 뒤에 벌어진 일은 아크도 알고 있었다.
직접 경험해 봤으니까. 놈들과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그건 더 물을 것도 없고.’
이제 상황은 대강 파악이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다음!
이들은 아크를 동료로 생각하고 있지만 아크는 이들과 다르다. 이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이들과 달리 아크는 룬의 성전의 시험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아크가 알아내야 하는 것은.
‘내가 뭘 해야 하는가!’
그러나 사내에게 들은 내용만으로는 거기까지 알아낼 수 없었다. 그리고 더 캐물어도 딱히 그 문제의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이 시험의 목표가 적어도 여기서 고문받다가 그 우바디라는 사바트처럼 죽는 것은 아니겠지. 그렇다면 첫 번째 과제는 정해진 셈이군.’
탈옥!
밖으로 나가지 않고서는 더 이상의 정보도 얻기 힘들뿐더러, 채찍질도 싫으니까!
그리하여 아크는 감옥에 들어온 첫날 탈옥을 결심했지만 당연히!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리라.
게다가 지금 아크는 장비품과 스킬이 모두 사라진 상태. 아니, 장비품이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스킬은 잃은 건지 어떤 건지 정보창조차 확인할 수 없는 상태였다.
말 그대로 거적때기 하나 걸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그게 포기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내 예상대로 여기서 탈출하는 것이 이 시험의 첫 번째 과제라면 분명 방법은 있다. 그리고 다행히 지금 나는 혼자가 아니다. 10여 명이나 되는 동료가 있어. 이들과 힘을 합하면 분명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아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문득 사내가 철창 밖을 살피며 슬쩍 다가왔다.
“하지만 너무 낙담하지 말게.”
“네?”
“우리도 이런 곳에서 죽을 생각은 없어. 이미 죽어 버린 우바디에게는 미안하지만 우리는 기필코 살아 나가야 할 이유가 있네. 하지만 무자드가 한번 잡은 사바트를 풀어 줄 리는 없지. 놈들은 물을 쏟았다는 이유만으로도 사바트를 죽이는 놈들이니까. 그러니 우리가 여기서 살아 나갈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지.”
“그 말은…….”
“탈옥이네.”
그들도 아크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미 방법도 준비해 두었어.”
뿐만 아니라 아크의 고민까지 한 방에 날려 주었다.
‘그래, 이거지! 역시 죽으란 법은 없었어! 당연하지. 아무리 시험이라도 이런 식으로 무턱대고 채찍질을 받는 퀘스트가 있을 리가 없잖아! 그건 일종의 이벤트였던 거야. 현장감을 살려 주기 위한 연출 같은, 뭐 그런 거!’
뭐 그런 것치고는 이 갈리게 아팠다. 그리고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이가 갈리지만, 그래서 탈출할 방법이 있다는 사내의 말에 더 흥분되었다.
“바로 이거네!”
그리고 사내가 꺼내 드는 것을 보는 순간!
“…….”
아크는 할 말을 잃었다.
사내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들고 있는 것은 숟가락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차를 저을 때 쓰는 작은 숟가락. 이에 아크는 혹시나 해서 물었다.
“그걸로 어떻게 탈출할 생각인데요?”
“뻔하지 않은가? 이걸로 바닥을 파서 비밀 통로를 만드는 거야.”
역시나. 파겠단다, 찻숟가락으로, 땅굴을.
“후후후! 내 이런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놈들에게 잡힐 때 하나 숨겨 두었지.”
그것도 하나밖에 없단다.
……참고로 감옥의 바닥은 돌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더 놀라운 사실은 주위의 사내들이 기대 어린 눈으로 그 숟가락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는 것이다. 덕분에 아크는 알게 되었다.
‘글렀어! 이놈들은 글렀어!’
이 녀석들에게는 1도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건 아니잖아!”
정말이지 이런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지금은 이런 소리라도 지를 수 있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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